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3-2); 상설전시-한글을 꽃피우다(2)
(48) 소반(小盤).
1881년 작
‘신사(辛巳)년 큰전 곳간(庫間) 대중소(大中小) 십오
죽’이 음각된 작은 소반
(49) 청화백자 항아리(靑華白磁 壺). 20세기 작
‘시케단지’라고 써서 식혜(食醯) 보관용임을
지정해 둔 항아리.
(50) 제기(鍮器祭器)
조선시대 본궁(本宮)에서 사용하는 제사용 그릇임을 표시한 그릇.
*본궁: 잠저(潛邸. 아직 왕위(王位)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곧
임금이 되기 전에 거처하던
곳을 시속(時俗)에서 일컫는 말.
(51) 떡살(木製 餠型)과
떡살(白磁 餠型)
-왼쪽: ‘축(祝)’을 새겨놓은 떡살(木製
餠型)
-오른쪽: ‘득손(得孫)’을 새겨
후손 얻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은 떡살
(52) 척사윤음(斥邪綸音)
헌종 5년(1839) 천주교를 배척하기 위하여 전국의 백성에게 내린 글.
*윤음(綸音): 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로 오늘날의 법령과 같은
위력을 지닌다.
(53) 한글 수표(手標).
조선 후기
돈이나 물건 따위를 꾸어주거나
받을 때 그 증거로 주고 받은 문서.
(54) 김씨 부인 한글 상언(金氏 夫人 上言)
1727년 김씨 부인이 친척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영조(英祖)에게 올린 한글탄원서이다.
*이 상언(上言)은 <구운몽(九雲夢)>의 저자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딸이며, 영의정을
지낸 이이명(李頤命)의 아내 김씨 부인(1655~1736)이 신임옥사(辛壬獄事)로 남편과 아들이
숨지고 손자까지 체포령이 내리자 영조에게
대(代)를 잇도록 손자와 시동생의 구명(救命)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쟁이 심한 정치적 격변기에
여성이 왕에게 상언을 올리며 정치적 역할을 했다는 점과
18세기 당시의 언어를 격조 높은 문장과 아름다운
궁서체(宮書體)로 정확하게 구사하여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55) 부의 단자(賻儀 單子)
조선 후기, 상갓집에 조문을 위해 보내는 물품을 적은 목록.
(56) 정조 어필 한글 편지 첩(正祖 御筆 便紙 帖).
국동 홍참판 댁 전납 근봉. 41세에 가는 붓으로 써서 외숙부인 국동 홍참판 댁에 보낸
편지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차다.
(57) 김정희 한글 편지(金正喜 便紙)
추사(秋史)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아내에게 쓴 편지.
(58) 명성황후 한글 편지(明成皇后 便紙)
명성황후(1851~1895)가 가족에게 쓴 편지.
(59) 오월 초사일 어머님 전 답 상서
조선 후기에 쓴 사람을 알
수 없는, 어머니에게 쓴 한글 편지.
(60) 삼강행실도 언해(三綱行實圖 諺解)
효자, 충신, 열녀 이야기를 우리말과 그림으로 엮은 책.
(61)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효도, 충성, 신의, 공경, 우애에 관해 실제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우리말과 그림으로 엮은 책.
(62) 백첨책(百籤冊). 백첨의
해설이 실려있는 책 (*籤: 점대 첨)
(63) 채색 당사주(彩色 唐四柱).
색칠한 그림으로 풀이한 사주 점 책.
*사주[四柱]: 사람이 출생한 연(年)·월(月)·일(日)·시(時)의 간지(干支).
(64) 오행점 책(五行占 冊). 오행으로
점 치는데 쓰는 책.
*오행점[五行占]: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이치를 풀어서 헤아리는 점.
(65) 저고리를 만들기 위한 본[韓服上衣 樣]
(66) 손그릇[蠟紙函] (*蠟: 밀 납, 백랍 납)
실이나 헝겊조각을 보관하기
위해 종이로 만든 작은 그릇.
*손그릇은 반짇고리의 방언(충남)
*반짇고리: 바늘·실·골무·가위·자·헝겊 따위의 바느질
제구를 담는 그릇.
(67) 버선을 만들기 위한 본. 조선 1873년
(68) 고산유고(孤山遺稿).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를 수록한 시문집
정조 15년(1791) 왕명으로 전라감사 서유린(徐有隣)이 간행한 것을 정조 22년(1798)
전라감사 서정수(徐鼎修)가
고산의 본가(本家)에 소장된 목판본을 대본으로 하여
와탈(訛脫)된 것을 첨삭하여 고산집(孤山集) 15부를 재차 간행하였다.
고산유고에는 전남 보길도(甫吉島)에 은거할 때 지은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가 실려있는데
자연에 묻혀 사는 어부의 삶을 통해
자연에 대한 관조(觀照)와 임금에 대한 충절을
한글 문학으로
표현하였다.
이 책은 다른 문집과는 달리
희귀한 국문학 작품을 싣고 있어 한국 시가(詩歌)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69) 홍길동전(洪吉童傳)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로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이상국가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70)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영조(英祖) 때 김인겸(金仁謙: 1707∼?)이 통신사 조엄(趙曮)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하여
일본을 다녀온 후 문물제도와 인정, 풍속, 그 곳의
풍경 등을 가사형식으로 쓴 기행록이다.
(71) 송강가사(松江歌辭)
선조 때의 문신이며 시인인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가사(歌辭)와 시조 작품을 모아
엮은 가집(歌集).
(72) 청구영언(靑丘永言)
영조 때의 가인(歌人)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이 고려 말엽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여러 사람의 시조를 모아
영조 4년(1728)에 엮은 고시조집.
(73) 열녀춘향수절가(春香歌). 19세기 후반에 완판(完板)으로
출판
*고전(古典) <춘향전>의
대표적 이본(異本)으로
19세기 후반에 완판(完板)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완판 30장본 <별춘향전(別春香傳)>이 33장본으로
확대되면서 <열녀춘향수절가>라는
새 표제가 붙게
되었다.
춘향의 사랑과 고난과 그 보상이라는
전통 <춘향전>의 의미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그
시대의
시대감각에 어울리는 새 문체로 발전시킨 점이 <열녀춘향수절가>가 <춘향전>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로 평가된다고 한다.
(74) 시조창 악보(時調唱 樂譜)
황진이(黃眞伊)의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되는 시조의 창(唱)을
위한 악보.
(75) 시조창 악보(時調唱 樂譜)
‘노세 젊어서 노세’로 시작되는 시조창의 악보.
(76) 금보(琴譜). 원본은 보물 제283호, 간송미술관 소장
약자보(略字譜)와 합자보(合字譜)의 기본법을 이용한 거문고 악보집으로 금선(琴線)과 음정의
위치 및 손가락 쓰는 방법을 그림으로 상세히 설명하여 합자보(合字譜)로 엮어 놓았다.
*약자보(略字譜): 국악에서 쓰는 기보법(記譜法)
*합자보(合字譜): 국악의 옛 악보로 원래 거문고·가야금·비파의 합자보가 있었다 하나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현금(玄琴: 거문고)합자보 뿐이다. 합자보는 율명(律名)을
표시하지 않고
연주법, 즉 왼손의 안현법(按絃法), 오른손의 탄법(彈法), 줄
이름, 괘(棵)의 순서 등을
여러 약자로
표시한 악보이다.
(77) 목제 한글활자(木製 活字)
(78) 금속제 한글 활자(金屬製 活字)
(79) 독립신문(獨立新聞). 연세대 소장본은 등록문화재 제506호이다.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徐載弼)이 1896년 4월에 창간하여
4면 가운데 3면은 한글전용
<독립신문>으로, 마지막 1면은 영문판 <The Independent>로 편집하다가
이듬해인 1897년
1월
5일자부터 국문판과 영문판을 분리하여 두 가지 신문을 발행하였다.
정부의 탄압 등으로 서재필은 1898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가고 윤치호(尹致昊)가 운영을
맡았으며 1899년 1월 H.G.아펜젤러가 한동안 주필이 되었고, 6월 1일부터는 영국인 엠벌리가
맡았으나, 정부가 이 신문을 매수하여 1899년 12월 4일자로 폐간하였다.
(80)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등록문화재 제509-1, 2, 3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하여
한국에 왔던 영국인 배설(裵說: Ernest Thomas
Bethell)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7월 18일에 창간하였으며
1905년 8월부터는 영문판과 국한문(國漢文)신문을 따로 분리하여 두 가지 신문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국권피탈 후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하였다.
(81) 황성신문(皇城新聞)
광무 2년(1898) 9월 남궁 억(南宮 檍) 등이 창간한 일간신문으로 <대한황성신문>의 판권을
인수받아 발행한 민간자본 신문으로 국한문(國漢文)을 혼용하여 지식층의 독자를 많이 갖게
되었다.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대한 비분을 장지연(張志淵)의 사설〈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으로 집행진이 모두 체포되고 정간 되었으며(1905. 11.20), 일본의
강제 병합이 이루어져
(1910. 8. 29) 신문 제호도 <한성신문>으로 바뀌었다가 9월 14일까지
발행하고 폐간되었다.
(82) 월남망국사(왼쪽)-단편소설
감자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을 월남의 망명객
소남자(巢南子)와의 대화를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기록한 것으로 1907년
주시경(周時經)의 순한글본으로 간행되었다.
국한문혼용체로는 1906년에는
현채(玄采)가 번역하여 간행되었다.
=감자; 금동(琴童) 김동인(金東仁)의 단편소설로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예의 바르게
자라난
복녀라는 여성이 도덕적으로 타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소설로, 현실폭로의
전형적인 자연주의 수법을
적용한 작품이라고 한다.
(83) 네벌식 한글타자기. 가장 오래된 송기주 4벌식 한글타자기
송기주 박사가 미국 유학시절 발명한 타자기로, 1933년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서 제작하여
판매되기도 했으며, 김준성
타자기(1945년), 공병우 타자기(1950년) 등의 한글타자기가
발전하는 데 영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타자기는 송기주 박사의 아들 송병훈씨가
보관하다 송기주 박사가 세상을 떠나자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84) 말모이 원고(國語辭典 原稿) -등록문화재 제523호-
국어학자 주시경(周時經) 선생이 중심이 되어
1911년경 쓴 것으로, 사전 편찬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240자 원고지에 붓글씨로 씌어있으며, 사전으로 출판되지는 못하였나 최초의
국어사전인 ‘말모이’ 원고로서 ‘말모이’ 사전 편찬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85) <한글>.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잡지
1927년 2월에 창간된 한글학회(옛 조선어연구회)의 기관지로 주로 국어학에 관한 연구를
게재하고 있는 게간(季刊) 기관지로, 주시경(周時經)의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고
국어의 학문적 이론의 연구와 한글 보급을 위하여 동인지(同人誌) 형식으로 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86) 조선말 큰사전 원고(國語辭典 原稿)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사전’ 편찬을 위해 작성한 원고로 1929~1942년까지 작성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87) 조선어 표준말 모음
1936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조선어표준어사정회를 두고 상용어 가운데서 뜻이 같은
말과 비슷한 말을 사정(査定)하여 간행한 표준말 모음이다.
(88) 주시경선생 유고(周時經先生 遺稿). 1933년 중앙인서관(中央印書館)
발행.
국어 문법에 대한 주시경의 저서 중
1908년에 발행한 <국어문전음학(國語文典音學)>,
1910년에 발행한 <국어문법(國語文法)>, 1914년에 발행한 <말의 소리>를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89) 한글 마춤법 통일안
한글맞춤법은 주시경(周時經)에 의하여 개척되고 주로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발전된 국어
연구의 결실로 조선어학회가 1932년 12월 원안을 완성하고, 1933년 10월 19일 조선어학회
임시총회에서 이를 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90) 소학독본(小學讀本)
대한제국 개화기인 고종 32년(1895)부터 광무 1년(1897) 사이에 학부편집국(學部編輯局)에서
편찬·출판한 초등학교 교과용 국어교재이다.
(91) 서유견문(西遊見聞). 고종 32년(1895) 도쿄 교순사(交詢社)에서 간행.
유길준(兪吉濬)이 서양 각국의 지리, 역사, 정치, 교육, 법률, 행정, 경제, 사회, 군사, 풍속,
과학기술, 학문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저술한 기행문으로 최초의 국한문혼용서로 이 책의
출간으로 당시의 신문, 잡지가 비로소 국한문혼용체(國漢文混用體)를 많이 따르게 되었다.
(92) 한글 첫걸음-중등 조선말본-중등 국어(왼쪽부터)
(93) 사민필지(士民必知)
고종 26년(18889) 미국인 선교사
H. B. 헐버트(Husbert. 1863~1949)가 세계 각국의 산천·
풍토·정령(政令)·학술 등을 한글로 간략하게 소개한 한국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로, 한국에
세계지리 지식을 심어주어 근대화의 문을 열게 하였다.
(94) 한글 자모의 남북간 차이
한글맞춤법(문교부 고시/1988)과 조선말 규범집(북한 국어사정위원회/1987)
- 국립한글박물관(3-3); 기획전시-세종대왕, 한글문화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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