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강은 건너게 할 수 없다
~헌법9조를 지키는 비무장 중립의 깃발을 올리며~
平本 潤
아베연립정권은 사탄의 나라를 향하여 루비콘강을 건너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헌법 시행 69년, 제9조에 나타난 이상은 조금씩 빈껍데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많은 국민의 반대를 무시하고, 3월 29일, 전수방위(專守防衛:오로지 지키기 위한 방위)를 이탈하는 안보법안이 시행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우찌무라간조가 외쳤고, 야나이하라다다오가 계승한 절대평화의 이념, 그것을 관통하는 기독교 정신의 진수를 되새겨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찌무라간조는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보여준 세계는, '비무장에 의한 평화'라고 강하게 외쳤습니다. 무기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찌무라는 이사야서 2장의 유명한 '평화의 외침'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누구나 그곳을 읽으면,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받으리라. 특히 잊기 어려운 것은 4절 말씀이다.
이렇게 그들은 칼로 쟁기를 만들고, 그 창으로 낫을 만들어,
나라와 나라가 칼로 서로를 치지 않고, 또한 다시는 전쟁을 답습하지 않으리라 했다.
실로 아름답고 위대한 꿈이다."(우찌무라전집 4권, 1932, pp433-444.)
야나이하라다다오는 침략전쟁에 의한 일본과 아시아의 2천만 전사자의 고귀한 희생의 결과로, 일본국민이 얻은 헌법9조에 전후 일본의 희망을 걸었습니다. 자국의 방위를 위한 일체의 무력행사 포기, 군비폐지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나는 야나이하라의 불굴의 결의가 나타난 아래의 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반전과 비무장 중립의 깃발을 높이 들어올리려 합니다.
"참으로 전쟁은, 국가라는 강자가 국민이라는 약자의 생명과 가정과 재산을 경시하고, 탈취하고, 파괴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전쟁은 상대국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 사람들도 죽이고 고통에 빠뜨린다. 세상에 전쟁만큼 불의한 것은 없다.
그러면 자국의 방위를 위한 전쟁은 어떤가? 나라의 독립은 귀중하다. 나라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정신은 아름답다. 그러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방위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국가의 방위라는 목적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도덕적인가? 그렇지 않다. 불의의 수단에 의지하여야 독립을 지킨다면, 독립을 잃는 쪽이 국가의 도덕적 명예가 될 것이며, 그 나라가 세계역사에 길이 빛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전쟁이 정의에 반한다면, 자국방위를 위한 전쟁이라는 명제도 역시 성립될 수 없다. 실제로 역사에서는, 오히려 전쟁으로 나라의 독립을 잃은 사례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야나이하라전집 19권, 1964, p.276.)"
우찌무라간조 그리고 야나이하라다다오의 뜻을 계승하는 자로서, 헌법제9조는 澤地久枝씨가 자주 말했던 대로, "1밀리미터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株) 크로스 유어 예수 대표
첫댓글 일본 헌법 제9조는 제 1항에서 전쟁 포기, 제2항에서 전력(戰力) 포기와 교전권 부인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헌법을 '평화헌법'이라 부른답니다. 하지만 최근 아베정권은 자위(自衛)라는 명목하에 이 9조를 폐기하려고 시도하는 중에 있습니다.
아, 또 하나!!' 루비콘강을 건너다'는 말은 어떤 일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다는 말입니다. 시저가 로마로 진군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루비콘강을 건넌데서 나온 말이죠. 여기서는 아베가 루비콘강을 건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