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선하 철수 朝鮮河 撤收
나흘 후, 군영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선하에서 완전히 철군하라는 명령이 금성부에서 내려왔다.
요동반도 대련으로 가라는 것이다.
본래는 대릉하로 옮겨가기로 하였는데, 요동 반도로 곧바로 가라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군과 한바탕 전투를 치룸으로서 자신들의 근황 近況이 적들에게 발각되었으니, 한군의 추격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선박도 준비가 다 되었다.
본시, 조선하를 최종정착지로 정한 것이 아닌 임시 거주지였고, 근래에 적병들이 대공세의 기미를 보이니 미리 철수하자는 계획이다.
그리고 선발대 先發隊가 요동 반도에 이미 거처를 정해 두었다는 것이다.
선승 포구는 난하 하류로 하였다.
조선하의 하류는 언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지 모를 쌍방간이 대치하고 있는 일촉즉발 一觸卽發의 위험지역이라, 안전한 난하의 포구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열흘 후, 난하 포구에서 한준은 모용 사부, 향기와 함께 범선에 올랐다.
그동안 해천 백 부장과 중부 등 실종한 아군을 여러모로 찾아보았으나, 흔적이 묘연 杳然하다.
전사자 戰死者를 일일이 모두 재확인하였으나, 해천을 비롯한 10여 명의 아군 행적은 오리무중 五里霧中이다.
강을 건너 기습하였다가 도리어 적에게 포로로 잡혀있다가, 다행히 구출된 아군 병사들도 ‘어둠 속에서 화살을 맞고 적과 싸우느라, 다른 동료의 행방은 모른다’는 말뿐이다.
전투 중에 죽지 않은 것은 확실한데 실종 失踪 상태다.
3년 동안 지내 온, 조선하와 옥전의 박달촌을 떠난다니, 더구나 친구의 생사도 모른 채 떠나가려니 마음이 무겁다.
동방 향기의 표정은 침울하고, 한 준의 마음은 어둡다.
난하 포구를 출항하면서 강변을 바라보니, 다른 군영 軍營들이 보였다.
질서정연하게 보이는 것이 군세가 엄격해 보인다.
부여의 정규군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 들어 안도감이 들었다.
산동의 동이족들은 그렇게 조선하와 요서 지역에서 대부분 철수하였다.
한 시진 가령 서쪽으로 운항 運航하니 바닷가에 커다란 성문이 보인다.
‘天下第一關 천하제일관’ 이란 현판이 멀리서도 보인다.
‘山海關 산해관’이다.
진황도 秦皇島에 자리 잡은 산해관이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산해관이라고 작명하였다.
만리장성의 동단 東端이다
만리장성의 시작점이자 동쪽의 끝이다.
서북쪽에서 시작된 연산산맥이 남동 방향으로 길게 뻗어내려 바다까지 이어진다.
연산산맥의 산줄기를 따라 장성을 축조한 것이다.
위맹스러운 흉노족과 강맹한 조선의 동이족들에게 ‘여기가 국경이고 경계선이다’라고 호소하는 듯하다.
그러니 더 이상 넘어 오지 말라는 뜻이다.
난하(당시에는 요하라 칭함)하류에서 여기까지가 당시에는 요동군이다.
난하 동쪽의 해변가 약 200리 까지가 한의 최대영역이었으며, 이곳을 요동군으로 불렸다.
산해관에서 시작된 우람한 성벽이 산의 정상을 타고 서북 방향으로 길게 길게 이어져 있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한 시진을 더 가니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험준한 산들이 보인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 연산산맥이다.
연산산맥의 남쪽 바다를 범선을 타고 지나고 있었다.
멀리 소릉하를 바라보며 항해하여, 하루 만에 조선만 朝鮮灣 즉, 한서만 韓西灣(현재의 요동반도)의 대련 항구로 입항하였다.
모두 배에서 내릴 채비를 하고, 갑판 甲板으로 나왔다.
그런데 먼저 와서 포구에 기다리던 지휘관 산동대군 김유가 하선 下船을 못 하게 한다.
커다란 붉은 깃발을 양쪽에서 흔들고 있다.
항구에 들어서려다 중지하고 만 灣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작은 쪽배가 범선에 다가오더니 대릉하로 다시 되돌아가라고 한다.
오백 부장 위지율이 앞에 나서
“이유를 설명하시오” 큰 소리로 물어보니.
“그 사유는 대릉하로 가면 밝혀질 것이오” 라고 쪽배의 책임자인 듯한, 장검을 찬 중년인이 답변한다.
* 지도 - 발해만(대릉하와 대련)
10. 고구려 高句麗의 진격
이유는 나중에 말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20여 척이나 되는 대형 선박들이 뱃머리를 다시 북쪽으로 되돌린다.
밤새워 운항하여 대릉하로 입항하였다.
아침에 배 위에서 바라보니 서쪽에 또 작은 강이 나타난다.
소릉하 小凌河다.
소릉하와 대릉하 사이에 낮은 구릉이 보이고 번잡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금주 錦州다.
모두들 대릉하에서 하선하여 금주로 이동하였다.
금주는 양쪽에 강을 끼고 있어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그만이다.
또, 해변 근처라 갖가지 해산물들이 다양하다.
금성부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련으로 바로 가지 않고 왜 이곳으로 왔느냐고 추궁한다.
모두 할 말이 없다.
오후에 산동대군이 다섯 척의 중형 선박에 이주민 500여 명을 태우고 대릉하로 재입항하였다.
산동대군은 석 달 전에 출항하여 요동반도로 입항하였다가 다시 대릉하로 돌아온 것이다.
금성부에 들어 온 산동대군. 금성부주 김성한에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설명한다.
사연인즉 요동반도 대련에 입항하여 이주민들의 임시거처를 알아보는 도중 예기치 못한 걸림돌을 만났다는 이야기다.
고구려가 갑자기 엄청나게 세를 부풀려 요동반도를 거의 점령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벌써 대련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선하의 이주민이 요동반도로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렸다가 먼저 돌려 보내고, 이제 돌아왔다는 것이다.
실은 왕망이 실권을 잡고 황제로 있을 시, 고구려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가 적대시 敵對視하였다.
부여와는 큰 다툼이 없었는데, 고구려의 고주몽 추모왕은 졸본부여를 고구려로 국호를 바꾸고는 신 나라에 조공은 물론 인사조차 없었다.
왕망은 몇 번이나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회유를 꾀하였으나, 주몽 왕은 아무런 대구도 없이 묵살 默殺하고 있었다.
아니, 점차 대륙 중원을 향하여 서진 西進하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왕망은 ‘고구려’ 高句麗를 ‘하구려’ 下句麗라고 국명 國名을 비하 卑下시켜 불렸다.
신나라 황제 왕망은 고구려의 ‘다물’이라는 국시 國是 그 자체가 귀에 거슬렸다.
그러니 황제 왕망의 표현 자체가 비천하고 적대감이 묻어난다.
주몽 왕 역시 자신의 성씨가 단군의 적통자를 의미하는 높디높은 고 씨 高氏인데 이를 하대하니까 이전보다 더 뻣뻣하게 신나라를 상대하였다.
고구려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고구려의 국시 國是가 ‘다물’ 多勿이다.
추모왕은 졸본부여의 국호 國號를 고구려로 바꾸고, 고구려 초대 왕으로 등극할 때 용상에서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분명히 선언하였다.
“다물을 국시로 한다”
‘조선의 고토를 되찾는다’라는 자신에 가득 찬 진취적인 추모왕의 발언에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감복하고 왕을 지지하였다.
이는 졸본부여가 지금까지 답습해온 구태의연 舊態依然한 정주 定住의 틀에서 벗어나, ‘영토를 확장 擴張 시키겠다’는 건국 建國의 이념을 나타낸 표현이다.
드디어 우리 유목민들의 특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영도할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모두들 기뻐하고 찬양하였다.
그리고 추모왕은 약속한 바, 그대로 주변의 동이족 부족들을 하나하나 통합시켜 나갔다.
‘다물’은 고조선의 옛 영토를 되찾는다는 뜻인데, 당시 그 영토의 대부분은 영정하와 황하, 산동성인데, 그 지역은 한나라의 후신 後身인 신나라가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니 고구려 입장에서는 서방 西方의 신나라는 ‘허 허’거리며 우호적으로 지낼 나라가 아니라 공격해야 할 대상이다.
포부가 거대한 추모왕은 내심 內心, 신 新이나 한 漢나라를 하나의 큰 사냥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서로의 생각이 이토록 다르니, 쌍방간에 표출되는 언행도 갈수록 거칠어진다.
자연스레 양국 간의 사이가 악화 惡化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고구려가 단군조선에서 이탈했던 주변국들을 재통합시키면서 급속도로 국력이 강성해져 요동반도 전체를 접수하였다는 것이다.
고구려 제 2대 유리왕 31년.
신 新의 왕망과 싸워 요서태수 遼西太守를 죽이다.
-삼국유사.
뒤이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왕망의 전격적인 대반격으로 유리왕은 요동벌 전장에서 장렬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이처럼 칼과 창을 휘두르며, 서로간 적대시하는 양국간이었다.
현재 대릉하와 요동반도의 이주민들 대부분은 왕망의 최측근들인데 이를 안다면, 유리왕의 장남인 고구려의 제 3대 왕 테무진(大武神)왕이 가만두겠냐는 것이다.
왕망과 그 측근들은 선왕 先王을 해친, -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같이 살아갈 수 없는 - 불구대천지수 不俱戴天之讎의 원수들이다.
고구려 테무진왕은 이를 갈며 와신상담 臥薪嘗膽하며, 복수할 날만 학수고대 鶴首苦待하고 벼루고 있는 입장이다.
더구나, 테무진 왕은 부친 유리왕의 우유부단 優柔不斷한 심성 心性을 닮지 않았고, 거대한 포부를 거칠게 펼치던 조부 주몽의 활달한 기개 氣槪를 빼닮았다.
그 기개에 못지않게 덩치와 용력 勇力도 크고 웅혼 雄渾하여, 전장 戰場 곳곳에서 대단한 위용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위맹한 기세에 눌려, 이웃의 뭇 종족과 많은 부족들은 감히 항거 抗拒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구려에 말없이 조용히 하나, 둘씩 복속 服屬되고 있는 주변 상황이었다.
그래서 산동대군 김유도 감히, 자신들의 출신 지역이나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황망히 대릉하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젠 사면초가 四面楚歌다.
서한동려 남해북악 西漢東麗 南海北岳이다.
서쪽에서는 한군의 추격병들이 따라오고, 동쪽에서는 신나라에 앙심을 품고 있는 고구려군이 철기군을 앞세워 서진하며 다가오고 있다.
지리적으로 남쪽은 바다고, 북쪽은 험준한 산과 강이다.
이제 이곳 대릉하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불안하다.
하루바삐 이 위험스러운 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한준은 장영 백 부장을 통하여 이틀 후,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중부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할 말이 없다.
중부 모친은 3년 만에 만난, 반가운 아들 친구에게 중부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이슬비도 오빠의 소식이 궁금한지, 동그란 눈을 크게 치뜨고, 한준의 메마른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준은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다.
다음날 한준은 금성부로 부름을 받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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