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飛上)하는 풀꽃, 삶의 굴곡을 견뎌낸 순정의 언어
— 김덕임 시인의 《마음 하나 맺어놓고 외 4편》
나병훈/ 문학평론가
김덕임 시인
전북 전주 출생
시니어(senior) 춘향 수상
2023년 제1회『미당문학》백일장 장원
제41회 전북여성 백일장 운문부 차상
전국 미당 시낭송대회 동상
제12회 온글문학상, 제5회 문채문학상
전북문인협회, 미당문학 회원, 온글문학회장
시집 『풀처럼 꽃처럼』
Ⅰ. 서론
신비평(New Criticism)의 시각에서 시는 시인의 전기적 서사나 외부의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텍스트로서의 유기적 통일체(Organic Unity)’이다. 한 편의 시가 지닌 문학적 진가는 외적 환경이나 작가의 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내부에 존재하는 언어적 기교, 상징과 은유, 아이러니(Irony)와 역설, 그리고 대립하는 감정들이 어떻게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하나의 완성된 구조로 귀결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김덕임 시인의 작품 5편(「마음 하나 맺어놓고」, 「11월에 만난 가을」, 「만경강 갈대숲에서」, 「팔순의 봄날」, 「배추농사」)을 엄밀히 읽어내는 작업은 매우 흥미롭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 시적 장치는 ‘하찮고 거친 미물(微物)’들이 겪는 외부의 시련과, 이를 품어 안음으로써 이루어지는 ‘반전의 조화’에 있다.
풀꽃, 단풍나무, 갈대, 상한 배추 등 시인이 호출하는 자연적 기호들은 단순한 수사적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이 대상들은 소외와 고난이라는 비극적 긴장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고백적 언어와 결합하며, 덧없는 삶의 상처를 숭고한 존재의 완성으로 승화시킨다. 본고에서는 텍스트 내적 구조에 집중하여, 시인이 일상의 평범한 언어를 어떻게 시적 은유와 역설의 연금술로 조율해내며 유기적 통일성을 달성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시적 自我의 투영과 공간적 기호
대표작 「마음 하나 맺어놓고」에서 중심을 이루는 시적 상징은 ‘풀꽃’이다. 풀꽃은 "가꾸지 않아도 지천에 흐드러진" 존재이자, "햇빛과 바람과 비"라는 최소한의 자연적 조건만으로 삶을 완성한다.
잡초도 꽃으로 가꾸며
풀꽃처럼 살다가
마음하나 맺어놓고 낯 선길 떠나면
_ 마음 하나 맺어놓고」. 일부분
이 구절에서 ‘잡초’와 ‘꽃’이라는 상반된 기호는 시인의 수용적 태도를 통해 하나로 결합된다. 버려진 잡초마저 꽃으로 인식하는 시선은, 시적 자아의 삶에 대한 긍정과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을 형상화한다. 낯선 길(죽음 혹은 떠남)을 앞두고 "마음하나 맺어놓고" 떠난 자리에 "풀꽃 한 송이"가 피어날 것인가 묻는 물음은, 삶의 흔적이 또 다른 존재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이러한 자연과의 동화는 「11월에 만난 가을」의 ‘동상면 계곡’이라는 구체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수십 년간 비바람과 볕을 견딘 단풍나무의 "붉은 잎"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가 아닌 "자연의 경이로움"이자 시련을 견뎌낸 시간의 결정체다. 기우는 석양 속 "아직 숲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새 한 마리"는 쇠락해가는 가을 풍경 속에서 완결되지 않은 삶의 고독과 애수를 시각적으로 응축해낸다.
2. 역설과 정체성의 발견:
「만경강 갈대숲에서」는 시적 자아와 대상(갈대)이 상호 투영되며 강렬한 정서적 반전을 이루는 작품이다.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모질게 살 것도 아니라고
이리저리 꺽이고 상처난 갈대를 보며
나는 거기서 나를 보았네
- 「만경강 갈대숲에서」,일부분
봄·여름의 "푸른 정기"는 찬바람 부는 계절의 "하얀 머리"로 대비된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외로운 건 사치"라며 눈물을 삼켜온 갈대의 모질음은, 결국 "이리저리 꺾이고 상처 난" 본모습으로 돌아온다. 꺾임과 상처는 비극에 그치지 않고, "모질게 살 필요가 없다"는 삶의 덧없음과 해탈에 이르는 시적 전환점이 된다. 갈대라는 동적인 객체는 시인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로서 통일성을 더한다.
이러한 수용과 치유의 역설은 「배추농사」에서 극대화된다. 정성스레 키운 배추가 태풍에 휩쓸려 "벌레구멍이 숭숭" 난 실패작이 되었을 때, 시인은 그것을 버리는 대신 시래기 국을 끓여낸다.
그려, 이 맛이여
김치는 아니어도 시래기 국이면 어떠냐
- 「배추농사」, 일부분
‘김치’가 완벽함과 완성도를 상징한다면, ‘시래기 국’은 실패와 흠집을 품어 안은 삶의 비범한 재해석이다. 농사의 실패라는 결함이 구수하고 든든한 국 한 그릇이라는 유기적 만족감으로 바뀌는 이 대목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상징적 연금술을 보여준다.
3. 시간의 완성 및 보은(報恩)의 미학
「팔순의 봄날」은 지난 시간의 회한과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가 일체를 이루는 시집의 하이라이트다. 땅을 뚫고 수북이 피어오른 ‘할미꽃’은 늙음의 대명사가 아니라, 자아의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생명의 기호로 작용한다.
아직도 나의 미완성 자화상이 부끄럽고
후회하기엔 놓쳐버린 시간들
베풀며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남아 있는 날들 보은의 삶으로 살겠다.
- 「팔순의 봄날」 , 일부분
"미완성 자화상"이라는 솔직한 자백 뒤에 이어지는 "베풀며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 남아 있는 날들 보은의 삶으로 살겠다"는 다짐은, 자책을 넘어선 삶의 성숙을 보여준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남아있는 날들을 ‘보은’으로 채우겠다는 결의는, 동료 어르신들과 함께 시를 읊고 와인 잔을 기울이는 "서산의 붉은 노을"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아름답고 숭고한 봄날로 승화시킨다.
Ⅲ. 닫으면서
김덕임 시인의 이번 작품 5편은 텍스트 내부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대립 요소를 신비평적 유기성으로 완벽히 통합해 낸 뛰어난 연작이다. 시인은 완벽함과 결함, 무성함과 쇠락, 고독과 환희, 상처와 치유라는 상반된 모순을 텍스트의 표면 위로 끌어올린 뒤, 이를 특유의 정갈하고 수용적인 시적 언어로 정밀하게 조율한다. 가꿔지지 않은 ‘잡초’가 숭고한 ‘풀꽃’으로 인식 전환을 이루고, 모진 태풍을 견디다 상해버린 ‘배추’가 따스한 ‘시래기 국’으로 재해석되며, 꺾이고 흔들리던 ‘갈대’가 삶에 대한 해탈과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신비평이 주목하는 ‘대립물의 화해와 조화(Reconciliation of Opposites)’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처럼 시인에게 자연의 미물(微물)—풀꽃, 단풍나무, 갈대, 쓸모를 잃은 배추—은 결코 일상적 풍경에 그치는 외적 객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시련의 세월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시적 자아의 내면이 투영된 ‘상징적 분신’이자, 스스로의 삶을 증명해 내는 유기적 기호들이다.
결국 그의 시 세계가 다다르는 궁극의 지점은 쇠락과 종말에 대한 공포가 아닌, 존재의 완성에 대한 ‘보은(報恩)의 미학’이다. "서산에 붉은 구름 한 조각 곱게 물드는" 황혼의 이미지 속에서, 시인은 지나온 모든 흉터와 후회를 미학적 훈장으로 승화시킨다. 거친 쑥으로 태어났으나 시라는 지혜의 삼밭에서 마침내 곧게 자라난 듯, 칠순과 팔순의 절정에서 길어 올린 그의 순정한 언어들은 독립된 하나의 완벽한 시적 우주를 구축하며 읽는 이의 마음에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나병훈|문학평론가, 전북 임실 출생
2026년 계간《문학사계》문학평론 등단
문학평론집『언어의 숲,사유의 길 』外
동인디카시집 『감정계약서』, 『물낯에 햇살이 비칠 때』
전문칼럼집『쌀과의 연애론』外,
前계간《씨글》편집장,前《온글문학》편집장
시사모 운영위원, 한국디카시학회 전북지부장
글벼리디카시문학회장, NH디지털문학회장
첫댓글 이게 무슨일 입니까 !!!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왔는데 , 온글 원로시인 특집이라고 해서 난감 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참 많이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골라서 5편을 보냈는데, 꿈보다 해몽이라더니ㅠ
이 글을 읽고 평론 이라니요. 참 많이 부끄럽고 감동 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ㅠㅠ
아직도 세련되지 못하고 어려은 시 작업들이 한계를 느끼고 , 시를 쓰는것보다 내 삶을 시처럼 살자고
꽃을 만지며 보내고 있지요.
고맙게도 이번 특집에 이 평설을 꼭 실어 주었으면 합니다요.
항상 감사 드리고 옆에 계신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요. ^^*
회장님, 따뜻하고 진솔한 말씀에 저 역시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회장님의 시 5편은 그 자체로 깊은 삶의 궤적이자 순정한 미학을 담고 있었기에, 제가 한 일은 그저 시 속에 이미 빛나고 있던 가치들을 정성껏 짚어낸 것뿐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 겸손히 말씀하시지만, 훌륭한 시가 있었기에 울림 있는 평문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잡초마저 꽃으로 품어 안으시는 회장님의 삶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한 편의 시입니다. 한계를 말씀하시지만, 팔순의 절정에서 길어 올리신 언어들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과 희망을 주고 계십니다.
. 회장님이라는 든든한 풀꽃 같은 시인이 우리 온글문학 곁에 늘 함께 계셔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꽃들과 함께 정다운 나날 이어가시길 마음 모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