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의 묘는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5-1번지에 있다. 역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곳이다. 신사임당과 이원수의 묘가 있고, 그 위에 장남 이선의 묘가 있다. 다시 그 위에 율곡 이이의 묘가 있고 그 뒷편에 부인 노씨의 묘가 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이러한 역장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역장의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영 정조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문제시하였고 이를 방지하는 조치들이 등장한 것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이른바 금수저의 딸로 태어나 남부러울것 없이 살았으나, 단지 명이 짧았던 것이 흠이다. 반면에 아버지 이원수는 능력도 재산도 별로 없는 남자였기에 처가집에 얹혀사는 신세였다. 부인이 죽은 후 첩을 들였으나, 자식들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율곡의 묘가 명당이다 아니다 약간의 논란이 있는데,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한 측면이 있다. 바로 선입견을 바탕으로 유명인이니 좋은 곳에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한 결과라 생각된다. 한마디로 신사임당과 율곡이라는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용맥과 혈을 중심에 놓고 사격과 물길 그리고 좌향은 다음인데,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