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교구 마재성지(다산문화유적지) *
'하느님 사람' 다산 생가 무덤 한자리에
10월의 화창한 가을날,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마재성지를 향해 가자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푸른 데다 한강변을 따라 나 있는 마재행 길은 산수(山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킬만큼 아름다웠다. 서울에서 팔당댐을 지나 마재로 가는 강변길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고 하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서울을 출발한 지 한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마재성지(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은 참으로 좋은 데서 태어나고 묻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앞에 두고, 야트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하는 마재성지는 누가 봐도 전형적 배산임수(背山臨水) 명당 자리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 옛 지명을 따서 흔히 '마재' 성지라고 부르는데, 공식 표기는 '다산 문화 유적지'다. 도대체 다산 생가가 가톨릭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이곳을 천주교 성지라고 부르는 걸까. 아무리 둘러봐도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는 눈에 띄질 않는다. 한국교회사에 대한 지식 없이 찾았다가는 낭패를 볼 것 같다. 그러니 먼저 이곳이 성지인 유래부터 살펴보자.
마재는 정약용의 고향일뿐 아니라 약용의 셋째 형으로 한국 천주교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 중 한 사람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1801)과 그의 아들ㆍ딸인 성 정하상(바오로, 1795∼1839)ㆍ성 정정혜(엘리사벳, 1797∼1839)가 태어난 곳이다.
정씨 부자(父子)가 한국교회사에 남긴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 1779년 주어사 강학회에 참여하는 등 초기 교회 창설에 큰 역할을 한 정약종은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펴냈으며,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 초대 회장으로서 당시 사제와 교우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쳤다.
정하상은 아홉차례나 북경을 드나들며 성직자 영입 운동을 벌였고, 그가 로마 교황에게 보낸 청원서는 조선교구 설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하상은 또 한국교회 최초의 호교론서 「상재상서」(上宰相書)를 통해 천주교가 유교 전통에 어긋나지 않으며, 사회윤리를 바르게 하는 미덕을 포함하고 있음을 박력있는 명문장으로 웅변했다.
정약용과 약종 가족의 숨결이 배 있는 마재성지는 이들 생가와 다산 묘소, 다산 동상과 기념관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 곁에 있는 커다란 기와집인 생가는 옛집 그대로가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인형들이 이방 저방에서 순례객을 맞는다. 다산의 일생을 들려주는 방송이 애절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데, 쉬어 갈 겸 텃마루에 앉아 잠시 200년 전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다산은 자신이 태어난 집 바로 뒷동산에 묻혔다. 올라간다고 말하기가 무색하리만치 가깝다. 한걸음에 올라가 묘소 앞에 서니 평화로운 마을과 바다같이 넓은 한강이 펼쳐진다.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
정약용이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 '처음 듣는 소리'라는 이들이 많을 게다. 세례자 요한을 세례명으로 영세한 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했다. 그러나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등에 의하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외부와 연락을 끊고 묵상과 기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는 보속하는 의미에서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약용은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7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비록 잠시 교회를 떠났을지언정 정약용은 분명 '하느님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묘소에서 내려와 이름 모를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나뭇잎 사이사이 비치는 햇살이 따갑지 않고 따스한 것이 가을임을 확인시켜준다. 한쪽에서는 결혼사진을 찍으러 온 예비부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가을 햇살과 잘 어울렸다.
다산 동상을 지나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정약용의 생애와 업적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물이 가득한 기념관에서는 사람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켜지는 영상물이 인상적이다. 다산을 소개하는 9분짜리 영상물을 영화감상하듯 관람했다. 견학 온 어린이들이 많았다. '다산 문화 유적지'는 입장료는 없지만 월요일은 쉰다.
마재성지를 떠나면서 이곳이 천주교 성지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꼭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대로 간단한 성지 안내책자라도 비치해두면 어떨지…. 문의: 덕소성당 사무실 031-521-2211
<<맛집/ 마재 '호반의 집'>>
정규혁(베드로, 79, 의정부교구 덕소본당)씨가 운영하는 '호반의 집'은 맛도 맛이지만 널찍한 통유리를 통해 바깥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 곳이다. 잔잔히 흐르는 한강과 강 건너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집은 마재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음식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반의 집'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잡고기 매운탕이다. 홍천강을 비롯한 강원도 일대에서 잡은 모래무지, 꺽지 등 민물고기를 주 재료로 하는 잡고기 매운탕은 글자 그대로 자연산만을 쓰기에 담백한 맛이 일품. 밑반찬으로 나오는 고사리, 비름나물, 무청, 무시래기, 김치 등도 맛깔스럽다. 모든 채소를 재배할 수는 없지만 웬만한 것들은 집에서 무공해로 직접 기른다.
주인의 음식 철학도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손님에게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좋은 재료만을 쓰고 친절하게 최선을 하자는 것인데, 중국산 김치 파동과 상관없이 정성들여 담근 김치만 내놓는다. 그래선지 반찬 하나하나에 엄마 손길과 같은 정성이 배 있음이 느껴진다.
주 메뉴는 잡고기 매운탕(3ㆍ4인 기준 4만5000원)과 메기 매운탕을 비롯해 토종닭 백숙과 볶음, 도토리묵, 감자전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호반의 집'은 민박도 같이 한다. 10명 정도가 묵을 수 있는 별채가 있으며, 도구를 가져와 직접 음식을 조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www.majai.co.kr 031-576-8065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강북 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를 통해 팔당대교를 건너 6번 국도(양평 방면)를 1㎞ 정도 가면 오른쪽 강변으로 다산 유적지 푯말이 나온다. 푯말을 따라서 팔당댐을 지나 4㎞ 가면 철길이 나오고, 철길 아래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틀면 '다산 문화 유적지'이다. 팔당대교에서 마재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중앙선 능내역에서 하차,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사진설명)
1. 다산 정약용과 정약종ㆍ정하상ㆍ정정혜 성인이 태어난 생가.
2. 정약용 생가에 당시 생활상을 인형들로 재현해 놓았다.
3. 다산 정약용 동상과 사당.
4. 다산 정약용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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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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