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와 대장암, 뭔 관계길래…통계는 죄다 “우유 안먹은 탓”
요즘 여러 암 중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게 하나 있습니다. 대장암입니다. 다른 암 발병률은 조금씩 낮아지는데, 대장암만 홀로 고공 질주 중입니다.
지난해 한 국제 공동연구에 따르면 1990년 84만 명이던 세계 대장암 환자는 2019년 217만 명으로 두 배 넘게 뛰었습니다. 대장암의 폭발적 증가를 이끄는 건 선진국입니다. 선진국은 여러 보건 지표에서 후진국을 앞서고 있는데, 대장암만큼은 거꾸로 갑니다.
지난 20년간 고소득 국가의 대장암 환자가 가파르게 늘었다. 김경진 기자
50세 미만의 젊은 대장암 환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2019년 미국 암학회가 42개국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연령대에선 일부 선진국의 경우 대장암 환자 수가 줄었지만, 50세 미만에선 대부분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 다룰 내용
① 젊은 대장암 초기 증상 네 가지
② 이 증상 있으면 대장암 가능성 5배
③ 우유 안 먹으면 대장암 가능성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2003년에서 2012년 사이 젊은 대장암 환자가 매년 평균 4.2%씩 늘었다고 합니다. 4.2%라는 수치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는 평균 증가율입니다. 10년 동안 ‘복리(複利)’로 대장암 환자 수가 불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은 세계에서 젊은 대장암 환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대장암 급증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보건 연구에 특화된 미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 젊은 대장암 환자의 초기 증상과 위험신호 연구를 맡겼습니다. 워싱턴대는 NIH 지원금 3위 대학입니다. 지난해엔 연구비 5억6900만 달러(약 7500억원)를 받았습니다.
워싱턴대는 50세 미만 대장암 환자가 느꼈던 위험 신호와 초기 증상 중 유효한 게 네 가지라고 확인한 뒤 각각 증상의 위험성을 수치화한 결과를 지난달 4일 내놓았습니다. 그간 대장암 증상에 대한 여러 정보가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젊은 대장암 환자를 중심으로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암연구소 저널에 실렸습니다. 아직 50세가 안 된 분이라면 꼭 확인해 보셔야 할 내용입니다.
🚦확실한 ‘적신호’ 네 가지
워싱턴대 연구진은 미국인 중 18~49세 대장암 환자 5075명을 분석했습니다. 여성 48.1%, 남성 51.9%였고 결장암 63.1%, 직장암 36.7%의 비율이었습니다. 이들에게서 대장암 선고를 받기 3개월 전부터 2년 전까지의 위험 신호와 증상을 확인했습니다.
대장은 소화를 거의 마친 음식물이 마지막으로 통과하면서 오래 접촉하는 장기라서 소장보다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대장암은 사망률도 낮지 않다. 김영옥 기자
조사 결과 대장암 환자 중 2% 이상이 경험한 위험 신호와 증상은 총 여덟 가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연구진이 주목한 건은 네 가지였습니다. ① 복통 ② 직장 출혈 ③ 설사 ④ 철분 결핍 빈혈입니다. 다른 증상들은 대장암이 아닌 이들도 흔히 느끼는 증상이고 위험도도 크지 않았지만, 이 네 가지만큼은 대장암 위험성과 연관성이 컸습니다. 성별 차이에 따른 증상과 위험도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가 꼽은 젊은 대장암 환자의 위험 신호와 증상 여덟 가지. 김영희 디자이너
대장에 암이 생기면 장운동에 변화가 생깁니다. 앞서 언급한 증상들은 장운동 변화와 관계가 깊습니다. 우선 복통은 대장이 위치한 아랫배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진 고려대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오른쪽이나 왼쪽 아랫배가 아픈 증상이 대장암의 대표적 증상”이라며 “근육에 쥐가 나듯이 장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장이 부풀어 오르면서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직장 출혈은 치핵처럼 항문 질환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치핵 같은 경우엔 선홍색의 피가 선명하게 나올 때가 많지만, 대장암에서의 직장 출혈은 검붉은 색 피가 나타납니다. 이런 출혈이 최근 들어 갑자기 나타나 지속되거나 점액질 대변과 함께 탁한 피가 나올 때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설사는 다른 장 질환에도 자주 생기는 증상입니다. 크론병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대장암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1~3개월 새 설사가 잦아졌다면 대장암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철분 결핍 빈혈은 일반적인 빈혈 증상과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만성적인 피로나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하는 증상이 있는데, 확실한 진단을 위해선 채혈 검사가 필요합니다. 암이 빈혈을 부르는 이유는 암세포는 빨리 증식하는 대신 세포 간 결합력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암세포 조직이 떨어져 나가 피가 새면서 빈혈이 발생합니다.
🩸직장 출혈 있으면 대장암 가능성 5배
이 네 가지 중 가장 위험한 건 ‘직장 출혈’입니다. 직장 출혈이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일 가능성(위험도)이 5.13배 컸습니다. 위험도는 복통이 1.34, 설사는 1.43, 철분 결핍 빈혈은 2.07이었습니다. 위험도가 1.34배 크다는 건 발병 위험이 34% 높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증상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죠.
특히 이 증상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동시에 나타나면 위험도는 훨씬 커집니다. 두 가지가 겹치면 최대 4.44배, 세 가지가 겹치면 최대 11.23배 높았습니다.
김현서 디자이너
신재민 기자
연구진은 대장암 진단 3개월 전에서 2년 전에 나타난 증상이나 위험 신호만 분석했습니다. 이 기간 증상을 느낀 사람은 전체의 19.3%였습니다. 그리고 진단 직전 3개월 이내에 증상을 느낀 사람은 49.3%였습니다. 즉, 무증상인 사람도 31.4%나 된다는 겁니다. 젊은 대장암 환자의 3분의 1가량은 증상도 없는 상태에서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진 교수는 “대장암을 가장 빨리, 확실히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대장내시경이므로 증상이 있을 때는 빨리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또 의료진도 젊은 복통 환자에게는 대장암은 배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그 가능성도 열어놓고 검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유 부족 식단이 대장암 원인?
왜 대장암이 최근 30년 동안 확 늘었을까요. 원인을 찾으려는 대규모 연구결과가 유명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지난해 4월 실렸습니다. 연구진은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204개국의 보건 자료를 뒤졌습니다. 연구자 405명이 세계 1200개 기관과 협력했습니다.
그 결과를 토대로 대장암 발병에 기여하는 열 가지 요인을 특정했습니다. 총 87개 위험 요인 중에서 대장암과 연관성이 있는 요인만 뽑아낸 것이죠.
이를 자세히 말씀드리기 전에, 주의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요인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대장암 발병에 기여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통계적 분석을 했더니 대장암이 걸리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게 드러났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아직 이 요인들이 대장암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확정짓기는 힘듭니다.
차준홍 기자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열 가지 요인 중 기여도가 가장 큰 건 우유가 부족한 식단(diet low in milk)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흡연, 칼슘 부족 식단, 음주 순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속한 고소득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요인별 기여도를 봐도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유 부족 식단, 흡연, 칼슘 부족 식단, 음주 순이었습니다.
흡연이나 음주가 대장암에 기여하는 건 이제 상식입니다. 담배와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인한 발암물질이니까요. 그런데 우유 부족과 칼슘 부족은 어째서 대장암에 기여하는 건지 의아하긴 합니다.
2015년 서울대와 국립암센터가 대장암 환자 922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칼슘 부족은 대장암 발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칼슘 섭취 상위 25%는 하위 25%에 비해 대장암 발병 위험이 16%에 불과했습니다. 즉, 칼슘 섭취 하위층에서 6명의 대장암 환자가 발견될 때 상위층에선 1명만 나타난다는 거죠. 하지만 이 역시 메커니즘을 파악한 게 아닌 통계적 연구입니다.
김진 교수는 이를 ‘상징적’ 지표로 해석합니다. 즉, 우유에 든 물질이 대장암을 막아준다기보다 우유가 균형 잡힌 식단을 대표하는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는 “우유나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균형적인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며 “즉,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대장암이 줄어드는 이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진 교수는 “저지방 우유는 대부분 나라에서 가격이 더 비싼데, 저지방 우유를 섭취하는 곳에서 대장암 발생률이 적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도 그런 이치”라고 했습니다.
대장내시경 권고 연령은 50세지만, 요즘은 45세 이하에 권하는 의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조사에 따르면 대장암이 전이된 뒤 발견되는 비율도 50세 이상은 20%, 50세 미만은 27%였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경각심이 적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대장암 조기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암이 발전했을 경우 생존율이 추락해서입니다. 5년 생존율은 초기 질환일 때 90%를 넘지만, 절제 불가능한 전이성 대장암에 이르면 14%로 추락합니다.
김진 교수는 “대장암은 다른 암처럼 천천히 자라는 암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력 등 위험 요인이 있다면 5년마다 대장내시경을 반드시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요즘은 대장암 3기도 5년 생존율이 80%까지 올라온 만큼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