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참] 구매는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여야 합니다 / 양기석 신부
발행일2017-08-06 [제3056호, 23면]
「생활양식을 바꾸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비자 운동은 특정 상품의 불매로 기업의 형태를 바꾸는데 영향을 미쳐 기업이 환경 영향과 생산 방식을 재검토하도록 합니다··· 이는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 줍니다.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입니다.” 오늘날 “환경훼손의 문제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06)」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독일은 5월 30일 18기의 핵발전소 중 노후된 8기의 핵발전소의 즉각적인 폐쇄와 2022년까지의 순차적으로 영구히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탈핵선언을 하였습니다. 이를 전해들은 한국의 탈핵운동가들과 함께 독일 하원에서 핵발전소를 영구 폐쇄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6월 30일 즈음해서 독일을 방문하였었습니다. 그곳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독일 사회에는 공영과 민영 방식의 에너지전력회사들이 다양한데 그 중 ‘쇠나우전력회사’나 ‘그린피스에너지’처럼 친환경 에너지 중심으로 생산한 회사의 전기를 일부 비용을 더 부담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환경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 미래를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현 정부는 찬핵진영의 여러 문제제기에 대해 신고리 5, 6호기를 건설하지 않아도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며 굉장히 적극적인 탈핵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2079년이 되어야 핵발전소가 모두 없어지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을 듣는 순간 현 정부의 탈핵의지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2013년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핵발전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성찰」을 발간하여 탈핵사회로의 전환을 촉구하였습니다.
핵발전소는 연료인 우라늄의 채굴 과정에서부터 해당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현격히 높은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암, 백혈병 등의 악성질환 발병률과 수도권과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밀집해 있는 관계로 건설되는 고압송전선로 때문에 또 다른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것이 핵발전소입니다. 또한 연간 750톤 이상 쏟아져 나오는 핵폐기물로 인해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미래세대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는 비용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핵발전소입니다. 전기 사용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현재와 미래의 우리 생명과 존엄성,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발전원입니다.
신규핵발전소의 건설 근거를 제시한 7차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30년 최대전력치 113.2기가와트가 과다 예측되었고, 실제로는 101.9기가와트로 예상된다는 8차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전망 워킹그룹의 보고를 근거로 하면, 신고리 5, 6호기 뿐 만 아니라 상당한 공정률을 보이는 신고리 4호기(부산), 신한울 1, 2호기(울진)도 건설을 중단하고 폐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2040년이면 실질적인 탈핵사회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전기사용자이자, 주권자인 우리 신앙인들은 위험한 방식의 핵발전소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엄성과 생명권,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햇빛, 바람 등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을 요구할 권리와 책무가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안전과 미래는 기업과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자 시민인 우리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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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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