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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말씀/ 누가복음 21:5-21:38 요절/ 누가복음 21:36 | 2022. 11. 13 | |
누가복음 제 36 강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해 미래학자들은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에 매여 역사의 흐름과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일까요 절망적일까요? 제자들은 예루살렘 멸망과 인류의 종말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줍니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관을 확실하게 세움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희망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키며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갈릴리 촌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압도되어 예수님께 “이것 좀 보십시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고 자랑한 것입니다. 그 성전은 헤롯 대왕에 의해 리모델링 된 성전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건축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제자들은 높이 120m에 달하는 대리석 기둥들을 바라보며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의 기초가 얼마나 튼튼했는지 지금도 성전터와 그 유명한 통곡의 벽이 남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절대시했고 성전은 안전하며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성전 파괴와 멸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은 영원할 것 같은 성전이 때가 되면 철저히 파괴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물의 겉모양을 보고 평가하지만 예수님은 사물의 중심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성전의 겉모양은 화려했지만 내부는 부패했습니다. 성전에 꼭 있어야 할 말씀이 없었고 기도가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만 있고,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과 같은 곳이요 자기 이익을 취하는 강도의 소굴로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교만과 탐욕에 빠질 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전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름으로서 사랑의 열매,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들은 성전의 파괴를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으로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 역사의 종말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성전 파괴와 종말이 언제인지 물었습니다. 또한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 어떤 징조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들의 두 가지 질문 중에 예수님은 먼저 종말의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거짓 메시아들과 이단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메시아다’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또한 혼란한 틈을 타서 많은 이단들이 주님 재림의 때가 정확하게 몇년 몇월 몇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의 말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세상이 흉흉하면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거짓 메시아나 이단의 말에 쉽게 미혹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피괴 되기 전에 거짓 메시아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곧 망할 것이니 나를 따르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이단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어디에서 있을 거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킵니다. 직통계시를 받았다, 내가 그리스도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그대로 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단입니다. 성경66권이 정경으로 정해진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성경 이외에 다른 계시를 통해 구원역사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역사를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알고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거짓 메시아나 이단 사상에 미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일한 구주요 주님으로 믿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고 복음의 진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둘째,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여기 저기서 들릴 때 세상이 끝장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끝장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 탄생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어떤 풍문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세상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딤후1:7).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력을 발휘할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전쟁과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과 큰 징조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멸망 전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AD 66년부터 이스라엘과 로마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정신을 잃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우리의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제자들은 많은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재난이 있기 전에 제자들에게 박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회당과 옥에 넘겨지고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런 박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박해는 복음 증거의 기회입니다. 박해를 통하여 복음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그리고 왕들과 권력자들에게까지 증거되었습니다. 박해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박해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박해 받을 때에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박해 앞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제자들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박해 앞에서 염려하지 않고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친히 할 말과 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박해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반당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에게 배반당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가족들과 친구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믿는 자녀와 믿는 형제와 믿는 친구를 박해자들에게 넘겨줄 뿐 아니라 죽이는 데까지 넘겨줄 것입니다. 또한 신자들은 가족들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겁니다. 한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힘든데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때 얼마나 고통이 클까요? 이런 미움과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들은 믿는 자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의 생명은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이는 우리가 시련 앞에서 인내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인내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내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인내하게 하시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어떤 사람도 뺏어갈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시련도 죽음도 우리의 구원을 뺏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 안 듣는 자녀에 대해 화를 내지 않고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해 감정적으로 대함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상처줄 때가 많았습니다. 양들에 대해서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드러남으로 상처줄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을 오래 참으시고 말씀의 종이요 목자로 사용하여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자기 의를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연약하고 상처 많은 영혼들을 겸손과 눈물로 섬기는 좋은 목자가 되고,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빼어난 말씀의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4절은 예루살렘 멸망의 때에 대해 그리고 그 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성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날들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겁니다. 그들은 몸이 무거워 도망가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살아남은 자들은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요세푸스 역사책에 의하면 100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9만7천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무서운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로마 군대가 쳐들어올 때에 유대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내 있는 자들은 성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촌에 있는 자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환난의 날에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미련, 성전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의 때는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지배를 받는 때를 가리킵니다. 바벨론 침공으로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었고 그 이후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국의 독립을 꿈꾸고 그 날이 오기만을 갈망했지만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밟히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흩어짐과 난민의 삶은 그들이 복음을 깨닫고 영접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대로 구원 얻는 이방인의 수가 차게 되면 예루살렘이 온전하게 회복될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요 세상 역사 종말의 때입니다.
25-28절은 종말 직전의 징조와 종말의 때에 대해서 알려 줍니다.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에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은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거라고 했습니다. 자연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땅과 바다에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구름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초림하실 때는 한 아기의 모습으로 조용히 오셨습니다. 하지만 재림하실 때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심판주로 오십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다시 말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량이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서 사단과 악의 세력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은 심판의 날이요 무서운 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자연계가 회복되는 날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머리를 들어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싹이 나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시 말해 예수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죽기 전에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종말의 징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지는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할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 위에 우리 인생집을 세울 때 어떤 환난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36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장차 올 심판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라고 하십니다. 장차 임할 최후의 심판은 끔찍하고 철저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10.29 참사의 영상을 보고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최후의 심판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혼미하게 하고 악몽에 시달리게 합니다. 이런 심판과 비극을 피하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문제 앞에서 기도하시고, 일을 마친 후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팀으로 세울 때도 기도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갈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영적 분별력이 생기고 힘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기도할 때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빠지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
둘째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잠도 자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 있는 것은 목적이 이끄는 삶,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도록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고전10:31). 우리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춘천 5개대 캠퍼스 영혼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이웃들과 세계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힘써 감당하지 않으면 세상 유혹과 생활의 염려에 빠지게 됩니다. 사명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충성을 다해 감당할 때 스피릿이 생기고 활력이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역사는 종말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각처와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있는 종말의 징조들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만왕의 왕이요 심판주로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가 심판을 피하고 인자 앞에 기쁨으로 설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를 참 소망으로 붙들고 날마다 기도하고 주님의 양을 먹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