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설 명절에 함께 밥상을 차린 24절기 '우수'를 예견함인지 새벽부터 눈이
아닌 비가 얼어붙은 대지(大地)를 적신다.
살랑이는 바람이 자킷의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봄비라 하여도 손색없을
포근함이고 보면 기후의 변화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명절을 앞둔 때라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손님들에게나 판매자에게
여간 거추장스러운게 아니지만 강원도를 비롯한 경북 산간에서는 최악의
가뭄으로 식수마저 공급이 원활치 않다하니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장마마냥
각 고을의 저수지 곳간마다 가득가득 물이 채워지길 그렇게 소원하나이다.
하루 1,200Km 이상의 산지를 달린 구매팀의 노력으로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고루 갖춘 우수농산물이 고객의 명절준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물량구매량이 전년대비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총공급가격은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풍년농사의 후유증은 농업인과 판매자 모두에게 아이러니한
씁쓸함을 남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농축업분야의 여유로운 모습들과는 달리,
수산부문은 품목별로 가격 등락폭이 큼에 따라 제수용품을 구매하려는 알뜰한
어머님들의 행렬이 새벽 노량진시장과 구리, 강서도매시장을 꽉꽉 메우고
있으니 오랜만에 보는 인산인해(人山人海) 물결이 참으로 고맙고 즐거우이.
서너개 상품에 불과하지만 신선미를 자랑하는 최고의 품질과 2~3,000원의
가격을 흥정하는 고객의 입맛을 맞춰 드리기 위하여 주간미팅을 마치자마자
노량진시장으로 달린다.
새벽 도매시장 파장시간이 임박하여 도착하였지만 역시 은빛으로 빛나는
선물용 대어(大漁) 제주갈치와 잘 삭힌 홍어는 노량진 단골집이 최고이다.
사는 사람도, 받으시는 손님도 한가지로 만족하니 '발품'으로 전해지는 서비스는
어느 분야이든 소소한 감동과 보람을 자아낸다.
명절 대목에 숨돌릴 틈없는 각 영업점의 점장으로부터 직원들을 격려하고
상암DMC 종합유통센터로 달린다.
3월 개점을 앞두고 당초 설계도면과 일부 인테리어 부분이 상위(相違)되어
공사관계를 총지휘하는 단장에게 형편을 조율하며 단 한평의 면적이라도
유통활성화 공간으로 점유되도록 참기름 짜내듯 서로간의 지식을 공유한다.
농한기에 쉬고 있는 행주내동 자경지 밭을 형준군과 함께 둘러 보았다.
작년, 전(前) 임차인이 대파를 심으며 요소비료를 잔뜩 머금은 보물(寶物)의 땅
자경지에 고구마와 귀족서리태를 정성껏 가꾸었지만 결국 요소비료의 폐해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KO패를 당하였다.
지난 한해, 요소비료를 중화하고 올 3월쯤 다시 경운작업에 들어갈 농경지!
벌판의 추위 속에서 눈과 비와 서리를 번갈아가며 맞은 땅은 오히려 은빛으로
빛나는 희망의 땅이다.
올해에는 주말농장과 함께 성공적인 풍년농사를 반드시 이루어낼 셈이다.
형준군과 함께 늦은 점심이지만 탁배기 단골집 '옛날 옛적에'의 점심메뉴
청국장이 이토록 맛있었나?
한 뚝배기를 게눈 감추듯 비워 내었다.
상암종합유통센터 계약과 관련된 내부서류를 정리하고 at센터로 달린다.
잘 익은 몇십년 동안의 된장, 간장처럼-
두번의 강산이 바뀌었음에도 한결같이 지지와 성원과 애정을 쏟아주시는
지인을 뵈었다.
편지로 왕래할뿐,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세월의 풍파(風波)에 젖으신 지인의
머리가 파뿌리처럼 온통 허여시다.
이런저런 세월의 이야기로부터 사업과 최근의 근황까지..,
항상 승승장구할순 없지만 초로(初老)의 연세에도 열정으로 생활하시는 지인의
어깨가 역시 튼튼한 대교(大橋)이다.
2시간여에 걸친 만남이 2초처럼 지나가 버렸지만 다시 뵈올때까지 건강과
회사의 발전을 소원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지하철로 오길 암만 잘했지^^
땅 속에서 한강을 가르는 동호철교 지상으로 튀어나온 지하철이 동호대교 위에
쭉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비웃듯이 KTX의 속력으로 달리는 듯하다.
주차장도 이런 주차장이 없으니 비교우위의 쾌감인가?
지하철 덕에 제시간에 연신내역에 도착, 딸래미 공부방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섰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비님이라 틈새를 놓치지 않고 연신내 로데오거리는
선남선녀(善男善女) 젊은이들의 발걸음으로 마치 노량진새벽시장과 흡사하다.
어두운 곳이 있으면 밝은 곳도 필요한 법!
이런게 세상살이의 형평성 아님 공평성 아니런가?
때론 아무도 없는 선방(禪房)에서 스스로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분명 있다.
또 어느때인가는 시끌벅적대는 군중 속에서 함께 휘말리고, 함께 비벼대며
공동체 속의 '나'를 찾는 시간이 또한 필요하다.
어려운 시간들임에 분명하다.
나아가야 할 곳은 분명한데 길은 갈래갈래 찢어져 '선택'을 종용한다.
지하철을 타고갈까?
차를 가져갈까?
이런것 쯤의 선택에서 인생을 멘토삼는다면 그건 삶도 아니제?
복잡다양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또한 갈래로 뻗어난 미지(未知)의 길만큼
인연(因緣)의 깊이를 묻는 어려움은 항상 생활과 함께 자리한다.
10분여 이런저런 망상 속에 물끄러미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빵!"
딸래미의 우렁찬 목소리...
동호철교를 가르던 KTX처럼 두 어깨에 내려앉은 노곤함이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진다.
"뭐 먹고갈까?"
"초밥 사줘"
초밥의 귀신이라 연신내 유명난 집에만 가면 20Ps 2인분이 모자라니..,
초밥 2인분에 지 애비는 미니 칼국수를 주문하고 덤으로 나온 채소샐러드를 완벽
처리한다.
"조금 모자라는데 1인분만 더 먹을까?"
"모자라다 싶을 때가 좋은거야. 부족하면 식빵 더 먹고..,"
아쉬워하는 딸래미를 수갑채우듯 끌고나와 집으로 향한다.
아직 봄비같은 단비가 참 아름답게 내린다.
내일아침 가로수엔 아마도 점점히 새싹이 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