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원문] 최초 공개하는 채만식의 유언장 “상여는 리어카… 조문은 山野꽃 한다발 가지고 오시든가” /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火葬. 혹 화장시설이 없으면 地藏하되, 되도록 화장으로 ⊙ 용지를 아끼자. 1년 쓸 것을 2~3년으로 늘려 쓰자
소설가 채만식 선생의 손자 석재(奭宰)씨가 집에서 보관해 오던 선생의 유언장을 처음 공개했다. 200자 원고지 7장에 걸쳐 쓴 유언장은 선생의 아들 계열(桂烈·2004년 사망)씨가 간직해 온 것이다.
선생은 유언을 통해 ‘상여는 리어카 상여를 쓰고 화장을 하되 유골은 바다에 뿌려 달라’고 청한다. ‘리어카 상여’는 선생의 결벽증을 떠올리게 한다. 또 ‘산야(山野)에서 자연화를 꺾어다 리어카 상여에다 싸 달라’고 부탁한다. 실제로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이무영, 신석정 등 동료 문인들은 손수레로 상여를 쓰고 관 위에다 산국화·들국화를 뿌렸다고 전한다.
이를 기념하여 지난 4월 전북 군산시 임피면 직원 20여 명이 선생의 생가터와 묘지 주변에 들꽃(四季패랭이 등) 2000본을 식재했다.
또한 1989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0권의 《채만식전집》에 빠진 산문 6편을 발굴, 《월간조선》에 싣는다. ‘공연예술자료 연구가’ 김종욱씨가 제공했다. 선생의 유언장과 산문은 원본 의미를 살리면서 현대어 맞춤법 표기를 따라 수정했음을 밝혀 둔다.
〈채만식의 유언장〉
◇화장. 혹 화장시설이 없으면 부득이 공동묘지로 지장(地藏)하되, 되도록 화장으로.
◇유골은 바다에 띄우는 것이 원이나, 아(兒) 등이 장성하여 섭섭해할지 모르니, 계남리(鷄南里) 할머니 산소 앞 서편 다박솔 밑에 매(埋).
◇이복업(李福業), 채규심(蔡奎深) 기타 젊은 후배들에게 부탁하여 둔 바 있으니, 상여는 리어카 상여를 쓸 것. 남의 시체(屍體)국 묻은 헌 상여에 누워 무지한 상두꾼의 호해 호해 소리를 들으며 나간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불쾌. 다시 없습니다.
◇자연화(自然花)가 있을 계절이면 산야에서 자연화를 많이 끊어다가, 동절이거든 가화(假花)를 사서 리어카 상여를 싸고, 마포 한 필을 양단(兩斷)하여, 줄을 매어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끌고 나가게 합니다. 음악 불요(不要).
◇수의(壽衣), 마포로 고의적삼, 두루막, 건(巾), 보선에 한할 것.
◇주상(主喪), 없습니다. 둘째 중형(仲兄)님, 혹 계열(桂烈·채만식의 차남-편집자註)이 와서 함열형(咸悅兄·아내 은선흥을 지칭-편집자)의 주상을 주장(主張)하더라도 망인의 유언을 어기지 못한다고, 단연 거절할 것. 단 함열형의 와상(臥喪)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니, 그 점, 저 편에 오해 없도록 설명하십시오. 평생을 불고(不顧)한 자식에게 사후 주상 노릇을 받는다는 것은 염치도, 체모에도 어그러지는 노릇입니다.
◇복상(服喪). 가족이 3일간 근신하고, 3일로써 탈상할 것.
◇사진을 한 장 택하여 두니, 그것을 대형 혹은 중형으로 확대, 안방 아랫목 또는 대청에 널어 놓고, 아(兒) 등으로 하여금 늘 보며 생전의 유훈(遺訓)을 되풀이하여 주시오.
◇제사, 사일(死日)날. 그 사진을 내려 책상 위에 놓고 정화수 한 그릇을 고여, 상일을 기념하게 하시오. 음식물 장만 전폐(全廢).
진작부터 부탁도 하였지만 다음과 같이 간소히 행하여 주십시오.
1. 상여, 리어카 상여로. 1. 자연화를 여러분이 한 다발씩 가지고 오시든지, 계절이 아니면 가화를 만들어 상여를 덮어 주시오. 1. 끄는 주력(主力)은 리어카 상여 가지고 온 사람이 하겠지만 마포로 줄을 매어 여러분이 양편에서 끌어 주십시오. 1. 음악 무용(無用). 1. 만장(輓狀) 등 깃발 무용. 1. 이상원, 양근용(보험병원) 두 사람 미리 데려와 시내의 와고전청(臥告傳淸) 기타 조력 받으십시오.
〈Moder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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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죽으면서는 본부인(은선흥)한테 좀 미안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