宿村舍(숙촌사)
신관호(申觀浩:1810~1888)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
초명은 관호(觀浩)이며 후에 헌(櫶)으로 개명, 시호는 장숙(壯肅)이다.
1810년 충북 진천에서 무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조부 신홍주는 어영대장과,
병조참판을 역임했으며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 김정희의 제자로 시문에도 밝았으며
효명세자의 총애를 받았다. 이런 가문의 배경이 있어서 1827년 음직으로 관직에 올라 전라 우수사를 걸쳐
1849년에 금위영대장에 올랐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대리청정을 하자 그의 정책을 보좌하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1868년 어영대장 · 행지삼군부사 · 공조판서를 역임했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자 구로다 기요타가와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74세에 고향 진천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젖은 연기는 주위 나무에 피어오르고 사립문은 굳게 닫혔네
濕煙籠樹掩荊門 습연롱수엄형문
조용히 내리는 가랑비에 저녁 기운은 어둑한데
小雨霏微夕氣昏 소우비미석기혼
다시 찾아 간 인천의 시골 마을
重到仁川村舍裡 중도인천촌사리
주인은 닭 잡아 대접하는 풍속이 남아 있네
主人鷄黍古風存 주인계서고풍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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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懷(추회)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저녁 무렵, 구랑리에 간 적이 있다.
물 좋고 산이 좋아
개천가에 매운탕집과 닭백숙하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식사도 할 겸
닭백숙집에 갔는데
때마침 큰 압력밥솥에 추가 돌면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주인장을 불러서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딸과 사위가 내려와서, 토종 수탉을 잡았는데, 너무 질겨서 압력 밥솥에 삶는다.”라고 했다.
어차피 닭백숙을 먹으러 왔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팔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멈칫멈칫하기에
기존 가격보다 더 드린다고 말했더니
그 닭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방목해서 키운 닭이라서 그런지
질기면서도 맛이 좋았다.
그 덕분에 우린 저녁을 일찍 먹을 수 있었고
딸과 사위는 냉장고에 있는 닭으로 다시 요리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닭장에서 닭을 잡기도 그렇고......
나올 무렵, 주인은 돈을 더, 받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이 시에도
화자가 예전에 들렀던
인천 시골 마을을 다시 찾아간다
집주위에 심어 놓은 나무마다
밥 짓는 저녁연기가 젖어들고
가랑비가 조용히 내리는데, 사방이 어둠 컴컴한 저녁이다.
먼 곳에서 손님이 왔는데
닭을 잡고 기장밥을 해서 대접한다.
이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인천의 손님을 대접하는 풍속이란다.
38여 년 전 인천의 석남동에 살았던
내 친구는 무엇을 할까?
비 오는 저녁에
그가 온다면 닭백숙에 술 한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