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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와 두산은 마무리 투수를 6회 말, 7회 초에 조기 투입시켰다. 가장 마지막 1, 2이닝에 등판시키는 관행을 깼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정규 시즌 때 좋았던 투구 패턴을 그대로 이어가야 할지, 포스트 시즌에 맞춰 새로운 투구 패턴으로 승부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9월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롯데 주전포수 강민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당연한 고민이었다. 1차전 선발로 내정된 송승준은 정규시즌 때만 해도 결정구로 포크볼을 던졌다.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송승준의 포크볼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은 예외였다. 2008, 200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송승준은 결정구로 포크볼을 던졌고, 상대 타자들은 포크로 찍듯이 정확히 공을 배트 중심에 맞혔다. 사실 삼성과 두산 벤치는 송승준이 정규시즌 때와 똑같은 패턴으로 투구할 것이라는 걸 눈치채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한 터였다. 투구습관이 노출된 것도 송승준에겐 악재였다.
결국, 롯데 팬들은 3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하는 중심투수를 2년 연속 지켜봐야 했다.
강민호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정규시즌 14승을 이끌어낸 기존 투구패턴을 이어가자니 지난 2년간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편도선염으로 경기 전까지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던 송승준은 비장한 표정으로 “3번의 좌절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산 타자들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며 “(강)민호와 충분한 대책을 세웠다”고 밝혔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송승준은 정규시즌 때와 똑같은 투구패턴을 이어갈 게 분명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포스트 시즌은 정규 시즌의 연장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아니었다. 송승준은 정규시즌 때와는 다른 투구패턴을 선보였다. 결정구로 포크볼 대신 너클커브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았다. 특히나 김동주, 김현수 등 경험이 많거나 선구안이 좋은 타자들을 상대할 때 너클 커브를 결정구로 던졌다. 반대로 이성열, 양의지 등 경험이 부족한 타자들에겐 정규 시즌 때처럼 포크볼을 결정구 삼았다.
‘송승준-강민호’ 배터리의 변칙적인 투구패턴에 두산 타자들은 당황했다. 송승준의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면 두산은 더 고전했을지 모른다. 지난 2년간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송승준-강민호’ 배터리는 1차전 승리의 당당한 주역이었다.
마무리 조기 투입, 강수(强手) VS 강수(强手) 롯데 김사율의 눈부신 투구. 그가 살린 건 팀의 승리만이 아니었다. '최악의 불펜' 소릴 듣던 롯데 구원투수진의 기까지 살렸다
경기 전 두산 김경문 감독은 “정재훈이 마무리를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펜에서 가장 구위가 뛰어난 투수”라는 게 이유였다.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아마도”라는 단서를 달고서 “김사율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유는 역시 “김사율이 불펜에서 가장 강력한 투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차전에서 양팀 감독은 마무리를 조기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김사율은 4대 5로 뒤지던 6회 말 1사 만루에, 정재훈은 5대 4로 앞서던 7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어째서 마무리 김사율은 팀이 뒤지던 6회에 조기 투입된 것일까. 그리고 정재훈은 왜 7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것일까.
로이스터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서 “6회 말 1사 만루가 가장 결정적 순간이라 판단해 마무리로 쓸 김사율을 조기 투입했다”고 밝혔다. 로이스터 감독다운 결정이었다.
시즌 전 스프링캠프에서 로이스터 감독은 “최고의 불펜 투수는 9회 마무리로 등장하는 투수가 아니라, 팀이 가장 위기일 때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라고 말한 바 있다. 최고 불펜투수를 가장 나중에 등판시키는 일반적인 투수진 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로이스터 감독의 불펜진 운용은 약팀에서 ‘최고의 불펜투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이스터 감독의 계획대로 김사율은 1사 만루 위기에서 최준석을 병살로 잡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2 2/3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은 김사율이 호투가 없었다면 롯데는 역전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 감독이 마무리 정재훈을 5대 4로 이기던 7회 초에 조기 투입한 것도 이때를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7, 8회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9회까지 리드를 지속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게 김 감독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정재훈은 7회 초 동점을 허용하고 9회 초 전준우에게 역전 솔로포를 맞고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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