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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25.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본 문 : 창세기 32 : 24 - 32
제 목 : 얍복강 나루의 결단의 기도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물 붓듯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얍복강 나루의 결단의 기도 라는 주제로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 함께 얍복강 나루의 결단의 기도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을 보면 야곱이 에서의 진노를 피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을 간 후 그곳 하란에서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오는 내용입니다.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올 때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겠습니까마는 야곱의 심정은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야곱의 나이 이미 97세가 되었고 157세나 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형 에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야곱에게 복수해야 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와 동행하는 무리들을 모두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홀로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웬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야곱과 힘겨루기를 합니다. 성경에는 씨름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 되는 지경에 이르도록 끈질긴 사투 끝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고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을 뵈온 곳이라고 하여 브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 받는 과정과, 변화된 후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자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축복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의 영혼을 만족하게 채워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시107:9)
(시81:10)“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주시며,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야곱은 얍복강에서 끈질기게 축복을 간구 하면서 결투를 하듯이 매달리니까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 야곱과 같이 변화 받고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1.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야곱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돌아올 때 그의 나이가 97세였습니다.
(1) 야곱은 지금까지 거짓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에도 에서가 먼저 태어나는 것이 못마땅 한듯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장남에게 모든 특권이 부여되었고 차남부터는 아무런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동생으로 태어난 냉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자기의 운명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 에게 죽 한 그릇을 가지고 유혹하여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또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에게 돌아갈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가로채었습니다. 이런 야곱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가정에도 평화가 깨지고 온 가족 모두가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평소에 대범하던 형 에서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동생 야곱을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야곱은 더 이상 가정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속이고 남에게 고통을 준 야곱에게, 남에게 속고 고통을 당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열 번이나 속아서 품삯을 받지 못했습니다.
후에는 아들들에게 속아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는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야곱의 마음은 언제나 죄의식 때문에 늘 괴로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 곁을 떠난 타향에서의 20년은 고독과 향수병으로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 하늘을 쳐다보아야만 할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떠날 때 빈손으로 갔으나 이제 돌아 올 때는 많은 가족과 골짜기를 메울 만큼의 큰 가축 떼를 몰고 오는 축복을 의식할 때 야곱의 감회는 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야곱은 부르짖기를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창32:11) 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2) 야곱은 지금까지 오르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떠난 야곱의 생활은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들보심이 없었더라면 한순간도 살 수 없었던 생활이었습니다. 그가 루스 광야에서 추위와 고독과 외로움에 떨며 홀로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주셨고 그의 앞날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한순간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도 14년은 아내를 얻기 위해서, 나머지 6년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큰 떼를 이루었으나 야곱은 그 중 한 마리 양도 하나님을 위해서 번제로 드린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생명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자신만을 위해서 온갖 욕심을 다 부리며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인색하게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말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행함의 열매가 없이 바리새인들과 같이 형식과 외식으로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새생명교회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나간 세월은 그렇게 살아왔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지난날의 잘못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살아온 모든 허물과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새롭게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요! 하나님이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하심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더욱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한 서원도 잊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일찍이 20년 전 야곱이 에서의 낯을 피하여 하란 땅 외삼촌의 집으로 가다가 루스 광야에서 노숙을 할 때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께 약속을 하였습니다. (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 시간에 철저히 회개하고 믿음생활 바로 시작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또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2:16) 고도 하셨습니다.
2. 야곱은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와 기도의 결투를 하여 잃었던 믿음을 회복하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얍복강 나루에서 밤을 지새우는 야곱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 그립던 부모 형제를 찾아오고 있었지만 야곱의 마음은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형 에서의 마음이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직까지 풀리지를 않아서 야곱을 향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처자들과 종들과 모든 가축 떼를 앞서 보내고 얍복강 나루에 홀로 앉아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거룩한 환경과 사람을 통하여 그 영혼이 회복되며 더욱 성숙된 신앙 생활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고통의 삶, 즉 주님이 만지시는 강건의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그냥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삶을 사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서도 많이 있었던 일들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로 이 시험을 통하여 인내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야고보서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시험을 통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소명을 주십니다. 오늘 야곱에게도 주님이 찾아 오셔서 말씀하고 있고 결투를 벌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마치 20년 전 집을 떠나 루스 광야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하나님을 뵈온 것처럼 20년이 지난 지금 야곱은 그 하나님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결코 야곱을 잊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야곱이 외로울 때,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고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신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이 야곱과 같이 환난과 고통과 위기에 빠졌을 때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확신과 소망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야곱은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고 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 이라는 뜻입니다.
천사와의 밤을 새운 씨름은 곧 야곱의 기도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 선지자가가 갈멜산에서 기도의 결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야곱의 기도를 통해 축복의 비결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 하나님과 일 대 일의 기도였습니다.
야곱은 모든 종과 소유를 얍복강 건너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도 강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홀로 남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24절). 즉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앞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가족이나 소유와 작별하였던 것입니다. 실로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는 어떤 가족도, 어떤 재산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일대 일 관계 속에서 본인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곱이 생명을 건 기도 못지아니한 기도를 드린 실례가 있는데 이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입니다. 아들이 없는 한나는 생명을 걸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으로 옥동자를 주셔서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고 그 사무엘은 어릴 때 하나님의 성전에서 새벽 미명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나라의 前代未聞의 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2) 한밤을 꼬박 지새운 철야 기도였습니다.
어둠이 깔릴 무렵에 시작된 야곱의 기도는 새벽녘이 되어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26절). 실로 야곱은 한밤을 꼬박 새워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그는 날이 밝도록 기도를 중단하지 않은 채 끝까지 하나님의 천사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천사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 조차도 지치게 할 정도로 간절하고 끈질기게 매달린 기도가 마침내 하나님을 감동케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이와 같이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눅18:1절 말씀에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에 보면 사도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 옥에 갇히고, 베드로도 투옥을 당했을 때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락방에서는 여인들이 중심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지도자들은 잡혀갔거나 또 는 핍박 때문에 피신하여서 없었고 수장되는 베드로가 잡혀갔으니 이제는 교회는 이것으로 마지막이 되는구나 하는 위기감이 가득 차서 그들은 그야말로 死生決斷의 기도를 했더니 밤중에 천사가 베드로를 인도하여서 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행12:1-10) 그래서 밤중에 마가의 집에 와보니 그들은 베드로를 위하여서 열심히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강권적이며 능력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와 같은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약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응답을 받되 진실되고 진실된 우리의 마음을 최선을 다할 때 놀라운 구속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될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그러면 야곱이 어떻게 변화가 되고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1) 야곱은 지난날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회개하였습니다.
얍복 강변에서 야곱은 모든 가족들을 먼저 건너가게 하고, 소와 양떼들을 건너보내고, 자기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봅니다. 그렇게도 다투기 좋아하던 야곱은 이제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일생에 범한 모든 죄를 여기에서 자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6:23) 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이 지났으나 자기가 범한 죄를 에서가 잊어버리고 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의 생각은 어떻든 간에 야곱의 죄는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섭게 되살아난 것입니다. 분명한 진리는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정녕 찾아낸다는 사실입니다. 땅에 씨를 심으면 때가 되어 싹이 나듯, 죄를 심으면 때가 되면 죄 값이 반드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를 가슴속에 깊숙이 숨겨 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자기 양심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야곱은 우양과 처자를 먼저 강을 건너보내고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필사적으로 씨름을 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야곱 자신도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정체는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할 때 "야곱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이 속이는 자, 사기꾼이란 뜻입니다. 결국 야곱은 스스로 자신이 속이는 자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2) 야곱은 결사적으로 축복 받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4절을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끈질긴 믿음입니까? 이와 같은 끈기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 고 하셨고 (막13;13) “나중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이와 같은 끈기가 부족합니다. 기도를 조금 하다가는 금방 중단합니다. 신앙생활도 끈기가 없습니다. 변질이 잘됩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축복 받을 때까지 야곱과 같이 결사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 환도뼈가 위골 되어서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5절에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최후의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던 환도뼈를 쳐서 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허약한 절뚝발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능력과 축복으로 채워 주신 줄로 믿습니다.<아 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을 때 그가 의지하는 환도뼈를 치시는데 건강의 환도뼈, 물질의 환도뼈, 사업의 환도뼈, 지식의 환도뼈를 쳐서 깨뜨리십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과,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을 받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환도뼈를 치시고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연단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지금 어떤 고통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환도뼈를 하나님이 치시는 것을 깨닫고 빨리 회개하여야 합니다.
(4)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천사와 씨름한 야곱은 그 날부터 생활이 변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는 들어 왔으나 얍복 강변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의 생활이 변화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관념적으로 알던 하나님, 지식적으로 알던 하나님을 이제는 직접 그 눈으로 보았고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체험의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야곱은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습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보았다고 하는 증거는 참으로 놀라운 간증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만나 보았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뵙는 길이 곧 하나님을 만나 뵙는 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4:9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야곱이라는 옛 사람이 신령한 씨름을 통해서 환도뼈가 꺾여 지듯이 내 육정과 고집과 의지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꺾이어 져서 진정한 브니엘의 체험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야곱은 얍복강을 건넜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서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에게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야곱은 새로워졌습니다. 겸손해 졌습니다. 이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만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얍복강 나루에서 브니엘의 체험을 한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장자의 기업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이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뜻은 속인다는 뜻이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승리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힘써 주시겠다. 하나님이 싸워 주시겠다. 하나님이 거느려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면, 이삭은 인내와 순종의 조상이요, 야곱은 승리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얍복강을 건너기 이전입니까? 아니면 강변입니까? 얍복강을 건너 변화된 후 입니까? 오늘 우리 새생명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브니엘의 체험을 한 것처럼 모두 얍복강을 건너 하나님을 만나는 브니엘의 체험을 하여 새사람이 되어서 불확실성의 이 시대를 살아 갈 때에 이스라엘의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하나님이 싸워 주시고 거느려 주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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