"학교 그만두렴" 엄마의 말… 내 성공의 시작
컴퓨터에 미친 소년, 열한 살 때부터 이웃의 웹사이트 만들어 어느날 엄마가 다가와…
고교중퇴자 창업 신화, 야후, 텀블러 인수 27세에 벼락부자로 잡스·저커버그 이후…
내 인생 모토는 '어른이 곧 동료'‐ 실수투성이 나를 끝까지 끌어줘
텀블러의 비전, 답답함·규제·강요 없애 과거의 창의성 다시 상상
21세기판 백과사전,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츠 매일 차고 넘쳐흘러
평평한 네트워크, 유명 스타에 의존하지 않아 텀블러는 모두가 주인
모든 영광은 시작에 있어, 새로운 일 시작하는 직원 모두가 축하하고 격려
열한 살 때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전문 프로그래머만큼 잘 만드는 소년이 있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게임을 즐길 시간에 이웃의 웹사이트를 만들어줬고, 열네 살 때부턴 컴퓨터 케이블을 팔러 다녔으며, 방학 때는 미디어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학교는 따분했다.
2001년 여름 언제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 코드를 짜는 아들에게 부모가 다가가 말했다. "얘야, 우린 네가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을 매우 즐긴다고 생각해. 혹시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것은 어떨까?"
소년은 그날로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컨설팅사 창업을 거쳐 2007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텀블러(Tumblr)를 세웠다. 6년 뒤인 2013년 5월, 그는 IT업계에서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야후가 텀블러를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 '제2의 마크 저커버그'라고 불리는 이 신화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카프(Karp)씨다.
그는 인수대금 중 2억달러를 챙기면서 스물일곱 살에 벼락부자가 됐다. 지난해 포브스지와 와이어드지 커버스토리를 장식했고, 포천지는 '2013년 IT업계 11대 이슈' 중 하나로 트위터 상장과 함께 야후의 텀블러 인수를 뽑았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이후 '대학 중퇴 이후 창업'이란 공식은 미국에선 흔한 일이었지만 '고교 중퇴 후 창업'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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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룸버그·AP뉴시스
텀블러에는 1억6400만개 블로그가 개설돼 있고, 매일 1억개가 넘는 콘텐츠가 새로 올라오며, 매달 3억명의 유저가 방문한다. 텀블러는 페이스북·트위터와 블로그의 중간쯤 된다.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너무 간단해 말을 다 담기 어렵고, 블로그는 장황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사람들을 공략했다. 글자 수나 사진 크기 제약도 없다.
텀블러는 10일 현재 미국 IT 컨설팅 회사 알렉사(Alexa)가 트래픽 기준으로 집계하는 '전 세계 500대 사이트' 가운데 34위(미국 내 17위)로 허핑턴포스트나 인스타그램 순위를 앞질렀다.
카프씨를 만나기 위해 뉴욕 맨해튼 텀블러 본사를 찾았더니 빨간색 컨버스화에 청바지·티셔츠 차림을 한 카프씨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약속 시각을 30분 넘긴 그는 미안해하며 "약속이 있다는 걸 까먹었다. 대신 가능한 모든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그에게 먼저 "정말 부모가 중퇴를 권했느냐"고 물었다. "맞습니다. 사실 부모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중퇴까진 생각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은 제가 뭘 잘하는지만 보셨던 것 같아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가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제가 사라지자 친구들은 '카프가 완전히 컴퓨터에 미쳤다' '부모가 그를 사이보그로 만들었다'고 수군댔어요. 하지만 만일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만 있었다면 중퇴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의 인생 모토는 '어른이 곧 동료(adult as peers)'이다.
"어느 순간 삶을 돌아보니 '친구들보다 어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매일 어른처럼 옷을 갈아입고 학교 가는 대신 일하러 갔습니다. 제 나이 또래 학생들은 이런 경험을 못했습니다. 어른이라곤 대학 교수님과 부모님뿐일 겁니다. 그러나 전 열네 살 때부터 어른들과 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실수투성이에 사회를 잘 모르는 자신을 어른처럼 대우해 준 어른들을 만난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축복이며, 그들이 멘토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열한 살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HTML 관련 서적을 구해 주며 프로그래머의 길로 인도해 준 아버지, 고등학교 중퇴를 권유한 어머니, 열네 살 때 재능을 알아보고 인턴십을 권유한 미디어 사업가 프레드 사이버트, 텀블러 초기 투자자이자 카프에게 투자의 의미와 투자받는 법을 일깨워준 벤처캐피털리스트 비잔 새빗….
갑자기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가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뭐가 다를까요. 아이들을 어른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똑같은 매너로 대할 수 없을까요? 열여덟 살 전까지는 '미성년자는 능력이 안 돼'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뭔가 증명해 보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프레드는 저를 그냥 어른처럼 대해줬어요. 정말 멍청한 결정을 많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데이비드, 주눅이 들어 사람들과 말을 못하는 건 아니지?'라는 식으로 감싸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텀블러 창업 뒤 전 투자를 받을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투자받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늘었습니다. 머리만 긁적이던 제게 비잔은 투자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그는 돈에 관한 한 최고의 멘토였습니다."
카프씨에게는 많은 중고생으로부터 "학교가 지루하다. 나도 창업하고 싶다"는 이메일이 쏟아진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답변한다. "창업에 성공하고 싶으면 주위에서 위대한 사람을 찾으세요. 그 멘토는 창업을 이미 경험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돌봐주면서, 잘못된 유혹이 뭔지도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 멘토를 찾으세요. 그때 성공 기회는 엄청나게 커집니다."
데이비드 카프는 고교 중퇴 이후 일본 도쿄의 한 인공지능 로봇 관련 회사에서 1년간 근무했고, 미국에선 어느 부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채용돼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 “저는 그 부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전화로만 연락해 일을 구했거든요. 그들은 젊은 컴퓨터 마니아들을 고용해서 일했는데, 사무실이 따로 없었어요.” (그는 부부와 통화할 때 낮고 굵은 목소리로 어른 행세를 했다고 한다.)
텀블러 본사 직원 216명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빌딩 두 개 층을 쓰고 있었다. 어림잡아 직원 10명 중 7명은 최고 경영자인 카프씨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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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텀블러, 외신종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규제 없는 커뮤니티
―텀블러를 창업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창조성과 창의적인 표현을 위해서였어요. 기존의 인터넷 도구들은 한계가 명백하게 보였거든요. 그 기술을 이용하는 도구들엔 강요와 규제만 존재하게 됐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초창기의 웹은 무질서에서 시작해 개방하고 상상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독특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유튜브엔 비디오만 올릴 수 있죠?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는 사진을 드래그해 저장만 할 수 있습니다. 트위터는 글을 140자 이내로만 쓸 수 있습니다. 동영상은 6초, 사진은 정사각형 같은 제한도 있습니다. 텀블러의 비전은 그런 답답함, 규제, 강요를 없앤 커뮤니티 사이트였습니다. 텀블러는 다시 상상하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와일드한 과거의 창의성을 복원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빠진 듯 긴 설명을 이어갔다.
“서부의 큰 테크 기업들(페이스북·트위터 등)이 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친구들과 나누는 것,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는 게 뭐냐면, 우리 사회에서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즐기는 예술과 미디어, 그것은 인간의 경험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서쪽의 그 기업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 창의성을 느끼는 것까진 만들지 못했습니다. 예술과 미디어를 우리 삶에서 빼면 삶은 너무 지루해지잖아요?”
평평한 네트워크
텀블러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가 있다. 평평한(flat) 네트워크라는 점이 그것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트위터는 상위 10% 유저가 전체 콘텐츠의 90%를 만들어 내지만, 텀블러는 상위 500개 블로그가 전체 콘텐츠의 4%를 만들 뿐이다. 몇몇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지 않는 민주적인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카프씨는 “트위터는 유명 인사가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지만, 텀블러는 모두가 주인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텀블러가 진짜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과 장르의 다양성입니다. 사진은 전체 콘텐츠의 25%도 되지 않습니다. 음악가,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영화 제작자, 작가들이 영상과 글 등 콘텐츠를 올려요. 지금 텀블러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사용자가 시인들입니다.”
텀블러는 창업자의 나이만큼이나 이용자들도 젊다. 전체 사용자의 46%가 16~24세로, SNS 사이트 중 10~20대 초반 이용자가 가장 많다.
“10대는 호기심이 자라나는 세대입니다. 너무 궁금한 것이 많고, 원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TV는 한계가 있습니다. 드라마 다음 편을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러나 텀블러에는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일 새롭게 차고 넘쳐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TV에 볼 것이 없어 유튜브에 갔다가 텀블러에 옵니다.”
―미래에 텀블러가 한 단어로 표현된다면 어떻게 표현될까요?
“21세기판 백과사전요. 모든 게 다 있는 겁니다.”
그는 SNS의 새로운 사용자 집단으로 ‘큐레이터(curator)’가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직접 콘텐츠 생산은 하지 않고, 남들의 콘텐츠를 끌어들여 그것을 재가공해 보여주는 사용자이다.
“큐레이터는 콘텐츠 창조자와 관전자 사이에 있습니다. 관전자들에게 위대한 콘텐츠 창조자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큐레이터들은 SNS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들은 스스로 표현하고 싶지만, 자신만의 언어가 없습니다. 그가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예술과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리사 메이어에게 설득당하다
―어떻게 회사를 팔 결심을 했나요?
“IT 업종에서 벤처기업이 독립회사로 남는 것은 벽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언젠가 돈이 떨어지고 경영난에 빠지고 문을 닫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더는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게 되고 망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초 회사를 팔 생각이 없었는데,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CEO를 만나 집요한 설득을 당하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마리사 메이어는 어떤 사람인가요?
“2012년 말에 처음 만났어요. 그녀는 군더더기 없이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돌직구로 핵심만 찌릅니다. 그녀가 텀블러에서 특히 사랑하는 건 패션(fashion)이에요. ‘텀블러에서 경험할 수 있는 패션의 세계는 다른 인터넷에서 경험할 수 없다’며 무척 좋아했어요.”
텀블러를 인수한 마리사 메이어는 철저하게 텀블러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텀블러를 인수하고 나서 그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야후 직원이 1만2000명인데, 텀블러는 200명도 안 된다. 만약 야후 직원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텀블러에 알려주기 시작하면 마치 눈사태가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텀블러가 독립성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녀는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고 이런 말도 했어요. ‘데이비드, 내 말 좀 들어 봐. 이 사무실을 와 보니까 마법이 일어나고 있네. 직원들이 어디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어떤 정수기에서 물을 뜨고, 냉장고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 사소한 것이라도 그런 마법이 사라지면 안 돼. 이 건물에 계속 있는 게 마법을 유지하는 길이야’라고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회사를 팔 수도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텀블러 인수는 철저하게 마리사의 비전이었어요. 그녀는 저에게 ‘텀블러는 야후 성공의 지름길이며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뭘 걱정하느냐, 같이 팀으로 일하자’고 말했어요.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이걸 또 생각해 보세요. 예컨대 구글에 인수됐다면? 우린 구글에 ‘적당히 필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야후는 어떨까요. 우리가 정말 성공하면 야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메이어 CEO가 오기 전까지 야후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조직이었습니다. 그녀는 향후 5년간 야후가 의미를 되찾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절실함을 구글·페이스북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최고 경영자는 최고 동기부여자
―최고 경영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최고 경영자가 ‘최고 지원자’또는 ‘최고 동기부여자’라고 생각해요. 때로 출근하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지?’란 생각에 갑자기 멍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냥 최고 동기부여자라는 단어를 떠올려요. 그리고는 각 팀을 찾아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지원하죠. 저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을 도와주고, 에너지를 주는 일을 합니다.”
그가 만든 텀블러의 모토는 ‘모든 영광은 시작에 있다(All glory to launches)’이다.
“누구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면 회의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랑하도록 격려합니다. 모두가 축하하고, 그 일이 유저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미래의 가장 큰 도전은?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아무리 커져도 우리 자신에게 계속 진실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용하기는 항상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할 것이 많아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고용해야 하는데, 텀블러에 최우선 가치를 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 그게 가장 큰 도전인 것 같습니다.”
―고교 중퇴를 후회한 적은 없나요?
“제가 고등학교에서 얻지 못한 것은 친구 관계,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지리 수업을 들으면서 푸는 퀴즈였어요. 하지만 전 언젠가 대학에 갈 겁니다. 매우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매우 지적이거든요.(웃음) 엔지니어링이나 화학, 이런 것을 공부해 보고 싶어요.”
텀블러, 트위터와 블로그의 중간… 사진·비디오 올리기 쉬워 부담 없이 콘텐츠 생산
비주얼 주로 다루는 예술가·창작가들이 특히 많이 사용
최대 140자의 글자 제한이 있는 트위터로 쓰기에는 길고, 그렇다고 블로그로 쓰기에는 짧은 글이 있다. 머릿속에 무슨 상념이 떠올라 가볍게 글을 남기고 싶지만 어쩐지 블로그에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려면 어깨에 힘을 주고 제대로 된 '중요한' 글을 써야 할 것은 느낌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미처 못 쓴 글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이른바 '마이크로블로그'라는 텀블러를 만나게 됐다. 트윗으로 날리기에는 넘치고 블로그로 쓰기에는 모자라는 글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 사용을 시도해봤다.
회원 가입은 아주 쉽다.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유저 아이디, 패스워드를 만들면 끝이다. 특히 사진·비디오 등을 쉽게 삽입할 수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두었던 사진 몇 장을 올리고 가볍게 글을 몇 줄 써서 포스팅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콘텐츠 생산에 부담이 없다.
또 텀블러의 특징은 기존 블로그에 SNS 기능을 강화해 빠른 콘텐츠 소비와 확산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사진 위주로 되어 있는 포스팅을 쉽게 훑어볼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하트 모양 아이콘을 눌러서 마음에 든다고 표시하거나 리블로그(Reblog) 버튼을 눌러서 내 텀블러 블로그에 코멘트를 붙여서 재발행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블로그는 팔로(Follow)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 팔로한 블로그는 내 텀블러 초기 화면인 대시보드에 발행 시각 순서에 따라서 나타난다. 인기 텀블러 블로거는 팔로어를 수만 명 거느리고 있는 것이 마치 트위터와 비슷한 느낌이다.
정적인 기존 블로그 플랫폼에 비해 이처럼 텀블러는 유저 간 상호작용이 즉각적으로 많이 일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장점을 섞은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블로그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펌글, 스크랩 기능을 리블로그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도 흥미롭다.
사진을 올리기 쉽기 때문에 사진이나 그림, 동영상 위주 포스팅이 많이 올라온다. 그래서 주력 사용자층인 틴에이저 외에도 사진가·디자이너·패션모델 등 비주얼을 주로 다루는 예술가·창작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블로그 플랫폼이 됐다.
다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텀블러는 사진 위주 블로그이며 성인 콘텐츠를 제재하지 않다 보니 포르노 관련 블로그가 많은 편이다. 또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텀블러보다 더 쉬운 경쟁 서비스의 부상도 위협적이다. 사진 SNS인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에 필터링 효과를 입혀서 쉽게 포스팅할 수 있게 했고 팔로 기능을 붙여서 텀블러의 고객층을 흡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