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cafe.daum.net/kbhigh40mntn/IL7/3055?
본문 조선 20-4 한국의 조선공업은 민간에 의한 국가기업
본문 조선 20-4한국의 조선공업은 민간에 의한 국가기업1. 한국의 3대 조선소는 외국과의 합작 없이 단독으로 추진현대 삼성 대우를 3대 조선소의 실수요자로 결정한 경위는 각각 다르나 정부가
m.cafe.daum.net
본문 조선 20-4■ 한국의 조선공업은 민간에 의한 국가기업1. 한국의 3대 조선소는 외국과의 합작 없이 단독으로 추진현대 삼성 대우를 3대 조선소의 실수요자로 결정한 경위는 각각 다르나 정부가 한국의 3대 기업을 지정하였으므로 국가 노력이 총동원되어 출정하는 형식이 되었다.조선 3사는 대기업이라 할지라라도 조선업에 생소하기 때문에 외국과 합작을 원칙으로 했으나 합작이 불가능하여 단독으로 추진하였다.제일 주자 현대는 정주영 회장이 작접 나섰고 삼성은 조선은 일본과의 합작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실무진 대 실무진으로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였다.조선소 건설시나 선박 건조 시 기본설계만 외국 용역회사에 의뢰하고 상세설계와 건설은 국내 기술로 해결하였다. 음지에서 죽으라고 일한 조선기술자의 공이 크다.자금줄인 차관도 자율적으로 획득하였고 기술인력 훈련은 영국과 일본에서 훈련시켰다.이상과 같이 조선소 건설과 선박건조는 전반적으로 자체적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위업을 일구어 냈다.2. 조선공업은 거대 기술집약 장치산업조선업이 얼마나 거대한 작업인지를 조선소를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예를 들어 대우 조선소에는 주독 하나와 부동크가 몇 개씩 있으며 주독 하나의 크기는 40만 dwt톤급 VLCC 4척을 동시에 접안시킬 수 있도록 설계 건설되어 있다.참고로 현대가 최초로 건조한 ^아트란틱 베른호^인 26만톤급 VLCC만도 길이가 345m이고 높이가 31 빌딩의 5배가 되며 갑판의 넓이가 서울종합운동장의 3배에 달하는 크기이다.선박의 종류에 따라 구조가 다르나 VLCC의 경우 선체는 종합제철에서 생산하는 후판의 구조물이므로 조선업의 경기 여부가 철강업에도 큰 영향을 준다.한국이 초기 포철의 KISA때 60 만톤의 제철공장 건설계획 시 30만 톤의 수요를 조선이 점유한다고 추정한 적도 있다.3. 중화학과 거대 조선소의 입지중화학의 특징중의 하나가 업종별로 단지화한 것으로서 좁은 국토를 효과적으로 시용하며 공해공장의 난립을 방지하자는 목적이었다.울산과 거제는 조선공업으로서 구비하여야 할 절대적 조건인 깊은 수심과 넓은 조선소 건설대지와 배후 인구 도시를 구비한 임해지역이다.조선은 제철과 기계공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3개 단자를 연결하여 철의 삼각지 ( Iron and Steel Triangle)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한국의 중화학 중의 중공업의 특징이다.철의 삼각지는 국제무역을 위한 5대양과 연결되어 있고 국내적으로는 복잡한 해안선에 따른 육지 수송은 피하고 편안한 연안수송으로 처리하게 되어있다.3. 현대조선의 초기 수주 일화선두주자 현대조선의 초기 수주 때의 정주영 회장에 관한 비사가 많다.조선공업은 수주산업이기 때문에 주문을 받고 건조를 시작한다. 상상하기 조차 힘든 크기의 큰 배를 미리 만들어 놓고 파는 것이 아니고 수주를 받고 건조에 착수한다.이리하여 조선소의 규모를 수주잔고로 표시한다.여기서 선두주자 정주영회장 (아산)의 활약상이 신화처럼 된 일화 두 개를 소개하겠다. 제일 유명한 것이 한국의거북선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 얘기이다. 정회장은 영국의 바크레이 은행을 찾아가서 차관신청을 했더니 은행으로부터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거절당했다.그래서 정회장은 거북선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 전에 먼저 철선을 건조했소"라고 하면서 설득하여 차관을 얻었다는 일화이다. 이일화는 신화가 되어 정주영과 함께 모든 한국인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당시 세계 굴지의 영국의 Barklay 은행이 거북선 지폐 한장을 보고 차관을 줄리 만무하다.실제로 현대는 영국정부의 ECGD 보증을 얻어 바크레이 은행에서 4천만 불의 차관을 획득했다. 곧 이어서 영국선주로부터 VLCC 수주를 받았다.정 회장이 초기 수주활동을 할 때의 두 번째 일화이다. 국력의 뒷받침도 없고 경험도 없고 조선소도 없는 상태에서 현대가 수주활동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찾아 갔다.정주영은 조선소 건설부지로 결정된 울산 전하동 일대의 파도치는 넓은 백사장이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며"여기가 현대그롭이 건설코자 하는 세계제일의 선박건조와 기계장치의 복합단지요" 하고 자랑하며 수주를 부탁했다는 일화이다.실제로 현대는 그후에 오나시스로부터 수주도 받았다. 신화처럼 된 정 회장의 불굴의 노력으로 울산 조선단지에 대형 조선소와 수리조선소를 건설하여 한국을 조선왕국으로 만들었다.4. 유공의 합작사인 Gulf Oil의 발주국영기업체인 한국의 첫째 정유공장 을 운영하는 유공은 미국의 Major Oil인 Gulf와 해양 원유운송 계약을 맺어 Gulf Oil이 중동에서 VLCC급 유조선으로 수송하는 원유를 공급받고 있었다.원유공급계약은 해양 수송운임 단가등이 정부의 승인 사항이어서Gulf는 유공과 운임인상 계약을 체결하고 운임 인상을 위하여 정부에 승인신청을 했다.정부(오원철 상공부 광공 전 차관보 )는 Gulf가 현대조선에 최소한 VLCC 3,4 척을 발주하지 않으면 운임인상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통고했다.Gulf Oil의 Dorsey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30만 dwt급 VLCC 3척을 발주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결과적으로 Gulf가 졀치상 현대상선에 발주해서 건조하게 되었으므로 현대는 해운업에 까지 진출하였다.현대는 Gulf가 발주한 이 3척의 VLCC 건조로 세계 조선해양 업계에서 신용과 명성을 얻어 그리스(오나시스)를 비롯하여 전 세계를 상대로 수주활동을 하여 일약 조선의 강자가 된것이다.후발업체인 삼성과 대우는 현대의 명성에 힘입어 각사의 피나는 수주활동을 하여 한국을 조선대국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다.( 조선계속)2024.8.3 김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