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의 눈에 비친 도시 생활의 달콤쌉쌀함
도시의 삶을 이루고 있는 냉혹한 밥벌이
야무지게 일하지만 그 속에선 문득 회의가…
정은숙의 ‘비밀을 사랑한 이유’는 일하는 여성의 눈에 포착된 거대도시의 생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시집은 그 소재와 스타일에서 신경림의 70년대 시집 ‘농무’와 버젓한 대칭을 이룬다.
정은숙(44)의 첫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1994년)는 생활의 육질로 탐스러운 과일이다. 여기서 탐스럽다는 것은 익을 대로 익어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즙으로 흐무러질 듯한 연시나 황도의 맛과 빛깔은 정은숙의 시어들과 거리가 있다. 그렇기는커녕 이 시집은 차라리 견과류에 가깝다. 단단한 껍질로 싸여있는 그 열매의 맛은 달콤쌉쌀하다. 그 달콤쌉쌀함은 정은숙의 시어들이 간직한 맛이면서, 이 시집의 화자들이 영위하고 있는 생활의 맛이다.
그 맛에는, 아뿔싸, 중독성이 있어서, 이 시집을 이미 읽은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되풀이 읽게 만든다. 이해되지 않아 다시 읽는 게 아니라, 금단증상 때문에 다시 읽는다. 나는 지금 이 시집에 지독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시집을 내는 감회가 “멀쩡한 재킷 안에 입은 내 젖은 속옷의 불편함”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불편함은 “<일>과 <나> 사이에 끼인 나의 부조화”(‘내 몸에서 독향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시인이 유능한 출판편집자라는 텍스트외적(外的) 정보를 모른 채 이 시집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 화자들의 대다수가 일에 치여 사는 생활인이라는 점은 단박에 또렷하다.
“눈떠 보게 되는 나날의 일력(日曆)과/ 밀려드는 주간 계획, 월간 계획서”(‘아득한 나날’)라거나 “오자는 나의 적./ 틀린 문장은 흩어진 이교도./ 나는 적을 죽이고/ 대열을 바로잡는다”(‘직업병’) 같은 시행의 화자는 아마 시인 자신일 것이다. ‘청록집’을 비롯해 우리가 최근 읽은 몇몇 시집과 ‘비밀을 사랑한 이유’를 표나게 갈라놓는 점이 바로 이 생활의 무게다. 정은숙 읽기는 그러므로 생활의 발견이다.
‘비밀을 사랑한 이유’는 생(生)으로 둘러싸인 생활이다. 나는 지금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집의 첫머리와 끝머리에 배치된 작품에는 각각 ‘생, 그것을 모른다’와 ‘인생’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아무런 감탄도 일없다는 이 삶에서/ 눈떠 자신을 싣고 갈 장의차를 기다리며/ 그 뿐이다.
무엇을 쫓고 있는가,/ 절묘하게 꾸며진 한 편의 이야기./ 움켜쥐면 화인(火印)만 남기고 사라지는 물 같은 유체(遊體)들”(‘생, 그것을 모른다’)이라거나 “아이를 낳고 아버지는 하품을 한다./ 산고는 너무 길었다./ 산고는 너무 큰 상처를 남긴다.//(…)// 엄마는 종종 운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종종 울린다./ 아이 곁에 엄마가 눕는다./ 깃털이 하나 툭 떨어진다”(‘인생’) 같은 시행에서 보듯, 이 시들은 말하자면 정은숙 인생론의 총론 격이다. 그리고 그 두 작품 사이에 끼인 채 섬세한 생활 이미지들을 내비치고 있는 나머지 시들은 시인을 그런 인생론에 이르게 한 각론이랄 수 있다.
그 인생론에 별스러운 점은 없다. ‘비밀을 사랑한 이유’의 인생론은, 다소 난폭하게 말하자면, 오래 전 한 드라마 주인공의 입에서 되풀이 발설되면서 그 시대의 유행어가 된 바 있는 ‘인생무상, 삶의 회의’에 가깝다. 그러나 정은숙은 세련되고 예민한 도시 시인의 감수성으로 생활의 우울한 세목들을 경쾌하게 낚아챔으로써, 그 별것 아닌 인생론에 강렬한 위의(威儀)를 부여한다.
그러니까, ‘비밀을 사랑한 이유’의 매력 또는 마력은 이 시집의 육질을 이루는 생활세계의 풍성함만이 아니라, 그 생활세계를 돌아보고 엿보는 시인의 눈썰미에 기인한다.
나는 방금 정은숙을 ‘도시 시인’이라 일컬었다. 물론 이 시대의 시인 대다수는 도시 시인이다. 그러나 그 소재와 스타일에서 정은숙만큼 도시 이미지가 짙은 시인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도시인으로서 바라보고 도시인으로서 발언한다. 도시 이미지의 시적 챔피언이라 할 김수영조차, 그간의 사회변동 탓이겠지만, 정은숙보다는 덜 도시적이다. ‘비밀을 사랑한 이유’를 채우고 있는 생활의 육질은 도시생활의 육질이다.
큰 틀에서 첫 시집의 연장선 위에 있으면서도 언어의 긴장은 외려 풀려있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만의 것’(1999년)에는 ‘서울, 사랑, 1999’라는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시의 둘째 연은 “이제 떠났던 그 어디에서든지/ 서울의 열기를 그리워하지”로 시작하는데, 정은숙의 첫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는 시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 서울의 시집이랄 만하다. 대중가요투로 얘기하자면, 이 시집은 서울 엘레지고, 서울 야곡이다.
서울이라는 이 거대도시의 생활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선 밥벌이다. 그 밥벌이는 냉혹하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콧물이/ 한없이 낮은 톤의 목소리를 비웃으며/ 흘”러도 “문득 수화기 저편에서/ 아지못할 거룩한 중년이 나를 꾸짖”으면 “오랫동안, 나는, 아플 수가 없다”(‘감기와의 화해’).
또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코가 깨졌다고/ 수화기 너머에서 아내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지만, “금년부터 벤츠를 운전하는 이 기사(물론 고용된 자가용차 운전기사다--인용자)”는 “핸들에 24시간 매달려 있”(‘고요 속에 몸풀기’)을 수밖에 없다.
시인 자신이 투영돼 있을 화자들은 야무지게 일하며 야무지게 살지만, 그 노동의 삶 갈피에선 문득 회의가 묻어난다. 그는 “놓아버릴 수도 계속 쥐고 있을 수도 없는 밧줄에 감겨”(‘모독 5’) “돌아서서 이 길이 아닌 길로 접어든다고 해도/ 바로 갈 수 있으리란 걸 확인 못 하겠”(‘모독 4’)다고 푸념한다.
직장인으로서 그의 삶은 “간신히 존재하려고 무릎이 깨지도록 기어가면서”(‘세상의 하루’) “내가 좋아하는 푸른색 멍이 들라고/ 사지를 흔들며 벽에 부딪치곤 하는”(‘모독 1’) 삶이다.
‘양재동, 하오 2시’의 화자가 “커피심부름과 갖은 홀대와 음흉한 시선”에 시달리는 ‘스무 살 처녀 미스 조’에게 연민을 느끼는 걸 보면, 여성이라는 조건과 밥벌이의 험난함 사이의 역학을 시인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실, ‘비밀을 사랑한 이유’를 여성주의의 맥락에 가둘 필요는 없겠지만, 이 시집 화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고난은 대개 화자의 성적 조건과 무관치 않다.
‘양재동, 하오 2시’에도 “눈물의 시간과 데이트하는 스무 살 처녀”라는 시행이 보이거니와, ‘비밀을 사랑한 이유’의 몇몇 페이지는 눈물로 촉촉하다. “얼굴을 건반에 박은 채 울고/(.....)/ 냉장고에 기대어 우는 아침이여”(‘세상의 하루’)라거나 “철든 뒤 처음 눈물이 흘러 차창을 적시는 걸 본다”(‘집 떠난 인생’)거나 “비가 되어 내리는 너의 눈물”(‘일기장 1’) 같은 대목들이 그렇다.
이 눈물은 대체로 생활의 힘듦 속에서 흘러나오지만, “서로 견디는 자들이 나눠 마시는 한 잔의 물/ 문득 여자의 눈에도 맑은 물이 고인다”(‘낙타에게 길 묻기’)에서처럼 (싸우지 않고) 서로 견디는 자들이 나누는 연대의 눈물이기도 하다. 이 눈물이든 저 눈물이든, 시인에게 그것은 “우리를 살아내게 하는 힘”(‘낙타에게 길 묻기’)이고, 천상의 보석처럼 고귀한 상징인 것 같다.
‘비밀을 사랑한 이유’를 채우고 있는 생활이 꼭 일터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의 공간에는 아내 몰래 하는 연애(‘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나 남자들끼리의 시시껄렁한 잡담(‘카페의 여자’)이나 해외 입양(‘나의 사랑, 나의 운명’) 같은 세태들이 버무려져 있다.
애인과 아내 사이에 끼인 화자의 미묘한 처지를 그린 ‘좋은 것이 다 만족스럽지 않아’는 한 편의 상큼한 단편소설처럼 읽히며 시인 정은숙의 이야기꾼 재능을 보여준다. 변기에 앉아 애인의 전화를 받게 된 화자를 내세운 ‘무선 전화기의 하루’에도 시인의 반성적 유머감각과 기지가 넘실댄다.
시집 표제 ‘비밀을 사랑한 이유’는 ‘소설의 사랑’이라는 시에 드러나 있다. “그가 비밀을 사랑한 이유는/ 그것이 그들 만남을 에로틱하게 만들고/ 그리고 기막힌 전복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첫 시집에서 제 삶의 비밀을 상당 부분 드러냄으로써, 정은숙은 ‘기막힌 전복’을 포기한 듯하다.
그것이 그의 “뒤늦은 후회”(‘자서’)를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직업은 시인./ 그렇다. 시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매스미디어와 간통하는’)이라는 비아냥이 시인 자신을 향한 것이든 다른 시인을 겨냥한 것이든, 그런 욕망이 문학적 욕망의 일부인 것도 엄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어떤 됨됨이의 시를 낳았느냐 하는 것일 터이다. 그 점에서 시인의 후회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비밀을 사랑한 이유’는, 시인을 아주 유명하게 만들지는 않았겠으나, 일하는 여성의 눈에 포착된 거대도시의 생태를 생생하게 보여준 뛰어난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 소재와 스타일에서, 그리고 꿀릴 것 없는 높이와 깊이로, 신경림의 70년대 시집 ‘농무’와 버젓한 대칭을 이룬다.
▲ 내 안의 광인
유료 주차장마냥 정돈된 구역
맑은 햇살 아래
우산 하나 받쳐 든 사람 있다.
평화의 사람.
거칠 것 없고, 만국기 같은 얼굴에
부도를 모르는 만성 흑자의 삶이
펼쳐져 있다.
문득 삶의 표지를 잃고 바라보아도
그는 변함없이 그 곳에 있다.
그를 따라가는 <나>가 보인다.
나의 삶이.
하루 한끼를 걱정하는
역사로 이어진 나의 삶이여.
담배를 적선하는 자는 그의 애인
구만리 장천을 벗하여 가는
삶일 수는 없는가.
손대지 마시오, 천연 기념물임.
내 안의 광인이 그와 교신하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글: 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