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大麻) 길쌈하기
삼 톱 / 입(이)으로 삼 실 찢기 / 비벼서 삼 실 잇기
<2> 삼 삼기
천장에 매달린 삼단에서 한 모숨을 풀어내어 우선 물에 담가 불린다. 잘 불은 후, 묶었던 머리 부분을 판대기 위에 놓고 삼 톱으로 죽죽 훑어 깨끗이 한 후 한 올씩 잡아 손가락으로 8자 모양으로 절어서 놓고 한 가닥씩 뽑아 삼기도 하고, 사진처럼 막대기에 널어놓고 한 가닥씩 뽑아 삼기도 한다. 입으로 삼을 물고 이빨로 가늘게 세로로 찢어서는 끝부분을 두 갈래로 만들어 두 실을 맞댄 후 침을 묻혀 무릎에 대고 썩 문질러 비벼 이어서는 쳇바퀴나 광주리에 서리서리 담는다. 따라서 옛 여인네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빨이 성하지 못하고 무릎 피부도 거칠었다.
솜씨가 재빠른 아낙네들은 금세 한 쳇바퀴를 채우지만 느린 사람은 부지하세월이고 삼을 삼다가 침을 흘리며 끄덕끄덕 졸기도 해서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소리 없이 웃고는 했다.
예전, 무명실이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집에서 만든 삼 실로 모든 바느질을 했다고 한다.
옛날 우스갯소리에, 솜씨 없기로 소문난 부부가 살았는데.....
아낙은 아랫목에서 삼을 삼고 사내는 윗목에서 새끼를 꼬는데 사내가 건너다보니 마누라는 삼을 삼는다는 게 눈을 게슴츠레 반은 감고 침을 흘리며 끄덕끄덕 졸고 있다.
사내도 솜씨 없기는 마찬가지였는지 혀를 차며 한다는 말이
‘어이구 빌어먹을 년, 내 새끼 꼬리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저년을 후려쳤을 텐데....’
얼마나 솜씨가 없었으면 저녁내 꼰 새끼줄이 마누라 앉은 데까지 자라가지도 못했을까?
<3> 삼실 손질하기
물레질은 삼아놓은 삼을 물레로 꼬아서 가락에 감는 작업인데 비로소 실의 형태가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물레를 돌리면 나는 뒤에 앉아 물레가락에다 종이를 꽂아 놓고 바람개비처럼 도는 것을 보며 싫증 모르고 놀던 생각이 난다. 베를 날 때는 구멍이 열 개 뚫린 날틀을 놓고 구멍으로 나온 실을 올과 올이 엇갈리도록 새를 만든다. 마당에 삼베 꽂이 막대를 여러 개 박아 놓고 왔다 갔다 하며 정해진 길이를 만드는데 열 올씩 여덟 번을 왕복하면 한 새, 즉 80올이 되고....
베 날기 / 돌개(활개)질 하기 / 풀 메기기
이 새(昇)의 숫자로 삼베의 곱기가 결정되는데 여덟 새(8昇)를 하려면 걸 틀과 날틀 사이를 32회 왕복하며 막대에 걸어야 하는데 그러면 640올(줄)이 된다. 다음은 색깔을 곱게 하고 실을 부드럽게 하려고 잿물에 담가 놓는데 이틀쯤 돌을 눌러 담갔다가 흐르는 개울물에 여러 번 헹궈내서 말린 다음 돌개(활개)에 걸어 놓고 다시 내려야 한다.
열십자로 나무를 박아 크게 만든 돌개(활개)에 실을 걸어 빙글빙글 돌리면서 실을 한 올씩 내리는데 사람들이 팔다리를 벌리고 자면 ‘네 활개를 펴고 잔다.’, 거리를 팔을 휘저으며 걸으면 ‘활개 짓을 한다.’라는 말이 이 활개에서 나온 말인 듯.
나중에 베틀을 놓고 짤 때 씨줄이 되는 것은 꾸리로 절어서 북 속에 넣게 되고, 날줄은 여러 과정(이기기<잿물>, 내리기, 날기, 풀 메기기<매기/치자물> 등등)을 거치고 바디에 꿴 다음 도투마리에 감게 된다.
바디(저 구멍에 실을 꿴다) / 바디 집(바디를 고정) / 북(씨줄)을 넣는 통
도투마리에 감기 전에 바디에 실을 꿰게 되는데 몇 새 바디에 꿰느냐에 따라 삼베의 품질이 달라진다.
엿새(6昇)가 보통이고 고운 것은 아홉새(9昇)도 있는데 우리 어머니는 솜씨가 좋으셔서 아홉새까지 하셨다.
엿새 삼베보다 아홉새 삼베가 훨씬 더 곱고 따라서 비싸진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홉새를 하려면 실이 너무 가늘어서 눈이 아물거리고 잘 끊어져서 다시 잇느라고 머리가 한 모숨은 센다(흰다)고 하셨던 것을 보면 무척이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도투마리 가운데 부분에다 한 필 분량의 실을 감아 베틀에 올려놓고 짜게 되는데 옛말에 ‘도투마리 잘라 넉가래 만들기’라는 말이 있는데 아주 쉬운 일을 말한다. 도투마리의 모양이 한쪽을 자르면 영락없는 넉가래 모양으로 자루만 달면 되는 것이다.
1953년에 대중가수 박재홍이 부른 ‘물방아 도는 내력’의 가사 중에 ‘낮에는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는 완전히 웃기는 넌센스다. 아마도 밭에 나가 김을 맨다는 의미인 모양인데 그러면 길쌈 대신 ‘기심’을 맨다면 모를까... 기심은 ‘김(잡초)’의 고어(古語)로 옛 문헌에 ‘기심매다’로 나타나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지금도 ‘김을 매다(잡초를 뽑는다)’를 ‘기심 매다’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삼베가 그다지 비싸지 않았지만,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엄청난 고가로 거래되는데 값싼 중국산이 많이 수입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돌아가신 분이 입고 가는 수의(壽衣)나 자손들이 입는 상복(喪服)은 반드시 삼베로 하는 것이 관례인데 아직도 일부 지방에서는 옛 풍습을 고집하는 곳이 있는 것 같다.
요새는 간소화되어 상주(喪主)도 삼베 건(巾)과 삼베 행전(行纏) 정도만 하거나 아예 조그만 삼베 리본, 혹은 삼베로 만든 완장(腕章)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행전(行纏)>은 예전에 발목과 정강이를 감싸던 천으로, 각반(脚絆)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