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곡서원
- 위치 :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269번길 60-7
- 충청남도지정 기념물 제12호 (1976. 10. 4.지정)
- 시대 : 조선초기
충곡서원은 계백장군을 주벽으로 하고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부적면 충곡리 수락산 서쪽
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숙종 6년(1680)에 유림들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고종8년(1871)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35년 옛날 위치에 재건
되었으나 사우만 남고 멸실되었던 것을 그때의 초석에
따라 1977년 재건,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을 재건립
하였다. 창건당시는 계백장군을 주벽으로 사육신을
배향하였으나, 그 뒤 이현동, 박증, 김정망, 김익겸,
김홍익, 이민진, 김만중, 박종, 조병시, 김자빈, 이학순
등이 점차 추배되어 지금은 18위가 배향되어 있고,
경내에는 성삼문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윤황선생 고택
- 위치 : 논산시 노성면 장마루로 716번길 132
- 충청남도지정 민속자료 제8호 (1985.12.31. 지정)
- 시대 : 조선시대
윤황선생 고택은 그의 6대손인 윤정진이 조선영조때
(1730년대) 이축한 후 윤황선생 종가로 대대로 사용
되어 오고 있다. 전체적인 건축물의 배치구조는 ㄱ자
건물형태의 안채와 안채측면에 아랫채가 있어서
안채와 아랫채가 ㄷ자형태를 이루고 있고, 별채로
사당과 사랑채가 있다. 안채의 지붕은 팔작과
맛배를 겸한 형태이며, 집의 구조는 중앙3칸은 대청을
겸한 통간 우물 마루를 두고 전면 중앙의 우측 퇴간에는
누마루를, 누마루후면에 방을 두었다. 대청의 측면에는
2칸의 긴방과 부엌이 연결되었다. 사당은 3칸의 정면
퇴간에 마루를 깔고, 중앙 2칸은 대청이며 좌우에는
방을 두고 있다. 대청의 마루문은 4짝씩이며 방문은 2
짝으로 되어 있고, 문 위쪽에는 고창을 두고, 전면에 소로
수장을 하여 가옥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 윤황선생 조선 선조5년 임신년인 1572년 태어나
선조 30년(1597) 장원 급제하여 봉상시정을 거쳐 군기
감정때 탄핵을 받아 노성에 은거했다. 1623년 인조
반정후 재등용되어 동부승지, 이조참의, 전주부윤을 지냈
다. 1627년, 1636년의 양호란 때는 척화를 주장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공임.
금곡서원
- 위치 : 논산시 연무읍 왕릉로 170-35
- 충청남도지정문화재자료 제78호 (1984. 5.17. 지정)
- 시대 : 조선시대
이 서원은 만치당 김수남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송시열,
송준길에 의해 1687년 가야곡면 조정리에 금곡사를 신축
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가 숙종 16년(1690)에 김수남의
유풍지인 연무읍 금곡리로 이축하였다. 정조 5년(1781)
매죽헌 성삼문, 송재 조계명 양위를 추배하였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훼철되었고, 그 해에 단소를 설치 운영
되어 오다가 1977년 사우를 건립 복원하였다.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유림들이 모여 춘추로
제사를 올리고 있다.

휴정서원
- 위치 : 논산시 부적면 신풍길 87
- 논산시지정 향토유적 제16호 (1992. 10. 28. 정)
- 시대 : 조선시대
휴정서원은 숙종26년(1700)에 창건하고 숙종31년(1705)
에 준공하여 휴계유무 선생을 봉안하고 후에 구봉 송익필,
목사공 김공휘, 화양당 김호, 과암 이항길, 기기재
김상연, 서윤공 김진일, 구봉 김우택 선생을 추배하여
제향을 받들어 오던 중 1868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시
철폐되었다. 1919년 중건하였으나 1944년 탑정저수지
가 완공되어 수물됨에 따라 현위치에 단소를 설치 단제
를 지내왔다. 현재 휴정서원은 1984년 사우를 복설하고
1985년 3월 20일 구봉 송선생을 주향으로 8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음력 3월 20일과 9월 20일에 춘추 향사를
봉향하고 있다.

성동 은행나무
- 소재지 :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353-3
- 기념물제152호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성동 은행나무는 나이가 450∼493년 정도된 것으로
추정되며, 강경에서 성동면 개척리로 들어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문장과 시문이 뛰어나면서 도술 또한
능통한 전우치가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어 고향으로
도망가던 중 이 은행나무에서 쉬면서 가지고 있던 은행
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고 한다. 지팡이를 꽂으면서 이 지팡이가 자라면 전씨가 번창할 것이며, 죽으면
전씨는 남의 그늘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
다고 하는데, 그 후 지팡이에서 잎이 돋고 가지가 자라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남양 전씨 문중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가문의 평안과 번영을 빌면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첫댓글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 명소가 많네. 여유로울 때 마눌과 함께 가고 싶다.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