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전도서와 클레로스(3) - 토브와 씸하 그리고 구원(2)
(3)토브와 씸하 그리고 구원(2) - 전5:18-20
신약 백성들에 대한 예언으로서의 토브와 씸하,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말씀들
지난 주의 내용은 솔로몬왕 자신이 낙(토브)과 즐거움(씸하)를 얻고자 온갖 짓을 성공적으로 다 해 보았고 모든 노력을 다 해봤지만 결국은 안 되더라는 것과(2:1-8,17),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 속하지 못하고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 전도서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2:24-26)
그런데도 여전히 묘한 구절들이 남아 있다.
①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3:18-21)
이 말씀은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 없으니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3:22) 식으로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하는 뉘앙스로 들리기 쉽다.
②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5:18-20)
이 말씀도 일평생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며 즐겁게 살라는 말씀처럼 들리기 쉽다.
③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9:9-10)
이 말씀도,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으니 이 땅에서 즐겁게 살아라 하는 것으로 들린다.
④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11:9-10)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12:1)
이 말씀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처럼 들리고 주어진 인생을 즐기라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토브와 씸하를 누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한 말씀이 된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았는데 토브와 씸하를 누릴 수 없더라고 고백하고 있다. 왜 그럼 솔로몬은 사람들에게 토브와 씸하를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모순된 말을 하고 있나?
그래서 본문 말씀(5:18-20)의 번역본들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이니까 허무감에 빠지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신 은혜의 몫이다... 라는 식으로 오해하고 있다.
소위 번영신학이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신학자들의 성경 번역이 그런 식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번역본은 아래 참조)
(전 5:18-20) 번역 비교
(개역개정)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공동번역)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멋지게 잘 사는 것은 하늘 아래서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비록 짧아도 하느님께 허락 받은 것이니, 그렇게 살 일이다. 먹고 살 돈과 재산을 하느님께 몫으로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알아 수고한 보람으로 즐길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바라시니,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표준새번역)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을 몫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현대인 성경) 나는 하나님이 주신 짧은 일생을 사는 동안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며 이것이 인간의 운명임을 알았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부와 재물을 주셔서 그것을 누리게 하시며 복을 받아 자기가 수고한 것을 즐길 수 있게 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쁨을 채워 주셨으므로 그는 인생이 짧다는 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현대어성경)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즐겨라] 나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허락해 주신 그 짧은 동안 아무리 세상사가 힘들어도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사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분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부와 재물을 주시고 그것을 누릴 건강까지도 허락해 주셨거든 누구든 그것을 자신의 분복으로 알고 감사하면서 수고한 보람을 즐기라.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의 짧은 인생을 생각하며 슬퍼할 겨를이 없다. 하나님께서 항상 그에게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다.
(가톨릭 성경) 보라, 하느님께서 주신 한정된 생애 동안 하늘 아래에서 애쓰는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유쾌하고 좋은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그의 몫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부와 재화를 베푸시어 그것으로 먹고 자기 몫을 거두며 제 노고로 즐거움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모든 인간. 이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정녕 하느님께서 그를 제 마음의 즐거움에만 몰두하게 하시니 그는 제 인생의 날수에 대하여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묘한 구절들은 전도서의 논리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답은 토브와 씸하에 있다.
①토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6:12)는 것과
②토브를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7:20)고 단언한 것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과 동일)
③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house of mourn)에 있고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씸하의 집)에 가 있다는 것(7:1-4)과 그럼 왜 토브와 씸하를 누리라고 이야기 한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토브와 씸하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나 이 복된 삶은 신약시대의 씽클레로노모스들(신약백성들)만이 클레로스 안에서 누리게 되는 삶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솔로몬의 논리가 뒤죽박죽인 이유
솔로몬의 논리가 한쪽에서는 “토브를 누려라”고 하다가, 또 다른 쪽에서는 “토브는 누릴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서구 신학자들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뒤죽박죽인 이유는
①구약 백성인 솔로몬이 받은 지혜의 한계 일 수 있다. 즉 신약 예언에 대한 영감을 받았는데 그것을 전개할 능력이 안되는 솔로몬의 지혜의 한계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많은 선지자와 의인”에 솔로몬도 포함된다.(마13:17)
②구약에서는 신약의 계시를 베일에 가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일 수도 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은(마5:17) 구약도, 전도서도 불완전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고(마13:11), 많은 선지지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고(마13:17) 그것은 진리의 영이 오시면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했고 승천하실 때 있었던 500명 중에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만 그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즉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믿은 사람들 중에서 성령을 받은 자들,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진 씽클레로노모스들에게만 토브와 씸하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기독교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전도서의 논리가 좌충우돌처럼 보이지만 토브와 씸하를 누리라는 권면이 구약백성이나 서구 기독교인을 위한 권면이 아니라 토브와 씸하를 실제로 누리게 되는 클레로스의 씽클레로노모스를 향한 말씀인 것이다.
본문 구절에 대한 서구 기독교의 오역은 단순히 그 구절에 대한 오역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대한 오독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학 전체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를 자기 지신과 같이 사랑하는 한 몸이 되어 살아간다는 현실적인 약속을 제거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교리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대교 2천년, 기독교 2천년 동안 말도 안 되는 세속 종교가 판을 쳤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결론
우리는 성경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를 모이게 하셔서 깨닫게 하시는 이유는 증인 집단을 만드시기 위해서이다.
증인은 목격자가 아니고 서로 사랑하게 된 자들, 토브와 씸하를 누리게 된 자들이다. 세상 사람에게 보여주고 확인하게 하시려고 우리가 토브와 씸하를 먼저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12:13-14)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내용이며 완전케 된 율법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전도서의 인간론은 명쾌하고 구원론의 설명은 한계가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보면 분명한 논리를 볼 수 있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최윤주 자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