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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묘소(충북 기념물 75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후방 측면에서 바라 본 상하 봉분의 박연선생 묘역 |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 박연(朴堧, 1378∼1458) 선생의 묘이다.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문헌(文獻)이며, 고구려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린다. |
▲ 묘역 입구 도로 옆에 위치한 난계 국악박물관과 주변에 조성된 북 |
▲ 세계 기네스 기록에 올린다는 북. 관리나 제대로 하시길... |
▲ 홍살문을 지나면... |
▲ 좌측에 박연선생 동상이 있습니다. |
난계사(충북 기념물 8호) |
▲ 난계 동상에서 100여미터 전방에 난계 사당(난계사)이 있습니다. |
난계사(蘭溪祠)는 조선 전기 문신이자 악성(樂聖)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세종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박연은 악률에 정통하여 세종 7년(1425) 아악의 율조와 악기의 그림, 악보를 같이 실은 『악서』를 편찬하였고, 1427에는 편경 12매를 만들어 자작한 12율관을 따라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
▲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 건물이 보이고... |
▲ 사당 내부에는 난계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
그는 피리의 일종인 적(笛)과 거문고, 비파의 연주에 뛰어났으며 조정의 조회 때 아악을 연주하도록 하는 등 국악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72년 다시 세운 이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
▲ 난계 묘는 외삼문과 내삼문 중간 우측 길로... |
▲ 사당 밖으로 나가서 좌측으로... |
▲ 묘역 입구 삼거리 좌측에 위치한 박연선생 재실(경란재) |
▲ 묘역은 재실 우측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합니다. |
▲ 묘역으로 오르면서 뒤돌아서 바라 본 주변 모습. 2010년 여름 날씨로는 최고 더위에 묘역을 겨우 올라... |
▲ 난계 박연선생 묘역 전경 |
박연은 태종 11년(1411)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고, 세종이 즉위한 뒤 악학별좌에 올라 음악을 정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 묘역이 조성된 축대 위로 오르면 봉분이 한 기 있는데, 후손의 묘역인 듯... |
▲ 전방 좌우측에서 바라 본 박연선생 묘역 |
조율의 필요와 악보 편찬의 중요성을 상소하여 수많은 악기와 악보를 만들어냈으며, 조선 초기의 궁중음악을 정리하여 국가의 음악 체제를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봉분의 오른쪽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왼쪽에는 멀리에서도 묘가 있음을 알게 하는 망주석이 있다. |
▲ 박연선생 묘역 내 상석과 묘비 |
▲ 전방 측면과 후방 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 |
▲ 박연선생 묘역 뒷편에서 바라 본 모습 |
<난계 박연 부부 초상 고향 온다>
국립국악원 기탁..난계사 봉안 예정 (영동=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추앙받는 난계 박연(朴堧.1378~1458) 부부의 모습이 담긴 초상이 고향인 충북 영동군에 기탁된다.
13일 영동군에 따르면 국립국악원으로부터 박연 부부의 초상(복제품)을 기증받아 심천면 고당리 소재 박연 사당인 난계사(蘭溪祠.충청북도기념물 제8호)에 봉안할 예정이다. 가로 53㎝ㆍ 세로 99㎝ 크기의 이 초상은 조선후기 제작된 이모품(移模品)으로 알려졌다. |
박연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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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상단의 A표시 부분에 박연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49-1 |
파란 바탕의 F 화살표 위치에 박연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영동군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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