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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지도자와 충신의 나쁜 결합 및 간신 변별론,소순(蘇洵,1009-1066) 「辨奸論」
2024년 4월 18일
며칠 전에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고 사람들은 저마다 훌륭한 사람들을 잘 뽑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며칠 뒤에는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국회가 열리면 양당의 경쟁은 전에 없이 치열하다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가와 정객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울수록 정치는 잘 된다고 말합니다.
정치가와 정객 모두 어떤 사람을 모셔와야 할지 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유가와 성리학에서는 중요한 핵심이 최고 지도자와 중간 지도자들과 실무자들 셋의 도덕 의지와 실무 능력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이들 셋의 손에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달렸다고 보면 그냥 놔두고 볼 일은 아닙니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가 또는 정객 누구나 우리 지역을 강력하게 개혁하겠다고 유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개혁 의지와 목표를 보면 어디서 돈을 가져올지 말하지 않고 중앙정부에서 받아오겠다고 말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의 부채도 많아 적자가 늘어난다고 말하던데요.
앞으로는 정치가와 정객의 실적을 보고 선발하여야 합니다. 과거에 한국이나 중국이나 관원 고과는 주로 인구 증가와 농공상 생산력 증가 두 가지를 보았답니다. 함부로 개혁하지 말고 인구 증가와 경제 생산력 증가를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개혁 황제와 개혁 신하의 가장 나쁜 조합이 있습니다. 황제가 개혁 욕심도 많고 개혁 의지도 강한 사람이고, 신하는 황제의 욕심을 채워주고 계획을 실행하려고 백성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걷을 행정 능력이 있고 보수층과 백성들의 온갖 비난을 견디는 충신입니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 황제는 이런 충신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소순은 이런 나쁜 조합을 생각하고 왕안석을 가장 나쁜 간신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옛날 송나라 소순(蘇洵)이 왕안석(王安石)을 간신이라고 비난한 것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신을 뽑지 않으려면 최고 지도자 황제가 어리석거나 과도하게 욕심부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또 신하는 황제의 개혁 욕심을 실현해주려고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소순이 말한 간신 평가 기준은 황제의 개혁 욕심을 채우려고 백성에게서 많은 세금을 걷는 신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황제도 나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북송시기(北宋, 960-1127)의 경제 규모는 당시 세계 전체 생산력의 80-90%를 차지할 만큼 번영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67년만에 멸망하였습니다. 멸망하기 이전에 두 번이나 개혁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첫째는 변경지역 안전과 영토 확장을 위하여 군사력을 개혁하려고 시도하였고, 둘째는 농업생산력 향상을 위하여 경작지를 확장하고 수리시설을 만들고, 셋째는 지역 간의 물류 유통량과 운반 속도를 높이려고 운하를 준설하고 많은 창고를 짓고, 넷째는 유능한 관원을 양성하려고 교육제도와 선발제도를 개혁하고 교육시설을 확대하였습니다.
개혁에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최고 지도자 황제는 누구나 여러 가지 개혁을 잘하여 좋은 실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 많은 돈을 꾸준히 댈 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세상을 개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신하가 백성의 돈을 잘 빼앗아 와야 합니다. 조세제도를 개혁하고 특히 납세 저항이 적은 간접세를 많이 거두어 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증세 없는 개혁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영토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예산(뒷돈)을 댄 신하가 바로 상홍양(桑弘羊, 기원전 155-기원전 80)입니다. 북송시기에는 19살에 즉위한 신종(神宗) 황제의 개혁을 실현해주려고 왕안석이 간접세를 많이 거두어 재정 수입을 늘렸습니다. 명나라에는 장거정(張居正)이 세무를 개혁하여 적자 예산을 완화하였습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왕안석과 장거정을 개혁가라고 부르며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개혁의 최종 문제는 백성들이 견딜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과 납부 독촉 때문에 파산하고 가족을 팔 지경이면 반란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왕조가 멸망합니다. 옛날 소농경제(小農經濟)에서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높아야 0.5-1%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인중(人中) 높이까지 물속에 들어가면 입을 열지도 못하고 작은 물결만 쳐도 숨을 쉬지 못합니다. 세금이 늘어 인중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고 여기에 자연재해라는 큰 물결까지 겹치면 대부분 농부는 생활이 곤궁해지고 끼니를 잇지 못하고 굶거나 가족이 흩어집니다. 따라서 백성 편을 드는 좋은 관원이나 지식인들은 최고 지도자 황제가 함부로 개혁을 시도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소순(蘇洵, 1009-1066)과 두 아들 소식(蘇軾, 1037-1101)과 소철(蘇轍, 1039-1112)을 합하여 삼소(三蘇)라고 부릅니다. 소식은 처음부터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개혁을 반대하였고 소철은 처음에는 왕안석 개혁에 동참하였다가 곧바로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소순은 왕안석이 신종 황제에게 중용되기 이전에 벌써 그의 개혁 야욕을 알고 그를 간신이라고 비판하고 조정에서 중용하지 말 것을 알렸습니다. 사실 왕안석은 당시 큰 가문 한씨(韓氏)와 여씨(呂氏) 집안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개혁 의지와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소순이 이런 왕안석을 보고 나중에 큰 재앙(국가 멸망)을 불러올 간신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사실상 소순은 신종 황제와 황제 의지에 영합하는 왕안석 두 사람을 비난하였습니다.
신종과 왕안석의 개혁 과정을 보면 백성에게서 많은 돈을 빼앗아서 개혁에 투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실제 상황을 보면 개혁에 큰돈이 들어간다고 개혁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급급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튼지 어느 세대이든지 개혁하는 동안에는 큰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신종 황제와 강력한 신하 왕안석의 개혁은 백성들이 고통을 견디고 죽지 않을 만큼 백성의 인중(人中) 3cm에서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 개혁의 목적과 목표는 많은 사람의 행복을 만드는 작업이기에 결국에는 많은 백성이 스스로 생산 증가에 참여하여 노력하고 인내하여야 합니다.(王安石 : “元元〔百姓〕安土樂業,人致己力,以生天下之財”) 최고 지도자가 개혁 과정에서 하는 정치는 다름 아니라 많은 사람의 노력을 끌어내기 위하여 앞으로 가겠다는 사람들과 그냥 여기에 있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갈등과 여론을 달래고 때로는 안타깝지만 극렬한 반대론자들을 멀리 물리치면서까지 하며 강력한 신하가 지칠 때마다 위로하고 개혁 작업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최고 지도자 신종 황제가 직접 개혁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으나 개혁 작업을 이끄는 것을 보면 항상 과로하고 정말로 외로웠습니다.
개혁가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가 봅니다. 신종 황제(1048-1085)는 평소에 과로하였고 나중에는 그동안 개혁한 성과를 갖고 서하(西夏)를 빼앗으려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복영전에서 분을 못 참지 못하다가 38살 한참 나이에 죽었습니다.(福寧殿憂鬱而逝) 왕안석(1021-1086)도 평생 과로하여 기침을 자주 하였으며 개혁을 추진한지 6-7년 뒤에는 너무 많은 비난과 냉대를 받아 억울한 화병이 쌓였고(積鬱成疾) 더구나 아들 왕방(王雱, 1044-1076)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살던 집을 불교 절에 바쳤고 나중에는 큰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살았으나 분함과 억울함 때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개혁가는 아무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주목할 것이 있는데 소순의 「변간론(辨奸論)」은 북송 말기와 남송 시기에 끼친 영향이 아주 컸기에, 개혁이나 왕안석 말만 나오면 많은 관원과 학자가 자주 인용하여 말하였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청나라 초기에는 이불(李紱, 1675-1750)과 채상상(蔡上翔, 1717-1810)은 심지어 소옹(邵雍, 1012-1077)의 아들 소백온(邵伯溫, 1055-1134)이 지은 위작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호적(胡適, 1891-1962)도 위작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위작이라고 믿으나 현재는 위작이라는 말이 사그라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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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지도자의 신하 등용론, 소순(蘇洵,1009-1066) 「辨奸論」
어떤 일(事)을 어떻게 하면 반드시 어떤 결과(至)가 벌어지는지는 일(事) 안에서 작용하는 이치(理)가 분명히 그렇기(固然)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마음 상태를 가라앉혀서 조용하고 고요하게(靜, calm) 유지하는 사람만이 아주 작은 낌새(微)들을 보고 앞으로 다가올 어떤 결과(著)까지도 잘 안다. 작은 낌새를 보고 결과를 알 수 있는 작은 사례를 들면, 달무리가 뜨면 바람이 분다거나 주춧돌에 물방울이 맺히면 비가 내리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사람이 일(事, undertaking)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올바른 도리(理)와 실제 추세(事勢, situation)가 서로 맞물려(相因, relative cause) 바뀌는 변화(variable)에 변수(parameters)가 너무 많고 커서 예측하기가 가장 어렵다. 더구나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의 변화는 예측하기 가장 어렵고 전문가조차도 알 수 없다. 알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나의 냉정한 판단력을 어지럽히고 또 이해득실을 따지는 이해타산이 나의 행동을 흔들기 때문이다.(내 마음을 가라앉혀 고요하게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 삼국시대 위(魏)나라에서 양호(羊祜, 221-278)가 문관으로서 높은 자리에 있었고 무관으로서 장군이 되었는데 항상 마음이 곧고 남의 잘못도 바로잡아 주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며 의지가 굳은 성격(正直 忠貞)이었다. 그래서 정치판에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보면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집안 조카 왕연(王衍, 256-311)은 노자와 장자의 어려운 철학(玄學)을 깊이 연구하고 세상의 먼지를 타지 않은 사람처럼 맑고 하얀 옥처럼 깨끗하게 행동하였다. 하루는 양호에게 왕연이 찾아와서 세상일을 철학적으로 시원하게 설명하였다. 양호는 다 듣고 나서 “세상 사람들을 멍청한 바보로 만들 사람은 바로 너로구나!”(또는 “너는 유명하고 높은 자리에 있으나 세상의 풍속과 교육이 망가지는 것은 너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또 당나라 말기에 안녹산 반란을 진압하고 이민족 침략을 막아 커다란 전공을 세운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노기(盧杞, ?-785)를 만나본 뒤에 “이 사람이 자기 뜻대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우리 자손들은 모두 죽겠구나!”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노기는 황제의 뜻에 영합하고 아첨하면서 현명한 관원들을 질투하여 내쫓고 세금을 많이 거두어 국가 세수가 반으로 줄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를 간신이라고 욕하였다.
지금 와서 이미 망해버린 위나라와 당나라를 보면 양호와 곽자의가 예측한 결과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내(蘇洵)가 따져보면, 남들이 욕한 것처럼 왕연의 사람 됨됨이는 용모가 잘생기고 말도 잘하여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선동하여 명예를 훔친 도둑놈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성격과 태도는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고 무엇을 얻겠다고 애쓰지도 않으며 세상 돌아가는 대로 물 흘러가듯이 따라가는 사람이다. 진(晉, 266-317)나라에 혜제(惠帝, 259-307) 같은 멍청한 황제가 아니고 보통 사람의 황제만 있었다면 왕연 같은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세상이 그렇게 쉽게 엎어지겠는가! 노기의 간사함도 충분히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노기는 배운 것도 없어 무식하고 인물도 잘나지 못하여 사람들의 눈을 끌지도 못하며 말재주도 세상을 속이지 못하였다. 당나라 덕종(德宗, 생졸 742-805, 재위 779-805)이 자존감이 낮고 속이 어둡지만 않았어도 노기를 중용하여 곁에 두고 의지하였겠는가! 내 생각에는 양호와 곽자의 두 사람이 왕연과 노기에게 뱉은 말은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신하가 아무리 잘나서 잘 속이거나 아무리 못나서 어리석어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반드시 멍청하거나 어두운 황제가 이런 사람들을 중용하여 둘이 합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뒤엎어지고 망하였다.
지금(북송) 어떤 사람이 있는데 말로는 공자와 노자 같은 훌륭한 성현의 말씀을 입에 달고 떠들며, 백이와 숙제 같은 충신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명예욕이 큰 지식인들과 큰 자리를 잡지 못한 관원들을 끌어들여 함께 엉뚱한 주장을 지어내서 여론을 이끌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잘 포장하여 공자의 가장 뛰어난 제자 안연(顏淵)과 맹자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믿게 만든다. 그러나 속마음은 남을 죽이려고 들고 온갖 험악한 수단 방법으로 독살스럽게 행동하는데 사람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하다. 차라리 왕연과 노기 두 사람의 속이고 무지한 성격과 태도가 하나로 뭉쳐졌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이 사람이 앞으로 불러올 끔찍한 재앙(국가 멸망과 백성 고통)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얼굴이 더러워지면 씻으려고 하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렇지 않다. 노예의 옷처럼 더러운 옷을 입고 개돼지의 개차반처럼 거친 음식을 먹고 범죄자처럼 머리도 빗지 않고 상을 당한 사람처럼 얼굴도 씻지 않으면서 『시경』과 『서경』 같은 유가 경전을 읊으며 연구하는데 이것이 어찌 일반 사람의 정서란 말인가? 어떤 일이든지 사람의 일반적인 정서에서 멀리 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큰 간신이 되기 쉽다. 춘추시기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충신 관중(管仲)의 말을 듣지 않고 소인배 수조(豎刁), 역아(易牙), 개방(開方)을 중용하여 의지하였다. 환공이 죽자 아들들이 서로 계승하려고 싸웠고 소인배들도 끼어들어 더욱 혼란을 더욱 키웠다가 모두 제 목숨에 죽지 못하였다. 이들이야말로 간신이다.
이 사람은 세상을 덮을 만큼 커다란 명예를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키우고 있다. 통지를 잘하려는 훌륭한 임금 또 뛰어난 전문가를 등용하려는 좋은 재상이더라도 이 사람을 중용하여 국가행정을 맡긴다면 세상에 재앙을 불러올 것은 분명하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이 사람이 불러올 재앙은 왕연이나 노기에 비교되지 않는다.
『손자병법』에 “훌륭한 장군은 전쟁을 미리 막기에 빛나는 전공을 세우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 사람을 중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인가? 이 사람이 중용되지 못하였다고 탄식하는 것을 듣고 중용한다면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누가 알겠는가? 아니면 세상 천하가 이 사람이 불러올 재앙을 겪은 뒤에야 내가 사람을 볼 줄 안다고 나를 칭찬할 것인가? 내가 칭찬을 받게 된다면 정말로 아주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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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蘇洵(1009-1066),『嘉祐集』,卷九,「辨奸論」:
事有必至,理有固然,惟天下之靜者,乃能見微而知著。月暈而風,礎潤而雨,人人知之。人事之推移,理勢之相因,其疏闊而難知。變化而不可測者,孰與天地陰陽之事?而賢者有不知。其故何也?好惡亂其中,而利害奪其外也。
昔者羊叔子(山巨源)見王衍曰:“誤天下蒼生者,必此人也。”郭汾陽見盧杞曰:“此人得志,吾子孫無遺類矣。”自今而言之,其理固有可見者。以吾觀之,王衍之爲人,容貌言語,固有以欺世而盜名者。然不忮不求,與物浮沈。使晉無惠帝,僅得中主,雖衍百千,何從而亂天下乎!盧杞之奸,固足以敗國,然而不學無文,容貌不足以動人,言語不足以眩世,非德宗之鄙暗,亦何從而用之?由是言之,二公之料二子,亦容有未必然也。
今有人,口誦孔、老之言,身履夷、齊之行,收召好名之士、不得志之人,相與造作言語,私立名字,以爲顏淵、孟軻復出,而陰賊險狠,與人異趣,是王衍、盧杞合而爲一人也。其禍豈可勝言哉?夫面垢不忘洗,衣垢不忘浣,此人之至情也。今也不然,衣臣虜之衣,食犬彘之食,囚首喪面,而談『詩』、『書』,此豈其情也哉?凡事之不近人情者,鮮不爲大奸慝,豎刁、易牙、開方是也。
以蓋世之名,而濟其未形之患,雖有願治之主、好賢之相,猶將舉而用之,則其爲天下患,必然而無疑者,非特二子之比也。孫子曰:“善用兵者,無赫赫之功。”使斯人而不用也,則吾言爲過,而斯人有不遇之嘆,孰知禍之至於此哉?不然,天下將被其禍,而吾獲知言之名,悲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