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보다 키가 한 뼘 더 작았고
웃으면 여물지 않은 볼에 빛줄기가 터져 흘렀다.
그림자가 밟히는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넌 항상 날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당연스레 너에 있어 우위에 있다고 한껏 나를 치켜세웠었다.
나는 항상 너를 이름으로 불렀지만 너는 한 번도 나를 이름으로만 부른 적이 없었다.
너의 목소리로 이름을 불리고 싶었다.
-야. 나도 이름으로 불러줘
갑작스런 말에 너는 머뭇거리며 입을 쉬이 떼지 못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네 모습에 나는 더 채근했다.일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야......됐지?
평소와 다른 호칭에,머뭇거림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부름받은 순간,
빛이 얼굴 어딘가를 강하게 내리쬠을 느꼈다.
비는 싫다. 변덕스러워서 싫다.
내가 싫다. 변덕스러운 비를 싫어하는 건 내가 변덕스럽기에 그렇다.
너도 싫다. 건방지게 자꾸 불쑥 불쑥 자라난다.
어느새 그림자를 밟지 않고 나란히 걷고 있는 네게 늘 지고야 만다.
소나기가 내릴때 길목에서 공짜로 나눠 준 투명한 우산은
비바람이 쏟아지는 하교길을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비틀거리는 내 옆을 지나치며 던지는 동정의 눈길에 노출된채로
어서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바라던 때
얄궂게도 우산은 거꾸로 뒤집혀 버렸고,
운동장 한 복판에서 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푹 잠기었다
우산은 바람에 다시 뒤집혀 멀쩡한 척 연기했지만 언제 또 뒤집혀버릴, 신뢰를 잃은 물건이 되었다
교문 밖만 나서면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빗소리에 섞여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하필 니가 나타나 괜찮냐고 물어왔다.
대답하지 않았다. 어서 니가 가던 길을 가주길 바랬다
너는 고집스럽게 들고 있던 장우산 하나를 내 손에 고쳐쥐어주며 쓰고 가라 자장가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를 재촉하는 네 손목에는 3단 우산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왜 그 우산을 안쓰고 가는 거냐,라는 물음은
네가 준 우산을 펼쳤을때 스스로에게 구할 수 있었다.
우산은 너무 컸다.
두 사람이 쓰고도 조금 남을 법한 커다란 우산을 너는 내게 준 것이었다.
우산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함부로 너의 운동화를 적실때까지
나를 쳐다보던 네가 바라던 대답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완벽하게 네게 우위를 뺐길 것이 뻔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투명우산처럼 내 속내를 네게 들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굳게 다문 내 입술에서 뭔가를 확인한 듯
너는 아무렇지 않게 3단우산을 펼쳤다.
그럼,잘가.라는 짧은 인사를 내게 남기고
그때 내가 네게
같이 쓰고 가자,라는 말을 했다면,
나를 앞질러 가던 뒷모습에서 부푼 기대가 말라붙은 반죽이 되어 떨어져나가는 걸 보면서도
끝끝내 대답하지 못한 나는.
여전히 비가 싫다. 변덕스러워서 싫다.
내가 싫다. 변덕스러운 비를 싫어하는 건 내가 변덕스럽기에 그렇다.
변덕을 부려봐야 그때 너를 만날 수 없으니 변덕부릴 수 있는 비가 싫다.
그리운 첫사랑이 떠올라요.
첫댓글 왜 기억강제 조작하시는거죠?ㅋㅋㅋ이런 첫사랑 없었는데 (광광
뭔가 설레고 두근두근 하지만 안타까움이 묻어나네요 ㅠㅠ.. 없는 기억도 만들어내는 듯한 기분 이예요 ㅋㅋ 글 너무 잘쓰셔서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