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적전 분열이다. 새누리당의 적전 분열과 이탈이 민주당이 가장 바랐던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에서 공천 탈락한 의원들이 김무성을 필두로, 줄줄이 불출마 선언과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있다, 야당의 단일화에 대한 맞불작전 치고는 최상의 수가 줄줄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민생각으로선 존재감마저 보이지 않는 극약처방인 셈이고, 민주당으로선 김빠진 맥주병 신세인 것이다. 22일부터 공식적으로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은 부산에서 며칠간 숙박을 하면서 pk 지역을 총지휘를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소식과 함께 감동을 선물한 김무성 의원을 부산지역 총 사령관에 임명한다는 계획도 보인다.
민주당은 낙동강 언저리에 출마한 민주당 친노세력 후보자들을 가르켜 낙동강 벨트라고 말한다. 어쩌면 민주당은 전선의 파이를 크게 보이기 위해 낙동강 전선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민주당은 거센 회오리에 휘말릴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낙동강 전선이라는 용어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북한 공산당을 저지한 최후의 마지노선 이라는 자부심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우파세력의 고유명사와도 같은 것이 바로 낙동강 전선이다. 그러니 낙동강 전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낙동강 벨트라고 칭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민주당은 애국선열들의 넋과 혼이 묻힌 낙동강 벨트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낙동강 전선에 얽힌 이런 사연을 안다면 진보당과 손잡은 민주당은 낙동강 전선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낙동강 전선의 사연은 이렇다.
북한 공산군은 남침 1개월이 되는 1950년 7월 말, 영덕·안동·상주·진주를 잇는 선까지 진출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지연작전을 편 가운데 8월 초 낙동강 선까지 물러나서 ‘부산교두보’ 라고 불리는 동남부 일원으로 방어선을 축소하기로 하였다. 이 방어선은 동서 80㎞, 남북 160㎞로, 서북 첨단의 왜관을 기점으로 하여 동해안의 영덕에 이르며, 서쪽은 낙동강 본류를 따라 남강과의 합류 지점인 남지읍에 이르고, 다시 함안 진동리를 거쳐 진해만에 이르고 있었다.
이 방어선 안의 지역은 연합군의 보급기지인 부산에서 마산·대구·영천·포항 등의 전방지역에 이르는 방사형의 병참선이 발달되어 보급과 병력 이동에 유리했고, 기동예비대를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자유자재로 투입하여 효과적인 역습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즉, 최소의 전투력으로 최대의 방어효과를 거둘 수 있는 내선작전의 이점을 살리기에 적합한 범위였다. 이와 함께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대비하여 그 후방에 또 하나의 예비방어선도 마련하였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미 8군 공병참모인 데이비드슨이 경상남북도 경계를 이루는 산맥과 밀양 북쪽의 유천, 그리고 그 서쪽의 무안리를 거쳐 마산 동쪽의 고지들로 이어지는 총 길이 90㎞의 ‘데이비드슨 선’을 구상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8월 3일까지 왜관의 낙동강 철교와 인도교를 비롯한 낙동강의 모든 교량을 폭파한 뒤, 8월 4일 새벽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를 완료하였다.
이때부터 국군과 미군은 작전 책임구역을 분담, 국군은 왜관으로부터 동해안에 이르는 낙동강 방어선의 북쪽을 맡고, 미군은 왜관으로부터 진해만에 이르는 서쪽을 맡아 전쟁 발발 이래 처음으로 어깨를 잇댄 연결전선을 형성하였다. 한편, 북한 공산군은 8월 초까지 1개 전차사단과 9개 보병사단을 낙동강 전선에 투입했으며, 또 다른 3개 보병사단이 뒤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의 공방전은 8월 초에서 9월 중순까지 계속되었는데, 국군과 유엔군은 긴밀한 합동작전으로 공산당을 물리쳤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형님들의 피로 얼룩진 낙동강 일대를 결코 단일화한 야당에게 내 줄 수도 없고 결코 내주어서도 안 된다고 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낙동강 전선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부산 ,경남의 주민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얄팍한 상술을 이용하여 통합진보당과 단일화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을 보면 , 국가보안법 폐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재벌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등 북한이 상습적으로 주장하는 대남 정책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정당과 민주당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단일화를 했기에 그렇다. 제1야당의 지위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정당 지지율이 불과 몇 %에 불과한 진보당에게 질질 끌려가는 이런 제1야당이 정권을 제대로 담당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구축하고자 하는 낙동강 벨트는 그 일대에 배치된 손수조, 김도읍, 박민식, 문대성, 등 새누리당 젊은 전사들이 이 벨트를 깨기 위해 결전의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실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1950년 여름 , 낙동강 전선을 지킨 사람들은 머리를 빢빡 깍은 학도병들과 무명용사들로 구축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흐르는 낙동강에 장열하게 산화시켰다. 이처럼 낙동강은 수많은 사연과 역사를 간직한 채, 오늘도 도도히 흘러 남해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이처럼 낙동강 전선은 누구 부르기 좋아라고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