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도망자들,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다
생명의 광대한 추진력은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식물을 정원이나 식물원 같은 울타리 안에 가둬둘 생각은 애당초 안 하는 게 낫다. 그런 방법으로 가둬두려는 우리의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조만간 식물들은 확장을 계속해나갈 곳을 찾기 위해 탈출을 감행할 것이다.
오늘날 침입성 동식물로 여겨지는 종 대부분은 사람이 가둬둘 수 있다고 생각한 곳에서 탈출하면서 이렇게 우리에게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침입성이라고 생각하는 종뿐만 아니라, 우리 곁에 항상 있었기에 주변 환경의 일부라고 믿었던 식물 대다수가 실제로는 다소 오랜 기간 우리 곁에 있던 이민자였다. 오늘날 문화유산의 일부로 인식되는 식물들은 우리와 잘 결합하여 살고 있는 외래종일 뿐이다.
옥수수를 예로 들어보자. 멕시코 출신의 이 외래종은 대대로 포강 유역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었다. 또 이탈리아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인 토마토와 바질은 어떤가? 토마토와 바질 잎을 넣은 파스타가 어쩌면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 토마토는 페루와 멕시코 사이 지역에서 유래한 토착종으로 1540년 스페인 출신의 멕시코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처음 유럽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토마토는 쓸데없는 작물 취급을 받았다.
1544년 토마토가 이탈리아에 들어왔을 때, 열매 색깔이 노란색이었다. 그래서인지 안드레아 마티올리는 자신의 책 (메디지 세넨시스 코멘타리)에 토마토를 일컬어 말라 아우레아[당시 유럽에서는 낯선 열매를 모두 사과하고 말함]로 표기했고, 나중에 글자 그대로 '포모도로[이탈리아어로 'pomo'는 과일의 열매를 뜻하고 'oro'는 황금을 뜻함, 현 이탈리아어로 포모도로는 토마토다]'로 번역되었다. 다른 많은 외래종과 마찬가지로 천대받는 토마토가 환대받으려면 열매 색의 변화 과정을 모두 거쳐야 했다. 토마토가 붉은색을 띠기 전까지는 썩 믿음이 가지 않는 식물로 보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토마토에 독성이 있다고 여겨져서 장식용으로만 쓰이다가 나중에 치료제로 이용되었다. 1572년에 이르러서야 '엄청나게 빨간' 토마토의 다양성에 대해 언급되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쉬워졌다. 일단 붉게 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토마토가 요리에 쓰이기 시작했지만, 정착 속도는 굉장히 더뎠다. 이탈리아 국민 요리의 첫 타자인 토마토 파스타의 레시피가 나오기까지는 19세기 전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토마토의 정착기가 꽤 긴 편이지만, 이탈리아 요리법의 또 다른 보루인 바질에 비하면 순조로운 편이다. 바질 또한 외래종이다. 인도 내륙지역 출신인 바질은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유럽에 상륙했다. 바질 역시 사람들에게 쉽사리 인정받지 못했다. 바질의 험난한 여정에 비하면 토마토는 두 팔 벌려 환영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바질처럼 기원전 350년에 들어와서 식탁에 올려진 18세기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것은 아니니까. <자연사>에서 섭취 시 정신이상과 마비 증상을 일으킨다고 서술한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23~79년.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이자 정치인 겸 군인으로, 자연계를 아우르는 백과사전식 대작 <자연사>를 저술함]에서부터 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치부하던 17세기 전반의 영국 의사이자 허브 식물학자 니콜라스 켈페퍼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 동안 향기로운 이민자의 평판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식용이든 아니든 모든 식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거나 사용될 것이니 이제부터 그냥 우리 곁에 두기로 하자. 모두 어떤 용도로든 사용되기 때문에 경제성이나 유용성을 분석할 때, 식물들이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법하다. 흥미롭게도 재배종과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가 자생식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많은 식물이 알고 보면 종종 아주 먼 곳에서 건너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모든 식물을 일컬어 침입식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잘 살펴보면 과거의 침입식물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침입식물은 현재 우리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미래의 자생식물이다. 나는 이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이 규칙을 항상 염두에 두면 확장을 제한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침입식물이 되는 자격 조건은 다양하다. 그중 다음 몇 가지만 기억하자. 씨앗을 다량 분산할 수 있는 능력, 매우 빠른 성장(속도), 환경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생태형을 만들어내는 능력, 복합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인간과 제휴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전반적으로 종을 효율적이고 유연하며 저항력 있게 만드는 특징들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마다 상황별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은 자격 조건 중 지능을 설명한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종들을 좋아하며, 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알 만한 속임수를 쓰는 종들이다. 다음 장에서는 막을 수 없는 세 도망자를 이야기해보겠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중에서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그리샤 피셔 삽화
첫댓글 진짜 재미난 글들이 많으네요. 책에 사인 딱 해두고 읽을 날을 기다립니다. 12/14 까지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요기 카페에서 맛보기 잘 봅니다.
송진화 전 제주지부장께서 추천해 준 작가의 책인데, 읽을수록 재미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