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각 집결지에 모여 경주로 출발했다.
동기는 2010년 청소년문화재지킴이단 대잔치에서 우리 지기학교가 상을 받게 된 것.
경주는 역시 멀었다. 5,6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많이 졸리지도 않아 가지고 더 고역이었다.
휴게소에서 맛있는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계속 지겨운 고속도로 길을 갔다.
눈 앞의 경주만의 기와 톨게이트에서 드디어 도착했다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1박 2일을 함께할 동국대학교로 향했다. 먼저 강당에 가서 수상 학교 우수활동사례를 들었다.
우리 지기학교도 부각을 드러낸 활동을 한 것 같았는데 다른 단체도 꽤 멋있는 활동을 하는 것 같앴다.
몇일이 지나 확실히 생각나지는 않았는데 단 한가지 생각나는 재밌는 활동이 있다. 양서고등학교 단체 양서역에서는 직접 UCC까지 만들어 가며 활동하는 게 재밌어 보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TV 프로그램처럼 교수님의 말씀까지 듣는 것이었다.
우리 지기학교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사례발표도 끝났다. 인사말씀 등으로 대강당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체육관으로 가서 애칭/표어 만들기로 추첨을 했다. 추첨 때 '수원 지기학교 이명훈!!'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가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만원!! 내가 이런 추첨에 뽑히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모든 추첨이 끝난 후, 택견 전수자 분을 모시고 택견을 배웠다.
뭔가 모르게 기가 모이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택견은 주로 발을 사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넘어뜨려 승부를 결정짓는 무예의 일종으로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무술이다. 다음으로는 영산쇠머리대기 실연을 했다. 영산 쇠머리대기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서 쇠머리란 도구를 가지고 행하는 대보름 놀이로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전통놀이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영산면에서는 동부 마을과 서부 마을로 나누어서 서까래를 엮고 새끼로 묶어 쇠머리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서 이를 마을의 힘센 젊은이들이 메고 공터에서 서로 부딪히게 하여 부서지거나 땅에 먼저 내려앉는 쪽이 싸움에 진 것으로 판정했는데, 이를 ‘쇠머리대기’라고 한다.
먼저 서군과 동군으로 나누었다. 나는 서군에 속했다. 중학생 나오라길래 손을 들었더니 날 데리고 가서 머리에 붕대감듯 무얼 감았다. 장군 복장으로 입히는 것이었다. 붕대는 옛날 상투할 때 머리에 묶는 것이었다. 모든 장군 복장을 끝내고 먼저 제사를 올렸다. 아마 천지신명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쇠머리 위에 올라갔더니 나머지 서군들이 쇠머리를 들어올리고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은 다음 대나무 같은 것으로 부러뜨리는 시합을 했다. 팽팽한 경기 속에 승리는 우리 서군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쇠머리로 충돌하며 나는 공중에서 동장군과 칼싸움을 벌였다. 재밌기도 했지만 짜릿했었다. 원래 진짜 놀이에서는 서로 충돌하며 부서지거나 하며 부상당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놀이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서 중간에 끊고 나오게 되었다. 서장군으로서, 날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석식과 숙소에서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지고 신라문화원으로 향하여 국악공연을 듣게 되었다. 조금 색다른 가야금의 소리와 해금의 소리가 특히 좋고 신기하게 들렸다. 분황사에서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다음으로 분황사로 가서 소원을 적은 연등을 들고 탑돌이를 하게 되었다. 분황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절이다. 4바퀴를 돌며 내가 적은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나는 주로 미래의 꿈이나 갖고 싶은 것 등을 적었다. 다음으로 안압지로 갔다. 옛날 안압지의 야경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대로 재연이 됐다. 특히 인공섬 같이 생긴 곳이 물에 비쳐 대칭이 된 모습이 장관이었다. 안압지는 월성의 북동쪽에 인접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74년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금이수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며 임해전에 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몇번의 소나기로 다행히 많이 덥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고나서 숙소를 정리한 다음, 신라문화원으로 갔다. 문화재 비누 만들기, 문화재 탁본 뜨기, 문화재 초콜릿, 부채 장식을 체험했다. 비누는 다보탑, 탁본은 성덕대왕신종과 다보탑, 초콜릿은 다 똑같은 신라 기와, 첨성대, 기마상이 있었다.
다음으로 첨성대를 갔다. 경주의 폭염은 지금부터였다. 남부에서 일사병이 일어나는 게 이해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정부발표 가장 더운 곳이 경주라는 소리를 듣고 더 힘이 빠졌다. 그래도 그늘에 있을 때에는 좀 낫다. 첨성대는 동양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선덕여왕 시절 창건되었다. 국보 31호로 1962년 지정되었다. 첨성대는 1년 12절기 등을 이용하여 돌을 쌓았고 12단(입구)까지는 흙이 채워져 있다고 한다. 입구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부 사다리를 또 타고 올라가서 천장에서 관찰한다고 한다. 안에는 돌이 삐죽 나와 무너지지 않게 보정까지 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반월성에 갔다. 안 그래도 더워가지고 뭐가 성인지 길인지 신경도 안썼다. 석빙고 근처에서 안내 선생님의 여러가지 일화와 석빙고에 대해 들었다. 석탈해의 호공 집 뺏기, 유리왕과 석탈해의 떡 이 물기 내기 등 모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시 들음으로써 새록새록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석빙고에 대해 배웠다. 얼음 저장 창고로 우리가 본 경주 석빙고가 보존이 잘 되었다고 한다. 석빙고는 굴뚝을 통해 더운 공기를 빼내고 녹은 물을 경사로 기울여 녹지 않게 한다고 했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하나의 문화재였다. 다음 마지막 문화재로 대릉원에 갔다. 산 봉우리만한 능들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김알지의 후손으로 첫번째로 왕이 된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등을 보았다. 대릉원이란 이름은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또 1박 2일의 일정이 끝났다. 그리고 신라회관에서 불고기 전골로 중식을 했다. 폭염 속에서 식욕까지 잃었지만 점점 시원해지는 공기에 식욕이 돋아 보니 음식은 다른 아이에 의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배 부르게 먹고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년에도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오고 싶었다.
- The end -
첫댓글 이상하게 수정해도 계속 진한 글씨로 되네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