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 사이]
옛 어른들 말, 하나 틀린거 없어요-진짜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리는가?(먼 과거, 가까운 현재 변하지 않는 우리들의 말)
*출전: 김슬옹(2011). 옛 어른들 말, 하나 틀린거 없어요-진짜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리는가?(먼 과거, 가까운 현재 변하지 않는 우리들의 말). <흙과 둥지(LH 사외보)> 6월호. LH. 12-13쪽.
김슬옹(동국대 겸임교수, 문학박사/국어교육학 박사)
말이란 마치 도도한 강물같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옹달샘같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지만 우리말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말들이다. 옛 어른들의 말, 틀린거 하나 없다는 말과 같이 먼 과거나 가까운 현재나 인생의 굴곡은 한결같아서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옛말들의 의미를 알아보자.
얼마 전 감기에 걸려 골골하는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했더니 어느새 들었는지, “그럼 내가 개보다 못하다는 거야.” 버럭 짜증이다. 내가 무안해 하자 “그러다가 아예 개 같은 뭐라고 놀리겠다.”라고 씨익 웃고 만다. 다행이다 싶어 나도 한 마디 던진다. “하긴 지금은 오뉴월(양력 칠팔월)은 아니잖아.”
사실 이 속담은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한 사람을 놀리는 말이지만 그 책임이 나에게 있으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옛날 어른들 말씀 허튼소리 하나 없다더니 그 어른들 말씀이 대개 속담이나 격언에 묻어 있다. 한여름에 감기에 걸렸다면 겨울 감기와는 달리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심각성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진짜 ‘오뉴월 개 팔자’의 주인공인 견공들한테까지 놀림을 당할 수 있다. 이렇게 오뉴월에 관한 말들을 짚어 보면 조상님들의 지혜가 아직도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다.
더위를 표현하는 옛 말들
음력 오뉴월을 양력으로 따지면 칠팔월이다. 조상들은 절기를 통해 계절의 흐름을 정리하고 생활의 지혜로 삼았다. 이것이 어찌 농사짓는 이에게만 소용될 것인가.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 본격적인 여름에 이르는 하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찬다는 ‘소만’, 씨가 여물어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망종, 조금 더운 ‘소서’, 아주 더운 ‘대서’ 이렇게 하여 짧은 여름은 ‘발등을 다투는 오뉴월 소나기마냥’ 후다닥 지나간다. 그래서 한여름 덮다고 방심하지 말고 후다닥 지나가기 전에 가을을 준비하는 지혜가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칠팔월은 한참 더울 때라 활동하기 힘들 때다. 얼마나 더우면 오뉴월 더위에는 염소[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오뉴월 하룻볕도 무섭다. 뿔이 더위에 녹아 물렁물렁해져 빠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보다 더운 여름을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때는 서로 만나는 것조차 버겁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의 몸을 존중해 주면서 쉬어야 한다. 왜 유월에 장을 담그면 그 집안에 궂은 일이 생긴다고 했을까. 그 더운 여름날에 장을 담그면 장맛도 장맛이려니와 더울 때 일하느라 탈나기 십상이라 그렇다. 아무튼 무작정 시도 때도 없이 일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쉴 때 제대로 쉬는 사람만이 제대로 일 할 힘이 솟는다. 오뉴월 닭이 오죽해야 지붕에 오를까. 답답한 사람들은 이런 속담처럼 나중에 잘되고 못되는 것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일을 한다.
오뉴월에 관한 속담이나 격언을 보면, 계절의 특성을 살펴 더위를 이기고자 지혜가 보이지 않는 자연의 바람처럼 다가온다. 이를테면 유월에 결혼하면 나쁘다고 한다. 실제 그런 결혼식 보기 어렵지만, 실제 상상만 해도 땀이 난다. 그 더운 날 손님들한테까지 민폐를 끼치고서 어찌 잘 살 수 있으랴. 더울 때 웃어른을 모시기는 더욱 어렵다고 오뉴월 존장이라고 한다. 더울 대 웃어른 모시기 힘들다고 투덜대라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어른을 잘 모셔야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스스로 존장 같은 손님으로 굴림해서는 안 된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무더위에 누가 찾아오면 힘들고 버겁기 마련이다. 그 얘기는 내가 그런 손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결국 여름에는 어울려 놀러 가면 모를까. 손님 접대도 손임 되기도 어려운 법이다. 우리 집은 손님 오실 때만 에어컨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 손님은 돈이다. 그러니 어찌 손님 눈치를 보지 않으랴.
옛말로 무더위를 이겨낸다.
‘유월 초하룻날 머리 감으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음력 유월에 유두절(6월 15일)이 있어 생긴 말이다. ‘유두(流頭)’는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이 날은 동쪽으로 흐르는 냇물로 가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고 모든 액을 풀어 버렸다. 왜 하필 동쪽인가. 동쪽은 해뜨는 곳, 새로운 기운이 솟는 곳이라 그렇다. 이 날은 새로 나온 오이나 참외 등의 과일로 몸 보양도 하고 국수를 만들어 제사도 지내는 등 매우 뜻 깊은 명절이었다. 더운 여름 날 우리 조상들은 이런 명절을 만들어 무더위에 상한 몸도 보호하고 마음가짐도 새롭게 해서 더위로 인한 사고도 막았다. 더불어 조상님들께 드리는 뜻 깊은 의식으로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높였으니 이야말로 꽁 먹고 알 먹는 것 아닌가.
아직도 속담을 고리타분한 시골 이야기인 듯이 여기는 어른들이 많다. 그러나 속담은 강물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흐르며 삶의 지혜를 일깨운다. 유두절 날은 단순히 머리를 감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새로운 기운으로 불어 넣는 날이다. 이런 날을 보름 앞두고 머리를 감는 촉삭댐을 경계하는 속담이 바로 유월 초하룻날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결국 다 때가 있게 마련이다. ‘오뉴월 두룽다리’라고 오뉴월의 털 두건(두룽다리)처럼 제철에 맞지 않아 쓸모없게 된 물건인냥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늘 때를 놓치면 낭패 보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오뉴월 장마 끝에 오이꼭지 씹는 상이 되면 더욱 문제는 어려워진다. 장마 끝에 오이꼭지 어떤 맛일까?
‘오뉴월 품앗이도 먼저[진작] 갚으랬다.’라는 말도 있다. 서로의 일을 돌아가면서 해 주던 품앗이, 주거니받거니가 미덕이다. 품앗이 도움을 받았으면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언젠가 갚는 것도 갚는 거지만 이양 갚을 거라면 최대한 빨리 갚아야 한다. 사실 현실 속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다행이 놀부처럼 요리조리 오래 끌지 말고 갚을 것을 미리미리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뉴월 품앗이 논둑[논두렁] 밑에 있다고 여름에 산 품앗이를 가을에 곡식을 거둔 후에 갚게 된다는 뜻으로, 빚 갚을 날짜가 멀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대출 상환 날짜 많이 남았다고 방심하다가 한 방에 훅 가는 세상이다. 아예 그런 날짜 안 잡는 것이 상책이련만 어디 세상 일이 그런가.
오뉴월에는 배양반이요 동지섣달에는 뱃놈이라고 이솝우화의 베짱이처럼 여름에 편하다고 게을리 지내다가 혹독한 겨울을 보낼 수도 있다. 여름은 사실 덮기는 하지만 금방 지나간다.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라고 여름 초록의 화려함이 짧아 그것을 빗대 옛 어른들은 모든 것은 그 전성기가 매우 짧음을 아쉬워하고 경계했다. 그래서 오뉴월 마파람(남풍)에 돼지 꼬리 놀듯 일정한 주관이 없이 건들거리는 사람들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 오뉴월 맹꽁이도 울다가 그친다는 것. 한여름 맹꽁이의 그칠 줄 모를 것 같았던 그 울음소리.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일도 늘 끝이 있음을 명심한다면 그 울음소리는 아름다운 소리로 남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허무한 메아리로 귓전을 때릴 것이다. 실제로는 지혜로운 맹꽁이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오뉴월 바람도 불면 차가운 법이다. 아무리 미약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신경 쓸 일이다. 매일 먹는 먹을거리 하나, 숨 쉬는 공기 한 모금, 더없이 소중한 날들이다. 결국은 계절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계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우리의 문제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속담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다. 온갖 세태를 담고 어딘가로 흐르고 사람들은 그 속담에 또 의미를 담는다. 옛 어른들의 구닥다리 말이 아닌 풍부한 경험에서 오는 격언이나 속담으로 올 해 칠팔월의 뜨거움을 시원하게 넘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