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희양산을 찾아서
왜 그런지, 길을 나서는 날이면, 이른 새벽에 잠을 깬다.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본다. 당일 날씨를 눈으로 재기위해서다. 그 날은 날씨가 맑았다. 이미 서편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희미한 반달의 얼굴이 홀쭉하다. 새벽 하늘엔 간간히 별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보였다. 사위가 고요하고, 적막한 가슴을 채우지 못하는 결핍을 느끼면, 왜 자꾸 그리운 사람들이 어둠을 헤엄쳐 다가오는지. 그리운 사람들의 손안에 새벽별을 한 움큼 쥐어주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 가난했던 빈곤의 유월밤에 모기불 피워 논 마당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얼마나 헤었던가. 그 땐 별빛이 참 영롱하기도 했었지. 저 아름다운 별빛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 것일까. 보석마냥 신비스럽게 반짝이는 별들에게 또 쉬지않고 아무도 모르는 그리움을 얼마나 많이 흘러 보냈던가. 그때는 온통 그리움 투성이었다. 서울로 전학간 같은 반 숙이도 그리움이었고, 전염병으로 죽어버린 한마실에 살던 석훈이도 그리움이었다. 읍내에서 본 마스마이(그때는 서커스를 그렇게 말했다)의 기적같던 묘기도 항상 내안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마실앞으로 흐르던 냇물따라 흘러가던 나의 호기심도 가물거리는 지평선 너머에서 그리움으로 돌아 왔다. 하루에 두번씩 읍에 들어 오던 버스가 아스라히 보이면, 나의 가슴은 늘 두근거리고 했다. 나가는 버스가 오리정에서 일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면, 나는 공연한 박탈감에 빠지곤 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 길을 꼭 따라가 보리라. 결국 나는 오리정으로 나있는 그 길을 따라 대구로 나왔고, 이제 귓밑머리가 희게 변하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산행베낭을 다 꾸리고, 걸어서 홈푸러스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음력 사월 초팔일 부처님 오신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늘 하루만 산문을 개방한다는 희양산 봉암사에, 말하자면 희양산 등산하고, 봉암사 구경한다는 모 산악회 안내를 보고 미리 예약을 하였던 것이다. 승차하니 만원일 줄 알았던 차내는 삼xx명 남짓 하여 차내 공간이 보다 자유로워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다. 신동아 관광버스는 고속도로를 줄기차게 달렸다. 이렇게 빨리 쉬지않고 달리는 것 만이 사업의 성공을 약속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잠에 떨어졌다가 눈을 뜨니, 차는 그사이 달려, 연풍으로 내려서고 있다. 정감록에 나오는 양백지간, 삼풍, xx승지지에서 삼풍의 하나인 연풍은 물,불,바람의 재앙이 없는 피난지로 옛부터 승지를 찾는 사람들의 입술에 회자되었던 땅이다. 삼풍이 좋다고 하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머리에 반짝이며 지난간다. 천지의 조화를 인간이 어찌 예측한단 말인가. 우리는 별 말없이, 안내인의 설명이 간단하게 있긴 했지만, 오로지 산을 타는 것 만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인양 백두대간의 줄기인 능선으로 걸어 올라갔다. 오르막이 이어지고, 더러는 산 야생화의 향기에 취하기도 하였지만, 수림으로 그늘진 산 오솔길을 마치 경쟁하듯이 숨을 헐떡이면서, 뒤돌아 보면 망부석이 될까봐스리, 그렇게 뒤돌아 보지 않고 올라갔다. 한시간을 올라가 능선에 도착하였다. 거기는 삼거리여서 이정표에 이만봉 백화산가는 길과 희양산가는 길이 나타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쉬기로 하였다. 후미에 오는 회원들을 위해서, 쉴겸 기다려 주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줄여서 대간이라 하지만, 대간은 우리말로 간큰, 간이 크다는 뜻이고, 대간을 타면, 간이 큰 대담한 호연지기가 생길 것 같은 비약의 생각에 빠져 있는데, 후미의 회원들이 도착하고 있다. 모두 낙엽위에 자리잡아 잡담을 나누거나 사진 촬영을 한다. 휴식은 즐겁다. 내 옆에도 억센 남자가 앉아 간식을 먹으며 주전부리성 입담을 던진다. 그의 얼굴은 큰바위 얼굴처럼 크고 각이 선명하였으나, 내뱉는 말은 여성의 치마속과 음식 그릇을 날아 다녔다. 본능이란 참으로 무서운거다. 이 정도의 밀림에서 오월의 산 향기 훈훈하고, 게다가 백두대간의 정기서린 산맥의 능성에 앉아 하는 말이 겨우 이정도란 말인가. 이렇게 좋은 친 환경이라면, 도통까지는 안가도 평소와는 의미가 다른 언어를 구사할 것도 같았지만. 암튼 우리는 잠시 쉬고, 희양산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숲길을, 이런길이라면 영원히 걷고 싶은 길을 숱한 상념에 젖어 걷고 있노라니, 다른 쪽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그들의 대화에서 출발지가 인천과 서울임을 알수 있게 한다. 지금부터는 등산객들의 수가 불어 운신에 힘이든다. 이렇게 하여 희양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암릉을 지나면서 느꼈던 짜릿함이 머리끝에 머물러 터벅머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각각 흩어져 산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낯선 아직까지는 이방인 같은 회원들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능선 내릭막길에 접어드니, 잘생긴 남여 젊은이 삼인이 길을 막아선다. 뚝 잘라 이길로 내려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봉암사 #님의 명에 의해서 산길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오늘 하루 산문을 개방한다고 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무슨 졸지의 변이란 말인가. 누가 왜 길을 막는가. 모든 길은 다 내마음으로 통하는데, 모든길이 모두 내마음에서 만나서 하나의 마음이 되고 그래서 마음의 길이 되어야하는데, 또 마음의 길들이 서로 통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대승의 부처가 되어야 하는데, 이 능선길을 왜 못간단말인가. 부처님이 누구신가. 부처님은 영어로 the great renunciation 로 영역된다. 가장 위대한 포기자란 뜻이다. 깨달음은 포기에서 출발되는 종착지다. 왕의 자리, 인도 최고의 미인인 부인 야슈다라, 잘생기고 영리한 아들 라훌라, 어머니 아버지 사랑스런 가족 부귀공명, 모두를 버리고 깨달음의 길로 석가모니는 나아갔다. 모두 버렸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자신마저 버렸기에 얻은것이 깨달음이다. 그길이 얼마나 어려웠을 것인가. 부처님은 나 이전에도 나 이후에도 이런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일것이다. 그의 고통은 모든 생명체의 수용에 따른 대립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다른 현상을 받아들이는 데에 대한 방해물인 탐진치 삼독을 제거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고통을 건너는 것이 목표였다. 깨달음은 고통으로 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소위 깨달은 자들이 길을 막고 그것도 단 하루 동안 개방이라는 단서와 함께 언론에 알려 놓고 길을 막고 있다. 어떤것이라도 버려야 할 수도자들이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여기서 다툴 수 없으므로 돌아서야 했다. 너희들 돌아서 가는 사람 못 잊어 하지 마라. 투털거리며, 다시 희양산성으로 왔다. 옛 정취을 덮고 딩굴던 성돌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다가가는 나를 응시하는 눈들이 오월의 줄장미 꽃잎처럼 충혈되어 있다. 차라리 솔직한 욕구를 표현하는 산사나이 너희 눈들이 부처님 눈이다. 중생심이 부처님 마음이고, 평상심이 부처님 마음이다. 아무리 퍼 담아도 다 차지 않을 것 같은 너희들의 피빛 눈자위가 더 아름다운거다. 진흙에 발을 담궈고 가장 깨끗하게 핀 홍련만큼 니네들 눈동자가 아름다운거다. 시주돈 들고 오면 맨발로 뛰어나가는 땡*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다 니네들이. 머리깍으면 다 중이가 죄수들도 머리 깍더라고. 머리 깍더라니깐.백고 친 머리에 금박입히면 부처가 된다고 생각혀제 이#들아. 나는 공연히 심통을 부리고, 공연히 욕하고, 산속에서 청정한 바람으로 나에게 매질하며, 치통환자처럼 솟아오르는 화를 얼굴에다 조각하였다. 드디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능기라. 인생은 꼭 그런기라. 조금 내려가니 온통 산죽밭이다. 산죽줄기를 밟다가 몇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졌다. 산죽밭, 산사람 죽이는 밭이가. 그러나 산속에 푸른절개로 고고히 서 있는 산죽은 고귀한 것이다. 그날 산죽밭이 끝나고 계곡물을 두번이나 건너 원북2리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봉암사 들어가는 포장도로에 나오니 이건 사람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연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이 사람꽃이 와글와글한다. 당신들 걸어가는 것 모두 윤회인기라. 돌고도는기라, 물레방아 인생인기라. 돌담길 걸어가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가며, 또 한번 봐도, 인생은 해답없는 물레방아인기라. 저 아스팔트 길 오월의 집중조명에 달구어진 저 길을 시오리 걸어야 버스가 좌선하는 희양분교에 도달할 것잉께. 너희 까#머리들아 내길을 또 막아봐라.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녀#들아. 이제 내 길을 열어 줄께, 개방해 줄께. 너네들 처럼 안 막는다. 너네들 품잡고 마음껏 다녀봐라. 깍쟁이 땡$들아. 딱히 누구라고 말할 수 없지만 공연히 중얼거리면서, 또 속으로 외쳤다.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라. 모든 길을 열면 그렇게 설 수 있다.는 말이다. 알아 먹었니. 멀리서 도로가에 세워 둔 차의 행렬과 희양분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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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ㅎ왜이리 심중이 불안해 지셨을까... 차라리 멍석깔고 누워서 바라보던 초롱초롱하던 그 새벽별이나 한 웅큼 쥐어주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