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다음날 도훈은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대학시절 소주 5 병정도는 거뜬이 들이키던 그 였지만
고된 노동 후, 피곤한 몸상태는 온 장기들을 동원해 알콜을 거부했다.
오후 3시, 그는 어제의 일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가 카드로 계산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카드.. 그는 카드가 없다.
있는 카드라곤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나라사랑 카드 뿐...
그는 서둘러 남영에게 톡을 보냈다.
- 야,남영아 어제 계산 한 카드 니꺼냐?
잠시 뒤, 알림음 마저 피곤해보이는 남영의 톡이 도착했다.
- 엥? 나어제 카드 긁은거없는데... 문자도 안왔어, 니가 산거 아니였냐?
그는 남영의 톡을 보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도훈은 재빨리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점퍼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손에 차가운 방바닥에 얼어 붙기 일보 직전인 검은 색 카드 하나가 느껴졌다.
도훈은 망연자실 하며 자신의 머리를 몇 대 쎄게 때렸다.
- 야....그.... 카드 쓰면 당연히 주인한테 문자 오지?
- 문자? 나는 오게 신청해놨지, 그거 신청 안하면 안올수도있어, 왜..? 뭐 문제있냐?
- 아냐,
도훈은 뒷목이 뻣뻣해 졌다.
가난한 27살의 청년이 여자 잘못만나, 돈 뜯기고 빚까지 졌는데... 이젠 범죄 까지 저질렀다.
도훈의 머리 속엔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팔찌를 차고 차가운 철장안에 갖혀 연신 잘못했다고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끔찍했다.
그는 일단, 회사에 돌아가 분실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던.... 47만원도 아닌 4만7천원이니까... 미안하다고 하면서 5만원 가량 되값아 주면
카드 주인도 용서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쉬는날 회사에 간다는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도훈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왜왔어? 라는 질문들을 연신 뱉어내곤,
그때마다 그는 머쩍게 영화보러... 라고 대답 할 뿐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도훈은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경찰 두명이 CCTV 를 돌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랬다고 말할까?
잘못했다고 싹싹 빌까?
그냥 주웠다고 말할까?
근데..CCTV 돌리면 다 나오잖아...
아...어떻하지...
X 댔네 아주....
도훈이 벽에 기대어 망연자실 허공을 보고있던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시끄러운 고함과 함께 몇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 이새끼, 내가 너 콩밥 먹일 줄 알아 !! "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
무척 화가 난듯한 노인은 어린 알바생의 목덜미를 잡고 개 끌듯이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고함 을 치고 있었고
시네마의 매니저들과 관장은 연신 고객님 일단 진정하시고... 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어쩔줄 몰라했다.
사무실에서도 이 고함을 들었는지 모두가 뛰쳐나왔다.
" 저... 무슨일이예요? "
도훈은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한 여 사원에게 질문했다.
" 어? 도훈님, 오늘 쉬는 날 아니예요? "
" 아... 그냥 심심해서 영화보러 왔는데... 왜 들 저래요? "
여사원은 입이 근질 근질 했는지 빠르게 도훈에게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아니, 저 알바분이, 상영관 청소 하다가 지갑을 주웠는데, 분실신고 안하고 홀랑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는거 있죠?
세상에, 나이도 어린데 어쩌려고... 고객님께서 지갑 잃어버렸다고 연락주셨고, 주운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해서 CCTV 돌려보니까
글쎄 저 알바 가 그런 짓을 한게 딱 나오잖아요! "
순간 도훈은 뼈속 까지 굳어 버리는 듯 했다.
" 도훈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파요? "
" 예?! ...아..아뇨, 아니. 네!! 네... 감기 기운이 있나봐요, 영화 나중에 봐야겠어요 ..."
도훈은 빠르게 시네마를 빠져나왔다.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단, 내일 출근해서 구석에서 카드를 줍는 척하고 바로 분실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집 앞에서 담배 하나를 피우며 그 문제의 검은색 카드를 꺼내 보았다.
카드 재질도 플라스틱 보단 좀더 딱딱한 다른 소재의 카드 같았다.
그리고 그 카드엔 카드 번호가 쓰여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워낙 잘사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는 프리미엄관이다 보니 별별 카드들을 다 만날 수 있는데
번호없는 카드 는 어떤 카드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카드 주인의 얼굴이 확 머리속에 그려졌다.
크리스마스.. 혼자온 여자... D1 번자리에 앉아있던 엄청 예뻣던...그여자!!
도훈은 졸지에 여자 카드나 훔쳐다 쓰는 도둑이 됐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무심코 카드 뒷면을 돌려보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카드 뒷면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이 도 훈
첫댓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