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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진노가 돌아섰고 안위하시오니 감사하겠나이다 (이사야 12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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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듣고 있으며, 지난 주 추수 감사절에는 네가지 감사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가지를 다시 말씀 드려 보면,
① 지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주의 뜻을 이해(청종)하도록 성령충만을 구하며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④ 하나님을 경외하며 복종함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이렇게 네가지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꼭 잊지 마실 것은 감사에 앞서 진심으로 참회 하는 것, 회개하는 고백이 있어야 하며, 회개한 후에 감사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은 감사의 마지막 말씀으로, 내년 한해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감사찬송, 감사기도, 감사 고백이 나오는 삶을 살아갈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겠습니다. 감사 찬송, 감사 기도, 감사 고백이 매일 같이 콧노래처럼 불려진다면 생각만 해도 즐겁고 기뿐이 좋은 일상이 될 듯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 다짐하면서 일을 하려고 해도 몇일이나, 몇 주 못가서 힘이 빠지고 느슨해지고, 심지어는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자라고 단단히 각오하고 다짐해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하루 하루의 삶이 너무나도 고달프고 바빠서 감사라는 단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짜증과 피곤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경우가 대부분 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감사 찬송, 감사 기도, 감사 고백을 드리면서 그렇게 초심의 마음을 놓치지 아니하고 365일 지속적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무한 동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감사를 잊지 아니하고 습관으로 연결시켜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감사의 동력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들려주시는 것을 토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가지고 갈 무한 동력은, “회복, 구원, 기쁨”입니다. 이 세가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회복은 용서와 은혜, 구원은 예수동행, 기쁨은 성령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무한동력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충만하게 채워져서 깨닫는 은혜, 새겨지는 은혜, 실천하여 감사로 나아가시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무한 동력이 나오는 본문 1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아멘.
1절의 시작이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은 종말에 남은자들이 구원을 받아 찬양하며 감사하게 되는 날을 말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구원이 임하는 종말의 그 날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날에 긍휼함을 받아서 용서와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너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주(하나님)께서 전에는 나에게 노(진노,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서)하셨으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전적으로 긍휼, 용서, 은혜로 인해) 또 주께서 나를 안위(위로, 구원 뿐만 아니라 고단한 삶을 위로하시고 영원한 평안으로 인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마지막에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라는 구절의 원어상의 의미는, “내가 주를 향하여 손을 뻗겠나이다”라는 뜻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어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는 동작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언제 어디서나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을 가장 높여 드리는 감사 찬송과 기도를 올려 드리는 것이 회복(용서함 받아서)됨을 받아서 그 날에 이르게 될 사람들이 마땅히 드려야 되는 거룩한 행동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그날에 이르서서 감사함을 드리는 이 고백을 미래 시점이 아닌 현재진행으로 표현하였고, 고백의 주체가 되는 네 스스로가 지금 당장 능동적으로 손을 높이 들어 그렇게 하여라고 강한 권면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일상적인 마음은 사랑해 주시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불안하고 연약한 삶을 불쌍히 여겨 주시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매번 죄를 짓기 때문에 용서함을 구하고, 용서함 받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너무나도 연약하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살아갈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묶으면 “회복”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말에 이르러서야 온전한 회복을 누리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오늘 하루 회복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진노의 대상이었는지, 하지만 현재는 내가 진노를 벗어나 안위(위로)를 받게된 대상으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용서와 은혜 가운데 오늘, 내일, 모레, 계속해서 살아갈 힘을 공급 받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오늘 1절 말씀처럼 그날에 이르러서 어차피 하게될 감사 찬양의 고백을 묵혀두지 말고 매일 같이 드려 보는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매일 매일, 지금 당장 회복의 무한동력을 발휘해서 두 손 높이 들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이 범사에(습관적으로)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가르쳐 준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 일상적인 습관의 감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회복(용서와 은혜)”의 무한동력이 있어야 됨은 명백해졌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가르쳐 준 말씀이 전해져서 무려 1200년이 지나서 이 말씀대로 그렇게 살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면서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짐전 1:13,14) 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비참했던 과거의 추악한 모습을 어떠했는지를 잊지 않았으며, 그런 악한 과거를 기억하며 자신이 받은 회복(긍휼, 용서,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늘 고백하고 항상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승화 시켰습니다. 한 두 번 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일 이년 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교에서, 기도에서 이 고백을 끊임없이 드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고백하는 습관이야말로 감사하는 사람, 충성하고 순종하는 삶을 이끌어가 는 무한동력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끄러운 과거를 지녔지만, 불쌍히 여김을 받아서 죄를 용서 받고 사도의 직분으로 일하게 된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아니하였고, 그로 인해 범사에 감사하는 삶, 일상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1절은 사도 바울과 같은 삶, 곧 회복 되었다는 사실, 용서 받았다는 사실, 은혜 받았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아니하고 수시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림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이사야가 가르쳐 오늘 말씀에 적용해 보면 “진노의 대상이었던 내 과거가 회복(용서,은혜)되었음을 잊은 사람에게는 그날에 이르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라는 말로 만들어 볼 수 있겠습니다.
긍휼함을 받은 것, 용서함을 받은 것,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을 하루 하루 잊지 않고 두 손 높이 들고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습관적임인 감사로 나아날 수 있는 “회복”의 무한 동력으로 살아가는 강건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삶 속에서 “회복”의 무한동력을 장착하셔서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며, 습관적으로 감사함으로 나아가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무한동력이 나오는 2~3절을 읽어 드립니다.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아멘.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무한동력 두번째는 ‘구원’입니다. 2, 3절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구원의 기쁨과 감격에 충만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의 구원은 멸망의 위기에 빠진 나라와 민족의 구원이 가장 절실했지만 여기서에서의 구원은 궁극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는 메시아(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과 구원을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이 소망하는 유일한 목표는 구원 받고 영생 얻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 이외에는 깊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 듯 합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구원이 이미 나에게 이루어졌다는 안일함도 있을 것이고, 구원이라는 개념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붙잡아야 된다는 목표의식도 생기지 않기도 하고, 구원이 당장 오늘 내일 시급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구원이라는 의식을 머리 속에 담고 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 보다 급한 것이 있습니까? 구원 보다 더 중요한 일이나 약속이 있습니까? 구원보다 더 감사할 그 무엇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연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이 허상이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면 신앙생활 당장 끊어 버리겠죠.
우리 모두는 구원의 은혜가 내게 임하여 있음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들여 구원의 주인을 향하여 예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남편과 아내보다도, 아들과 딸보다도, 직장과 일보다도, 돈과 명예 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구원에 대해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에는 왜 그리 인색할까요?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중요한 구원에 대하 한 마디도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아이러니 아닙니까?
마트에서 물건 구입하고 포인트 적립하는 것에는 그렇게 꼼꼼하게 챙기면서, 맛집이라면 거리를 마다않고 찾아가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내 자녀 공부 잘한 것은 여기저기서 자랑하고 싶어하면서, 정작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 구원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무관심 할까요?
우리가 구원에 대해 입 닫고, 생각 안하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 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슬퍼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우 매우 슬퍼하실 겁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에게 감사가 메마른 것은 구원에 대한 일상의 찬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2, 3절의 내용들이 우리가 일상에서 구원을 고백하며 찬양하는 구절이 되도록 신앙의 태도를 교정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무한동력을 장착하는 방법은, 우리가 사는 오늘이 바로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그날 이라는 의식을 단 하루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오늘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 받는 그날 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천국 문 앞에 서 있다고 느낀 다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 내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구원 영생의 물을 길으리로다” 2, 3절과 같은 고백이 저절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구원은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현재적으로 내 삶에서 고백되어지고, 찬양 되어지고, 기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매일 매일 천국문 앞에서 있다는 심정으로 구원의 그날에 맞이할 기쁨과 감격을 느끼며, 2, 3절과 같이 고백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범사에 감사, 일상에 습관적으로 감사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구원을 찬양하는 무한동력을 장착한다면 우리 모두는 감사의 사람이 되어 항상 평안하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형통함을 누리는 심령 천국의 은혜 속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강제적으로라도 구원의 그날이 오늘 내게 이루어졌음을 묵상하며 두 손 높이 들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앙해 보십시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면 여러분의 삶은 말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구원이 매일 같이 고백되어지는 것은 예수님과 동행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한동력 구원을 다른 말로 “예수동행”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친구처럼 동행하시며, 구원의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고백하며 매일 매일이 천국 문 앞에 서 있는 기쁨속에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 감사의 무한동력이 나오는 4~6절을 읽어 드립니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아멘.
감사의 무한동력, 회복과 구원에 이어서 마지막 동력은 기쁨입니다. 기쁨의 동력을 다른 말로는 ‘성령충만’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같이 기뻐하며, 매일 같이 성령충만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 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번 시편 설교에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안에 기쁨을 충만학세 채워주셔서 우리가 언제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기쁨을 우리가 취하고, 누리며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쁨을 취하고 누리고 살아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4~6절에서는 그 비결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이 높다고 선포 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만국에 선포합니다.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셨음을 온 땅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여기까지가 4~6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라는 내용들이고, 이외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많은 것들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매일 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어느덧 성령충만의 사람으로 기쁨 가운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높이면, 기쁨의 무한동력이 충만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저절로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입으로 선포하게 되면 매사에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들어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부르는 것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말씀으로 기록하였고, 우리는 이사야의 말씀 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일상에서 습관적인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잇는 무한동력 세 가지를 발견 하였습니다.
첫째, 회복의 동력이었고, 이 회복은 긍휼히 여김 받아서 죄의 용서함 얻고 은혜를 누리며 되었음을 매일 같이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구원의 동력이었고, 이 구원은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천국문 앞에 서 있는 ‘그날’이라고 생각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예수님과 항상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기쁨의 동력이었고, 이 기쁨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높여 드릴 때 성령충만함이 가져다 주는 기쁨이었습니다.
회복, 구원, 기쁨, 이 세가지 무한동력이 우리 모두에게 매일 매일 장착 되면, 우리 모두는 범사에 감사하며, 습관적으로 감사의 삶을 살아가다가 실제로 그 날에 이르러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신앙의 여정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달 동안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의 심령을 더욱 풍성하게, 충만하게 해 주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감사가 메마른 삶은 궁핍하고 피폐하고 절망으로 빠져들게 마련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은 평안과 기쁨과 소망으로 언제나 밝게 빛납니다.
여러분 모두의 삶의 여정 위에, 감사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 동력인, 회복과 구원과 기쁨이 임하여서 무거운 짐과 어려운 것들이 다 벗겨지고 가볍고 쉬운 것들만을 지니고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날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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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회복과 구원과 기쁨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매일의 삶에서 회복과 구원과 기쁨이 고백되고 선포되어져서 감사가 넘치는 믿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