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탐방의 시작, 통영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지리산과 가야산 다음으로 방문한 국립공원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이 세 번째 국립공원이 된 이유는 역시나 지리적 요인이 컸다. 경상남도에 포함되어 있는 국립공원이 지리산, 가야산 그리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섬, 소매물도
지리산과 가야산은 유명한 사찰이 자리잡고 있는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방문할 기회가 많다. 수학여행이나 가족여행을 떠나면 오래된 사찰에 한 번쯤 들리며, 봄철의 벚꽃이나 가을철의 단풍을 보기 위해 산으로 떠나곤 하기 때문이다.
벚꽃의 유명세에 밀리긴 하지만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과 함께 봄에 방문하면 좋을 국립공원이다. 따뜻한 봄이 되면 남쪽 지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백꽃이 남해의 섬을 수놓으며 마치 붉은 색 카페트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남해 바다 위 흩뿌려진 한려수도
인간이라는 육체적 한계 때문에 해상 국립공원을 탐험하기 위해선 배를 탈 수 밖에 없다. 배를 탈 수 있는 여객선 터미널이 위치한 곳이 바로 해상 국립공원 탐방의 거점이 되며,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거점으로 꼽히는 곳은 통영・거제・남해・사천・여수다. 이 중 나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데가 바로 통영이었기에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시작을 통영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국립공원 이야기 12 - 한려해상 국립공원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거제 지심도에서 시작해 여수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출처: 국립공원 관리공단)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전체 면적은 535.676㎢이며 76%가 해상 면적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남해 바다 위에 보석처럼 흩뿌려진 형태다. ‘한려’라는 이름은 통영의 ‘한’산도와 ‘여’수의 오동도를 포함한 바다를 의미한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크게 6개 지구 (거제・해금강지구, 통영・한산지구, 사천지구, 남해대교지구, 상주금산지구, 여수오동도지구)로 구분된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유명한 경관으로는 통영의 한산도와 소매물도, 거제의 지심도와 해금강, 남해의 금산과 상주해수욕장, 여수의 오동도가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탐방의 시작은 케이블카와 달아공원에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섬 여행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의 섬들이 여객선을 타고 바다 저 멀리 나가야 하는 것과 달리,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섬들은 육지와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다. 그 덕분에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탐방하려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상대적으로 쉽게 여행을 즐긴다. 거제도의 바람의 언덕・학동 몽돌해변・여차해안도로, 통영의 달아공원, 남해도의 금산・상주해변은 굳이 배를 타지 않더라도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꼭대기로 가면 볼 수 있는 풍경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섬으로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곳으로 통영을 꼽는다. 거가대교가 지어지기 전 거제도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영을 거쳐 가야 했다. 오랜 운전 후 지친 사람들을 위해 통영은 특색 있는 음식을 준비해뒀다. 통영의 신선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과 식당을 둘러보며 멍게와 굴로 배를 채우며 편히 쉴 수 있다.
통영은 조선 산업으로도 발전한 도시다
하지만 통영이 섬 여행의 출발지로만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 곳곳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케이블카 건설은 통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통영의 미륵산 꼭대기에 지어진 한려수도 통영 케이블카는 461m나 되는 미륵산 꼭대기까지 오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남해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한산도・비진도・연대도 등 통영 앞바다를 수놓은 수많은 섬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남쪽 바다 끝까지 온 고생이 절로 잊혀진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의 피로 물든 바다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한산도 앞바다는 푸른 빛을 뽐낸다.
달아공원의 노을
케이블카를 타고 향할 곳은 달아공원이다. 통영시 산양읍에 속한 미륵도는 조선소 건설로 인해 북쪽은 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남쪽은 아직도 청정한 자연 속 자그마한 어촌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해가 지기 전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미륵도 남쪽 달아공원으로 향했다. 달아공원은 평상시에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평범한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불과하지만 저녁 노을이 질 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달아공원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관이기에 저녁 때만 되면 달아공원은 사람들로 인해 발디딜 틈조차 찾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낙조를 보려면 넉넉한 시간을 두고 달아공원에 가는 것이 좋다.
소매물도에 머물 시간이 없다면 유람선이라도 타자
배를 타지 않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경관을 볼 수 있긴 하지만, 해상 국립공원의 진면목은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가야 느낄 수 있다. 통영의 대표적인 한려수도는 한산도・비진도・매물도・소매물도 등이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등대섬’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매물도다. 크기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섬이지만, 소매물도의 아름답고 특이한 풍경을 보면 먼 바다까지 나온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유람선을 타고 본 이름모를 섬들
소매물도는 통영에 속해있지만 통영 여객선 터미널보다 거제의 저구항에서 배를 타면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저구항에서 출발하면 매물도를 거쳐 소매물도까지 가는데 50분이면 충분하지만 통영항에서 출발하면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 하지만 저구항이 거제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통영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빠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저구항을 통해 소매물도로 가려는 사람들은 거제・해금강 지구에 속한 경관과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다.
소매물도에 머물 시간조차 부족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는 유람선을 타는 것이다. 통영은 오래 전부터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들로 붐빈 곳이기 때문에 한려수도를 돌아 볼 수 있는 다양한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코스는 한려수도를 돌아보며 장사도까지 가는 코스이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격전을 벌인 곳을 둘러보는 코스도 있다. 소매물도까지 가는 코스는 왕복 3시간 30분이 걸리며, 소매물도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등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유람선에 오른다.
드디어 소매물도에 도착하다
소매물도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선 배에서 내려 섬을 한 바퀴 둘러봐야 하지만, 배 위에서 바라보는 절벽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은 홍도의 해안절벽과 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진 섬은 소매물도가 유일할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바다로 깎여진 하얀색 절벽은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예술의 현장이다. 설악산이나 월출산에서 볼 수 있는 장엄하고 신비한 기암괴석을 바다 한 가운데서 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소매물도의 하얀 기암절벽은 경이롭기만 하다
소매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나서 대한민국의 섬에 대한 생각이 한 순간에 바뀌었다. 소매물도를 보기 전에는 대한민국이 자랑할 수 있는 자연은 지리산과 설악산 같은 거대한 산과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신비의 섬 제주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려해상 국립공원과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의 풍경은 제주도 못지 않게 아름다웠고 시간과 발품을 팔아 가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유람선에서 본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다음 번엔 소매물도에 내려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때마침 맞이한 명절은 주말과 겹쳐 짧은 시간동안 가족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소매물도로 떠나는 여정을 흔쾌히 승낙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