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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本是) 몽고(蒙古)인이란 대체 누구인가?
몽고(蒙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와 같은 인종(人種)일까? 아니면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은 인종(人種)』을 말하는 것일까?
● 고전(古典)에서 말하는 본시(本是)의 몽고(蒙古)족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碧眼), 수염이 붉은 인종(人種)』을 말한다. 따라서 본디의 “몽고족(蒙古族)”이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碧眼), 수염이 붉은 인종(人種)』이며, 이것은 옛 고전(古典)에서 자세하게 설명(說明)하고 있기 때문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조선 사(朝鮮史)와 대륙 사(大陸史)에서 말하는 본디의 “몽고족(蒙古族)”에 대한 특이(特異)함을 알아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식(歷史常識)은 일단 제켜두고 고전(古典)에 기록된 것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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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 원 직 지(燕轅直指) / 몽고관기(蒙 古 館 記)
《蒙古.或稱㺚子.元順帝北走.其後分爲四十八部落.長城北醫山以外.皆其地方也.無五穀宮室.其人常騎橐駝.逐善水草居之.以穹氈爲屋.以射獵爲業.噉肉飮血.蓋北藩習俗.自古然也. : 몽고(蒙古)는 더러 달자(韃子)라고도 한다. 원 순제(元 順帝)가 북쪽으로 달아나고, 난 뒤에 48부락(部落)으로 나뉘었다. 만리장성(萬里長城) 북쪽 의산(醫 山) 바깥은 모두 그들의 땅이다. 그곳에는 오곡(五穀)과 궁실(宮室)이 없으며, 그 사람들은 늘 낙타를 타고서, 좋은 수초(水草)를 좇아 산다. 궁전(穹 氈)으로 집을 삼고, 사냥으로 업을 삼아,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신다. 이런 것은 대개 북 번(北 藩)의 습속으로서, 옛날부터 그러하였다.》
《몽고관기(蒙 古 館 記) : 蒙古館.在玉河橋傍.非止一處.館中設毳幕穹廬.其形如我國雨傘揮帳.地底亦鋪厚氈.南向行門上蓋.正中開閉.以受陽氣.男女渾處.其人諸夷中尤悍醜無禮.面目可憎.善馳突.居無宮室.行則撤毳幕.載之橐駝.日馳三四百里.陰山大漠.止宿處必設幕.畋獵爲糗粮.明時稱韃靼.其地北盡沙漠.分爲四十八部.疆盛難制.獨奉佛惟勤.生死以之.淸人因其俗而誘之. : 몽고관은 옥하 교(玉 河 橋)의 곁에 있는데, 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관 안에 취 막(毳 幕 모직으로 만든 몽고족의 천막)의 궁륭형의 집(穹廬)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우리나라의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다. 바닥에도 역시 두꺼운 모직을 깔고, 남쪽으로 향한 출입문 위의 덮개 한가운데를 여닫아서 햇볕을 받는다. 남녀가 섞이어 거처하며, 그 사람들은 여러 오랑캐 가운데서도 더욱 사납고 추하고 무례하며, 면목이 밉살스럽다. 말을 달려 돌진하기를 잘하며, 거처하는 궁실(宮室)이 없고, 떠나갈 때에는 취 막을 걷어서 낙타에 싣고 하루에 3, 4백 리를 달린다. 음산(陰山)이나 대 사막(沙漠)이거나, 그들이 머물러 묵는 곳은 반드시 막을 치고 사냥을 하여 먹을거리로 삼는다. 명나라 때 달단(韃靼 타타르)이라 일컬었으며 그 땅이 북쪽으로는 사막까지 닿고 48부로 나뉘었는데, 강성하여 제압하기 어렵고, 다만 부처만을 정성껏 힘써 받들며, 생사를 거기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청인(淸人)들은 그 풍속을 인연으로 하여 이를 회유(懷柔)한다. 》
《몽 고 (蒙 古) : 蒙古卽元之遺種.而古韃靼也.東自黑龍江.西至于海北.沿古長城外.至寧古塔近處.皆其巢穴.而以我人歷路言之.山海關以東則蒙古地方最近.距大路遠者不過五十里. : 곧 원(元) 나라의 유종(遺種)으로, 예전의 달단(韃靼 타타르)이다. 동쪽은 흑룡강(黑龍江)으로부터, 서쪽은 바다에 이르고 북은, 장성(長城) 밖을 따라, 영고 탑(寧 古 塔) 근처에 이르는 사이가, 모두 그들의 소굴이다. 우리들의 역로로 말하면 산해 관(山海關) 이동(以東)은 몽고(蒙古) 지방이 가장 가까운데 큰길에서 먼 것이 50 리에 불과하다. 》
《 몽고 인(蒙古 人) : 其爲人與淸人自別.兩顴高.眼碧髥紫.皆悍惡麤健.不思室居.雖極寒之時.只設帳於車上而宿於道路.朝乃拂雪而起.飢則只噉駱肉.又與狗同器而食.其性之勁悍醜惡如此.故淸人上下.皆畏而賤之.罵辱之際.比以蒙古則必勃然而怒.以爲大辱.其不以人類相待可知也. :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 그릇에 먹는다. 강한(强 悍)하고 추 악(醜惡)하기가 이와 같기 때문에 청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꾸짖고 욕할 때, 그를 몽고 사람에게 비교하면 반드시 불끈 성을 내고 큰 욕이라고 하니, 몽고인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
● 위 글을 보면,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➊ 본시(本是)의 『몽고(蒙古)인』형상(形相)은, 『양 광대뼈(兩顴)가 튀어나오고, 푸른 눈(碧眼)이며, 구레나룻(髥)가 붉은색(紫)을 가진 인종(人種)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신(使臣)들이 직접(直接) 보고 기록(記錄)한 기행문(紀行文)이기 때문에 어떤 기록보다 진실(眞實)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지며, 이것은 이들 사신단(使臣團)이 기록(記錄)한 것보다 6-8백년(百年) 전에 기록(記錄)된 대륙 사(大陸史)에서도 똑같은 인종(人種)의 형상(形相)을 말하고 있다.
➋ 『長 城 北 醫 山 以 外. 皆 其 地 方 也. : 만리장성(萬里長城) 북쪽 의산(醫 山) 바깥은 모두 그들의 땅이다.』 라거나 『陰山大漠.止宿處必設幕.畋獵爲糗粮.明時稱韃靼.其地北盡沙漠.分爲四十八部. : 음산(陰山)이나 대 사막(沙漠)이거나, 그들이 머물러 묵는 곳은 반드시 막을 치고 사냥을 하여 먹을거리로 삼는다. 명나라 때 달단(韃靼 타타르)이라 일컬었으며 그 땅이 북쪽으로는 사막까지 닿고 48부로 나뉘어 있었다.』거나 『東自黑龍江.西至于海北.沿古長城外.至寧古塔近處.皆其巢穴.而以我人歷路言之.山海關以東則蒙古地方最近.距大路遠者不過五十里. : 동쪽은 흑룡강(黑龍江)으로부터, 서쪽은 바다 북(北)에 이르고, 옛 장성(長城) 밖을 따라, 영고 탑(寧 古 塔) 근처에 이르는 사이가, 모두 그들의 소굴이다. 우리들의 역로로 말하면 산해 관(山海關) 이동(以東)은 몽고(蒙古) 지방이 가장 가까운데 큰길에서 먼 것이 50 리에 불과하다.』라는 설명(說明)은 오늘날의 “몽고족(蒙古族)”의 구도(構圖)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➌ 『이들【몽고족(蒙古族)】의 땅은, 서(西)쪽으로 바다에 이른다.』는 말을 깊게, 고심(苦心)해야 할 부분(部分)이다. 세계지도(世界地圖)를 펴 놓고 보면, 『서쪽의 바다는 대서양(大西洋) 외(外)에는 존재(存在)할 수 없는 지형지리(地形地理)를 보여주고 있다.』 곧 서(西)쪽의 바다는 대서양(大西洋)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勿論) ‘발트 해, 보트니아 만’도 넓은 의미로 대서양(大西洋)에 포함(包含)시킨 것이다.】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현재(現在)의 “러시아로부터 발트3국. 핀란드, 스칸디나비아반도(半島). 폴란드.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지방(地方)을 포함(包含)시키는 곳이, 모두 이들 몽고족(蒙古族)이 살던 곳이다.』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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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醫巫一山之後.盡屬蒙古之地.茫茫大漠.北海環之.五年一氷.而自古不通中國.故海以外.不知有何許物怪. : 의 무려 산(醫巫閭山) 뒤는, 모두 몽고(蒙古) 땅에 속하며, 망망한 큰 사막(沙漠)인데, 북해(北海)가 둘러 있다. 5년에 한 번 얼음이 얼고, 자고로 중국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다 밖은 무슨 괴물이 있는지 모른다. 》
● 반도사관(半島史觀)에 의한 “의 무려 산(醫巫閭山)”은, 북경(北京)에서 1,200 리 정도 떨어져 있는, 요 녕 성(遼寧省) 북진 현(北鎭縣)에 있는 조그마한 야산(野山)이다. 이 산의 뒤는 모두 중국(中國)의 땅이었으며, 현재(現在)도 중국(中國)의 땅이다.
이곳은 『망망한 대 사막(沙漠)도 없으며, 북해(北海)가 둘러있지도 않으며, 중국(中國)과 언제든지 통했던 곳이다. 조선(朝鮮)의 사신단(使臣團)은 매년(每年) 수십(數十) 번씩 이곳을 통과(通過)했다고 하는데, 무슨 놈의 중국(中國)과 통하지 못해, 무슨 괴물(怪物)이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반도사학(半島史學)으로 볼 때, 코-메-디다.
● 이렇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의 무려 산(醫巫閭山)”을 수황(隋皇)은 이곳에 북진(北鎭)을 설치했다는 말은 또 무엇이며, 이곳을 기준(基準)하여, 그 북쪽은 “오랑캐(夷)”요, 그 남쪽은 “중국(華)”이라고 했다는 말은 무엇인가! 중국(中國)의 백성(百姓)들은 변종(變種)인간(人間)으로 발 갈퀴가 달리고 손 갈퀴와 아가미가 달려 있어 바다 속에서 용왕(龍王)님과 함께 살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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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 무려 산【醫巫閭山 : 조선(朝鮮) 정조(正祖) 15년(1791) 김 정중(金 正中)의 연행(燕行)기】
《自此堡遠望西北.有一山崷崒嵽屼.爲北方之鎭.其名醫巫閭.自崑崙落脈.連延橫亘.經遼薊千里之野.爲此山一支.東走爲我東之白頭.蓋崑崙,白頭爲東西祖宗.而此山倔强北方.中立若不庭者.自周,漢以來.其下種落太盛.或抗衡中國.良以是山之氣也. : 보(堡)에서 서북(西北)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우뚝 높은 산 하나가 있어, 북방(北方)의 진(鎭)이 되는데, 그 이름을 “의 무려(醫 巫 閭)”라 한다. 곤륜산(崑崙山)으로부터 내려온 줄기가 이어가서, 가로 뻗어 요주(遼州)ㆍ계주(薊州)의 천 리 들을 지나서, 이 산이 되고, 한 곁줄기가 동으로 달려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된다. 대개 곤륜산과 백두산이 동서(東西)의 조종인데, 이 산(山)은 북녘 한가운데 뻣뻣하게 서 있어서, 조회(朝會)하지 않는 듯하니, 주(周)ㆍ한(漢) 이래로 그 밑의 부족이 크게 번성하여 중국에 맞서기도 하였던 것은 진실로 이 산의 기운 때문이었다. 》
➊ 『곤륜산(崑崙山)의 줄기가 이어져서, 가로 뻗어【동서(東西)방향 즉 횡(橫)으로 뻗어있다는 말】요주(遼州)와 계주(薊州)의 천리(千里)들을 지나, 의 무려 산(醫巫閭山)이 되고, 의 무려 산(醫巫閭山)이 동(東)으로 뻗어 백두산(白頭山)이 되었다. 그래서 곤륜(崑崙)과 백두(白頭)는 동서(東西) 산(山)의 조종(祖宗)이 되었다.』는 말에서,
➋ 곤륜산(崑崙山)과 백두산(白頭山)사이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있는 산(山)들은 모두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신세(身世)가 되어버렸으며, 곤륜산(崑崙山)으로부터 중원(中原)으로 내달은 수천(數千)리 평원지대는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➌ 곤륜(崑崙)과 백두(白頭)가 동서(東西)의 조종(祖宗)이란 말은 지나가는 견공(犬公)께서도 웃을 일이다. 일만(一萬)리도 넘게 떨어져 있는 “곤륜산(崑崙山)과 동쪽 끝에 있는 백두산(白頭山)”은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전혀 관계(關係)없는 산줄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➍ ‘의 무려 산(醫巫閭山)’에서 동(東)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백두산(白頭山)이 되었다? 이러한 말은 세계(世界)지리(地理)사를 다시 써야 할 획기적(劃期的)인 발견이다. 백두산(白頭山)과 의 무려 산(醫巫閭山)은 전혀 관계없는 별개(別個)의 산(山)이기 때문에, 『위에서 기록된 것은 오늘날의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다. 곧 이름을 차용(借用)한 짝퉁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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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及到遼東則下至醢醋微物.亦皆齎去.加以各司貿易.一行幷卜.必用二十五六輛車.然後方可以行.遼薊地方率平原曠野.易致水患.且北邊早寒.故罕有豐登之日.關外則達賊年年入搶.恣行殺戮.閭井蕭條.皆是兵燹之墟. : 요동(遼東)에 이르러서는 젖[醢]과 초[醋] 같은 미세한 물건까지도, 모두 싸 가고 게다가, 각사(各司)에서 무역할 것과 일행의 짐을 더하게 되니, 반드시 25, 6대의 수레를 사용해야 바야흐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요ㆍ계(遼 薊) 지방은 대개 평원과 광야이므로, 물난리(水患)를 만나기 쉽고, 또한 북변(北邊)이라 일찍 추워지는 까닭에, 풍년이 들 때가 드물며, 밖(關外)에는 달 적(㺚 賊)이 해마다, 침략하고 살육(殺戮)을 자행하므로, 여정(閭 井)이 쓸쓸[蕭蕭]하니, 모두 전쟁(兵燹 : 병선)하는 땅인 것이다. 》
➊ 요계(遼薊)지방이란, 요주(遼州)와 계주(薊州) 또는 요동요서(遼東遼西)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북경(北京) 동쪽지방은 물난리가 자주 일어나는 곳도 아니요, 그렇다고 북변(北邊)이어서 일찍 추워져 풍년(豊年)들 때도 드물다는 말은. 지형지리(地形地理)적으로 오늘날의 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북경(北京)은 의주(義州)와 함흥(咸興)과 같은 선상(線上)에 있으며, 요계(遼薊)지방은 바로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모두가 ‘바다’를 끼고 있는 땅이다. 대륙의 지형도(地形圖)를 보면, 해안(海岸)을 끼고 심양(瀋陽)까지 이르는데, 오늘날 이곳 요 녕 성(遼寧省)은 농업(農業)이 발전(發展)된 곳이다.
➋ 관외(關外)란 말은 “산해 관(山海關) 밖(外)”을 말하는 것으로 이게 아주 웃기는 말이다. 산해 관(山海關)의 끝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있는 형태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관(關)의 밖은 어딘가? 계주(薊州)는 이 관(關)의 서쪽에 있으며, 중국(中國) 땅이며, 또한 요서(遼西)지방이다.
요주(遼州) 역시 당(唐) 이후(以後) 중국(中國) 땅이 된 곳인데, 이곳 역시 요서(遼西) 땅이며, 반도사학(半島史學)의 설명대로라면, 이곳에서 여진족(女眞族)이 아닌 “달 적(達賊 : 타타르)”은 천여(千餘)리 북쪽지방에 있었다. 또한 산해 관(山海關)은 바다 가에 있는데, 중국인(中國人)이나 조선(朝鮮)의 사신단(使臣團)은 어디로 다녔다는 말일까? 아니면 달단(韃靼)이란 적진(敵陣)을 뚫고 왕래(往來)했다는 말인가?
➌ 요계(遼薊)지방은 사막(沙漠)지대며, 이곳은 천리(千里)평원(平原)의 광 막(廣漠)지대라 했으며, 이곳의 사막(沙漠)을 이름 하기를 “요적(遼磧)”이라 하였고, 요계(遼薊)의 사막(沙漠)은 험 난(險難)하며, 추운 사막(沙漠)지대라 하여 “한적(寒磧)”이라 하였던 곳이다.
➍ 이곳은 아주 먼 옛날부터 수많은 외적(外賊)의 침입(侵入)으로 몸살을 앓던 곳으로 중국(中國)의 우환(憂患)덩어리였다. 반도사학(半島史學)으로 보면, 이곳에 누가 옛 적부터 중국(中國)을 위협(威脅)했단 말일까?
달단(韃靼)은 말 그대로 ‘타타르’로 이곳으로 만 리(萬里)쯤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특히 와랄(瓦剌)은 달단(韃靼)의 서쪽에 있었으며, 태 녕(泰寧), 복 여(福餘), 타안(朶顔)등은 서북(西北)의 변방(邊方)지대에 있었고, 여진(女眞)의 선대(先代)였던 말갈(靺鞨) 역시 서북 변(西北邊)에 있었다는 것은 중국(中國)사(史)라는 대륙 사(大陸史)가 증명(證明)하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우환(憂患)덩어리였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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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색목인(色目人)인의 뜻은?
<고전번역원의 주석> : 『색목(色目)은 명목(名目)으로, 중토(中土) 민인(民人)의 족류(族類)가 아닌 외번(外 番)에 속하는 따로 명목이 있는 사람들이다. 원대(元 代)의 서역(西域) 여러 나라 사람의 총칭으로 31종(種)의 종족으로 나누었다고 한다.』고 정의(定義)하고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눈동자의 색깔을 말하는 것으로 “벽안(碧眼), 녹안(綠眼)”등으로 표현(表現)하고 있는데, 중국인(中國人) 종족(種族)과는 다른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며, 이는 대체적(大體的)으로 『현 신강(新疆)일부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 러시아, 유럽등지의 이민족(異民族)을 총칭(總稱)하는 말이다.』
본시(本是) 몽고(蒙古)인은 “벽안(碧眼) 곧 파란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는 말은, 아세아(亞細亞)지방의 대부분(大部分)을 차지하고 있는 종족(種族)과는 전혀 다른 인종(人種)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똑같은 형상(形相)을 갖고 있었다면, 특이(特異)함이란 말을 사용(使用)할 수 없다.
또 자색【紫色 : 자줏빛 : 붉은 색】의 구레나룻을 가졌다는 말은, 붉은 색을 띤 털을 말하는 것으로, 역시 아세아(亞細亞)지방의 대부분(大部分)을 차지하고 있는 종족(種族)과는 다른 인종(人種)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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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국(諸國) / 심전 고 제2권 / 유관잡록(留 館 雜 錄)
《蒙古.一名韃靼.居沙漠.天下莫强之國也.四十八部王.歲入朝貢.國俗無貴賤.皆衣黃衣.與皇帝等也. : 몽고(蒙古)는 일명 달단(韃靼)으로 사막(沙漠)에 있는데, 천하의 막강한 나라이다. 48부(部)의 왕이 해마다 들어와 조공(朝貢)한다. 나라 풍속이 귀천이 없이 다 누런 옷을 입는데 황제의 의복 빛깔과 같다. 》
● 반도사학(半島史學)으로 보면, 『몽고(蒙古)는 달단(韃靼)으로 사막(沙漠)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달단(韃靼)과 조선(朝鮮)과 요동요서(遼東遼西)지방과는 전혀 무관(無關)한 것으로, 조선(朝鮮)의 사신단(使臣團)은 신경(神經)쓸 일이 없다. 그러나 조선(朝鮮)의 사신단(使臣團)의 일행(一行)은 때마다 걱정하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였다는 말은, 현재의 지형지리(地形地理)와 전혀 다른 곳에 조선(朝鮮)이 있었으며, 그곳은 사막지대(沙漠地帶)와 접경(接境)을 이루는 곳이며, 매우 춥고, 황 막(荒漠)한 곳이었다는 사실(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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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악 라 사(鄂 羅 斯)
《鄂羅斯.亦名大鼻橽子國.在黑龍江北.距中國二萬餘里.十年一至留館遞易.不朝不貢.其人黑面高鼻性悍. : 악 라 사(鄂 羅 斯)는 “대 비 달 자 국(大 鼻 橽 子 國)”이라고도 하며 흑룡강(黑龍江)의 북쪽에 있으니, 중국(中國)에서 2만여 리나 떨어져 있다. 10년에 한 번 와서 관에 머무르며 교역(交易)을 할 뿐, 조공은 하지 않는다. 그 나라 사람은 검은 얼굴과 우뚝한 코에 성질이 사납다. 》
● 반도사학(半島史學)으로 보면, 흑룡강(黑龍江) 이북(以北)지방은 예전부터 선비(鮮卑)족의 시원 지(始原地)라고 했으며, 이곳은 또한 말갈(靺鞨)의 한 종류가 있는 곳이라 했다. 흑룡강(黑龍江)이북(以北)에 있는 대 흥 안 령(大興安嶺)지대는 탁발(拓跋)씨의 고향(故鄕)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곳에 갑자기 『얼굴이 까많고 코가 큰 인종들이 언제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말일까? 이런 이야기는 “코-메-디”다. 『얼굴이 검고, 코가 큰(오뚝한) 인종(人種)』은 과연 어떤 인종(人種)이며 어떤 종족(種族)일까? 현재의 ‘러시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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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륙 사(大陸史)에서는
《전한서(前漢書) 서융(西戎) / 師 古 曰 :烏 孫 於 西 域 諸 戎 其 形 最 異. 今 之 胡 人 青 眼, 赤 須, 狀 類 彌 猴 者, 本 其 種 也. : 사고(師古)가 이르기를 : 오손(烏孫)에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 오랑캐(戎)는 그 모양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호인(胡人 : 오랑캐)은 청안【靑眼 : 눈동자가 파랗다】이며, 수염은 붉고, 형상(狀)이 미후(獼猴 : 원숭이)와 같은 무리인데, 본래 그런 종(種)이다.》 라고 하였으며, /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과 똑같은 용모(容貌)을 말하고 있다.
《북사(北史)서역(西域)우전(于闐) / 自高昌以西諸國人等,深目高鼻,唯此一國,貌不甚胡,頗類華夏. : 고창(高昌)의 서(西)쪽 여러 나라 사람들은, 눈이 깊고 코는 높은데, 유일하게 이 한 나라는 모양이 오랑캐와 심히 다르다. 약간 화하(華夏)의 종류이다.》/ 고창(高昌)의 서쪽 나라 사람들은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인종(人種)이며, 화하(華夏)족과 다르다는 뜻이다.
《통전(通典) / 自高昌以西,諸國人多深目高鼻,惟此一國,貌不甚胡,頗類華夏 : 고창(高昌)의 서(西)쪽 지방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많은데, 눈은 깊고, 코는 높다. 유일하게 그 한 나라는 얼굴모양이 호(胡 : 오랑캐)와 같지 않은데, 약간 화하(華夏) 무리와 같다.》
《通典 卷 第 191 . 邊防 七/西 戎 三/車 師 高昌 附 / 文 字 亦 同 華 夏 ,兼 用 胡 書 。有 毛 詩 、論 語 、孝 經 、歷 代 子 史 ,集 學 官 弟 子 ,以 相 教 授 。雖 習 讀 之 , 而 皆 為 胡 語 。賦 稅 則 計 田 輸 銀 ,無 者 輸 麻 布 。其 刑 法 、風 俗 、婚 姻 、喪 葬 與 華 夏 大 同 。其 人 面 貌 類 高 麗, 辮 髮 施 之 於 背 女 子 頭 髮 辮 而 垂 : 문자(文字)는 또한 화하(華夏)와 같았으며(同), 오랑캐(胡)의 문자(書)도 함께 사용하였다. 모시(毛詩). 논어(論語). 효경(孝經)등이 있었으며, (중략). 그 형법. 풍속. 혼인. 장례 등 모두 화하(華夏)와 두루 같다. 그 사람들의 얼굴 모양은 고려(高麗=高句麗)의 무리(一族)이며, 변발이 널리 퍼지기 전에 여자들은 두발을 땋아 등허리 아래로 드리웠다.》 왜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일까? 곧 이곳 고창(高昌)주위의 인종(人種)은 고려인(高麗人)이었다는 말이며, 고려(高麗)는 곧 화하(華夏)와 같다는 것을 고증(考證)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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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通典) / 烏 孫 於 西 域 諸 戎 其 形 最 異 。 今 之 胡 人 , 青 眼 赤 髭 鬢 , 狀 類 彌 猴 者 , 本 其 種 也 : 오손은 서역의 여러 융(戎 : 오랑캐. 되) 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오랑캐 사람)이다.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레나룻(鬢)가 붉은 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본시 그런 종족이다.》
● 이렇게 『오손(烏孫)인과 몽고(蒙古)인』에 대해 똑같은 설명(說明)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本來)의 몽고(蒙古)족은 현대(現代)의 외몽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種族)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통전(通典) / 대완(大宛) / 其 人 皆 深 目 , 多 髭 髯 : 그 사람들은 모두 눈이 깊고, 콧수염과 구레나룻 수염이 많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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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한(前漢)과 당(唐) 말(末) 시대는 일천(一千)년의 시차(時差)를 갖고 있으며, 이 사이에 많은 왕조(王朝)들이 소멸(消滅)되고, 다시 건국(建國)하기를 반복(反復)해 왔다. 그러나 대략적(大略的)인 영토(領土)의 범위(範圍)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인종(人種)의 특이(特異)함을 기준(基準)으로 보았을 때도 거의 비슷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 <전한(前漢)은 고구려(高句驪)의 다른 이름이며, 당(唐)은 신라(新羅)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은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핵심(核心) 영토(領土)가 ‘전한(前漢)과 당(唐)의 땅’이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한(前漢)과 당(唐)이란 것은 조선사(朝鮮史)를 분리(分離)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명(假名)의 나라 이름일 뿐이다.> 라고 주장(主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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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 번 되돌아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식(歷史常識)가지고는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부분(部分)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事實)이다. 우리의 역사상식(歷史常識)이란 것은, 1910년 이후(以後) 일제(日帝)와 그 세력(勢力)들에 기생(寄生)한 자(者)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이것이 곧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식(歷史常識)이다.
2013년 04월 1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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