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31일(수)
모기를 즉결처분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 없이 아주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역시 농가의 공기는 신선하고 좋았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거릴 만도 한데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숙면을 했으니 감사할 일이며, 또한 아침마다 나를 위해 맛있는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이것도 감사할 일이다.
식당에 내려가 이번에도 원 없이 빵을 먹었다. 누구는 빵이 입에 맞지 않아 여행할 때마다 많은 고생을 하는데 나는 아니다. 빵은 내게 별식이나 마찬가지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하여간, 거나하게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해서 모텔 근처에 있는 성당에 갔다. 이 성당은 매 15분마다 한 번 종을 울리며 정시가 되면 여러 번 울렸다. 얼마나 오래된 성당인가? 하여 살펴보니, 인가도 별로 없는 곳에 있는 이 성당은 자그마치 1642년에 지은 거란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역사를 살펴보니, 1642년은 갈릴레이가 죽고 뉴턴이 태어난 해이며,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이 일어난 때란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1592~1598년)과 병자호란(1636년) 이후에 아버지 인조의 미움을 받아 죽은 소현세자(1612~1645년)가 있던 때고... 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니 서글펐다.
하여간, 이 성당은 햇수로 볼 때 400년도 훨씬 넘은 건물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마당에 나란히 서있는 묘비를 보면서 이들의 종교심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었다.
9시 15분에 짐을 정리하고 모텔을 나와 내비게이션에 오스트리아 빈(Wien)을 찍고 출발하려 했는데 처음부터 뭔가가 좀 이상했다. 시골이라 그랬는지 길을 안내하는 내비가 처음에는 먹통이더니 한참 후에 작동했다.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따라가는데 예감이 안 좋다. 느낌상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내비는 그냥 계속 가란다. 설마? 하며 갔더니 그만 길도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거다. 다시 차를 돌리고 내비를 새로 설정해 출발했는데 내비는 여전히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이번에는 맞겠지...' 하며 갔더니 그 길은 찻길이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이었다. 최첨단 장비인 내비가 어째 자전거 도로와 찻길도 헷갈려 한단 말이냐! 정말 황당했다. 하지만,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인터넷 사정이 안 좋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위안을 하고는 우리가 처음에 들어왔던 길을 찾아 거꾸로 되짚어가며 겨우 마을을 빠져나와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여간 시골에서 길을 찾느라 고생 좀 했다.
빈으로 가면서 한국에서 출력한 자료를 살펴보니, 유럽 음식이 짠 이유가 나와 있었다. 그 내용인 즉, 옛날에 유럽에는 소금이 귀하여 집에 귀한 사람이 오면 소금을 많이 넣어 대접하곤 했는데 그 습관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대체적으로 음식이 짜다는 것! 이게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건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 배운 게 있었다. 그건 오스트리아의 도로를 이용하는 타국 자동차는 도로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은 자동차 도로로 촘촘하게 얽혀있어 차만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차가 많이 다니면 아무래도 도로가 상하고 공기도 오염되기 마련이라, 어느 나라는 자국에 속한 차가 아닌 다른 나라의 차에 대해서는 사용료를 물린다.
그런데 이상한 건,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독일의 고속도로 및 국도를 이용할 때는 아무런 통행료를 내지 않는 반면, 오스트리아는 자국에 등록되지 않은 모든 자동차에 대해서는 반드시 도로 사용료를 물린다는 점이다. 얌체다. 유럽에서 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독일 외에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이며,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베니아 등의 나라는 국경을 넘기 전에 반드시 휴게소나 주유소에 들러 비네뜨(Vignette: 기간별 통행료 스티커)를 사서 운전석 앞 유리에 붙여야 한다. 비네뜨는 10일용, 15일용, 한 달용, 1년용 등이 있는데 스위스는 1년용만 판매한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스위스는 아예 배 째라다. 돈 내기 싫으면 관광도 오지 말라는 속셈이다. 좌우지간 상당히 불공평한 일이지만, 어떻게 하랴? 오스트리아에 가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이 9유로를 주고 10일용 비네뜨를 샀다. (위의 사진은 1년짜리 비네뜨)
부르크하우젠을 떠난 지 약 4시간 만인 오후 1시 15분에 우리는 목적지인 빈에 도착하여 Star Inn Hotel에 짐을 풀고 즉시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다. 내가 호텔의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1층에 있는 SPAR라는 슈퍼마켓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원래는 호텔 앞에서 지하철을 타면 곧장 시내로 들어갈 수 있는데 마침 지하도로공사 중이라 지하철 운행이 안 되었다. 그 대신 대체 버스가 있어 그걸 타고 시내로 갔다. 빈은 음악의 도시답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연주회 티켓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파는 티켓은 관광객들을 위한 것으로 모차르트의 음악 가운데서 각 장르별로 유명한 것 몇 개를 골라 연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티켓 판매원은 우리를 보더니 적극적으로 다가와 음악회에 관해 일장 설명을 하고는 우리말로 되어 있는 설명서를 보이며 표를 사란다. 이런 사람들이 빈의 곳곳에 널려있다. 나라가 관광과 음악으로 먹고사는 듯 싶었다. 우리는 음악회에 갈 시간이 없어 왼쪽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보면서 시내로 들어갔다. 인파가 엄청났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 우리말이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 배가 빨리 꺼지는지, 조금만 걸어도 배가 고프다. 볼 건 많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아 시티 케밥(City Kebab)이라는 터키 식당을 찾아 거기서 간편식인 양고기 '되너'를 사먹었다. 이것은 사진에서도 보듯이 걸어 다니면서 먹을 수 있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게다가 양도 많아 하나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
빈은 한국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 사람이 굉장히 많았는데 한국 사람이 모두 빈에 왔기 때문에 한국은 텅텅 비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내에서 유명한 슈테판 성당 및 여러 성당을 구경하고 또 번화한 길을 걸어가며 지도에 유명한 곳이라고 표시된 곳은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빈에서 가장 유명한 슈테판 성당 슈테판 성당의 오래된 오르간과 연주대(지금 슈테판 성당은 오르간이 너무 오래되었다며 새 오르간 건축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었다.) 빈에서 여러 성당을 구경하다보니, 이 동영상이 어느 성당인지 모르지만, 유럽의 오래된 성당은 대부분 이처럼 대리석과 금으로 장식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남독으로 가면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성당들이 즐비하다. 시내를 구경하고 나서 이번에는 그 유명하다는 도나우(Donau) 강을 보기 위해 전철역으로 갔다. 도나우는 독일어이고 영어로는 다뉴브(Danube)라고 한다.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유럽에서 제일 긴 강은 러시아에 있는 볼가 강이다. 그런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3,690km란다. 그 정도라면 서울에서 티베트까지의 거리다. 비행기로도 6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하여간, 빈의 전철역에서 본 건데... 우리는 유럽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키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줄을 잘 서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철역에 가보면, 줄 서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철역 바닥에는 우리나라처럼 아무런 표시가 없다. 우리는 어디에 서야 전철 문이 열리는 곳인지를 알지만, 유럽은 그런 게 아예 없다. 그러니 전철이 어디에 서는지 알 수 없으므로 줄을 설 수 없는 거다. 따라서 아무 곳에 그냥 서 있다가 전철이 들어오면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문으로 달려간다.
전철로 도나우 강변에 도착한 우리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란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건넜는데 사실 아무리 둘러봐도 도나우 강이 아름답지도 푸르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한 강이었다. 도나우 강을 건너 식당을 찾아보니 제법 큰 그리스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해서 ‘여기가 유명한 식당인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날따라 모든 생선요리가 반값이었기 때문이었다. 반값이라는 유혹에 넘어간 우리는 강이 내려다보는 자리에 앉아 생선 주문을 했다. 이 식당의 생선은 오븐이나 후라이팬에 익힌 게 아니라, 바비큐처럼 불로 익힌 거란다. 난 어떤 요리 방식이든 상관없이 생선을 좋아하기에 맛이 어떤지 모르고 그냥 열심히 먹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아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데 번쩍번쩍하고 쿵짝쿵짝하는 요란한 곳이 있어 가보았더니 프라터(Prater)라는 놀이공원이었다. 프라터는 빈 시내에 조성되었는데, 시내에 있고 게다가 입장료도 없어 누구나 맘대로 들어가 즐기는 곳이었다. 프라터를 보며, '우리나라 롯데월드도 입장료를 없애고 누구나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 사람이 너무 많아 운영이 안 될 정도가 되겠지? 하여간, 입장료가 없으니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게 한 이 영업 전략도 꽤 괜찮아 보였다.
저녁 늦게까지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호텔로 돌아왔다. 전철을 이용하면서 느낀 것은 전철에서 전화할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서 상당히 시끄러웠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마 전철의 노후로 소음이 많아서 그런 건지 어쩐지는 몰라도, 하여간 시끄러웠다. 우리나라 전철 문화가 단연 세계 최고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우리나라는 전철을 이용할 때, 표를 끊고 삼발이를 통과해야 하는데 빈은 그런 엄격한 통과대가 없었다. 그냥 역으로 내려가 타면 되었다. 물론 불시에 표 검사를 하여 무임승차한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겠지만, 제대로 표를 구입해 타는 승객은 많지 않은 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