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438)... 補陽食 삼계탕과 초계탕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삼계탕(蔘鷄湯)과 초계탕(醋鷄湯)
우리 조상(祖上)은 한 해 중 가장 더운 시기로 삼복(三伏)을 꼽았다. 삼복은 음력으로 6월과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 번의 절기인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통틀어 말한다. 금년 초복은 7월 13일, 중복은 7월 23일, 그리고 말복은 8월 12일이다. 말복 전인 8월 8일이 가을을 알리는 입추(立秋)이다.
복날의 복(伏)자는 ‘엎드리다’ 또는 ‘굴복하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유희가 지은 ‘석명’이라는 책의 기록에 따르면 복날은 오행설(五行說)에 따라 가을 기운이 땅으로 기어 나오려다 이직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강해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했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한의학(韓醫學)에서는 날씨가 무더우면 우리 몸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땀을 흘리게 되며, 이 과정에서 몸속이 차가워진다고 본다. 이에 삼복더위에 덥다고 찬 음식을 자주 먹으면 몸 안은 더욱 차가워져 위장과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따뜻한 음식으로 차가워진 속을 다스려야 한다고 본다.
옛날 사람들은 복날에 바닷가 모래밭에서 뜨거운 모래에 몸을 푹 파묻고 모래찜질을 하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더위를 물리쳤다. 우리 조상은 팥죽을 ‘복죽’이라고 불렀으며, 삼복더위에 팥죽을 쑤어 즐겨 먹었다. 특히 팥의 붉은 색이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색깔이라 여겨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와 함께 스며드는 나쁜 기운을 쫓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복날에 즐겨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개(犬)를 잡아 통째로 삶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개장국’이다. 복날에 개장국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를 잊게 하고, 영양을 보충하여 병을 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개장국 대신에 ‘계삼탕(鷄蔘湯)’을 즐겨 먹기도 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삼계탕(蔘鷄湯)이다. 서울의 삼계탕 전문식당에서는 지난 초복 날 손님들이 많이 몰려 몇 시간을 기다린 후 뜨거운 삼계탕을 맛보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 소재 ‘한국의 집’에서 보양식(補陽食)을 많이 찾는 초복(7월 13일)을 앞두고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5일까지 한국의집 페이스북 이용자 20대부터 50대까지 총 562명을 대상으로 보양식 선호도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세대가 ‘보양식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삼계탕(85%)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장어구이(11%)와 보신탕(4%)이 그 뒤를 이었다.
‘보양식을 자주 챙겨 먹는가’의 문항에서 전체 응답자의 62%가 ‘챙겨 먹는 편이다’라 응답했다. 특히 중장년층인 4050세대는 70%, 청년층인 2030세대도 58%가 보양식을 챙겨 먹는다고 답했다. 보양식을 먹는 시기는 76%가 ‘여름’을 꼽았다.
병아리보다 조금 큰 닭인 연계(軟鷄ㆍ영계)를 백숙으로 푹 곤 것을 ‘연계백숙(白熟)’이라 하며, 여기에 인삼을 넣어 ‘계삼탕’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삼계탕’으로 굳어졌다. 계삼탕이 ‘삼계탕’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효능을 인정하게 되자 삼(蔘)을 강조하여 위로 놓은 것이다.
삼계탕은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 마늘, 대추, 인삼 등을 넣고 물을 부어 오래 끓인 여름철 보신 음식이다. 삼계탕의 주재료인 닭고기는 성질이 따뜻한 식품이며, 인삼(人蔘) 역시 열이 많은 약재이므로 이들을 함께 넣고 끓여 먹으면 몸을 보호해주는 음식이 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황색의 암탉은 성평(性平)하고 소갈(消渴)을 다스리며, 오장을 보익하고 정(精)을 보할 뿐만 아니라 양기를 돕고 소장을 따뜻하게 한다.”, “인삼은 성온(性溫)하고 오장의 부족을 주치하며 정신과 혼백을 안정시키고 허손(虛損)을 보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축(六畜) 중의 하나인 닭을 귀물로 여겨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육축이란 집에서 기르는 대표적인 여섯 가지 가축으로 소ㆍ말ㆍ양ㆍ돼지ㆍ개ㆍ닭을 말한다. 닭고기는 섬유질이 가늘고 연한 것이 특징이며, 쇠고기처럼 지방이 근육 속에 섞여있지 않기 때문에 맛이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되는 산성식품이다.
닭고기는 쇠고기ㆍ돼지고기ㆍ개고기 보다 단백가(蛋白價)와 아미노산가(價)가 훨씬 높다. 메티오닌을 비롯한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으며, 또한 소화흡수율이 높은 우수식품이다. 생후 백일 전후는 수탉이 고기 맛이 좋으나, 성장하면 암탉의 고기 맛이 더 좋다. 닭고기는 육류 중에서 조직이 연하고, 자극성이 적어 노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환자를 위한 식품으로 적당하다.
서양에서는 닭고기를 치킨(chicke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알을 낳기 전의 병아리를 뜻한다. 어린 닭은 껍질이 연하고 맛이 좋다. 닭고기는 독특한 냄새가 나므로 조리할 때 마늘, 파, 향신료 등을 적절히 사용하면 냄새를 없을 수 있다. 닭고기는 육식을 즐기는 서양인들이 많이 소비하고 있으며, 이는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담백한 맛을 찾기 때문이다.
닭고기만큼 요리법이 다양한 육류는 드물다. 예를 들면, 삶은 닭고기를 차게 식힌 다음 마요네즈 소스를 듬뿍 친 채소 샐러드에 곁들여 먹는 것이 콜드 치킨이다. 이것은 닭고기를 실처럼 찢어서 샐러드에 이용하기도 하는 한국식 닭고기 냉채와 유사하다.
닭은 기원전 3천 년경부터 가금(家禽)으로 길들여지기 시작하였으며, 한때 신(神)으로 까지 취급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닭은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거쳐 기원전 500년경에 그리스에 전파되었다.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닭의 품종개량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건국신화에 닭이 나온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김알지(金閼知)에 “신라왕이 어느 날 밤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와 숲 속을 찾아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그 속에 아기가 있었기에 왕은 그 아이의 이름을 알지(閼知)라 하고 금궤짝에서 나왔다하여 김씨성(金氏姓)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숲을 계림(鷄林)이란 이름을 붙였고 신라의 국호로 삼았다.
신라의 계림신화를 살펴보면, 옛날 우리나라는 닭을 신성시하여, 서계(瑞鷄)로 여겼다. 우리나라 토종닭은 서양닭 보다 영리하고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때문에 시간을 알리는 보신용(報晨用)으로 사용되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약용에는 조선닭이 좋아 중국인들이 조선에 가서 닭을 구해 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삼(人蔘)은 오가과(五加科)에 속하는 다년초(多年草)이다. 인삼을 조제에 따라 밭에서 채취한 생것을 수삼(水蔘, Fresh ginseng), 수삼의 잔뿌리와 껍질을 벗겨서 말린 것을 백삼(白蔘, White ginseng)이라 한다. 홍삼(紅蔘, Red ginseng)은 6년근 수삼을 엄선하여 껍질 채 증기로 쪄서 건조시킨 담황갈색 또는 담적갈색을 띠는 인삼이다. 삼계탕에 넣는 인삼은 수삼을 사용한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인삼의 약효로 오장을 보하며, 정신을 안정시키고, 오래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여 수명이 길어진다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인삼의 약효에는 항암(抗癌), 궤양, 심부전, 스트레스, 피로, 우울증, 고혈압, 동맥경화증, 빈혈증, 당뇨병 등에 유효하다. 인삼의 신비한 약효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약용과 건강식품으로 가장 우수한 인삼은 우리나라 고려인삼(高麗人蔘)이다.
삼계탕과 더불어 복날에 먹는 보양식으로 초계탕(醋鷄湯)이 있다. ‘초계탕’을 낱말로 풀어보면 초(식초), 계(겨자의 평안도 방언), 탕(육수)으로 오이초절임과 겨자채무침에다 육수를 부었다는 뜻이다. 초계탕은 예로부터 궁중(宮中)요리로 알려졌으며, 궁중이나 양반가(兩班家)에서 특별한 날이나 더운 여름에 서빙고(西氷庫)나 동빙고(東氷庫) 등에서 얼음을 꺼내 차게 해서 먹었다고 한다.
초계탕은 삶은 닭고기에 여러 가지 채소, 식초, 겨자 등을 넣고 기름기와 냄새를 제거하여 매우 차고 담백하게 만든 음식이다. 찬 음식에 식초(食醋)를 사용하는 것은 살균력을 높이고 상큼하고 시원한 맛을 북돋아 주는데 효과적이며, 겨자(芥子, mustard)를 사용해서 매운맛을 낸 것은 겨자가 열(熱)이 있어 찬 음식에 좋기 때문이다. 초계탕을 시원한 물김치와 고소한 메밀부침을 함께 곁들어 먹으면 그 맛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초계탕은 조선시대 궁중연회를 기술한 ‘진연의궤’ 등에 이름이 올라 있는 귀한 음식이다. 정조의 어머니이며 사도세자의 비(妃)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回甲)잔치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도 초계탕이 언급되어 있다. 일반 기록에는 명월관(明月館) 등을 통해 궁중의 음식이 민간에 흘러나오던 1930년대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쯤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궁중에서 만들었던 초계탕과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초계탕은 재료나 조리방법이 약간 변형된 것도 있다. 경기도 파주시 초리골에서 초계탕 식당을 5대째 이어가고 있는 김성수(‘보양식 닭요리 & 건강식 초계탕’ 공동저자) 사장은 옛것의 기본을 지켜가면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초계탕을 조리하고 있다.
초계탕(4인분) 재료는 다음과 같다. 닭 1마리(약 1.3kg), 오이 2개, 파 1개, 양파 1개, 고추 2-3개, 샐러리 1줄기, 붉은 양배추 30g, 식초 1큰술, 겨자 1큰술, 설탕 1큰술, 사과즙 1큰술, 배즙 1큰술, 레몬즙 1큰술, 술(소주) 1/2큰술, 후추, 잣.
닭은 6개월쯤 된 것을 잔털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후 흐르는 찬물에 30분 이상 담가 핏물과 기름기 냄새를 제거한 후 삶는다. 삶은 닭을 뼈와 살을 발라내면서 기름기가 남아 있으면 기름기를 닦아서 제거한다. 닭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24시간 정도 저온숙성(低溫熟成) 시킨다.
식초, 겨자, 설탕, 술(소주), 잘게 썬 파, 얇게 썬 양파, 후추 등에 육수를 조금 넣고 잘 저어준 후 오이와 닭고기를 넣고 버무려준다. 물김치 국물 또는 동치미국물을 조금 넣고, 육수로 얼린 얼음을 몇 개 올려놓는다. 배즙과 사과즙을 살짝 뿌리고, 잣을 고명으로 위에 올리고 레몬즙을 뿌려주면 시원한 초계탕이 완성된다.
초계탕의 닭고기와 채소를 다 먹을 때쯤 차게 한 메밀면을 넣고 식성에 따라 양념(식초와 겨자)을 더 넣어 먹으면 맛이 있다. 한편 찬 음식을 먹어서 몸의 내부가 냉(冷)해진 상태이므로 따끈한 육수나 면수(국수 삶은 물)를 마셔서 속을 편하게 해주면 위장(胃臟)건강에 도움이 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438). 2015.7.25. mypark1939@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