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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본서의 저자는 예레미야이다. 그는 유다 왕 요시야 13년(주전 627년경)부터 시드기야 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약 41년간 사역했으나 유다 백성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비록 설교자의 사역의 결실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경우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이었고 그가 전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이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모습은,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여 성경적 교훈을 하고 성경적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대신, 교인수를 늘이는 일이라면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무슨 방법이라도 사용하려 하는 세속화된 목사들의 모습과 다르다. 성경은 성도들의 개인적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일 뿐 아니라, 목사들의 전도사역, 목회사역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예레미야서의 헬라어 70인역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8분의 1 정도나 짧고 장들의 배열도 다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성경의 본문에 관한 한 정통 유대교의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 권위와 신빙성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예레미야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회복이다. 본서에는 ‘칼’(71회), ‘기근’(33회), ‘황폐’ 혹은 ‘멸망’ 등(33회), ‘진노’(24회), ‘온역’(17회) 등의 말이 자주 나온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 시기에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본서에는 또 ‘안다’(73회), ‘이스라엘의 하나님’(47회) 등의 표현도 자주 나온다. 모든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의 공의의 심판을 알아야 하고 그의 긍휼의 구원을 알아야 한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지만, 마침내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이다. 다음 두 구절은 이 진리에 관하여 성경 전체 중에서 매우 중요한 요절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 영어 King James Version |
NASB |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
NIV |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
LXX | 고대 헬라어 70인역 |
Syr | 고대 수리아어역 |
It | 고대 라틴어역 |
Vg | 고대 라틴어 Vulgate역 |
BDB |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
KB |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
Langenscheidt | Langenscheidt Pocket Hebrew Dictionary |
NBD |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
Poole |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
JFB | Jamieson, Faussett, Brown 주석 |
박윤선 | 박윤선, 구약주석. |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1-10절, 예레미야를 부르심
[1-3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1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5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예레미야는 남방 유다 나라 멸망 시기에 사역했던 선지자이었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이었다. 그는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이었다. 히스기야의 손자이며 므낫세의 아들인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주전 627년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임했다. 그 해 5월에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예레미야의 선지자로서의 사역 기간은 약 41년간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므로 선지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자는 선지자가 될 수 없다. 선지자들이 받은 말씀이 구약성경이 되었다. 신약교회의 목사는 선지자가 아니다. 그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책인 성경에 정통하여 그것을 해석하고 전하는 자이다.
참 설교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지 않고 성경의 교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럴 때 그는 권위를 가진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다.
[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그 모친의 복중에서 지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으신다. 사람의 몸과 영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다.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로 쓰이며 자식들을 낳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그 모친의 복중에 지으시기 전에 그를 아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과 계획 속에서 예레미야를 아셨다.
에베소서 1:4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모든 사람을 만세 전에 아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그를 아셨고 그를 구별하셨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심과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된 것이었다. 예레미야의 선지자직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
오늘날 목사도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6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이이며 말할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출 4: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아는 모세와 예레미야 같은 겸손한 자를 불러 쓰신다.
[7-8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선지자의 사역이 무엇임을 지시해주셨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명하든지 말해야 했다. 그것이 선지자와 목사의 임무이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자에게라면 누구에게든지 가서 하나님의 명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전해야 한다.
둘째로,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를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동행자, 후원자, 보호자, 구원자가 되신다. 그는 사람의 낯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늘날 목사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교훈을 깨달았다면,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고 외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시고 그를 구원하실 것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셋째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오늘날 목사도 그러해야 한다. 목사는 자기의 생각이나 세상의 말들을 하지 말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만 충실히 전해야 한다.
넷째로, 예레미야는 열방 만국 위에서 파괴하고 건설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시는 것은 그의 말씀 사역이 이방 나라들에게도 관계됨을 보인다.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것은 그가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며, 건설하고 심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고 그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고 의와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문은 선지자의 자격에 대해 증거한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다. 거기에 선지자의 사역의 권위가 있다. 오늘날 목사도 비슷하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다. 그는 특히 성경에 정통해야 한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이 참 설교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목사의 권위가 거기에 있다. 목사는 성경적 교훈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이다.
둘째로, 본문은 선지자의 임무에 대해 증거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전해야 한다. 사도행전 20:20-21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 없이 전하여 가르쳤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다. 오늘날 목사들도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성경적 설교를 해야 한다.
또 선지자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사도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목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는 악을 책망치 못하고 악과 타협하게 되고 설교 내용을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가감하게 될 것이다.
또 선지자는 파괴하고 건설해야 한다. 그는 사람의 죄악된 요소들을 지적하고 파괴해야 하고, 그는 사람에게 꼭 있어야 할 덕들, 곧 경건과 거룩과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의 덕을 건립해야 한다. 오늘날 목사도 똑같은 임무를 가진다. 그는 회개와 믿음과 온전함을 전해야 한다.
셋째로, 본문은 교인들의 의무도 보인다.
참 선지자가 하나님의 종이며 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교인들의 의무도 분명하다. 그들은 그를 영접해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오늘날 교인들은 성경적 설교를 하는 목사를 영접해야 한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알고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성경적 설교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 그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일이 될 것이다.
11-19절, 두 가지 환상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환상을 통해 말씀하셨다. 본문은 예레미야가 본 두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내용이다.
[11-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예레미야가 본 첫 번째 환상은 살구나무의 환상이었다. ‘살구나무’라는 원어(솨케드)는 ‘지킨다’는 원어(솨카드 혹은 쇼케드 [분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신의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살구나무 가지를 보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지키시는 자이시다. 그는 말라기 3:6에서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약속하신 바를 변함이 없이 그대로 지키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여호수아 21:45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증거하였다. 또 여호수아 23:14에도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증거하기를,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24:35에 보면, 주 예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도 하나도 헛되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되는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23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라고 권면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것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13-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예레미야가 본 두 번째 환상은 끓는 가마의 환상이었다. 그 끓는 가마는 그 면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북방 나라들을 불러 유다 성읍들을 치게 하실 일을 보이신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에 대한 환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요한계시록 2:23에 보면, 부활하신 주께서는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고 거역의 죄를 범하지 말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한다.
[17-19절]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고 말씀하시며 사명 완수를 명하셨다.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불충성이고 그의 뜻을 묵묵히 행하는 것이 충성이다. 선지자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것이 충성이다.
그렇게 하려면 주의 종들은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유다 땅과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고 그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를 치나 이기지 못하게 하셨다.
오늘날 목사들에게도 고난이 있고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같이 용기와 담대함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4:1-5,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私慾)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오늘날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많은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견고케 하셨고 도우시고 지키셔서 승리케 하셨듯이 오늘날 목사들도 견고케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승리케 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14-18에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간증하였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많은 해를 주었고 그의 말을 대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자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지식과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굳게 믿자.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 . .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말씀을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충성하자.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힘있게 전파되어야 한다. 마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른 말씀을 전하며 바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전하는 자의 편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견고케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승리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굳게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