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에는 공단에 공구와 부품을 대주는 공구상가가 있다 공구상가에는 삼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집이 세개층을 분양받아 사용하는데 일층은 공구나 부품을 쌓아놓고. 팔수가 있어서. 천정이 다른곳보다 높다
그위 2.3층은 일반사무실형태로 분양받은이가 사용할수가 있고 다른사람에게. 세를 놀수가 있는데 임대료가. 싸고 집에서 가까워서 그곳 2층을 사용하였다
그곳은 본당에서 한정거장 떨어져있고 걸어가도 얼마걸리지 않아 적당한 장소이다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중에는 교우들이 더러있어서 한달에 한번정도는. 외부에서 신부를 모셔서 미사를 드리는데. 사무실 방한칸을 따로마련해서 그공간을 이용하였다
미사가 없는날 교우들이 수시로 들어와서 그방을 기도의방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입구에는 번호키를 달아놓고 교우들이 키번호를 알고 들어올수 있도록 하였다. 그방은 교우들에게는 기도의 방이 되고 쉼터가 되곤하였다
그상가는 지하에는 식당등 부속시설이 되었다 저는 그곳에서 장사를 잘하지 못해 시설을 포기한채 포철로 일하러 내려갔다 그리고 일년후에.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일년간 우리은행에 근무하고
아내가 옷장사하는 안산시청근처 이랜드상가에 출퇴근할수 있는 원곡동 벽산아파트로 이사왔다 그때 집에서 가까이에 성당이 있고 걸어서 가까운곳에 전철역이 있는 곳을 찾다가 마침 입주한지 두달 채안된곳을 찾아 들어갈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연희마리아 였고 성서형제회 형제팀이 생기기전에 먼저 자매님팀에 들어가서 연희마리아자매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성당밖에서도 소모임을 가질수가 있었지요 저는 그런 기회를 가진 행운아였다
제가 안산에 내려온지 일년이 채안된 싯점에 집에서 걸어갈수 있는 거리에 있는 차량등록소를 다닐수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얼른식사하고 직원들과 그 주변 언덕을 한바퀴돌고. 다시사무실로 돌아오는데 그 주변에 성당이있었다. 나중에 혼자 돌때에 성당을 찾아가서 게시판을 보다가 매주 성령기도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걸어가서 기도회모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성당이 선부동성당이었다.
그모임을 통하여 수원교구 안산대리구 철야기도모임에 참석할수가 있었지요 교구라하였지만 그당시 수원교구는 여섯개의 대리구로 나누워졌고 안산대리구느 광명 그리고 시흥과 안산이었다 매년 교구피정행사에 참여하고 회비를 내어서 차편과 점심도시락은 주문해서 이용했다
간혹 외부강사를 초빙하였는데 그전에 살때 시흥동성당의 반가운분들이 강사로 초빙되어 오기도했다
제가 이런기회를 가질수가 있었던것은 좋은 사람을 만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선배가 물러준 구역장을 하였고 구역장모임에서 총무를 맡았다 마침 성당근처에 있는 어느집에서 구역모임이 있어서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알게된 대학후배의 도움으로. 레지오를 시작하게됩니다
구역장을 하고 있을때. 청소년사목위원을 하였는데 매월사목회의때 선교담당대신에 꾸리아단장이 참석하여서 친분이 있게되었지만 그분과는 레지오 애기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이후. 꾸리아간부를 하면서 성령세미나봉사를 하였는데 참석자조. 안내와 접수를 하고 조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기도회장이 오셔서 봉사만 하지말고 기도모임에 적극 참석하라고 해서 성령세미나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때는 토요일도. 근무하여서 본당에서 철야기도를. 금요일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하게되는데 참석하지 못하다가 금융대란직전 대기업에서 쫓겨나고. 마음이 흔들릴때 철야기도에 참여하게 됩니다
저는 청소년사목위원을 할때 소속제단체로 청년기도모임을 알게되어서 청년미사 청년전례부모임 청년기도모임에 참석하게되고. 주일학교교사들 방에 방문하기도 하였지만 제가 주일학교경험이 없기에 주일학교의 일은 보좌신부나 주일학교교사가 하는대로 내 버려두었다
그때에는 주일미사를 두대 드렸으니 교중미사와 청년저녁미사를 드리곤했었지요
경험이 적은 저로서는 어려운일이었지만 많은 교우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셨지요. 어느 신부님은 잔치를 하는것을 좋아하셔서 주일미사를 미리 드리고나서. 다들 교중미사를 할동안에 식탁을 준비하고 밑반찬을. 식탁위에 비치하고 주로 국수통을 각 방으로 옮기는 준비를 하고 난후에 미사후에 밀려든 교우들에게 배식을 하기시작한다.
배식과 식사는 한시간여가 지나면 대충 마무리가 되는데 식사조리를 자매님이 하고 설겆이는 형제가 담당하였지요 대충정리가 끝나면 오후세시가 되고 남은음식으로 봉사자들이 담소하면서 마무리를 지었지요 이런일을 위해. 중고시장에가서 싱크대 큰가스버너와 가마솥을 구입해서 사용한다
불황기여서 문을 닫는 공장이 많아서 그곳에서 헐값으로 팔려온 설비가 있어서 구입해온것입니다
서울 시흥동은 분명 가난한 지역이 있는 가난한동네였기에. 그들은 서로의 형편을 잘 알기에 자주 만났으며 그런까닭으로 그당시는 구역모임이 잘되었으며 본당행사때 봉사를 많이 하였는데 이런일들은 길건너 높은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사는이보다 허름하고 좁은 연립과 단독에 사는 이들이 더 활발하였고
사람들이 구역모임에 많이 창석하면 좁은 집보다 가까운 언덕에서 동네를 내다보면서 구역모임을 하기도 하였지요 남성구역장들은. 다 비슷한 나이였고 아이들이 초증학교를 다니거나 아니면 첫영성체교리를 받던 나이였고 이를 이야기하면서 그나름대로 행복한 시기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