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운장(運將)이 최고입니다
김기만
인문학과 예술의 향훈이 끝갈 데 없이 펼쳐지는 이 글방에서
좀 쌩뚱맞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작용하는 운(運)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어제 점심을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는 가까운 친구와 했습니다.
꽤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깜짝 놀랄 얘기를 했습니다.
지난 9월말에 골프장에서 라운딩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을 뻔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깨어보니 병원 입원실이었다는 거죠. 두 가지 결정적인 운이 작용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마침 같이 라운딩하던 동료 중 한 명이 작년에 똑같은 경험을 한 바 있어,
골프장 관계자의 말대로 119 응급차를 부르게 하지 않고 자신의 승용차 기사에게 비상등을 켜고
골프장 필드까지 들어오라고 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병원으로 옮긴 덕분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15분만에 병원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두 번 째 대운은 이 친구가 원래는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할 예정이었는데
급한 사정으로 의정부의 골프장으로 옮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원도에서 그대로 라운딩하다 쓰러졌으면 병원이 멀어 아마도 죽었으리라는 것이 그 친구의 회고담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래서 지난 9월 26일을 ‘로또 맞은 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핸드폰 한 켠 카드 꽂는 곳에 명함 크기로 <저는 심장병 환자이니 혹시 제가 쓰러지면
즉각 병원으로 옮겨주시고, 아래 핸번(아내)으로 연락해 주십시오>라는 쪽지를 꽂고 다닙니다.
생각해 보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운에 따라 죽거나 살아난 경우들이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꽤 많았습니다.
먼저 MBC 뉴스데스크 13년 최장수 앵켜였던 언론인 이득렬 씨는 지난 2001년 2월24일 간경변 합병증인
‘식도 정맥류 파열’로 사망했습니다. 항간에 ‘모 연예인과의 정사중 사망’ 이라는 등 별별 낭설이 다 돌았지만
그는 부인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사망 전날 오후 경기 퇴촌에 부인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는데,
불행히도 119 구급차의 출동이 늦었고 퇴근 무렵 시간이라 올림픽 도로가 너무 막혀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치고 어려운 상태로 판명되면서
다음 날 새벽에 숨졌습니다.
반면 현재 조선일보 발행인인 H씨는 몇해 전 승용차로 출근 중 남산 1호 터널에서 역시
하트 쇼크로 쓰러졌습니다. 차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뒷차들이 빵빵 대다가 운전석에 쓰러진 H씨를 발견하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 살아났고 지금 건재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쓰러지느냐 하는 것도 큰 운인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목숨을 건진 사례고 적지 않습니다.
MBC 워싱턴 특파원이었고 얼마 전까지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맡았던 K씨는
저와 매달 한번 점심을 같이 하는 언론인 모임의 선배입니다.
그는 몇해 전 어느 날 모임에서의 점심 후 동료 친구로부터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데
같이 가볼래”라는 권유를 받고 건성으로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K씨는 위암이 발견되었습니다.
K씨도 수술과 치료를 잘 받고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글방의 제 절친인 박흥신 전 프랑스 대사의 ‘생명 생환기’는 더욱 드라마틱 합니다.(이 얘기를 쓰겠다고
허락받지 않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항의받을 수 있는데, 절친이며 글방 동료라는 빽만 믿고 그냥 쓸랍니다).
지난 1998년 박대사는 김대중 대통령님의 청와대 의전실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6월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박비서관은 그보다 한달 전 쯤
선발대로 미국에 먼저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출발 전주 토요일 그는 당시 청와대 의무실장 J씨(현 성애병원장)와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J씨로부터 “출발 전에 우리 병원에서 건강검진이나 한번 받아보고 가라”는 권유를 받았고
무슨 하늘의 뜻인지 이 권유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만 위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미국행은 즉각 취소되었고 바로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생명을 건졌습니다.
J씨는 운명처럼 박대사의 생명의 은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까이 제 친동생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저와 5살 터울인 남동생은 러시아 문학박사로 대학에서 오래 강의하다가 학과가 폐지되는 바람에
졸지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교수로 잡 트랜스퍼를 하고 모 대학의 베트남 한국어학당 책임자로 나갔습니다.
몇 년간 잘 근무하던 그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인 2011년 초 밤늦게 홀로 귀가하던 길에
이른 바 ‘오토바이 빽치기’를 당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깊은 골목길에서 오토바이가 나타나
그를 강하게 치어 날려버리고 지갑과 핸드폰, 가방을 털어 달아난 것입니다. 범인을 잡을 수 없는 뺑소니죠.
동생은 골목길에 의식을 잃은 채 6시간이나 방치되어 있다가 새벽 6시 순찰을 돌던 경찰에 발견되어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병원에서도 의식이 없는 환자가 들어왔으니 그냥 복도에 팽겨쳐 두었다고 합니다.
몇 시간 후 잠시 의식이 돌아온 동생이 간호원을 붙잡고 학교 이름과 조교 이름, 전화번호를 대주어
결국 연락이 되었고 그 이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길고 긴 고난의 가료와 재활기간을 거쳐 겨우 목숨을 구했으나
워낙 부상이 심해 지금 장애 4급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생도 전고 출신에 방장님과 같은 ‘라매불’ 회원(17기)입니다.
베트남이 따뜻한 나라여서 망정이지 우리나라나 더 추운 나라였다면 제 동생은 그 겨울 차디 찬
길바닥에서 사망했을 것입니다. 운발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자신의 숨겨왔던 얘기를 고백합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 외에는 아예 모르는 얘기입니다. 초대 게임위원장(차관급)으로 일하던 2008년 6월
어느 아침 소변에서 피가 나왔습니다. 술을 많이 하던 시절이라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또 피가 섞여나와 회사 근처 비뇨기과에 가서 검진을 했습니다. 전립선이나 요도에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별 일 아닌 것 같다” 면서 “혹시 방광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말을 잘 들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방광암이었습니다.
즉각 입원해 수술을 받고 방광을 3분의 1 절제했습니다. 그 후 5년 가료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아침의 피가 저를 살린 셈입니다. 양변기가 살린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운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기도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제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군에서 가장 손꼽히는 장군은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의 순서이지만
이를 다 이겨내는 건 바로 복장(福將)이고 그 위가 운장(運將)이라고 믿습니다.
글방 회원님들 부디 운 많이 받으십시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국회의장 공보수석, 초대 게임물등급위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