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정말 구름 위에 있었어
“엄마가 명동 성당 앞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몸이 둥실 떠올라서 구름 위를 걷는 거 같더라니까.
엄마가 진짜 구름 위를 걷고 있었어.
그때 알았어.
하느님은 나를 보고 계셨구나.
그래, 어디 한번 이것도 이겨내 보자.”
어머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잘 몰랐다.
‘어머님은 거짓이 없는 분이시니 분명 경험하신 것일 텐데,
어찌 사람이 공중에 뜰 수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막중한 삶의 무게가 어머님의 몸을 짓누르던 그날,
‘믿음이 주는 마음의 해결책을 찾으셨구나.’하고 이해하려는데, 다시금 강조하셨다.
“엄마는 정말 구름 위에 있었어.”
누구나 어깨에 짐이 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고통을 겪으셨듯, 견디기 벅찬 인생의 숙제가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
시집와서 어머님이 이끄시는 대로, 처음으로 교리 수업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부족한 나를 딸처럼 아껴주시는 어머님이 감사해서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절실함도 없는 채 그렇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말씀을 듣다 보면 좋은 이야기인 것 같고,
묵주가 아름다워서 나는 성당에 다닌다고 말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은 이어갈 수 없었고,
욕심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내 안에 가득 찬 슬픔과 분노를 발견하게 되었다.
성당을 다시 찾은 건, 코로나가 막 시작되려던 시기였다.
큰아이의 학교 친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때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의 뜻밖의 소식은 충격이었다.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슬픔은 찾아오는구나.
아픔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구나.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구나.
다행히 하느님은 우리 가족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큰아이의 친구는 회복 하여 학교에 잘 다니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곳에 계셨다.
더 절실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고 계셨을 뿐,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내가 견뎌낼 것을 기다리시는 것이었다.
코로나를 거치며 신랑은 실직을 하고 아이는 아팠고 마음이 병든 나를 발견했다.
소득이 없던 지난 몇 년간의 삶은 고난과 혼란의 시기였지만, 세상에 대한 눈을 뜬 시기이기도 했다.
집집마다 사연이 없는 집이 없고,
말하지 않는 것은 아무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할 수 없기 때문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고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머님 말씀이 이거였구나.
믿음을 가지라는 의미가,
살아가면 하느님께 의지할 날이 올 것이라는 의미가…….
고해성사를 하던 지난 겨울,
가장 사랑받았어야 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가장 사랑했어야 할 사람을 미워했음을 고백하며,
그밖에 말할 수 없었던 잘못을 마음으로 토해냈다.
평생을, 내가 모자라서 무언가 잘못해서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주신 보속을 하다 보니, 그냥 그런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 속에 내가 있었던 것뿐이었다.
누군가와 화해하기에 앞서, 나와 화해해야 했다.
그날의 영성체가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 왼쪽 가슴은 불이 붙었다.
작은 불씨가 가슴 깊이 박혀 있던 차가운 눈물을 녹이기 시작했다.
불씨가 활활 타올라 뜨거웠지만, 나는 화상을 입지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 얼어 붙게 만든 고통이 녹았을 뿐이다.
용광로처럼 녹고 불이 붙은 내 심장은 정말 뜨거웠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그렇게 나를 보고 계셨다.
뭐가 되었건 맞서 보자.
이것이 끝나면 또 다른 시련을 주실 테니, 또 견뎌보자. 나를 보고 계시니까…….
이재기 미카엘라 아라동 본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