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호
[202306]허영엽 신부의 ‘나눔’
성지의 체험, 순례의 기쁨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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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성지순례를 하다 보면 지중해 끝자락의 작은 성당, 산골에 있는 순례지 성당에서 봉사하고 계신 한국인 수녀님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우리 한국 순례단을 어린아이처럼 반갑게 맞으면서 한국 교회와 지인 신부님, 신자분들의 안부를 궁금해하신다. 예전에는 수녀님들이 대개 나보다 연세가 많았는데, 세월이 흘러 최근에는 겉으로 보더라도 내 나이가 훨씬 많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순례단의 여정은 늘 순간이어서, 떠나며 수녀님들과 인사를 나눌 때는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여린 동생을 낯선 땅에 남겨두고 오는 것처럼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한국에서 바꿔 간 유로 지폐를 손바닥에 감췄다가 “수녀님, 이제 악수로 인사해요.” 하면서 살짝 건넨다. 깜짝 놀란 수녀님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친정 오빠 같은 마음이 들어 그래요. 수녀님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주변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주세요. 그리고 이 거룩한 곳에서 가끔 생각나면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면 수녀님들은 내 얼굴 바라보며 금세 눈에 이슬이 맺힌다. 나는 그런 상황이 항상 익숙하지 않아 바로 얼굴을 돌리고 일행에게 돌아간다. 그래도 감정은 속일 수 없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눈물이 흐른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래도 이런 만남과 이별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무리 익숙하다고는 하나 물설고 낯선 외국에서의 수도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겠나. 내 피붙이가 아니더라도 이국 생활의 고달픔과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타리나 수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이 ‘기적의 패’ 제작 지시해
‘기적의 패’로 잘 알려진 성모님의 메달이 있다. 프랑스 파리 뤼뒤박에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 1830년 7월 18일 밤, 카타리나 수녀는 한밤중 어린아이가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성모님께서 계시니 성당으로 가라”는 소리였다. 카타리나 수녀가 성당으로 들어가니 성당 안이 밝게 빛나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카타리나 수녀는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고, 제대 계단을 내려오시는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성모 마리아는 카타리나 수녀에게 ‘프랑스에 큰 위험이 닥쳐올 것이고, 십자가와 신앙이 모욕을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성모님의 예언은 일주일 후 일부분이 실현되었는데 1830년 7월 27일 7월 혁명이 발발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많은 주교와 신부들, 수도자들이 투옥되고 살해당했다. 교회와 성상들, 십자가는 무참히 짓밟혔다.
성모님의 첫 발현 후 4개월이 지나 1830년 11월 27일 토요일 저녁 5시30분 무렵이었다. 카타리나 수녀는 첫 발현 때처럼 옷깃 스치는 소리 후, 새하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을 목격했다.
“(중략) 성모님의 손가락에 낀 반지의 보석에서 발아래 있었던 지구 위로 빛줄기가 흘러나왔다. 알처럼 둥근 테두리가 성모의 주위를 둘러쌌는데, 그 안쪽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금빛 글자가 있었다. 그때 성모님은 카타리나 수녀에게 “이 모형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메달을 몸에 거는 사람들 모두에게 은총이 내려지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성모님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림이 뒤집히면서 뒤쪽이 보였는데 커다란 M 글자 위를 가로질러 막대기가 있었고, 그 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M 글자 아래에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을 상징하는 심장 두 개가 있었다. 예수 성심은 가시관으로 둘러싸였고 성모 성심은 칼에 찔렸으며, 별 열두 개가 전체를 둘렀다. 카타리나가 경험한 오랜 환시는 이것으로 끝났다. 카타리나 수녀는 고해 사제 알라델 신부에게 성모 발현과 메달을 만들 것을 전달했지만 신부는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파리 교구 드 켈렝 대주교에게 메달을 주조하고 신자들에게 퍼트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1832년 6월 30일, ‘원죄 없으신 잉태의 메달’ 2천 개가 최초로 만들어졌고 메달 보급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메달을 통해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4년 후인 1836년까지 200만 개가 주조되었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도 메달을 책상 위 십자가 아래에 두기도 했다. 이 신성한 메달로 많은 환자가 치유됐고, 다양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전쟁과 사고 등 극한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 메달은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며 지금까지도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고 있다.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의 선종 후 57년이 지난 1933년, 교황 비오 11세 때 시복을 위해 시신 발굴을 하였는데 카타리나 수녀의 눈은 여전히 푸른빛을 보존하고 있었고 유해도 부패하지 않았다. 카타리나 수녀의 시신은 성모 발현 장소에 만들어진 제단 아래 유리관에 안치되었다. 이 파리의 성당에 매일 수천 명의 순례자가 찾아온다. 카타리나 수녀는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레지오 마리애의 주회합에 공식적으로 모시는 성모상은 바로 이 파리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상이다.
기적은 매일, 매 순간 믿음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
독일의 독일 동남쪽 작은 국경도시 알퇴팅에 기적의 순례지가 있다. 이곳은 두 번의 기적으로 성지로 인정을 받아 해마다 많은 순례객이 찾아온다. 700년대에 알퇴팅 광장 한복판에 팔각형 모양의 작은 은총의 성당이 세워지게 된다. 1330년 이 은총의 성당에는 ‘블랙마돈나’라고 불리는 성모자상이 봉헌되었다. 이후 1489년 3살 된 한스라는 아이가 강에 빠져서 목숨을 잃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의 시신을 안고 울면서 성모 마리아상 앞으로 가서 기도를 올렸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다시 숨을 쉬고 살아났다. 이 아이는 나중에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의 기적은 마차를 끌던 한 마부가 실수로 길거리에서 놀던 한 아이를 덮쳤다. 마부는 숨이 멎은 아이를 안고 성모 마리아상 앞으로 달려가서 눈물로 기도했고, 기적처럼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
이 두 번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알퇴팅으로 순례를 오고, 교회로부터 성모성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은 은총의 성당 외부에는 기도에 응답받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감사드리며 그린 2천 점 이상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트랙터에 깔렸는데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난 사람, 총을 여러 번 맞고도 목숨을 부지한 사람, 난치병을 기도로 나은 사람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한쪽에는 치유를 감사하며 바친 수많은 목발, 의수와 의족들도 보인다.
나는 이곳 소박한 이 성당을 몇 차례 방문했지만 매번 큰 감동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적 체험기를 보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초월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의외로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기적은 아주 신비롭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믿음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음이 기적이며, 기적의 체험을 보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못 보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