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비록 그 약속이 취중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것이라도……
강상호에 의해 태풍전사단이라는 참 거시기한 이름으로 불리우게된 50인의 소년들 중 강상호를 찾아와서 소원을 말한 이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도 '술을 한번 마시고 싶다.' '부모님을 한번 만나고 싶다.' 가 대부분이었고 아주 가끔씩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 라는 소원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 강상호의 앞에 있는 태풍전사단의 단장으로 임명된 현운의 소원은 강상호로써는 참 번거롭고도 귀찮은 것이었다.
강상호가 귀찮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니까. 너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 이거냐?"
현운은 진지한 말투로 답변했다.
"네, 꼭 다니고 싶습니다."
'에효, 많은 소원중에 하필이면 저런 소원을 가지고 오냐. 으이그, 귀찮은데…….'
"현운. 다른 소원은 없냐? 왜 하필이면 학교냐. 응? 다른 학생놈들은 전부다 학교 가기 싫어서 난리들인데……."
현운의 머리는 나쁘지 않다.
현운은 지금 강상호가 자신의 소원을 거부하려고 함을 깨달았다.
순간 현운의 기세가 달라졌다.
현운은 숙였던 고개를 바짝 들어서 강상호의 두눈을 마치 뜷을 듯이 바라보며 강한 악센트를 넣어서 말했다.
"저는 꼭 학교를 가고 싶습니다. 보스! 학교로 보내주십시오!"
순간 강상호는 현운의 기세에 당황했다.
그 기세는 과거 강상호의 스승이자 무쌍파의 전대 보스였던, 이제는 고인이된 존재인 박필산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강상호는 자신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한줄기 땀을 느끼며 생각했다.
'저, 저놈…….'
현운은 강상호가 어떠한 생각을 하건간에 계속해서 강상호의 두 눈을 뜷듯이 바라보며 완강한 자세를 고집했다.
결국 강상호가 한발자국 물러섰다.
"그, 그래. 그런데 왜 학교를 가고 싶다는 거지?"
순간 현운은 지금 자신이 말만 조금 잘하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느꼈다.
현운은 아프리카 초원의 숫사자라도 때려잡을 기세로 또박또박 말했다.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강상호는 또다시 현운의 기세에 움찔했다.
'저, 저 녀석……학교에 안보내주면 아예 날 때려 잡겠구나…….'
강상호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그래. 네 평생의 소원이라면 들어줘야겠구나. 그, 그래. 내가 다 알아서 해 줄테니까. 우, 우선 숙소로 돌아가거라."
현운은 한줄기 희망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느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현운은 곧장 고개를 굽신거리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보스."
현운은 그렇게 기분좋게 강상호의 집무실에서 나갔다.
강상호는 사라지는 현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 대단한 걸물이군…….'
강상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열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지금 현운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실실 웃으며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지금 현운을 이렇게 기쁘게 하는 것은 며칠전 걸려온 전화 한통 때문이었다.
-현운아. 너 학교 정해졌다.
"네? 저, 정말입니까?"
-그래,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거 봤냐? 아무튼 넌 3월10일부터 등교하면 된다. 학교가 어디냐 하면……음……대치동에 있는 분광고등학교다.
순간 현운은 뭔가 계산이 틀리단 것을 느꼈다.
"보, 보스. 저는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을 안했는데……어떻게 고등학교로……."
수화기 너머로 강상호의 귀찮음이 절절 흐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것때문에 얼마나 고생한줄 아냐? 일단 네가 안양에 있는 삼신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에 있는 연수중학교를 졸업해서 만수고등학교에서 1년 있다가 전학간걸로 했어. 너 임마, 나이가 열 여덟이라서 1학년에 넣을수도 없어서 내가 그 고생을 한거야. 내가 삼신초등학교 이사장하고 연수중학교 이사장한테 찾아가서 얼마나 굽신거린줄 아냐?
물론 강상호는 그런 고생을 사서 하지는 않았다.
강상호는 삼신초 이사장과 연수중 이사장에게 상당량의 돈을 준 후 졸업장을 산 것이었다.
물론 교육청에도 어느정도의 돈을 넣어주었다.
또한 만수고 이사장에게도 웃돈을 주어서 1학년을 마치고 전학을 간 것으로 처리하였다. 물론 그때문에 또다시 교육청에 들어간 돈이 꽤 됬지만 말이다.
실상 강상호가 이 일에 들인 돈은 무쌍파의 수입에서보자면 바퀴벌레 만한 것이었지만 강상호는 현운에게 생색을 내려고 일부러 과장을 한 것이었다.
아무튼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현운은 강상호가 자신을 위해 고생한 것에 감동을 하였다.
"보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죽을때까지 보스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에이, 그럴 필요는 없고……아무튼 3월10일부터다. 시간은 8시30분까지고 장소는 2학년7반이다.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 해라. 아참, 지헌이도 너랑 같은 고등학교다.
순간 현운의 머리에 또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네? 지헌이요? 지헌이가 왜……."
현운의 물음에 수화기 너머로 강상호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식이 어떻게 알았는지 네가 고등학교 간다는거 알고는 나한테 달라붙어서 마구 조르더라. 으휴. 그 찰거머리……화장실까지 따라와서……으이그……아무튼 그 자식도 너랑 같은 분광고등학교다. 참고로 그 자식은 너보다 한살 아래니까 1학년이다. 자, 이만 끊자. 낮잠좀 자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상호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그 후 현운은 김지헌과 함께 분광고 교복을 맞췄고 지금 현운은 자신의 숙소에서 기쁜 마음으로 교복을 갈아입고 있는 중인 것이다.
교복을 다 갈아입은 현운은 이번에 새로산 옆으로 메는 가방을 메고는 숙소 밖을 나갔다.
그리고는 분광고로 달려가기 위해 신발끈을 맬 때였다.
"운이형~"
현운은 자신을 부르는, 김지헌의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김지헌은 어디서 샀는지 오토바이를 탄 체 현운에게 말했다.
"형, 타."
현운은 그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지헌아. 우리 내기 할까?"
"응? 무슨 내기?"
"누가 먼저 학교에 도착하는지."
"훗, 운이형.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는 오토바이, 형은 달리기. 뭐 어쩔건데?"
"훗, 긴말은 필요 없고. 어쩔래? 할꺼야 말꺼야?"
김지헌은 현운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피식 거리더니 헬멧을 쓰며 말했다.
"그래, 해 보자고. 난 오토바이니까. 형이 먼저 출발해. 형이 출발하고나서 3분 후에 출발할테니까."
김지헌의 당당하고 오만한 말에 현운은 한차례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힘껏 뛰며 말했다.
"지는 사람 소원들어주기다!"
김지헌은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지는 현운의 모습에 잠시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누가 뭐라해도 자신은 오토바이, 현운은 달리기였기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김지헌은 3분 후 출발을 했다. 하지만……
"아, 썅! 이게 뭐야?! 왜 이렇게 길이 막혀?!"
서울 강남의 도로.
아침 8시 즈음이면 항상 막힌다.
결국 김지헌은 현운보다 늦게 학교에 도착할 수 밖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