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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가 좋은 딩딩!
동화작가 김동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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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이네 집 장독대에는 고양이 딩딩이가 있었다.
딩딩이는 장날 순이엄마가 사온 새끼고양이었다.
순이엄마는장독대 주변에 들쥐가 사는게 싫었다.
고양이가 있으면 들쥐들이 모두 도망갈 것으로 생각했다.
"순이가 고양이 이름을 지어봐!"
엄마는 새끼고양이를 순이에게 안겨주며 말했다.
"엄마!
항아리 어때요?"
"별로야!"
"그럼!
장독대는 어때요?"
"뭐야!
고양이 이름이 장독대?
별로야!"
"엄마!
항아리가 싫으면 뚜껑은 어때요?"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
엄마는 딸이 생각도 없이 말하는 게 싫었다.
"엄마!
고양이 이름이 너무 예쁘면 안 돼요.
들쥐들이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장독대에 묶어놓고 키울 거면 이름도 장독대에 어울려야 해요."
"그러니까!
장독대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 봐!"
하고 말한 엄마는 물길러 샘터를 향했다.
"새끼!
새끼고양야.
넌!
어떤 이름이 갖고 싶은 거야?"
하고 순이가 물었다.
"뭘라!
몰라! 몰라요!"
"뭐!
몰라!
그런 이름을 갖고 싶다고?"
"아니!
아니! 그런 이름은 싫어요."
"그럼!
어떤 이름이 좋을까?"
순이는 장독대 옆에 앉아서 한 참 생각했다.
"딩딩!
딩딩!
딩딩!
어디서 나는 소리지?"
하고 순이가 장독대를 향해 뒤돌아 봤다.
"아무 것도 없는 데!"
순이는 새끼고양이를 안고 집중했다.
"딩딩!
딩딩! 딩딩!
너도 들었지?
분명히 제일 큰 항아리에서 났어."
순이는 일어나 제일 큰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간장 항아리다!
그런데 딩딩 소리가 나다니 신기하다."
간장 항아리에서는 가끔 딩딩 소리가 났다.
된장이 발효되면서 나는 소리 같았다.
"좋아!
넌 딩딩이야."
순이는 새끼고양이 이름을 정했다.
"엄마!
고양이 이름 지었어요."
샘터에서 물을 머리에 이고 오는 엄마를 보고 외쳤다.
"뭐라고?"
"딩딩!
딩딩이라고 지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야?"
"엄마!
간장항아리에서 매주가 발효되면서 내는 소리야.
가만히 장독대에 앉아있는데 간장항아리에서 딩딩 소리가 났어."
"그래서!
딩딩이라고 지었어?"
"네!"
하고 딸이 대답하자
"잘했어!"
도망가지 않게 잘 묶어 둬."
하고 말한 엄마는 부엌으로 향했다.
"딩딩!
밤마다 쥐를 잡아야 엄마에게 사랑받을 거야.
알았지?"
"야옹!
쥐를 잡아라고요.
난!
한 번도 잡아본적이 없어요."
새끼고양이는 쥐를 본적도 없었다.
"밤에 나타날 거야!
나타나면 긴 발톱으로 꽉 붙잡고 물어 뜯으면 죽을 거야."
하고 순이가 말하자
"죽이라고요!
쥐를 죽이면 어떡해요?"
"뭐야!
고양이는 쥐를 잡아 죽이는 게 할 일이야."
하고 순이가 말하자
"나!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쥐와 밤새 노는 일이라면 몰라도 쥐를 죽일수는 없어요."
하고 새끼고양이 딩딩이가 말했다.
"딩딩!
넌 장독대에 나타나는 쥐를 모두 잡아야할 의무가 있어.
그래야!
엄마가 먹을 것을 줄 거야.
알았지?"
하고 순이가 말하자
"몰라요!
난 의무같은 건 몰라요.
쥐가 나타나면 같이 놀면 모를까 죽일 수는 없어요."
딩딩이도 쥐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딩딩!
밤에 쥐가 나타나면 알아서 잘 할 거야."
하고 말한 순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긴!
춥다고요.
나도 방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하고 딩딩이가 소리쳤지만 순이는 그냥 들어갔다.
..
"순이야!
잘 묶었지?"
하고 엄마가 저녁을 먹으며 물었다.
"네!
가장 큰 항아리에 줄을 칭칭 감아두었어요.
"잘했어!
당겨서깨뜨리진 않겠지?"
"엄마!
새끼고양이야.
큰 항아리는 나도 밀칠 수 없어."
"그래도!
비싼 항아리가 깨지면 안 돼지."
"알았어요!
내일 아침에 큰 돌을 하나 갖다 놓고 묶어 놀게요."
하고 순이가 말했다.
깊은 밤이 되자 뒷산에서 달이 떠올았다.
장독대에 달빛이 비추자 항아리 그림자가 여러 개 생겼다.
"이봐!
넌 구누야?"
가장 큰 항아리가 새끼고양이에게 물었다.
꼼짝도 않던 딩딩이는 항아리가 묻자 깜짝 놀랐다.
"난!
고양이.
새끼고양이입니다."
하고 딩딩이가 대답하자
"뭐!
새끼고양이.
넌!
너무 작아서 그림자도 없구나.
히히히!
대왕쥐보다 더 작은 것 같아."
하고 항아리가 말하자
"대왕쥐도 있어요?"
하고 딩딩이가 물었다.
"그럼!
달빛이 비추는 날이면 항아리 위에 올라가 춤추는 대왕쥐란다.
오늘 밤에 너도 대왕쥐가 춤추는 걸 볼 수 있겠구나."
"세상에!
대왕쥐가 항아리 위에 올라가 춤을 춘다고요?"
"히히히!
조금만 기다려봐.
이 주변에 사는 동물들이 모두 구경하러 올 테니까."
하고 항아리가 대답했다.
"동물들이 구경온다고!
대왕쥐가 춤을 잘 춰요?"
하고 딩딩이가 묻자
"히히히!
잘 추니.
춤을 너무 잘 춰서 내 영혼까지도 빼앗아 갔지."
하고 큰 항아리가 말했다.
"영혼도 빼앗아간다고요?"
"그렇지!
춤 추는 모습을 보면 영혼을 빼앗길 수밖에 없단다."
하고 큰 항아리가 말했다.
"그럼!
저도 영혼을 빼앗길 수 있나요?"
하고 딩딩이가 묻자
"그럼!
여기 있는 항아리들은 영혼을 빼앗긴지 오래되었어."
"정말!
영혼이 없는 항아리들이란 말이예요?"
"그렇지!
이 주변에 영혼을 가진 동물은 없어.
모두
대왕쥐에게 빼앗겼어."
하고 큰 항아리가 말하더니 기지개를 폈다.
"항아리님!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은 없어요?"
하고 딩딩이가 물었다.
"히히히!
영혼을 빼앗기는 게 편할 거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간 스트레스만 더 쌓일 거야."
하고 아주 작은 항아리가 말했다.
"그건 왜?"
딩딩이가 물었다.
"춤을 너무 잘 추는 대왕쥐를 보면!
내 영혼도 항아리 위에 올라가 춤추기 때문이야."
하고 항아리 옆에서 구경하던 거미가 말했다.
"설마!
거짓말이지?"
하고 딩딩이가 물었다.
"아니!
내 영혼이 수십 개가 되어도 다 빼앗길 거야.
그러니까!
영혼을 지키려고 하지 마."
하고 항아리에 앉아있던 파리가 말했다.
"그럼!
안 보면 되잖아."
"장독대에 있는 한 안 볼 수 없어!"
하고 작은 항아리 옆에서 민들레꽃이 말했다.
"무서워!
내 영혼을 빼앗기다니."
딩딩이는 달빛이 비춰오자 무서웠다.
하지만
줄에 묶인 상태라 도망할 수도 없었다.
"이봐!
즐기라고!
즐기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도 안 무서워."
하고 등 뒤에서 새끼쥐 한 마리가 말했다.
"뭐야!
쥐잖아."
딩딩이는 쥐를 잡으라고 한 순이가 생각났다.
"이봐!
달빛이 장독대에 비추는 시간부터는 모두 자유로운 시간이란 걸 알지?
누구도 잡아먹거나 죽이면 안 되는 시간이야."
하고 새끼쥐가 말했다.
"뭐!
자유로운 시간!?"
하고 딩딩이가 묻자
"그래!
달빛이 비추는 시간부터 대왕쥐 춤이 끝나는 시간까지 자유야.
모두 친구가 되어 춤추는 걸 구경하는 시간이라고."
하고 새끼쥐가 말하더니 가장 큰 항아리가 잘 보이는 곳으로 가 앉았다.
달빛!
장독대 위에 달빛이 비추자 크고작은 그림자들이 생겼다.
감나무 가지에 새들도 눈을 크게 뜨고 장독대를 지켜봤다.
다람쥐도 청설모도 숲에서 내려왔다.
"아니!
파랑새도 왔다."
딩딩이는 처마끝에 앉아서 장독대를 바라보는 파랑새를 봤다.
"혹시!
호랑이나 늑대도 내려왔을까?"
하고 딩딩이가 말하자
"여기!
내가 늑대야."
하고 감나무 그림자 밑에서 지켜보던 늑대가 대답했다.
"무서워!
늑대오 오다니."
딩딩이는 무서웠다.
새끼고양이에게는 정말 무서운 밤이었다.
하지만
순이 가족이 잠든 시간에 소리친다고 구해주러 나올 사람들이 아니었다.
보름달이 장독대 한 가운데 떠오르자 대왕쥐가 가장 큰 항아리 위에 나타났다.
"대왕쥐다!"
딩딩이는 처음보는 대왕쥐였다.
"저 녀석이 춤춘다는 거지!"
하고 딩딩이가 말하자
"이봐!
조용히 해."
하고 작은 항아리가 딩딩이를 보고 외쳤다.
대왕쥐는 큰 항아리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큰 항아리 뚜껑 밑으로 긴 꼬리가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
"달빛!
달콤한 금빛!"
빛나는 항아리 위에 선 대왕쥐가 노래를 부르며 춤췄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다니!
무대가 이동하는 것 같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자 장독대 위에 자리한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무대가 착시현상을 일으키다니!
너무 신기하다."
딩딩이는 처음보는 대왕쥐 춤추는 모습이 신기했다.
가끔!
감나무 가지를 붙잡고 춤추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그림자를 붙잡은 것이었다.
달빛이 만들어주는 무대 위 모든 것을 이용할 줄 아는 대왕쥐였다.
"하늘엔 달빛과 천사!
어둠속엔 어둠의 제왕이 숨어 날 지켜보지.
난 두렵지 않아!
어떤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와도 난 두렵지 않아!
달빛만 있으면 춤 출 수 있지.
그림자만 있으면 난 숨을 수 있지.
하늘엔 달빛과 천사!
어둠속엔 어둠의 제왕!
장독대 항아리 위엔 대왕쥐!"
대왕쥐 노래는 장독대를 지나 넓은 들판을 향해 나아갔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다니."
딩딩이는 놀랐다.
동물들이 영혼을 빼앗긴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항아리 위에 올라가 춤추고 싶다."
딩딩이도 대왕쥐 옆에서 춤추고 싶었다.
어쩌면!
딩딩이도 영혼을 빼앗긴 고양이처럼 보였다.
"괜찮아!
영혼을 빼앗겨도 괜찮아!
달빛 붙잡고
항아리 위에서 춤추는 고양이면 충분해.
난!
항아리 위로 올라갈 거야."
하고 말한 딩딩이는 자신도 모르게 대왕쥐가 춤추는 항아리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뭐야!
고양이잖아."
"아니!
저 녀석이 무대에 오르다니.
처음 보는 녀석인데!"
감나무 위에 있던 청설모와 다람쥐는 놀랐다.
장터에서 사왔다는 새끼고양이라는 말을 듣고 더 놀랐다.
"춤 춰봐!
대왕쥐처럼 고양이도 멋지게 춰봐!"
하고 항아리들이 외쳤다.
"대왕쥐와 새끼고양이!
멋지게 춤추는 녀석들!
서로
죽이고 도망치는 관계가 아닌 춤추는 동무!"
항아리 주변에서 대왕쥐와 딩딩이가 춤추는 걸 보던 동물들이 노래 불렀다.
달빛이 환해질수록 대왕쥐의 춤은 더 열정적이었다.
"으악!"
새끼고양이 딩딩이는 항아리 위에서 떨어질 뻔 했다.
대왕쥐는 춤추며 딩딩이를 붙잡았다.
"고마워!"
딩딩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항아리에서 내려왔다.
"와!
대왕쥐가 고양이를 구해주다니."
지켜보던 동물들은 모두 놀랐다.
"어둠!
악마가 숨은 어둠!
달빛!
달빛이 비추면 도망치는 악마!
이 세상은
달빛만 있어도 행복한 세상!"
대왕쥐는 오래오래 춤췄다.
..
"딩딩!
어젯밤에 쥐 안 왔어?"
아침에 장독대에 온 순이가 딩딩에게 물었다.
"딩딩!
왜 대답을 못하는 거야?"
순이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딩딩이는 어젯밤 대왕쥐와 항아리 위에 올라가 춤춘 걸 말할 수 없었다.
"없었어요!
아니
쥐들이 안 왔어요."
하고 딩딩이가 대답하자
"거짓말!
어젯밤에 분명히 대왕쥐가 와서 항아리 위에서 춤추고 놀았을 텐데?"
하고 순이가 묻자
"대왕쥐라니요!
너무 무서워요."
딩딩이는 무서운 척 했다.
"무섭다고!
그럼
방에 들어가 살 거야?"
하고 순이가 묻자
싫어요!
저는 장독대가 좋아요."
하고 딩딩이가 대답했다.
"그럼!
그래야지.
장독대에 나타나는 쥐를 봐야 방에 들어가 살고 싶을 거야.
달빛이 비추는 밤에는 장독대가 너무 멋지거든!"
하고 순이가 말하자
"맞아요!
달빛이 비추는 장독대가 너무 멋졌어요."
하고 딩딩이가 대답했다.
"호호호!
하룻밤만에 그걸 알다니.
이 녀석!
보통 고양이가 아니구나."
하고 순이가 웃으며 말했다.
순이는 딩딩이를 방에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반대로 데려갈 수 없었다.
"미안해!
방으로 데려가지 못해서."
하고 말하자
"전!
장독대에서 사는 게 좋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딩딩이는 가슴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절대로!
장독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밤마다 항아리 위에서 춤추는 대왕쥐를 보고 싶었다.
"딩딩!
더 크면 방으로 데려갈 수 없어.
오늘밤이라도 쥐가 무섭다고 말해.
그러면!
내가 엄마를 졸라서 방으로 데려갈 테니까."
하고 순이가 말했다.
"아니!
저는 죽을 때까지 장독대에서 살 거예요.
그러니
제 걱정은 마세요."
하고 딩딩이가 말했다.
"알았어!"
순이는 밤마다 꼭 안고 잘 생각을 하며 딩딩이를 방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지만 포기해야 했다.
보름달이 뜬 날,
딩딩이는 장독대 항아리에서 대왕쥐를 또 봤다.
오늘은
새끼쥐들도 항아리 무대에 올라와 함께 춤췄다.
"멋지다!"
다리를 길게 세우고 새끼쥐들이 춤추는 걸 봤다.
딩딩이는 항아리 위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새끼쥐들이 무서워할까봐 포기했다.
"딩딩!
항아리 위로 올라 와."
하고 대왕쥐가 딩딩이를 불렀다.
"저요!
저는 그냥 구경할래요."
"아니!
올라와서 여기 서서 춤 춰봐."
하고 대왕쥐가 긴 꼬리를 딩딩이 앞으로 내밀었다.
"와!
꼬리를 타고 무대에 오르다니."
딩딩은 대왕쥐 꼬리를 밟고 항아리 위로 올라가 춤췄다.
"달빛!
바람에 흔들리는 어둠!
딩딩! 딩딩! 딩딩!
항아리속에서 매주가 춤추는 소리!"
장독대에 모인 친구들이 노래불렀다.
달빛이 앞산 너머로 지자
장독대 주변도
고요의 숲으로 변했다.
"잘 자!"
눈을 감고 자려던 딩딩이를 새끼쥐가 꼬리를 흔들며 인사했다.
"잘 자!"
딩딩이도 인사하고 눈을 감았다.
딩딩이 콧수염이 바람에 날렸다.
"야옹! 야옹!
방에서 살 거야?"
하고 순이가 자면서 잠꼬대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딩딩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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