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니항 주꾸미와 백사장항 게국지
주꾸미 샤부샤부와 게국지. 둘 중 어느 음식이 여행자들의 입맛을 더 강하게 사로잡을까? 그 답이 궁금하다면 충남 태안으로 달려가보자. 남면 드르니항에서는 주꾸미 샤부샤부가, 안면도 백사장항에서는 게국지가 여행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 두 항구를 하나로 이어주는 해상인도교가 등장, 태안 여행의 새 명소로 부상했다.
드르니항, 10년 전만 해도 신온항으로 불려
천수만 방조제 드라이브를 즐기고 태안군 남면으로 들어가서 안면도로 건너기 직전 ‘드르니항’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나온다. ‘이름이 독특한데?’라는 생각으로 그 길을 따라가면 작은 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보기에 외국어가 아닐까도 싶지만 ‘드르니항’이라는 이름은 ‘들르다’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신온항이라는 한자어로 불리다가 2003년 이후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백사장항과 마주보고 있는 드르니항은 규모가 작은 한적한 포구다. 드르니항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청포대, 달산포, 몽산포까지 ‘솔모랫길’이란 이름이 붙은 해안 트래킹 코스가 이어진다. 서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대로 품고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경비행기들이 곡예비행을 하는 이국적인 모습도 시시때때로 펼쳐진다.
드르니항의 한가로운 풍경.
작은 포구지만 근처에 새우 양식장이 있어 드르니항은 먹거리가 풍부하다. 배들이 몇 척 정박해 있는 항구 주변에서 어부 한 사람이 소라 껍데기가 매달린 어망을 손질한다. 그런 어망은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묻자 주꾸미잡이용 어망이라고 한다. 주꾸미가 산란을 하러 소라 껍데기로 들어가면 어부들이 그 소라 껍데기를 건져 올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봄에 많이 잡히는 것으로 알았지만 요즘은 겨울에도 심심찮게 잡힌다고 한다.
주꾸미삼겹살구이, 주꾸미볶음, 샤부샤부 등 주꾸미는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여행자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준다. 여러 가지 음식 중에서도 식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샤부샤부가 정답이다. 육수냄비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맹렬하게 꿈틀거리는 주꾸미의 강한 생명력이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무와 다시마, 대파, 명주조개를 넣고 끓인 육수에 수족관에서 막 건져 올린 주꾸미를 통째로 집어넣는다. 녀석은 끓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거무스레한 빛깔에서 붉은색으로 변한다. 색깔이 변하면 머리와 다리를 분리한다. 머리는 끓는 물에 더 익히고 다리는 살짝 익혀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한다고 식당 주인이 설명한다. 머리를 터뜨리면 먹물 때문에 국물이 온통 검게 변하고 만다. 담백한 주꾸미 다리가 달콤한 맛을 내면서 입을 즐겁게 한다. 내장이 들어 있는 머리 부분은 푹 익혀서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을 낸다.
주꾸미를 건져 먹는 사이사이 국물 속에서 입을 크게 벌린 명주조개를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지역 어민들은 해방조개라 부르기도 한다. 해방을 맞던 해 유난히 많이 먹었다고 해서 해방조개란다. 끓는 물에 익는 동안 점차 노란빛을 진하게 띠는 명주조개는 빛깔도 예쁘거니와 맛도 달콤하다. 연한 조갯살을 오물오물 씹으면 목구멍으로 언제 넘어갔는지 알 수 없다.
주꾸미 샤부샤부 맛에 푹 빠졌다가 식당 밖으로 나와 겨울바람을 맞으며 해상인도교로 향한다. 이곳 드르니항과 바다 건너편 백사장항은 500여 m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다. 2013년 11월 8일 해상인도교가 완공됨으로써 두 항구가 하나로 이어져 왕래하기가 편해졌다. 이로써 태안군 남면과 안면도를 이어주는 교량은 기존의 안면대교와 안면연육교에 이어 3개로 늘어났다. ‘대하랑꽃게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다리는 태안의 특산물인 대하와 꽃게를 테마로 조성됐다. 사람만 걸어서 건너고 차량 통행은 불가능하다.
백사장항에서 본 해상인도교. 해가 지면 야간 조명 쇼가 펼쳐진다.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가는 진입로가 항구 양쪽에 설치돼 있다. 순수 사장교 형태의 교량은 길이 250m다. 교량 중간 지점에 조향 장치를 만들어 누구든지 배의 선장이 된 기분을 맛보고, 양옆 바닥에는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을 깔아 바다를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시선을 들어 서쪽을 바라보면 망망한 서해가 펼쳐진다. 바로 앞에 떠 있는 섬은 갈마섬이고, 내처 달리면 중국 땅에 닿을 듯하다. 교량 한가운데에서 서해를 향하고 섰을 때 왼편으로는 백사장해수욕장, 오른편으로는 곰섬 일대가 보인다. 이 해상인도교는 태안군의 새로운 낙조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해가 지면 부산 광안대교, 여수 돌산대교처럼 야간 조명 쇼가 펼쳐진다.
백사장항의 최신 별미, 게국지
백사장항은 안면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항구다. 포구로 이어지는 진입로에서부터 횟집과 수산물 판매센터 등이 즐비하다. 요즘 이곳 식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메뉴는 게국지다. 겟국지, 겟꾹지, 깨꾹지 등으로 불리는 게국지는 본래 게장 국물이나 해산물 국물을 넣은 김치를 뜻한다. 그러던 것이 먹거리가 다양해진 요즘에 와서는 게국에 담근 김치나 우거지를 이용한 찌개로 변모했다.
해산물이 풍부한 태안반도에서는 예부터 게장을 담가 먹었다. 그 게장에서 건더기를 건져 먹은 후 남은 국물은 보관해두었다가 갯벌에서 잡은 농게 등을 더 넣어서 다시 게장을 만들었다. 꽃게와 농게 등으로 여러 차례 게장을 담근 국물 속에는 단백질과 무기질이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이 국물은 맛과 영양이 풍부한 겟국으로 탄생했고, 겟국은 다시 김장을 담글 때 양념으로 이용됐다.
겟국과 호박을 넣고 아무렇게나 버무린 김장김치를 태안 지역에서는 게국지라 불렀다. 어느 정도 익어 맛이 들면 국처럼 끓여 먹었는데, 겟국의 짠맛과 호박의 달큰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태안의 토속음식인 게국지다. 어려웠던 시절 국물 한 방울까지 알뜰히 사용했던 조리법이 게국지 탄생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이제는 맛도 맛이지만 어려운 시절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백사장항에서 맛보는 게국지는 본래의 토속 음식과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조리법도 진화하는 것일까. 백사장항의 게국지는 묵은지 찌개에 꽃게, 대하, 호박고구마를 넣어 끓인 일종의 해물탕이라 할 수 있다. 멸치와 파뿌리를 끓인 물에 묵은지와 팽이버섯, 안면도 호박고구마와 꽃게를 넣은 탕이다. 잘 익은 김장 김치의 진한 국물과 꽃게의 달콤한 맛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밥 한 그릇을 어느새 비웠는지 모를 정도로 국물이 진국이다. 배가 불러 수저를 내려놓았다가도 아쉬운 마음에 다시 수저를 국물 속으로 밀어 넣기 일쑤다.
발길을 붙잡는 백사장항의 꽃게 튀김과 새우 튀김. 고소한 간식거리에 군침이 절로 돈다.
해상인도교를 산책하고 백사장항을 구경하다 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이럴 때 수북하게 쌓인 대하 튀김, 꽃게 튀김, 호박고구마 튀김 등 고소한 간식거리가 군침 돌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