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의 규모는 면적: 7만평, 둘레: 2km, 저수량: 70만t 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가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헤 반대하던 총독부를
설득하여 사업비를 지원받고 또 사비를 털어 1924년 9월 27일 착공하여 1927년
4월 24일 완공한 인공적인 못입니다. 1939년 임종을 맞기 전까지 수성못을 관리하던
그는 유언대로 못이 보이는 곳에 묻혔고 매년 추모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가슴아픈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국을 사랑했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것에 한 번 더
곱씹어 볼 일입니다.
농업용수를 위해 1927년 축조된 수성못이 지금처럼 유원지로서의 기능을 갖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 입니다. 그 당시 수성못 일대에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수성못 일대의 포장마차를 정비한 후 그 곳에 저절로 카페,
맛집거리가 형성되었습니다. 또 2016년 전국 최초로 식품접객업소의 옥외영업공간을
옥상까지 확대하는 규제 개선이 이뤄져 먹거리타운 형성에 활기를 더하게 된 것입니다.
1969년 유원지로 지정된 수성못은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면서 평일에는 2만여명,
주말에는 5만여명이 찾는 대구의 명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수성못둑 아래 들안길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드라도 수성못의 농업용수를
이용한 근교 농업용지(수성들판)로 활용된 곳이였습니다. 그런데 마이카 붐으로
인한 주차난 때문에 주차 편한 넓은 땅을 찾아 외진 이곳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고
또 지역 토지 소유주들이 토지초과이득세를 피해 단층 건물을 지어 임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한 두 곳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고유의 음식 비법과 메뉴로 독창적인 음식을 선 보이면서 식도락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생겨 난 음식점들이 120여개로 늘어
나면서 대구의 또 다른 명소로 탄생한 것이지요.
수성못 페스티벌이 열리는 가을이면 들안길 푸드 페스티벌도 함께 열려 하루 10만명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 옵니다.
동기들이여! 학창 시절의 추억어린 명소를 되돌아 볼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소이다.
다리가 떨릴 때 여행오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여행 오이소! 보이소! 마시소!
꽃샘 추위를 견디면서 (3/8. 오후)김경수배.
첫댓글 좋은 정보, 잘 읽었네.
대구에서 서울까지는 고속 전철로 2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올 수 있도다.
서울은 정이들지 않는 타향이며 늘 집회로 오염된 대도시로 우리 노인들에게 정서상 맞지 않도다.
1948년 11월 24일(음럭) 동작구 대방동 성남중학교 관사에서 출생한 김경수의 한마디.
지난 주에는 박계훈, 허성호, 본인 이렇게 동기 3명이 수성 못을 산보하고 같이 식사하며 매월 4째 토요일 오후에 수성못 주변 산보산행 하기로 하였습니다. 시간되는 동기들 누구나 참석을 환영합니다.
김교장이 1948년 11월 24일(음력)에 서울의 동작구 대방동 성남중학교 관사에서 태어났다는 출생기록을 기억하고 있으니 대단하네.
좋은 재안이야. 여우도 죽을 때면 고향을 향하여 머리를 둔다는데(수구초심), 하물며 사람이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어디다 비교하겠나? 나이가 들수록 고향산천과 친구 생각은 더 나는 법이지.
자주 볼 방법을 한 번 생각해보세.
i quite agree with you. l think so. So long.
그 때 그 시절 생후 18개월인 내가 걸어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왔다면 기적이 아닐까요?
걸어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I can't believe you!
1950.6. 28.쯤. 봇짐을 맨 아버지의 등짐에 얹힌채 서울을 출발해서 공습을 피해 밤에 걷고 낮에 산 속에 숨어 지내면서
무연고인 대구 도착하니 가을 추수 시기였다고 합니다. 아마 4개월 동안 "거지 피난 생활"을 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