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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내려온 수수께끼”
□ 시편 78:1-16 □
차준희 (순신대학교・구약학)
Ⅰ. 본문 사역
1절 아삽의 마스길
나의 백성이여, 나의 가르침을 들으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너희의 귀를 기울여라.
2절 내가 입을 열어 비유를 말하며
내가 옛부터 내려온 수수께끼를 말하리라.
3절 이것은 우리가 듣고 알고 있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라.
4절 우리가 이것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숨기지 아니할 것이며
다음세대에게 전하리라.
곧 야웨의 영광스러운 행적
그리고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5절 그는 야곱 안에 한 증거를 세우셨으며
이스라엘 안에 한 율법을 주었다.
이것은 그가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한 바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6절 그리하여 그들이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알게 하고
뒤에 태어날 자녀들도 일어나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전하게 하려 함이라.
7절 그리고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않으며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려 함이라.
8절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은 완고하고 반역하는 세대요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세대요
그 심령(영)이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세대라.
9절 에브라임의 자손들은 활쏘는 자들로 무장했지만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절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으며,
그의 율법에 따라 행하는 것을 거절하였도다.
11절 그리고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과
그들에게 보여주신 놀라운 일들을 잊었도다.
12절 그는 그들의 조상들 목전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이집트 땅 소안 들에서 행하신 것이라.
13절 그는 바다를 갈라서 그들을 통과하도록 하였고
그리고 물을 둑처럼 서게 하셨도다.
14절 그는 낮에는 구름으로
그리고 밤중 내내 불빛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도다.
15절 그는 광야에서 바위를 쪼개셨고,
그리고 깊은 샘에서 나는 것 같이 (그들로) 흡족히 마시게 하셨나이다.
16절 그는 바위에서 시내가 흘러나오게 하시고
그리고 물이 강같이 흐리게 하셨나이다.
Ⅱ. 본문 사역에 대한 풀이
1) 6절 사역에 “그것을”이라는 두 개의 지시대명사를 가로로 묶은 바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원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집어넣었음을 의미한다.
2) 9절의 ⌈로메이-카쉐트⌋ ת־יוֹר 는 “활쏘는 자들”로 번역될 수 있다(참조, 렘 4,29).1) ⌈노쉐케이⌋(יוֹנ는 קשׁנ “무장하다”의 분사형)는 또 다른 몇 몇 히브리어 사본들에서는 ⌈노케쉐이⌋ יוֹנ 로 전승되고 있다. 뒤에 나오는 두개의 자음이 앞뒤가 바뀐 것이다. 이 낱말은 “(함정, 덫)에 걸려들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드물게 사용되며, 시 9:16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 “야웨께서 자기를 알게 사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표준새번역은 “걸려드는구나”로 번역함 : ⌈노케쉬⌋ שׁוֹנ). 이 단어를 원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에브라임 자손들은 활쏘는 자들에게 걸려들어서 전재의 날에 물러갔도다”로 번역된다. 그러나 맛소라 본문 MT 의 노쉐케이를 다른 히브리어 사본들에 나오는 노케쉐이로 대치시켜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2) 노쉐케이라는 낱말은 대상 12,2 “화살도 쏠 줄 아는 사람들(⌈노쉐케이 케쉐트⌋ ת יוֹנ)”과 대하 17,17 “화살과 방패를 잡은 사람(⌈노쉐케이 케쉐트 우마겐⌋ ןוּ ת יוֹנ)”에서도 쓰이고 있다.
3) 13절에서 맛소라 본문은 “댐 dam, 둑 dike ”3)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히브리말 ⌈네드⌋ ד로 본문을 간직하고 있는 반면 헬라어 역본 0인역(LXX: Septuaginta)은 그의 자매역본인 페쉬타(Peschitta : 시리아 번역본)와 탈굼(Targum:아람어 번역본)과 함께 아스콘 (άσκόν, “작은 자루/부대”)이라고 읽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노드⌋ ד이다. 그러나 “물을 작은 자루처럼 세웠다(LXX)”라는 표현보다 “물을 둑처럼 세웠다(MT)”라는 것이 문맥으로 볼 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기에서도 마소라본문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
4) 15절에서 70인역 LXX 은 “그들”이라는 목적격을 포함하고 있고 이에 반해 마소라 본문에는 이것이 생략되어있다. 70인역의 본문 읽기가 마소라 본문보다 쉽다. 70인역이 나중에 이를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더 짧은 본문이 더 오래된 본문(원본문 Urtext)에 가깝다 lectio brevior est potior 는 본문비평 Textkritik 의 원칙에 따라 마소라 본문의 읽기를 택한다. 또한 78편의 6절, 21절 그리고 38절에서도 동사의 목적격어미가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도 마소라 본문의 단어가 원본문에 가깝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Ⅲ. 본문의 문학형식(양식) 과 짜임새
시 78편은 72절에 이르는 장문의 시로서 여러 가지의 양식들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4) 어떤 한 양식으로 규정하기가 쉽지는 않다.5) 그러나 이 시편은 내용상 역사시편 Geschichtspsalm 으로 분류하는데 대체적으로 학자들간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6) 이 시가 역사시편이라고 해서 이 시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단순히 기록 보존하는데 그 의도가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이 시는 역사의 요점 반복이나 역사의 주요자료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의도는 연대기적 윤곽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역사자료의 개요를 알리는 것도 아니다.7) 이것은 역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며,8) 슈미트 H. Schmidt 의 중립적 표현을 빌리면 이 시는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숙고하는 일종의 “역사철학”9)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짜임새에 대해서는 크게 보면 대체적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10) :
1-11절 : 서론
< 첫번째 이야기 >
A) 12-32절 : 광야에서
a) 12-16절 :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위
b) 17-20절 : 이스라엘의 반역
c) 21-32절 :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B) 33-39절 : 결 말
< 두번째 이야기 >
A') 40-64절 :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a') 40-55절 :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위
b') 56-58절 : 이스라엘의 반역
c') 59-64절 :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실로의 멸망)
B') 65-72절 : 결 말
우리가 다루게 될 본문은 시 78편 전체의 서론 (1-11절)에 해당되는 부분과 첫번째 이야기(12-39절)의 광야 사건(12-32절) 중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위(12-16절) 부분으로 국한된다. 우리의 본문을 좀더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
1-2절 : 주의를 촉구하는 부름
3-4절 : 가르침의 내용
5-11절 : 하나님의 교육적 의도
12-16절 :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인도
Ⅳ. 본문의 풀이
1. 주의를 촉구하는 부름(1-2절)
아삽의 마스길 : 아삽이란 사람은 에스라 2:41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이십 팔 명이요”에 의하면 성전 성가대의 조상격에 해당되는 인물이다(대상 16:4-5;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야웨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야웨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셨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11)대하 29:30에 의하면 다윗의 시와 더불어 아삽의 시도 언급되고 있다 :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로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야웨를 찬송하게 하매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니라”. 아삽은 레위인 성전 성가대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다(대상 6:31-39; 25:1-2). 마스길 לי 은 그 의미가 아직까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시편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음악용어일 것이다.12) 이 용어는 시편의 표제어에서 13번 사용되고 있다.13) 이 용어의 의미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지만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 첫째, 예술/기교의 노래 Kunst-lied, 둘째, 교훈시 Lehrgedicht 혹은 지혜시 Weisheitspsalm, 세째, 성공적인 시 ein erfolgreiches Lied .14)
나의 백성이여 들으라 : “나의 백성이여, ~를 들으라”(⌈하아지나 암미⌋ יע הי)라는 표현구는 시 50:7의 “내 백성들아 들을 찌어다” (⌈쉼아 암미⌋ י ה)와 같은 “교훈의 시작을 알리는 형식” Lehreröffnungsformel 에 속한다. 시편기자는 지혜교사와도 같이 그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도록 요구한다(“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너희의 귀를 기울여라”).
나의 가르침 : 여기서 가르침으로 번역한 히브리말은 토라 הוֹתּ 이다. 이 낱말은 동사 야라 ה 히필형 “지시하다, 가르치다”의 명사형이다. 토라의 본래적 의미는 “가르침 Weisung ”15)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Teaching of God to lsrael . 즉,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이 낱말이 “법” 혹은 “율법” law 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16)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법률적 행태라는 문학양식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토라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율법으로만 이해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라는 본래적 의미는 약화되거나 상실되기 쉽고 구속하고 억압하는 의미로만 인식되기 쉽다. 구약의 토라는 적어도 바울의 “율법과 복음”이라는 대조에서 나타나는 율법의 의미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토라와 유사한 것으로 굳이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로 선택해야한다면 아마도 율법보다도 복음에 가까울 것이다. 토라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약의 복음”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토라의 개념은 2절의 지혜의 언어인 “지혜의 말”과 “수수께끼”라는 낱말과 나란히 쓰이고 있다. 잠 3:1 “내 아들아 나의 법(토라)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와 잠 4:2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토라)을 떠나지 말라”에 따르면 토라는 지혜시의 언어에서 “권고”, “경고”,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17) 결국 여기에서 토라는 하나님의 권고, 경고,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다.
지혜의 말과 같은 수수께끼 : 히브리말 마샬 ל 은 구약에서 “격언 Spruch, 잠언 Sprichwort, 지혜의 말 Weisheitsspruch, 풍자의 노래 Spottlied, 모음집의 표제 Überschrift”18)의 의미로 쓰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샬을 “지혜의 말”로 번역한다.19) 수수께끼(⌈키다⌋ הי)라는 낱말은 지혜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화법(話法)이다20) :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키다)을 깨달으라”(잠 1:6). 이 개념은 지혜문학에서 거의 지혜의 말에 대한 동의어로 쓰인다. 상징적인 표현들, 비유, 역설적 진술들 그리고 오묘한 시들이 수수께끼로 표시될 수 있다.21) 2절에서 지혜의 말과 수수께끼는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시 49:4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비유(마샬)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키다)을 풀리로다”.22)
수수께끼라는 낱말이 엄격한 의미에서 문자 그대로 수수께끼 riddle 라는 뜻으로 쓰인 경우는 구약에서 삿 14:10-18의 한 경우로 국한된다. 나머지 대부분은 “수수께끼같은 말 riddle sprech ”을 지칭한다.23) 이 수수께끼라는 낱말은 모호성과 신비를 암시한다. 시편기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옛부터 내려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겠다고 한다.
1-2절에서 시편기자는 지혜언어(가르침, 지혜의 말, 수수께끼)를 사용하여 마치 지혜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가르치는 것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목하도록 한다. 그는 가르침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다만 가르침, 지혜의 말과 수수께끼라고만 소개하여 궁금증을 더하게 하며 청중을 긴장케 하여 시선을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2. 가르침의 내용(3-4절)
3-4절은 2절에 종속되어있는 관계문으로 되어 있다. 교훈의 시작을 알리는 형식으로 시작하여(1절) 신비로운 사실을 알리겠다고 선언한다(2절). 이제 그 비밀이 알려진다.
우리가 듣고 알고 있는 바요 : 그런데 이 신비한 사실은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고 이미 조상들을 통하여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라”)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곧 야웨의 영광스러운 행적 : 그것은 바로 “야웨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그의 능력 그리고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다. 한 마디로 하면 지나온 역사에 나타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이다.
결국 3-4절은 앞절에서 언급된 가르침의 내용을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옛부터 내려오는 수수께끼의 정체를 일부 드러내 주고 있다. 옛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의 완전한 정체는 8-11절에 가서야 비로소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야웨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야웨의 끊임없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야웨께 배반과 반역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야웨는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배반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야웨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수수께끼로 가득차있다.
3. 하나님의 교육적 의도(5-8절)
증거와 율법 : 시 78:5-11에서 토라라는 낱말이 5절과 10절 두 군데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 두 본문에서 쓰인 토라라는 개념은 1절의 토라와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 5절의 토라는 “증거(⌈에두트⌋ תוּד)”와 10절의 토라는 “언약(⌈베리트⌋ תי)”과 각각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24) 5절과 10절의 토라는 율법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25) 시 19:7 “야웨의 율법(토라)은 완전하여 영혼은 소생케하고, 야웨의 증거(에두트)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에서도 토라와 에두트가 평행구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증거는 “야웨의 규정전체 die Gesamtheit der Verordnungen JHWHs ”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시편 78:5에서 증거는 “다음 세대에게 계속해서 과거의 교훈을 전해야 한다”는 하나의 규정(한 증거)와 관계를 맺고 있다(5-6절).26) 아무튼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이 하나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 율법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으며, 그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다음 세대에게 알게 하고 : 하나님의 뜻은 그가 이스라엘에게 행한 은혜의 사건을 그들이 다음 세대에게 계속해서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6절에 와서 분명하게 언급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 Heilsgeschichte 를 전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에게 주어진 중대한 의무이다 : “뒤에 태어난 자녀들도 일어나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임무는 성전에서는 물론 가정에서 먼저 실천되어야 한다27) :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 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물론 이러한 사명은 교회와 가정으로 국한되지 않고 사회와 세계 속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전하는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주어진 영원한 사명인 것이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조상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 7절-8절에 이르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계속해서 전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밝혀진다.28) 그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며(7절), 또한 그들이 완고하고 반역하는 그들의 조상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8절),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다(10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과거의 구원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다음에 그들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제시하신 것이 계명(언약)이다. 즉, 구원행위라는 은총이 있은 후 그 은총의 담지자로서의 마땅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도록 계명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계명을 지키면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시지 않는다. 그 반대로 이미 구원했으니 구원의 보존을 위해서 계명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출 20장의 십계명 수여장면에서도 확인된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일러주기 전에 먼저 언급된 십계명 서문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십계명 서문에 해당되는 출 20:2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행위 즉 출애굽 사건이 언급되고 있다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야웨로다”. 그리고 나서 열 가지 계명이 조목조목 제시된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져버린 사람들이 되었다 :
“그들은 완고하고 반역하는 세대요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세대요
그 심령(영)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세대라”(8절)
조상들은 하나님의 시험(계명)에 탈락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구원행동)에 실패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실패한 조상들의 전철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그러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잊지 않으며),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에브라임 자손들은 무장했지만 : 시편 기자는 9절에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조상의 역사적 실례를 제시한다. “에브라임 자손들은 활쏘는 자들로 무장했지만, 전쟁의 날에 물러갔노라”라는 역사적 사건이 어떤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대두된다. 이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네 가지로 나뉜다 :
첫째, 블레셋과 싸운 아벡 전투에서의 패배(삼상 4장)로 보는 견해,29)
둘째,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전사한 길보아 전투의 패배(삼상 31장)로 보는 견해,30)
세째, 북왕국의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게 한 사마리아의 함락으로 보는 견해,31)
넷째, 포로기 이후 사마리아인들의 북왕국 성소재건을 둘러싼 갈등의 시기로 보는 견해32) 등이다.
그러나 시편에서 역사적 배경과 연결시켜서 연대를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시편 137편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태이다. 현재의 시 78:9에서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만약 현재의 시편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면 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편이 비록 역사시편이라 하지만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의 순수한 기록이 그 목적이 아니다. 본문의 의도를 따라서 오늘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연대를 밝히려는 무리한 시도는 여기에서 접어두는 것이 좋을 성싶다. 아마도 시편 기자는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33)
북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가장 큰 지파인 에브라임지파도 그들의 힘으로 철저히 무장했지만 전쟁에서 패망하였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렸고,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행위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지시에 눈을 감아 버렸다. 여기에 에브라임자손들의 패인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신학적 해명/이해/해석이다.
5-11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그대로 밝혀준다. 아무리 강한 사람/국가(에브라임 자손들)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신실치 못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져버리면 그들의 인간적인 철저한 무장도 진정한 보호막이 될 수 없다. 인생의 진정한 방패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억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는 조상의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세대에게 이를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인도(12-16절)
이 단락(12-16절)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망각해 버린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를 소개한다. 즉, 출애굽 사건(12-13절)과 광야에서의 인도 사건(14-16절)이다.
조상들의 목전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 “놀라운 일(⌈펠레⌋ א)”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일, 도저히 불가능한 것의 실행 즉 기적을 뜻한다.34) 아마도 이것은 “이집트 땅 소안 들에서 일어난” 홍해의 사건을 일컫는 것 같다 : “그는 바다를 갈라서 그들을 통고하도록 하였고, 그리고 물을 둑처럼 서게 하셨도다”(13절; 참조, 출 14:16, 21-22절). 소안 땅에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오경 안에서 찾아 볼 수 없다(참조, 출 14장). 시 78편은 아마도 오경에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전승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깊은 샘에서 나는 것같이 : 깊은 샘(⌈테홈 라바⌋ ה מוֹה)은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테홈)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의 태고의 물을 연상시킴으로 “충분한 양의 물”을 공급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35) 또 다른 면에 보면 이 낱말은 땅속의 물 즉, 지하수를 가리키면서 이 세상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진귀한 물로 그들에게 마시게 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36)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바다를 가르고 물을 둑처럼 세우신 초자연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이집트의 추격을 물리친 놀라운 일이었다. 척박한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밤낮으로 그들을 보호하며 인도하였고(14절; 참조, 출 13;21; 시 105:39), 그들에게 진귀한 물을 충분히 먹도록 하셨다(15-16절; 참조, 출 17:6; 민 20:7-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광야에서 지존자(하나님)을 배반하였도다”(시 78:17).
V. 설교를 위한 메시지
1. 이스라엘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구원사)는 계속된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는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하나 놓여 있다. 이 수수께끼란 이스라엘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멈출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표현하면 계속해서 지속되는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에도 불구하고 그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의 배신도 놀라운 일이다. 이런 수수께끼와도 같은 사실이 과거 이스라엘역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반역이라는 장애물을 만나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린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 넘기도 한다 :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사 55:8-9 표준새번역).
성도는 인간적인 이해를 넘어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 Gottes Gnade 를 입으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참 성도는 “왜 날 사랑하나?”를 눈물로 노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다음세대에게 계속해서 전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의무이다(5-6절). 당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구원사역)을 조상들을 통해서 전하여들었다(3절). 그들은 들은 것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위탁받았다(5-6절). 하나님의 구원사를 전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에게 위임된 중요한 사명이다(마 28:19-20). 이러한 선교사역은 우리 모두에게도 주어진 사명이다. 이 선교사역의 바톤이 우리의 손에서 잠자고 있으면 사명유기죄(?)에 해당된다. 이 바톤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특히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사는 늘 기억되고 가르쳐져야 한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가정마다 대를 이어 연속되어야 하며, 가정마다 가정의 신앙고백이 풍부해져야 한다.
3.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7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방) 하신 다음에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계명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건(출애굽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이미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그 구원의 지속을 위해 다른 말로 하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은 그의 계명(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4. 하나님을 망각한 채 이루어진 인간의 무장은 무익하다(9-11절). 북왕국 전체를 대표할 만큼 강한 에브라임 자손들이 활쏘는 자들로 철저히 무장했지만, 실상 전쟁에서는 패하고 말았다(9절). 그들은 강력한 군대를 거느렸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구원역사를 망각해 버렸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하나님이 빠진 인간의 그 어떤 무장도 불안 할 수밖에 없다 :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시 127:1 표준새번역)
5.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험(계명)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실패한다(12-16.17).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쳐놓은 시험이라는 그물(계명)에 걸려서 넘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져버리므로 실패한다. 바다의 가운데를 가르는 기적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표현이었고(12-13절), 광야의 살인적인 낮의 더위를 구름으로 가려주고, 살을 에는 밤의 추위에서 불빛으로 보호,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표시였다(14절). 물이 없는 사막과 다름없는 광야에서 바위를 쪼개면서 까지 진귀한 깊은 샘의 물로 그들을 흡족히 먹인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15-16절).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다(17절).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실패한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