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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36장.show
도덕경 36장
(1) 원문
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柔弱勝剛强.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장욕흡지, 필고장지. 장욕약지, 필고강지. 장욕폐지, 필고흥지. 장욕탈지, 필고여지. 시위미명, 유약승강강. 어불가탈어연, 국지이기불가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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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歙) : 줄이다. 움츠리다.
고(固) : 굳다. 오로지. 이미. 미리. 본디. 항상
장(張) : 베풀다. 넓다. 넓히다. 펼치다.
폐(廢) : 폐하다. 피폐하다. 그만두다. 부서지다.
흥(興) : 흥하다. 부흥하다. 일다. 일어나다. 일으키다.
탈(奪) : 빼앗다. 잃다. 없어지다.
여(與) : 주다. 베풀다.
미(微) : 작다. 적다. 숨다. 숨기다. 숨겨져 있다.
시(示) : 보다. 보이다. 드러내다.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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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장차 움츠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펼침이 있어야 하고, 장차 약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강함이 있어야 하고, 장차 피폐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부흥함이 있어야 하고, 장차 빼앗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주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숨겨진 밝음(微明)이라고 한다. (결국 이것은)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 살 수 없듯이, 나라를 이롭게 하는 물건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남에게 보이기 위해 강해지려는 것은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는 것처럼 위험하다.)
(3) 해설
이번 36장은 병법(兵法)이나 국가통치 수단으로 많이 언급되는 장이다. 이러한 해석은 자신의 장점을 잘 숨겨 약한 것처럼 상대를 속여서 자신의 나라를 이익 되게 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하려면, “장차 움츠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펼침이 있어야 하고, 장차 약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강함이 있어야 하고, 장차 피폐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부흥함이 있어야 하고, 장차 빼앗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주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는 말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이때는 ‘원래’, ‘미리’등의 의미를 가진 ‘고(固)’를 고(姑)로 바꾸어 ‘잠시’나 ‘잠시 동안’이라는 의미로 바꾸어야 한다.
‘장차 (적을) 움츠리게 하려면 반드시 잠시 동안 펼쳐지도록 해야 하고, 장차 (적을) 약해지게 하려면 반드시 잠시 동안 강하게 되도록 해야 하고, 장차 (적을) 피폐해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잠시 동안 부흥함이 있도록 해야 하고, 장차 (적의 나라를) 빼앗기 위해서는 반드시 잠시 동안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은 하겠으나, 이 해석은 노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의 기조(基調)와는 다르게 유위적(有爲的)인 분위기가 강하다. 즉 적을 속이기 위해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인위적(人爲的)인 계획과 노력이 들어가 있어, 무위(無爲)와 자연스럽게 그대로 둠을 강조하는 노자의 사상을 왜곡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
한문은 주어나 목적어 등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36장의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장욕흡지 필고장지(將欲歙之, 必固張之)에서 ‘장욕(將欲)’은 ‘장차 ~ 하고자 하다’는 뜻인데, 누가 하고자 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리고 ‘흡(歙)’과 ‘장(張)’은 대구(對句)를 이루면서 ‘움츠리다’와 ‘펼치다’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을’ 움츠리거나 펼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문장은 누가 무엇을 움츠리거나 펼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자의 생각에 맡겨져 있다. 그래서 병법(兵法)이나 국가통치 수단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주어를 병법가나 통치자로 하고, 목적어를 적(敵)으로 해석한 것이다.
무위(無爲)를 강조하는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반영하면서 주어와 목적어를 추리해보니, 주어는 자연(自然)이다. 그리고 목적어는 자연에 속해 있으면서 움츠리고 펼쳐지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손’을 들 수 있는데, 주먹을 쥐면 움츠려지고 주먹을 펴면 손이 펼쳐진다. 손을 움츠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미 펼쳐져 있어야 한다. 반대로 손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미 움츠려져 있어야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것이 좋다는 입장은 노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렇게 노자의 일관된 주장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36장에서 제시된 네 가지 대구(對句)인 흡(歙)과 장(張), 약(弱)과 강(强), 폐(廢)와 흥(興), 탈(奪)과 여(與)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네 가지 대구(對句) 중 앞 글자들(움츠림, 약함, 피폐함, 빼앗음)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뒷 글자들(펼침, 강함, 부흥, 줌)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앞 글자에 해당하는 상황들을 회피하려 하고, 뒷 글자에 해당하는 상황을 선호하게 된다. 앞 뒤 네 가지들을 대표적인 것만으로 압축하면, 앞의 것은 약(弱)이고 뒤의 것은 강(强)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약해지는 것을 싫어하고 강해지려고만 하면 약자와 강자 사이에 갈등이 조성된다. 그리고 강자들 중에서도 또 더 강한 자가 되려고 하다 보면 갈등은 증폭되어 인간 세상은 싸움터가 된다. 노자가 보기에는 앞 뒤 상황이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뒤의 상황을 선호하게 되니 인간 세상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노자는 “이것을 숨겨진 밝음(微明)이라고 한다. (결국 이것은)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노자는 강한 것은 약해지고 약한 것은 강해지는 이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지혜를 ‘숨겨진 밝음’인 미명(微明)이라고 말하며, 이 지혜를 지닌 사람들은 약한 것에 기꺼이 혹은 즐겁게 머물 수 있다. 이들은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점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원리를 응용한 ‘지는 것이 이기는 것’과 ‘비움(虛)이 채움(實)보다 낫다’는 이치를 그들의 삶에 실행하고 있다. 노자가 보기에는 이런 삶이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런 자연스러운 삶에 역행하는 사람들은 물고기가 물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무리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노자는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 살 수 없듯이, 나라를 이롭게 하는 물건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남에게 보이기 위해 강해지려는 것은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말한다. 나라를 이롭게 하는 물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이치에 밝지 못한 사람들은 자꾸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려고 한다. 즉 자랑을 하려고 한다. 남들보다 더 강해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남보다 잘 났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못난 행위라고 노자는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노자는 자신의 잘났음을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지 말고 은폐하고 못난 듯이 사는 것이 숨겨진 부분까지 밝게 보는 지혜(微明)라고 높이 평가한다.
[도덕경 36장 요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