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 들고 돌격 앞으롯!" "김일병, 크레모아가 설치는 어떻게 하는거야?"
이게 무슨 소리냐구요?
황당한 예비군 소대장 편제 얘깁니다. 서울 강남의 H예비군 동대의 경우 소대장이 전부 군의관 출신의 현직 의사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강남구의 경우 예비군 훈련 때 소대장들을 모아 놓으면 대부분이 의사들이어서 마치 '의사 동문회' 같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습니다.
만약에 오늘 당장 11년 전에 실제로 벌어졌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같은 일이 이 지역에서 발생해 긴급 동원령이 내려진다면, 소집된 소대장들은 K2소총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소대지휘의 기본도 모르는 군의관 출신들이 적게는 30여명에서 많게는 60여명의 소대원을 지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급박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군의관 출신 소대장들의 모습을!
이렇게 소대장 자리를 군의관 출신들이 꿰찬 사연을 알아봤더니 역시 황당합니다.
보통 군을 제대한 뒤 2년차부터 3년차까지는 1년에 한 번씩 2박3일 간 동원훈련이란 걸 받습니다. 군 제대 후 받게 되는 소위 가장 '빡센(힘든)' 훈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동원훈련은 그나마 군 전역 후 기간이 짧은, 아직 전투력이 살아있는 예비군을 대상으로 실제 군 편제를 이룬 상태에서 사격과 각종 주특기 훈련 등이 진행됩니다. 무엇보다 2박3일 간 군에서 먹고 자고 훈련받는다는 것 자체가 꽤 부담인 훈련입니다.
문제는 군의관 출신 의사들은 대개 특정 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봉직의(페이닥터)이거나 직접 병의원을 차린 개원의인데, 3일을 비울 경우 손실이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의사의 경우 환자수가 곧바로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동원훈련에 참여하면 많게는 100명까지도 진료환자들을 눈 앞에서 놓치게 됩니다.
이들이야말로 '시간=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죠.
하지만 소대장이 되면 동원훈련이 사실상 면제되고, 대신 1년에 2차례 소집점검과 저녁시간대 향방작계훈련 등 4번만 참석하면 됩니다.
간부의 경우 일반병 출신과 달리 예비군 6년차까지 동원훈련 지정 대상이기 때문에, 꼬박꼬박 5년간 동원훈련을 참석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다는 거죠.
특히 소집점검은 시간이 짧고 향방작계훈련의 경우 저녁에 진행되기 때문에 진료에 큰 지장이 없어 의사들이 선호하고 있습니다.
결국 몇 개 안되는 소대장 자리를 놓고 이들 의사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룹니다. 대상은 물론 막강 권한을 쥔 동대장이겠죠.
보통 동대의 경우 군 편제로 따지면 중대급에 속합니다. 보병의 경우 1개 중대에 4개 소대(일반 3개 소대+1개 화기소대)가 있으니 소대장도 4명 정도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천차만별입니다. 강남구의 경우 대부분의 동대가 10여명 가량의 소대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10개 소대장 자리가 사실상 의사들의 몫인 것은 물론이고, 이들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로비전'이 치러지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실제로 H동대의 한 상근예비역은 "소대장을 원하는 군의관 출신 의사들이 상당히 많다"고 귀뜸해줬습니다.
올해 6년차 예비군으로 D동대 소속인 의사 S씨의 말을 빌리자면, "소대장 자리 쟁탈전은 워낙 치열해서 잠깐 늦으면 금새 동이 납니다, 물론 해당 동대에서 군의관 출신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발빠른 의사들은 먼저 동대장을 찾기도 하죠"라고 말합니다.
현역 군인은 물론이고 예비군, 심지어 예비군 친구를 둔 또래 여성들한테도 무시당하는 단골 메뉴가 바로 예비군입니다. 예비군을 풍자한 각종 유머들이 빼놓지 않고 업데이트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채 운영되는 예비군 소대장 자리야말로 스스로 '예비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적절한 관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구나 자기 직업에서 2박3일이 귀하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귀한 시간을 헌납한 채 예비군 훈련에 묵묵히 나서는 보통 예비군들에게 심심한 반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왕 예비군 훈련 얘기를 꺼냈으니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올해 예비군 훈련이 대부분 지난주를 끝으로 막을 내렸는데요, 막바지에 이르면서 예비군 훈련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의 모 예비군 훈련장에선 사격훈련장에 군 의무차량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가운데 300여명의 예비군들이 고장률 높기로 유명한 한국전쟁 때 쓰던 칼빈 소총을 들고 사격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5월 인천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사고로 중상을 입은 김 모 씨와 3월 경기 고양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박 모 씨의 사고를 벌써 잊은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됩니다.
p.s. 참고로 저는 올해 6년차 일반 예비군으로 2년간의 휴가(?)를 마친 2010년부터 민방위에 편입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