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7] 정대화 (鄭大和) - 내조자로서의 한평생
1. 입교 동기 - 1
1 나의 고향은 황해도 장연군인데, 실제로 나의 출생지는 황해도 해주에 있던 외갓집에서 1932년 음력 12월 30일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의 출산이 가까웠을 때 해주의 친정집으로 가서 설날 음식 준비를 하던 중에 나를 낳았다.
2 신성당 한약방을 하시던 외할아버지는 나의 이름을 대화라고 지어주셨다. 나는 자라면서 이쁜 이름이 아니라며 불평도 했었다.
3 그런데 나중에 뜻을 알게 된 후 참아버님께서는 나에게 이름과 같이 크게 화하는 인물이 되라고 축복도 해주셨다.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신 외할아버지께 늦게나마 감사를 드렸다.
4 우리 집은 황해도 장연군 읍내에서 괜찮게 사는 편이었고, 읍내에서는 제일 먼저 기와집으로 지은 집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큰 금융조합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집을 금융조합 뒤 기와집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말하면 그곳 읍내에서는 다 알았다. 5 할아버지는 목재상을 하시면서 장연군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공중목욕탕을 시작한 분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곳에서는 유지에 속했다.
6 부친은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난 후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가서 곡물 무역상을 크게 하였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을 경제적으로 협조를 하다가 해방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7 형제는 아래로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하나가 있어 3남매이다. 우리 집에서 해주 외가댁까지는 160리 길인데 당시 목탄 버스로 세 시간 정도 걸렸다.
8 그래도 방학이 되면 외가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내던 생각이 난다. 외갓집도 상당히 넓은 집이었는데 외삼촌들이 나를 귀여워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외갓집이 참 좋았다.
9 어머니께서는 교육열이 높으셨고 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든지 할 때는 떡은 물론이요, 만둣국까지 끓여 이고 오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3학년 때부터 내내 반장을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해오라는 것은 뭐든지 열심히 했다.
10 그래서 별명이 니노미야 긴지로 였다. 일본 사람 니노미야 긴지로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공부를 하기 위해 동생을 업고 학교에 와서 공부했던,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표상이었는데,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는 의미에서 나의 별명이 그랬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