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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기 268 - 日本 교토(京都) 기요미즈데라(淸水寺)
교토 시(京都市)의 인구는 약 150만 명이고 예전에 일본의 수도교토부(京都府) 중앙부에 있는
부청 소재지이고 게이한신(京阪神)(교토 시(京都), 오사카 시(大阪), 고베 시(神戸)를 묶어
부르는 말)도시권의 일부입니다. 이한신. 세 도시의 위성도시를 묶고, 수도권(京阪)과 오사카
와 고베를 묶은 한신(阪神)의 합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헤이안 시대의 문화가 남아있는 절, 신사, 역사 유적지와 벚꽃, 단풍의 명소가 많은
관광 도시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반면에 교세라, 시마즈 제작소와 같은 첨단 기술을
갖는 기업이나 닌텐도, 와코루 방색이 분명하여 교토 시민들은 이 곳에 3대가 살지 않았으면
토박이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교토(京都)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야코(수도)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는 BC 10000년경부터 나타나지만 6세기 전까지 이 지역의
인간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교토에는 6,7세기부터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도래인들이 정착하였습니다. 8세기에 강력한 불교 신자들이 황실의 직무에 관여
하게 되었고 천황은 불교의 영향력으로 멀리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이전하였습니다.
간무 천황은 당시 야마시로 국의 가도노군 우다 촌을 수도로 선택하였습니다.
794년 간무 천황은 나라(奈良)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헤이안쿄(平安京)라 하였고
일본의 역사에서 헤이안 시대메이지 유신 때 수도를 도쿄로 이전하기전까지 수도로
남아있었습니다.
헤이안 시대에 최초의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 에 의해 창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아내를 위해 사슴을 사냥하다가 산에서 엔친(延鎮)이라는 스님을
만났습니다. 엔친은 앞서 이 산에 머무르던 교에이(行叡)에 이어 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수행 중이었습니다. 다무라마로는 엔친을 만난 다음 살생을 뉘우치고 관음보살에게 귀의해
자기 저택을 내놓았습니다. 후에 다무라마로는 사찰을 크게 중창해 기요미즈데라를 관음신앙
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절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는데, 본당을 비롯한 현재의 건물 대부분은 1633년 도쿠가와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기부로 재건되었습니다
절의 이름은 주변의 언덕에서 단지 내로 흐르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맑은 물이라는 뜻의 淸水寺입니다.
轟門(토도로 몬) 굉문은 우뢰같은 소리나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2008년부터 이어진 헤이세이 대보수 때문에 2017년 5월 1일 기준 본당 건물의 히와다부키
(노송나무)로 전면 교체하는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지붕공사로 목조비계로 감싸 2020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라 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본당의 지붕이 독특한데 히와다부키라는 노송나무
의 껍질을 아주 얇게 만들어 촘촘하게 붙인것입니다.기와에 비해서 내구성은 좋지 않지만
재료조달이 쉽고 독특한 질감과 곡선표현에 유리하여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입니다.
또한 본당 건설에는 못이 사용되지 않았던것을 강조하여 서구건축의 입장에서는 못을 쓰지
않았다는것에 신기해 합니다. 우리나라도 나무로 못대신 또는 끼어 맞추는 식으로 목조건축을
하였지만 이 절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유명합니다.
보수공사하기전의 모습입니다.
키요미즈데라 본당에서 산을 바라보고 있는 테라스는 부타이(무대;舞台)라고 하여 본당에
있는 십일면천수천안 관세음보상 상에게 바치는 춤, 공연이 이루어지던 곳입니다.2017년부터
보수공사 종료까지는 접근하지 못하지만 단연 키요미즈데라 내의 최고의 스팟입니다.
매년 12월12일 한자의 날에 일본의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매년 한자의 날인 12월 12일 무대에서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한자를 발표합니다. 키요미즈데라의 주지 스님이 해당 글자를 종이에 붓글씨로 적어 언론에
공개합니다. 2017년은 "北"자 이었습니다.
사찰 내에는 지슈 신사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신불습합이 널리 이루어졌으므로 이것이 자연
스러운 일입니다. 신불습합 (神佛習合, Shinbutsu-shugo)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와
외래 불교의 융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스사노오의 자손인오오쿠니누시
(大国主)를 인연을 맺어주는 신이라 하며 섬깁니다. 신사 안에는 두 개의 돌이 있는데,
한 쪽에서 눈을 감고 걸어가서 다른 쪽에 닿게 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토의 시내가 멀리 보입니다. 정중앙에는 교토타워입니다. 오토와 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이 세갈래 갈라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곳이 있는데 이 세갈래의 물이 각각 건강,
사랑과 학문을 상징하며 그물을 마시면 그 상징하는 것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물은 2개까지
마셔야 이루어지며 3개를 다 마시면 운수가 더 나빠진다고 합니다.
현재는 '키요미즈데라의 무대에서 뛰어내리다(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라고 하면, 그만큼
죽을 각오를 한다는 속담으로 쓰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여기가 나왔을 때, 등장
인물들이 여기서 뛰어내리는지 여부로 작품의 리얼리티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실적인
내용이라면 당연히 구경만 하고 끝나지만, 개그만화나 능력자 배틀물 등에서는 대부분
뛰어내립니다.
이 절 앞에 펼쳐져 있는 상점가인 니넨자카(二年坂)와 산넨자카(三年坂)거리가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 이 곳에서 넘어지면 2년 안에 또는 3년 안에 죽는다고 해서
니넨자카(二年坂), 산넨자카(三年坂)라고 불리웁니다.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중에 하나는 '한국에는 왜 산이나 밭에
묘지가 많으냐'는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주택가나 학교 앞 뒤에도
공동묘지가 있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두 나라 모두 유교 문화가 비교적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나라여서 서로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전혀 다릅니다.
먼저 장례문화를 보면 사람이 죽으면 한국처럼 빈소를 만듭니다. 조문객이
조문하러 옵니다.
일본에는 '오쯔야'라고 하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묵념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보통 그
시간은 1시간 정도입니다. 주로 스님이 주재합니다. 남자는 검은 옷에 검은 넥타이를 착용
하고 여성도 검은색 정장입니다. 한국처럼 시간제한 없이 조문객이 오지 않습니다. 부고장에
오쯔야 시간을 알려줍니다. 보통 오후 6~8시입니다. 음식 제공도 없습니다. 간단한 선물
정도입니다. 그 다음 날은 장례식입니다.
장례식에서 우리와 다른 점은 시신을 공개하는 점입니다. 참석한 조문객들이 모두 줄을 서서
차례로 죽은 이의 몸 위에 꽃을 바칩니다. 어떤 이는 얼굴을 만지면서 마지막 이별을 슬퍼
합니다. 장례식장은 동네마다 있습니다. 반면, 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습니다. 입원환자들의
감정을 배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고인의 생전 행적을 전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분이 살아온 모습을 조문객들이 꼼꼼이 살펴보면서 유족과 조용히 담소하는 것
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소리 내어 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화장장
으로 향합니다. 일본은 매장을 하지 않습니다. 화장을 해서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공동묘지에
유골을 모십니다. 일본은 동네마다 거의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1인당 면적도 아주 좁습니다.
비석 하나와 작은 제단 하나 면적입니다. 마치 이웃집에 가듯 묘지에 가서 꽃을 바치고 기도
하는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산이나 밭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있다면 옛날의
고분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자연은 잘 보존되고, 생수가 깨끗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조그만 이름명패를 만드려고 이 가게를 들렀습니다. 이름명패가 명품가방값보다 더 비싸게
주문하고 기다리니 옆에 오키나와에서 온 젊은이 커플이 있습니다.
"京바하무" 라는 집의 빵인데 이곳의 "명물 빵"이라고 합니다.
재료가 맛차(녹차가루)와 두유로 만든 카스테라 빵입니다.
이집에서 소프트 아이스 크림을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抹茶(녹차가루)와 豆乳와 믹스된것중에 믹스로 주문했습니다.
살살 녹는 맛이 죽여줍니다.ㅎㅎ
이곳이 일본의 유명한 시치미 七味唐辛子(しちみとうがらし) 조미료의 본가(本家)입니다.
일본의 우동이나 돈부리에는 꼭 쳐서 먹는 조미료인데 일본뿐만아니라 전세계의 일본식당
에서는 꼭 쓰는 조미료입니다. L.A.살때 Little Tokyo(일본타운)에 가서 식사를 하면 시치미
조미료를 먹던 생각이 납니다. 이름이 시치미도우카라시. 즉 일곱가지 재료로 만든
고추가루라는 뜻입니다.
제조 레시피에 따라 재료가 7가지를 넘어 10가지까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지만,
보통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하여 진피, 흑임자/참깨, 파래/김, 산초/후추, 자소잎, 생강, 소
금유자를 최고로 치며, 원가 절감을 위해 오렌지양귀비 씨나 햄프씨드, 즉 대마씨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여러 가지 재료를 섞었으므로 그 맛을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라면스프
처럼 매콤하면서도 고소하고 아주 약한 짠맛과 신맛이 있습니다. 우동먹을때 꼭 쳐서 먹기에 미국에서는 항상 집에 준비해 라면에다도 넣어서 먹기도 했습니다.
창업이 1655년이라고 합니다.정말 오래된 조미료의 대가(大家) 칠미가(七味家)
게이샤가 거리에 걸어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길래 따라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게이샤(芸者), 또는 게이기(芸妓)는 예능에 종사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기생입니다.
이들은 전통 음악 연주, 전통 무용 공연, 작시와 같은 여러 가지 일본 예술에 능숙합니다.
산네이자카(産寧坂)는 일명 「산넨자카」 라고도 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처 네네가 아이를 갖기를 염원하며 오르막길을 올라
기요미즈데라로 참배하러 가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야사카신사에서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인 니넨자카(二寧坂)와 함께 히가시야마 지역의 관광지로 유명한 교토시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 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와지붕과 구운 삼 나무판 외벽의
예스럽고 운치 있는 집들이 줄지어져 있어 교토스러운 정취가 있는 장소로 인기 있는 곳
입니다. 또한 선물 가게와 고급 요리점이 늘어서 있는 지역입니다.
일본의 토산품(お土産)오미야게의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선물이라는 뜻만으로 표현하기
에는 부족한 감이 있지요. 오미야게는 흙토(土)와 낳을산(産)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땅에서 나는 것, 지역 특산품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일본은 각 현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오미야게가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여행을 갔다 오면 그 지역의 오미야게
를 선물하곤합니다.
관광객의 얼굴을 만화처럼 케리커쳐(Caricature)그려주는 곳입니다. 이곳에 이멜다여사 와
트럼프가 있습니다. 전에 라스베가스가면 캐리커쳐를 그린것을 집에 걸어두곤 했는데....ㅎㅎ
이곳은 교토의 오래된 시가지가 그대로 남아 정취가 넘치는 언덕으로, 교토를 대표하는
관광지입니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운치 있는 비탈길은 키요미즈데라(清水寺)로
이어지는 참배 길이자, 교토의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비탈길과 집들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은 일본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 군 보존 지구로 지정되어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이집은 이곳의 노포(老鋪:시니세)입니다.
오래된 전통 가게를 노포라고 하는데 노포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일본은 식당에 주문기가 있어 돈을 넣고 주문하는 것을 누르고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주문한 식사를 가져옵니다.
고등어 우동이 특이해 보여 시켜 먹으니 다들 따라서 고등어우동을 먹는데 비릿한 냄새가
나고 국물이 짜서인지 맛은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습니다.ㅎㅎ
일본 식당에는 너구리상이 있습니다. 여우는 일곱번 변신 너구리는 여덟번 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변신에 능합니다. 그러나 너구리는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재미로 하는 변신을 한다고
합니다. 일식집의 너구리의 생식기부분이 과장이 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일본설화에서
너구리는 대체로 남자로 여우는 여자로 변신하는데 자신의 생식기를 이용해 변신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설화로 마에다누키 설화가 있습니다. 간사이의 한 하이쿠 시인이 다다미방
에서 시를 짓다가 잿털리를 다다미에 떨어트리고 말았는데 갑자기 다다미가 밀려 올라가더니
그만 집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알고보니 그 다다미는 너구리 생식기였기 때문이고 그
다다미가 8장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타누키는 또한 형태는 여우처럼 보이지만 다다미 8장
크기 만한 거대한 음낭으로 위험한 장난을 친다고 합니다.
세인들이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난할 때 타누키(너구리)에 빗대곤 했고, 얼굴이 둥근 여인도
타구키에 비유되곤 했죠. 금전운과 행운을 갖다준다하여 일본의 가게나 식당 밖을 보면
이 타누키를 볼 수 있습니다. 손님을 끌어 들이는 하나의 상징이죠.
기모노는 4-5세기경 고훈 새대부터 만주, 한반도에서 전래된 북방(알타이)계통 호복에 지대
한 영향을 받았고 일본서기에는 "475년 백제인이 일본으로 의복을 전파해주었다"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아스카지 완공을 앞두고 사리함을 안치하는
행사에서 왕과 소가노 우마코를 비롯한 100여명의 고관대작이 모두 백제옷을 입고 행사를
거행하니 사람들 모두 기뻐하였다." 고 기록되었있습니다.
교토 니넨자카의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교토의 맛집은 위로 가라고 표시되어있습니다.
산넨자카는 서기 808년 다이도(大同3년)에 만들어진 만들어져서 3年(산넨)자키(坂:비탈)
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곳의 아케보노테이(明保野亭)는 그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6-1867)의 단골
숙소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역사를 개척한
료마는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추앙을 받는 인물입니다.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토산품을 사려고 합니다.
게이샤를 양 옆에 끼고 흐뭇한 얼굴을 하는 상원公 ㅎㅎㅎ
니넨자카(二年坂)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이 거리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가옥
들이 남아 정취가 넘치는 언덕을 걷노라면, 교토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물론
밤의 불빛도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며, 한가로이 거닐기에 좋은 언덕입니다.
睦公(목공)은 기쁜 나머지 손으로 장단을 맞추고 있습니다.
인력거는 사람의 힘으로 끌어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발명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1882년 경에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가 한성부판윤으로 재직하면서 서둘러 보급
하였고 벼슬아치들의 출퇴근에 교자 대신 인력거를 권장하였습니다.
기모노의 색상이 화려합니다.
모찌(찹살떡)입니다. 아게모찌(기름에 튀긴 모찌)도 파는데 이곳은 간장으로 간을 맞춘
모찌입니다.
오사카로 돌아왔습니다. 도톤보리의 다이소를 들어갔습니다. 오사카의 최대품목으로
2만여 품목과 25만가지가 상품이 있다고 선전합니다.
이 식당은 스모선수들이 좋아하는 창코나베
(ちゃんこ鍋) 전문집이라 스모선수 포스타를 붙여져있습니다. 창코(ちゃんこ)라는 말의 첫번째
설로는 ちゃん(창,찬) 은 중국을 나타내며, こ(코)는 냄비를 나타내어 中華鍋(중국냄비) 즉,
중국식 냄비 요리라고 합니다.
두번째의 설은 일본의 스모와 관계가 있습니다. 일본의 스모에서 스승을 お父さん(오토상) 또는
ちゃん(창,찬) 이라고 부르며, 제자를 子(코)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스승을 나타내는 ちゃん과
제자를 나타내는 こ가 합해져서 ちゃんこ 즉, 스승과 제자가 함께 먹는 냄비 음식으로 親子鍋
(오야코나베) 라는 의미로 창코나베라고 합니다.
이집도 스모요리 전문점입니다.
숙소 옆에 국립분라쿠극장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입장은 안했지만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관람하고 싶습니다.
세계 무형 유산으로도 지정된, 일본의 독자적 전통 예능인「분라쿠(문악)」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입니다.
국립 분라쿠극장은 카미가타(오사카-교토) 지역의 전통 예술 양식. 죠루리(샤미센을 연주
하며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전통 예능), 분라쿠(전통인형극)를 보존, 개발, 전수
하기 위해1984년 3월에 개장하였습니다. 극장은 주 극장, 교육시설, 그리고 역사자료
보관소를 포함해서 많은 시설들이 있습니다. 건물은 전통과 현대가 혼합되어 지어졌고,
설계 전체에 걸쳐 전통적인 에도 시대 건축 포인트가 이론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현대적 무대기술과 분라쿠 공연의 전통적 특성을 높이기 위한 기능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극들은 약2주 동안 상연되며, 매년 소수의 연극만이 무대에 오릅니다. 공연이 없는 동안
극장은 전통 예술을 보존, 보급하기 위한 행사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다른 형태의
전통예술도 가끔 상연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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