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110
택시가 떠난 후 남은 몇 사람이 서서 오늘 일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생각들을 하며 승합차를 기다리는데 적당히
술 먹은 남자 하나가 그들에게로 가까이 오더니
-대리 가요?
하고 묻는다. 진철이 가장 가까이 서 있다가
-예, 가시지요. 어디로 가십니까?
-수원이요.
진철은 속으로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이 손님이 아니면 삼천 원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원이요? 예. 이만 원입니다.
-뭐라구요? 이만 원이요?
-예! 이만 원입니다.
-만 오천 원에 갑시다.
-만 오천 원에는 안 되는데요. 적정 요금이 이만 원입니다.
-그건 아는데, 이렇게 콜센터 거치지 않으면 사장님도 수수료를 안내시니까 그 정도는 싸게 해 주어도 되잖아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대리께나 타본 모양인데 그렇다고 요금을 깍아!’
진철이 속으로 욕을 해 대면서도 차마 대놓고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차라리 콜센터로 전화를 하시지요. 저희가 콜센터에 수수료는 내더라도 손님에게 적정 요
금을 깎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진철이 단호하게 말을 하자 사내는 뭐 이런 기사가 다 있냐. 너 아니면 대리 기사가 없는 줄 아냐? 하는 표정으
로 돌아선다. 하지만 진철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자기가 그 가격에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다 들
으라고 진철이 말을 크게 해 버렸기 때문이다.
-웃기는 녀석이군.
기사들이 하나같이 그 사내의 등에 대고 욕을 해댄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누가 보지 않으면 만 오천 원에라도
가려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수수료를 내지 않은 만 오천 원에 셔틀비 삼천 원을 쓰지 않으니 만 팔천 원
벌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철의 고집은 다르다. 제가격의 콜이 아니면 잡지를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을 콜센터나 손님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에라 이, 벼룩이 간을 빼 먹을 놈 같으니라구. 술값 몇 만원은 아깝지 않고 제 차를 집까지 잘 배달해주지 술
처먹은 제 놈 집까지 잘 모셔다 주지 그러는데 오천 원을 깍냐? 저런 놈들이 술집 기집애한테는 막 질러줘도 제
마누라 속옷 하나 안사 줄 놈이야.
어느 기사가 욕을 하자 모두가 웃는다. 그러는 중에 셔틀이 오자 차에 오르기 시작한다. 진철도 오늘 일은 여기
서 접을 생각으로 피디에이폰을 끄면서 차에 오르며 그녀들의 포장마차를 기억해내고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
지 말고 국수나 한 그릇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진우가 경희에게서 불야성 웨이터들이 왔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세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잠간 졸았지
만 낮에 그녀들에게 한 말이 기억나서 전화를 끝내자마자 일층으로 내려가 보니 손님이라고는 그 남자들 세 명
밖에 없었다. 주문을 했는지 난희가 국수를 말고 있었고 남자들은 어묵을 한 개씩 들고 있었다. 진우가 포장 안
으로 들어서자 경희가 눈을 찔끔거린다. 저 사람들이라는 신호이다.
진우는 잠시 생각을 한다. 어떤 식으로 이들을 달래서 돈을 받아야 할 것인가. 가능한 시끄럽게 하기 보다는 말
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을 알고는 있지만 벌써 십만 원 정도의 외상을 갚지 않고 있다면 좋은 말로 할 상대들
은 아니었다.
-그래, 요새 장사는 잘 되니?
진우는 우선 그녀들과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남자들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그녀들에게 먼저 말
을 건다.
-언니 왔어!
-요새 그냥 그래, 차라리 더 추워지면 잘될는지
-언니, 국수 말아줄까?
저마다 진우에게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자
-그런데, 참 너희들 전에 말하던 그 외상 먹고 안 갚는 사람들은 누구야? 오늘 내가 그 사람들 좀 만날 생각인데.
진우가 하는 말을 곁에서 듣던 남자들이 진우를 쳐다본다. 이 여자는 뭐야 하는 표정이었다.
-아! 그 손님들, 뭐 대단한 것은 아냐. 저 분들이신데, 요 앞에 불야성에 있는 분들이니까 안 갚지는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 갚을 거라니? 그 사람들 외상이 십 만원이 넘는다면서? 도대체 오백 원짜리 어묵 하고 천
원짜리 떡볶이에 무슨 외상이 십만 원 돈이라는 거야? 너희들 도대체 하루에 얼마를 번다고! 자선 사업하는 거
냐?
진우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자 지나가는 행인들이 한 번씩 돌아보곤 가는데 어묵을 먹고 있던 사내들의 얼굴이
험악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들의 얼굴을 본 혜숙이가 진우에게 그러지 말라고 눈짓을 하는데 오히려
진우는 더욱 목청을 높여서 떠드는 것이다.
-그래! 좋다. 너희들이 외상 주는 거야 너희들 물건이니 내가 뭐라 하지는 않겠다만, 오백 원짜리 먹어서 십만
원씩이나 외상 먹는 놈들은 어디 놈들이야! 말해! 내가 가서 받아가지고 올 테니!
곁에서 듣기에 너무한다 싶었던지 드디어 한 사내놈이 입을 열었다.
-이 아줌마가 왜이래! 시끄러워서 에이! 누가 안 갚는다고 했나 더러워서.
그 말끝에 진우가 그 사내들을 보면서
-아! 당신들이 외상 드시는 분들이셔? 저쪽 불야성에 계신다면서? 그래! 불야성 계시는 분들은 오백 원짜리로
십만 원어치씩이나 외상을 드시나? 간도 크긴 어지간하게 크신 분들이시구만
-뭐야! 이 여자가 정말 썅!
-어! 지금 당신 뭐라 그랬어? 뭐 썅! 이라고, 이것 참 뭐한 놈이 뭐하더라고 세상 참 웃기는군. 당신들 이리 나
와! 남의 장사 방해할 필요는 없고 불야성으로 가자구! 거기 가서 내가 불야성 분들은 다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윗분들이 말씀하시는지 한번 알아봐야 하겠어. 당신들 이리 나와!
진우가 팔을 걷어 부치고 포장 밖으로 나가서 떠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내들의 인상이 험악해 지더니 금방
이라도 진우에게 달려들어 폭행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진우에게 가까이 다가서는데.
-야! 너희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들 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남자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보면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본 사내들은 급히 그 남자 앞으로 달려가서는 허리를 굽히며
-별거 아닙니다. 형님!
하는 것이었다.
-지금 너희들 여기서 이런 짓 할 시간이야? 간식을 하더라도 잠간 하고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니야? 도대체 너희
들 나간 지 얼마나 됐는지 알기나 아냐? 이 자식들이 풀어져가지고, 그리고, 지금 저 여자 분 하는 말은 뭐야?
-아니, 그게…….
-이 자식들 빨리 들어가서 일해.
남자가 말하자 사내 셋은 급히 불야성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들을 보던 진우가 그 남자를 보면
서
-선생님이 그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가보지요?
하고 묻자
-그런데, 재들이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실수라기보다는, 길가에서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어디 조용한데 가서 얘기 좀 나누지요.
남자가 진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뒤로 돌아서면서
-따라와요. 내 사무실로 갑시다.
하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였고 진우가 그 뒤를 따르려는데 누가 조용히 진우의 팔을 잡는다.
놀란 진우가 돌아보자 명보원이었다.
-국수 먹으러 왔다가 본의 아니게 다 보았네요. 하여튼 조심해서 다녀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명보원이 다 보았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 보여주고
만 것, 진우는 명보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고 하곤 남자의 뒤를 쫓아 부지런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