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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천국(句茶川國)>과 <거발환 환웅(居發桓-桓雄)>
동서양을 잇는 씰크-로드(silk-road)보다 우리역사는 물론 세계역사에 더 깊은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오환국로(五桓
國路)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국(桓國) 이야기는 ‘거발환-환웅(居發桓-桓雄)’께서 배달국(倍達國) 시대를 열기 전에 이미 12환국(桓國) 연방이
있었다고 거론하고 있는데, 초(超)-상고사(上古史)로써 ‘까마득한 옛날 일’로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환국(桓國)가운데 들어있는 명칭이 그대로 진서(晉書) 비리국(裨離國) 조(條)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나타나서 숙신(肅愼)으로 부터 대륙 이수(里數)로 5만리이고, 마행(馬行)으로 500일 걸리는 ‘교역로(交易路)’가 있었
음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원문(原文)및 해석(解釋)]
(1) 裨離國在肅慎西北,馬行可二百日,領戶二萬。
: 비리국(裨離國)은 숙신(肅愼)의 서북(西北)지역인데, 말(馬)로써 200일을 가(可) 가는 곳인데, 20,000의 호구(戶口)
를 거느린다.
(2) 養雲國去裨離馬行又五十日,領戶二萬。寇莫汗國去養雲國又百日行,領戶五萬餘。
一群國去寇莫汗國又百五十日,計去肅慎五萬餘裡。其風俗土壤並未詳。
: 양운국(養雲國)은 비리(裨離)로 부터 말(馬)로 또 50일을 가야되며 20,000 호구(戶口)를 거느린다. 구막한국(寇莫
汗國)은 양운국(養雲國)으로 부터 또 100일을 가야하는데, 50,000 호구(戶口)를 거느린다.
일군국(一群國)은 구막한국(寇莫汗國)으로 부터 또 150일을 가야한다.
숙신(肅愼)으로부터 (최종 일군국(一群國)까지의) 간 것을 계산(計算)하면 5만여리가 되는데, (비리국(卑離國)을
비롯한 4나라에 대한) 그 풍속(風俗)과 토양(土壤)에 대해서는 모두 알려진바 없다.
- 각설(却說)
위 진서(晉書)의 기록에서 일군국(一群國)까지 마행(馬行)으로 일수(日數)를 전부 합치면 (200일+50일+100일+150일
= 500일)이 됩니다.
따라서 숙신(肅愼)으로 부터 일군국(一群國)까지의 여행길을 ‘마행(馬行)500일로(日路)’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런데, 도대체 진서(晉書)에는 비리국(裨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일군국(一群國)에 대해서
“그 풍속(風俗)과 토양(土壤)에 대해서는 (*)모두(*) 알려진바 없다. (其風俗土壤(*)並(*)未詳)”고 하면서 마행(馬行)
으로 500일 됨과 또 거리가 대륙 이수(里數)로 ‘5만리(萬里)’가 됨을 왜 기록하고 있는가?
이는 당시 고구리(高句麗) 사람들이 오늘날 캐나다(Canada)지역인 동부여(東夫餘)를 바탕으로 미주(美洲)대륙의
희귀(稀貴) 물자(物資)를 숙신(肅愼)에서 모아서 중국대륙과 교역(交易)및 조공(朝貢)관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
는데, 이 미주(美洲)대륙의 물자들이 오직 중국대륙에만 교류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지역으로 교류
(交流)되는 것임을 진(晉)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동부여(東夫餘)를 비롯한 미주(美洲)대륙의 휘귀 물품이 서역(西域)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로마(Roma)’인 대진국
(大秦國)과는 ‘또 다른 끝’까지 교역됨을 눈치 챘었던 것이지요.
중국대륙에 공급되지 않는 미주(美洲)대륙의 상품이 대진국(大秦國)이 아니라면 “어디에 까지 가는가?” 하는 지적
호기심에 질문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한 고구리(高句麗) 사람들이 대답한 것을 듣고 옮겨 적은 것임이 바로 일군국
(一群國)까지의 여정(旅程)을 그린 <진서(晉)書)>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진서(晉書)의 비리국(裨離國) 조(條)에서 위 마행(馬行)500일로(日路)를 설명한 글 다음에 이어지는 다응 문단
(文段)에 의해서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3) 泰始三年,各遣小部獻其方物。至太熙初,復有牟奴國帥逸芝惟離、模盧國帥沙支臣芝、於離末利國帥加牟臣芝、
蒲都國帥因末、繩全國帥馬路、沙樓國帥釤加,各遣正副使詣東夷校尉何龕歸化。
: 태시(泰始) -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연호-3년(A.D 267년)에 (상기(上記)의) 각나라들은 소부(小部)들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헌납하였다.
태희(太熙) 초(初)(=A.D.290년)에다시 ①모노국(牟奴國)의 국수(國帥) 일지유리(逸芝惟離)와 ②모로국(模盧國)의
국수(國帥) 사지신지(沙支臣芝)와 ③어리말리국(於離末利國)의 국수(國帥), 모신지(牟臣芝)와 ④포도국(蒲都國)의
국수(國帥) 인말(因末), ⑤승전국(繩全國)의 국수(國帥) 마로(馬路), ⑥사루국(沙樓國)의 국수(國帥) 삼가(釤加)는
각각(各各) ‘높은 사람의 뜻’인 예(詣)를-‘국왕(國王)의 뜻’을 뜻함-지니게 하여 보내어 동이(東夷) 교위(校尉)인
하감(何龕)에게 귀화(歸化)시켰다.
- 각설(却說)
결국 오환국로(五桓國路)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이 <교역로(交易路)>는 태시(泰始) -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
의 연호-3년(A.D 267년)에 소부(小部)들을 보냈음은 물론, 태희(太熙) 초(初)(=A.D.290년)에는 <국왕(國王)의 예(詣)>
를 들고 온 무려 6개의 나라가 국수(國帥)들을 <동이(東夷) 교위(校尉)인 하감(何龕)에게 귀화(歸化)>시켜 교역로
(交易路)에 관한 업무를 보게 할 정도로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시(泰始) 3년(A.D 267년)이면, 고구리(高句麗) 중천왕(中川王) 20년이 되는 때이며, 태희(太熙) 초(初)(=A.D.
290년)는 고구리(高句麗) 서천왕(西川王) 21년이 되는 해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에즈(Suez)로 비정되는 일군국(一群國)의 교역로(交易路)를 고구리(高句麗)가 관장하는 속칭(俗稱)
<한사군(漢四郡) 조공(朝貢) 투자의 길>에 있었고, 이것이 중천왕, 서천왕 때에 역사에 등장한다면, 광개토태왕(廣開
土太王)께서 영락(永樂) 5년 (AD395) 을미(乙未)에 친히 <파산{叵山}>·<부산{冨山}>·<부산{負山}>을 정벌하여 <염수
{鹽水}>인 오늘날 수에즈(Suez)인 염수(鹽水)에까지 이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참고 : 五年乙未, 二月, 太后生子<談聦>于溫湯. 上, 以<卑離>漸違王化, 親征<叵山>·<冨山>·<負山>至<鹽水>,
破其部落七百余所, 獲牛馬羊豕万数. 二后亦騎馬而從上. 上, 以<吐>后有身止之, 而不聽. [皈]生女, 名以<三山> (*)
왜냐하면, 영락 5년인 (AD395)보다 훨씬 전에 태시(泰始) 3년(A.D 267년)에 비로소 기록에 나타나는 것만을 계산해도
(397-267=130년)이 되기 때문에, 이 오환국로(五桓國路)는 최소한 130년동안 ‘고구리’가 주도해서 관할해왔음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비리국(卑離國)을 고구리(高句麗)가 관할해온 것이 고주몽-동명성왕 때부터임이 <고구리 초략>에는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 있을뿐만 아니라, 이 고구리(高句麗)는 북부여(北夫餘)로, 북부여(北夫餘)는 고조선(古朝鮮)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 민족이 오환국로(五桓國路)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음이 드러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오환국로(五桓國路)가 실제 어떤 역사적과정을 통해서 건설(建設)되었지는지?"에 대한
검토는 의외로 적은 것입니다.
오환국로(五桓國路)의 역사성을 살펴봄에 있어서, 몇 가지 반드시 사전(事前)에 검토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오환국로(五桓國路)는 동북(東北)쪽에서 서남(西南)쪽으로 그 역정(歷程)을 말하면, ① 선패국(鮮稗國) - (??)-
②비리환국(卑離桓國) - ③양운국(養雲國) - ④구막한국(寇莫汗國) - ⑤일군국(一群國)을 지나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①과 ② 사이에 ‘-(??)-’를 표시한 까닭이 있습니다.
“오환국로(五桓國路)는 환국(桓國) 가운데 하나인 구다천국(句茶川國)을 경유(經由)하지 않겠는가?”하는 질문입니다.
만약에 구다천국(句茶川國)을 지난다면, ‘5환국로’는 ‘6환국로’로 그 이름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측 사서(史書)에 구다천국(句茶川國)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구다국(句茶國)에 관한 이야기는
‘태백일사 환국본기(桓國本紀)제이(第二)’에 등장합니다.
환국본기에서 12환국중에 구다천국(句茶川國)이란 국명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 등장하는 구다국(句茶國)은 “구다
천국(句茶川國)이 어찌해서 구다국(句茶國)으로 변천하게 되었는가?”를 검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환국본기 제2’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원문(原文)의 해석을 할 때, 좌계가 일반적인 절구(絶句)와 달리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로
표현합니다.
구다국(句茶國)의 위치의 ‘올바른 파악’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아주 엄격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원문(原文)및 해석(解釋)]
①<密記>注曰<盖馬國>一云<熊心國>在<北盖馬大嶺>之 (*)北距<句茶國>二百里(*)
: <삼성(三聖)-밀기(密記)>의 주(注)에 말하기를 “개마국(盖馬國)은 웅심국(熊心國)이라고도 하는데, ‘북(北)쪽으로
구다국(句茶國)200리에서 떨어진’ 북개마대령(北盖馬大嶺)에 있다.
②<句茶國>舊稱<瀆盧國>在<北盖馬大嶺>之西
: 구다국(句茶國)은 옛날에 독로국(瀆盧國)이라고 칭하던 곳인데 북개마대령(北盖馬大嶺)의 서쪽에 있다.
③<月漬國>在北五白里.
: 월지국(月漬國)은 (이 구다국(句茶國)으로 부터) 북(北)쪽으로 500리에 있다.
④<稷臼多國>或稱<賣句餘國>舊在<五難河> 後爲<瀆盧國>所破 遂移<金山>居之
: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 매구여국(賣句餘國)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오난하(五難河)에 있었다.
후에 독로국(瀆盧國)에 공파(攻破)되어 마침내 금산(金山)으로 이동하여 거하게 되었다.
⑤<句茶國>本艾蒜所産也 艾煎服以治冷 蒜燒食以治魔也
: 구다국(句茶國)은 본래 쑥(=애(艾))과 마늘(=산(蒜))이 나는 곳이다. 쑥은 달여서 먹으면 냉(冷)을 고치고, 마늘은
구워먹으면 마귀(魔鬼)를 물리친다.“고 하였다.
- 각설(却說)
위 문단의 해석에서 ①문장을 절구(絶句)하는 방법이 좌계는 다름을 먼저 말씀드려야할 듯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북개마령지북(<北盖馬大嶺>之北)까지로 해서 다음과 같이 절구(絶句)합니다.
즉 이런 식의 절구(絶句)가 되는 것입니다.
<密記>注曰<盖馬國>一云<熊心國>在<北盖馬大嶺>之北 / 距<句茶國>二百里
이런 절구(絶句)는 한문(漢文)의 문법(文法)으로 보아서 잘못 절구(絶句)한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이 절구(絶句)한
것과 좌계가 절구(絶句)한 것의 지리(地理)-비정(比定)은 전혀 다르게 됩니다.
‘북개마대령’은 오늘날 대흥안령산맥을 뜻합니다. 자연적으로 ‘남개마대령’은 ‘태행(太行)-산맥’이 되는 것이지요.
이 남북 개마대령은 아래의 중국전도에 보다시피, 별(丿)자 모양으로 시원하게 치달린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절구방법으로는 개마국(盖馬國)혹은 웅심국(熊心國)이란 나라가 흑룡강(黑龍江)이 흥안령산맥과
소흥안령산맥이 시옷(ㅅ)자로 꺽여나가는 오늘날의 이륵호리산(伊勒呼里山) 북안(北岸)에 자리잡은 듯한 느낌을 줍
니다.
왜냐하면 “북개마대령(北盖馬大嶺)의 북(北)쪽에 개마국(盖馬國) 혹은 웅심국(熊心國)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절구(絶句)방법으로 하면, 구다국(句茶國)은 이런 개마국(盖馬國)혹은 웅심국으로 부터 북(北)쪽으로 200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흑룡강이 시옷(ㅅ)자 처럼 껵여나가는 북안(北岸)에서 약간 북(北)쪽으로 올라간
곳에 위치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절구(絶句) 방법대로 ①문장을 해석하면, ②문장 즉 “구다국(句茶國)은 북개마대령(北盖馬大嶺)의
서(西)쪽에 있다.”는 문장인 - (②<句茶國>舊稱<瀆盧國>在<北盖馬大嶺>之西 )- 와 모순(矛盾)이 발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북개마대령의 서(西)쪽이 아니라, 북(北)쪽에 구다국(句茶國)이 있게 되기 때문인 것입나다.
따라서 ②문장과 관련해서 읽으면, 자연적으로 좌계가 절구(絶句)한 방법대로 해야만 올바른 문단구성이 되는 것
입니다.
②문장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구다국(句茶國)이란 ‘북개마대령’ - 즉 오늘날의 대흥안령산맥에서 서(西)쪽으로
길게 나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①문장에서 말하는 실질적인 의미는 구다국(句茶國)은 개마국(盖馬國) 혹은 웅심국(熊心國)의 남(南)쪽으로
20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좌계는 이 웅심국(熊心國)의 웅심산(熊心山)을 오늘날 ‘휘하화산군(輝河火山群)’을 뜻하고,
또 웅심연(熊心淵)은 이 ‘휘하화산군’에서 흘러나오는 이민하(伊敏河)의 원류가 되는 호수(湖水)라고 봅니다.
(*) 호륜호(呼倫湖) 우측에 있는 ‘휘하화산군(輝河火山群)’을 볼수 있는 ‘내몽고 자치구 지도’
http://parkchina.com.ne.kr/map/mongo.JPG
(*) 휘하화산군(輝河火山群)과 해납이하(海拉爾河)를 마치 공(工)자처럼 연결하는 이민하(伊敏河)를 확인할 수 있는
곳.
(*) 참고 : 약간 뜨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또 휘하화산군(輝河火山群)주변의 현재 중국에서 통제하는 지역인지라,
정확히 지리표시가 안 되고 있습니다.(*)
http://big5.destguides.ctrip.com/maps-d458s26958-hulunbeier.html
아무튼 웅심국의 위치를 오늘날 ‘휘하하산군(輝河火山群)’으로 보면, 그 남(南)쪽 200리가 되는 곳이면, 아래 ‘중국
전도’에서 보다시피, 북개마대령 - 즉 대흥안령산맥의 주산(主山)인 태평령(太平岭: 1712)의 위도(緯度)가 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전도’를 보면 호륜호(呼倫湖)로 동북류(東北流)하면서(↗)길게 들어가는 강이 하나 발견이 되는데,
이 강의 이름이 극로타하(克魯佗河)입니다. 이 극로타하(克魯佗河)는 묘하게도 긍특산(肯特山)에서 발원(發源)해서
영어의 유(U)자 모양 돌아서 극로타하(克魯佗河)로 흘러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긍특산(肯特山)을 넘어서 서(西)쪽 지역에서는 온갖 지류(支流)들이 바이칼(Baikal)호수로 통합해 들어
가기 때문에, 바이칼로 들어가는 오른쪽의 중요한 발원지가 됨을 볼수 있습니다.
(*) 호륜호(呼倫湖)로 물(水)을 대는 극로타하(克魯佗河)와 그 발원지(發源地)인 긍특산(肯特山)을 볼수 있는 ‘중국
전도’
http://www.coo2.net/files/lim030203-6chi.gif
요컨데, “구다국(句茶國)이라는 것은 오른쪽의 태평령(太平岭)을 바탕으로 해서 극로타하(克魯佗河)를 따라서
긍특산(肯特山)까지 걸쳐있었던 나라이다.”라는 사실을 삼성(三聖)-밀기(密記)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긍특산(肯特山)은 몽고(蒙古)사람들에게 최고의 성산(聖山)으로 여겨지는 산입니다.
왜냐하면, 몽고비사(蒙古秘史)에 의하면, “‘징기스칸’이 불아한산(不兒罕山)에 장례(葬禮)를 재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긍특산(肯特山)이기 때문입니다. [蒙古聖山。根據《蒙古秘史》,成吉思汗葬於不兒罕山(今肯特山)]
(*) 위내용을 퍼온 곳.
http://zh.wikipedia.org/zh/%E8%82%AF%E7%89%B9%E5%B1%B1
이 긍특산(肯特山)은 오늘날 ‘헨티인 누루(Hentiyn Nuruu)산’이라고 말해지고 있는데, 해발 1743m가 되어서 북개마
대령(=흥안령산맥)의 태평령(太平岭:1712m)보다 오히려 높습니다.
(*) 긍특산(肯特山) =‘헨티인 누루(Hentiyn Nuruu)산’이 1743m 임을 보여주는 구글(google)지도
(뜨는데 다소 시간이 걸림)
http://www.geonames.org/2030780/hentiyn-nuruu.html
자연히 산(山)이 높기 때문에, 이 긍특산(肯特山)이 분수령(分水嶺)이 되어서
[1] 서남류(西南流)해서 돌아가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강인 토납하(土拉河)즉 ‘투울 강’ (=Tuul River)이 나가는
산이고,
[2] 또 극로타하(克魯佗河)즉 ‘케루렌 강(Kerulen River)’이 동남류(東南流)해서 유(U)자 모양으로 돌아서 결국
호륜호(呼倫湖)로 들어가게 함은 물론,
[3]악눈하(鄂嫩河)혹은 알리하(斡难河)로 명칭되고 ‘징기스칸’의 출생지(出生地)로 유명한 ‘오논 강 (Onon River)’이
<음과달(音果達)-강>인 인고다(Ingoda)강으로 해서 호륜호(呼倫湖)로 유입되지 않는 흑룡강(黑龍江)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 위 [1], [2],[3]을 살필 수 있는, 특히 [3]의....
악눈하(鄂嫩河)=‘오논 강(Onon River)’이 <음과달(音果達)-강>인 인고다(Ingoda)강으로 들어감을 볼 수 있는
‘몽고 지도’
http://geology.com/world/mongolia-satellite-image.shtml
아무튼 우리는 구다국(句茶國)의 위치를 몽고의 성산인 긍특산(肯特山)과 대흥안령산맥의 태평령(太平岭)을 연결
하는 곳에 있으면서, 극로타하(克魯佗河) 즉 ‘케루렌 강(Kerulen River)’이 호륜호(呼倫湖)로 들어가게 하는 유역
(流域)에 동서(東西)로 길게 나있다고 생각하면, 오늘날 대흥안령산맥인 ‘북개마대령’에서 이 구다국(句茶國)이
서(西)쪽에 위치해서 밀기(密記)의 내용에 합당함은 물론 삼성(三聖)-밀기(密記)에 적힌 지리(地理)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밀기(密記)에 기록된 내용으로는 이 구다국(句茶國)으로 부터 “북(北)쪽으로 500리에 월지국(月漬國)이 있다.”는
것입니다. (③<月漬國>在北五白里. )
그런데, 월지국(月漬國)의 [지(漬)]는 ‘물(水)에 담그다.’라는 의미를 띱니다.
따라서 월지국(月漬國)은 ‘달(月)을 물에 담근 나라’라는 뜻을 지니는데, 이는 달(月)모양으로 생기 호수(湖水)를
의미하는데, 사서(史書)에서는 흔히 천해(天海), 북해(北海)로 언급되는 ‘바이칼(Baikal)호’을 의미하게 때문에,
월지국(月漬國)이란 말 자체가 ‘바이칼’과 그 주변을 포함하고 있는 나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래 ‘몽고지도’를 보아도, 긍특산(肯特山) 북(北)쪽에 바로 바이칼(Baikal)이 있기 때문에, 이 바이칼로 ‘셀렝가
(Selenga)강(江)’을 비롯한 여러 강들이 마치 ‘부채꼴’처럼 몰려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나라의 명칭이 바로
월지국(月漬國)이라는 것입니다.
(*) 긍특산(肯特山) 북(北)쪽에 바이칼(Baikal)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몽고지도
http://geology.com/world/mongolia-satellite-image.shtml
그런데 삼성(三聖)-밀기(密記)에는 오늘날의 바이칼(Baikal)호를 끼고 있는 월지국(月漬國)에 오난하(五難河)가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이 ‘오난하’에 있던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은 매구여국(賣句餘國)이 구다국(句茶國)
에서 공파(攻破)되어서 마침내 금산(金山)으로 이동하여서 살게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 ④문장 옮김 -
④<稷臼多國>或稱<賣句餘國>舊在<五難河> 後爲<瀆盧國>所破 遂移<金山>居之
: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은 매구여국(賣句餘國)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오난하(五難河)에 있었다.
후에 독로국(瀆盧國)에 돌파(突破)되어 마침내 금산(金山)으로 이동하여 거하게 되었다.
- ④문장 옮김 마침-
위문장에서 독로국(瀆盧國)이 구다국(句茶國)의 구칭(舊稱)이라고 <삼성(三聖)-밀기(密記)>에서 밝혔기 때문에,
오난하(五難河)에 있었던 직구다국(稷臼多國)을 공파(攻破)하여 금산(金山)으로 쫓은 나라는 바로 구다국(句茶國)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다국(句茶國)의 영역이 몽고(蒙古)의 성산(聖山) 긍특산(肯特山)에서 발원해서 남류(南流)하다가
서서히 유-턴(U-tern)해서 동북류(東北流)(↗)하는 ‘케루렌 강(Kerulen River)’인 극로타하(克魯佗河)가 패이호
(貝爾湖=Buir) 호륜호(呼倫湖=Hulun)로 들어가는 입입구에 있음을 잘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케루렌 강(Kerulen River)’인 극로타하(克魯佗河)가 바로 흑룡강(黑龍江)의 원류인 액이고납하(額爾古納河)
와 그대로 연결된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삼성(三聖)-밀기(密記)>에서는 호륜호(呼倫湖=Hulun)는 물론, 휘하화산군(輝河火山群)에서 북류(北流)하는
이민하(伊敏河)를 다시 해납이하(海拉爾河)가 북개마대령에서 서류(西流)해서 이 호륜호(呼倫湖=Hulun)로 들어
오는 쪽 북(北)쪽은 모두 웅심국(熊心國)혹은 개마국(盖馬國)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웅심국(熊心國)혹은 개마국(盖馬國)의 영역은 엄격히 말하자면, 북개마대령 - 즉 대흥안령산맥을 그 기반
(基盤)으로 하는 나라임에 유의(有意)해야할 듯 합니다.
구다국(句茶國)과 구다천국(句茶川國)은 그 이름에 <내 천(川)>자가 하나 더 들어가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삼성밀기(三聖密記)>에 드러난 ‘구다국’은 어디까지나 <긍특산(肯特山)에서부터 케루렌 강(Kerulen River)’인 극로
타하(克魯佗河)-패이호(貝爾湖=Buir)-호륜호(呼倫湖=Hulun)에 이르기 까지> 강호(江湖)를 중심으로한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추모경(芻牟經)을 보면, 케루렌 강(Kerulen River)’인 극로타하(克魯佗河)주변에 있는 구다국(句茶國)이
아닌, 만주(滿洲)의 가목사(佳木斯)산맥과 완달산(完達山)산맥을 둘러쌓인 조선조 정조대왕 때까지 길주(吉州)
관할에 있는 대해만(大海灣) 주변에 있었던 나라 역시 구다국(句茶國)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추모경에 나타난 구다국(句茶國)의 지리비정은 “구다국(句茶國)과 구다천국(句茶川國)이 어찌 다른가?”를 그
의미 차이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맥점(脈點)이 됩니다.
극로타하(克魯佗河) 주변이 아닌 만주(滿洲)에 있었던 구다국(句茶國)의 위치가 드러나는 것은 [추모경(芻牟經)
-‘고구리 창세기’ /김성겸 초역/지샘 출판사/2009.6.19]의 p202에 다음같은 기록입니다.
[원문(原文)]
(東明 七年 庚寅)
六月 徵<荇南>軍二千. <黃龍>軍五千,命<扶芬奴><于仁>鍊之于<西川> 上, 親鍊<沸流>軍 三千于<汗濱>, 從<汗水>
至<汗東>, 南獵于<桓那>.<句茶>之界. <閃尼>躍馬追<桂>后大罵曰 “亡國之女敢鬧天仙之國” 上, 怒慾伐之, 命<沸流>
軍結陣于界上而待詔. <萱>皇后告蚕績, 上親臨蚕室賜蚕師.蚕人等衣酒.
[해석(解釋)옮김]
<동명>7년 경인(B.C.31),
6월, <행남(荇南)>군 2천과 황룡(黃龍)군 5천을 징발하시고 부분노(扶芬奴)와 우인(于仁)에게 명하시어 서천(西川)
에서 훈련하게 하셨으며, 상께서는 친히 비류(沸流)군 3천을 한빈(汗濱)에서 훈련하시고 한수(汗水=桑干河)를 따라서
한동(汗東)으로 가셔서 남방으로 몰이사냥을 하시면서 환나(桓那)와 구다(句茶)의 경계(境界)로 가셨더니, 섬니
(閃尼(句茶女主))가 말 위로 뛰어올라서 계(桂)후를 뒤쫒으며 큰소리로 모욕하기를 “나라를 말아먹은 년이 감히
천선(天仙)의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상께서 노하시어 섬니(閃尼)를 토벌하시고자 비류(沸流)
군에게 명알 내려 경계 상에서 결진(結陣)하고, 조칙(詔勅)을 기다리게 하셨다.
훤(萱)후가 잠사(蠶絲)실적을 고하였더니, 상께서 친히 잠실(蠶室)로 왕림하시어 잠사및 잠인(蠶人)들에게 옷과 술을
내리셨다.
[의미해설]
일단 위 기록에 등장하는 지리(地理) 비정(比定)과 관련해서 좌계는 ‘김성경 선생님’의 지리(地理)비정과 약간 틀린
견해(見解)를 지니고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렇기는 하나, 한수(汗水)를 김성겸 선생께서 오늘날 <상간하(桑干河)-자아하(子牙河)>로 비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탁견(卓見)으로 수용합니다.
이는 고조선(古朝鮮) 시절에 서압록(西鴨綠)이 상간하(桑干河)-자아하(子牙河)로, 또 동압록(東鴨綠)이 오늘날
동요하(東遼河)로 비정할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압록강(鴨綠江)이 관경사국 초기(初期)에 모두 한수(汗水)로도 표현되었다는 가설을 세웁니다.
따라서 이 고조선의 동서(東西) 두 압록강 ‘사이’가 한중(汗中)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날 만주(滿洲)지역이 바로 한동(汗東)이라고 칭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두 한수(汗水)에서 고조선 시절 서압록(西鴨綠)으로 칭했던 곳을 서천(西川)으로, 또 고조선시절의 동압록
(東鴨綠)을 동천(東川)으로 별칭(別稱)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환나국(桓那國)의 위치에 대해서는 추모(芻牟)께서 ‘세계헌법’을 배달화백으로 통과시키는 엔딩-룰(ending-rule)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엄사수(嚴(氵虒)水)게임(game)을 벌리는 지역 - 즉 오늘날 흑룡강(黑龍江)에서 ‘제야(Zeya)강’
이 흘러들어오는 곳부터 해구(海口)까지에 그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던 나라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환나국(桓那國)은 ‘아시아(Asia)최고의 무문(武門)의 국가’인데, <계(桂)>후(后)께서는 환나국의 여주(女主)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주몽(高朱蒙)-추모(芻牟)께서 엄사수(嚴(氵虒)水)게임(game)을 벌릴 때에, 사호(虒虎)-거북선을 타시고,
이 신성한 절차법(節次法)을 어기는 것을 막는 패자(沛者) 즉 법관일을 맡으셨는데, 그 때부터 고주몽(高朱蒙)
-추모(芻牟)를 연모(戀慕)하시어 나중에는 결혼(結婚)까지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환나(桓那)의 영토중에서 오소리강(烏蘇里江=Ussuri river)과 합류하는 곳 하류 이상의 땅 - 즉 제야(Zeya)
강까지의 영토를 고구리(高句麗)에 할애(割愛)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구다국(句茶國)의 여주(女主)인 섬니(閃尼)는 “나라를 말아먹은 년이 감히 천선(天仙)의 나라
를 시끄럽게 하는구나!”라고 모욕(侮辱)어린 말로 매도(罵倒)한 것입니다.
(*) 참고: 흑룡강(黑龍江)의 수계(水系)를 볼 수 있는 곳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a/Amurrivermap.png
따라서 환나(桓那)와 구다(句茶)의 경계(境界)는 바로 오늘날의 ‘오소리강(烏蘇里江)’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오소리강(烏蘇里江) 서(西)쪽에서 동북류(東北流)하는 오늘날의 요력하(撓力河)가 바로 조선조 정조대왕
때까지 있었던 서(西)쪽의 가목사(佳木斯)산맥, 동(東)쪽의 완달산(完達山) 산맥, 송화강 남안(南岸)에 있는 무산령
(茂山嶺) 산맥으로 둘러쌓인 대해만(大海灣)에서 흘러나오는 두만강(豆滿江)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즉 대해만(大海灣)은 소도(蘇塗)였던 것이지요.
구다국(句茶國)의 섬니(閃尼)가 계후(桂后)께 모욕적인 말을 하고, 바로 대해만(大海灣) 주변의 3층(層)의 산(山)
으로 둘러싼 소도(蘇塗)로 들어갔기 때문에, 고주몽-동명성왕은 섬니(閃尼)를 토벌하려고 해도, 즉각적인 공격을
하지 않고, 단지 비류(沸流)-군(軍)에게 결진(結陣)만 하고, 대기(待期)토록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류 군의 수효가 3천에 불과한데, 소도(蘇塗)안에 있는 적(敵)을 밖으로 몰아내는 이른바 견척박성권
(遣刺迫城權)을 발휘하려면, 우수한 무기(武器)와 군사력을 ‘육부군(六部軍)’에게 인계하여야하는 것이 순방(淳庬)
체제의 지엄한 법도였기 때문에, 워낙 대동(帶同)해온 군사력이 적어서 그냥 대기(待期)하도록만 한 것입니다.
이런 관정에서 보면, 추모경(芻牟經)에서 “한수(汗水=桑干河)를 따라서 한동(汗東)으로 가셔서 남방으로 몰이사냥을
하시면서 환나(桓那)와 구다(句茶)의 경계(境界)로 갔다.
(從<汗水>至<汗東>, 南獵于<桓那>.<句茶>之界.)”는 토벌(討伐)의 경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는 것입
니다.
①상간하(桑干河)-자아하(子牙河) [=汗水] → ② 황해(黃海) →③ 한반도 남해(南海)→④ 한반도 동해(東海) →
⑤ 사할린(Sakhalin)섬(島) [=동옥저(東沃沮)] 뒤의 ‘타타르(Tartar)해협(海峽)’ → ⑥ 흑룡강(黑龍江) 해구(海口) →
⑦ 하바로브스크(Khabarovsk) → ⑧ 오소리강(烏蘇里江)
즉 ⑦ 하바로브스크(Khabarovsk)에서 ⑧ 오소리강(烏蘇里江)으로 가는 것은 방향상 남류(南流)하게 되는데,
이를 추모경(芻牟經)에서는 ‘남력우<환나><구다>지계(南獵于<桓那>.<句茶>之界.)’란 문장에서 남렵(南獵)
- 즉 “남(南)쪽으로 몰이사냥을 나섰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섬니(閃尼)의 구다국(句茶國)이 결국 만주(滿洲)의 중심부(中心部)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대해만(大海灣)-소도(蘇塗)와 관련해서 늘 떠오르는 것이 고주몽(高朱蒙)-추모(芻牟)께서 엄사수(嚴氵
虒水)게임(game)을 통해서 세계헌법을 최종 의결(議決)시킨 후에, 들린 것으로 묘사된 “모둔곡(毛屯谷)이 어디이며,
도대체 무슨 뜻인가 ?” 하는 것입니다.
좌계는 이 모둔곡(毛屯谷)이 우리말로 “(물(水)을) 뫃아둔 곡(谷)” 즉 해곡(海谷)의 고유명사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동쪽으로 완달산(完達山)산맥, 서쪽으로 가목사(佳木斯)산맥, 북쪽으로 송화강 밑에 무산령(茂山嶺)
산맥으로 둘러쌓인 대해(大海)의 해곡(海谷) 명칭이 바로 모둔곡(毛屯谷)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삼성밀기(三聖密記)>에 적혀있는 구다국(句茶國)는 긍특산(肯特山)에서 발원해서 남류(南流)하다가
서서히 유-턴(U-tern)해서 동북류(東北流)(↗)하는 ‘케루렌 강(Kerulen River)’인 극로타하(克魯佗河)가 그 중심(中心)
인데, 북계(北界)가 웅심국, 개마국 등으로 제한(制限)받는데, 문헌에는 구다천국(句茶川國)에서 <천(川)>이라는
글자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또 모둔곡(毛屯谷)을 중심으로 하는 섬니(閃尼)의 구다국(句茶國)역시 동계(東界)를 오소리강(烏蘇里江)으로 하여서
환나(桓那)와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이 역시 구다천국(句茶川國)에서 <천(川)>이라는 글자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구다천국(句茶川國)과 구다국(句茶國)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기에 결정적인 힌트(Hint)를 주는 것이 <삼성밀기(三聖密記)>에 “구다국의 옛 칭호(稱號)가 독로국(瀆盧國)이다.
(<句茶國>舊稱<瀆盧國>)”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독로국(瀆盧國)의 위치에 대해서 다산(茶山)선생께서는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그 위치를 거제도
(巨濟島)로 비정하고 계십니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신라 문무왕(文武王)17년(A.D,677년)에 상군(裳郡)이라 했는데, 상(裳)은
우리말로 ‘두르마기’ => ‘두르기’이며 그 음가(音價)가 독로(瀆盧)와 흡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의 ‘하나’였습니다.
또 하나의 근거는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韓(弁辰)>의 다음과 같은 기록입니다.
[원문(原文)및 해석(解釋)]
①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祠祭鬼神有異,
: 변진(弁辰)은 진한(辰韓)사람들과 ‘섞이어서 살고 있었는데,(=잡거(雜居)), 역시 성곽(城郭)이 있었다.
의복(衣服)과 거처(居處)는 진한(辰韓)사람과 같이하였으나 언어(言語)와 법속(法俗)은 서로 비슷하였지만, 귀신
(鬼神)과 제사(祭祀)를 지내는 의례(儀禮)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② 施灶皆在戶西。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其人形皆大。
: 불(火)때는 부엌(=조(灶))의 ‘굴뚝’인 호유(戶牖)가 모두 서(西)쪽으로 있었다.
독로국(瀆盧國)은 왜(倭)와의 접계(接界)에 있었다. (변진(弁辰))12국 모두가 역시 왕(王)이 있었는데, 그 나라
사람의 모양은 모두가 컸다.
[의미해설]
여기서 시조개재호서(施灶皆在戶西)의 호서(戶西)의 “<호(戶)>가 과연 집(=택(宅))을 의미하는가?”하는 것이 문제
됩니다.
집(=택(宅))으로 해석할 경우, 이는 “불(火)때는 부엌(=조(灶))이 집의 서(西)쪽에 있었다.”는 뜻이 되고, 방고래가
이 부엌을 통해서 난방(煖房)을 하였다고 가정하면, 굴뚝은 자연히 동(東)쪽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좌계가 볼 때에는 이 호(戶)는 집(=택(宅))이 아니라, 호(戶)란 글자처럼 생긴 이른바 ‘지게 문(門)’ 즉 수직축
(垂直軸)이 달린 여닫이 문(門)에서 유추(類推)된 호유(戶牖)로 봅니다.
호유(戶牖)는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선박을 사용하는 민족들이 - 이는 전세계에서 우리민족 밖에 없읍니다.
- 움직이는 통로(通路)가 선체(船體) 밖으로 나온 것을 중국(中國) 사람들이 칭하는 용어입니다.
(호유(戶牖)는 고리도경(高麗圖經) 주즙(舟楫)편에 등장하는 용어임)
따라서 호유(戶牖)를 서(西)쪽으로 내게되면, ‘불 때는 부엌’인 조(灶=조(竈))는 자연히 동(東)쪽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왜 이런 세심(細心)한 검토(檢討)가 중요한가?
그것은 위서(魏書)의 한(韓)을 묘사한 내용이 마한(馬韓)을 뺀 나머지 진한(辰韓)과 변진(弁辰)은 결국 ‘선박(船舶)
이자 가옥(家屋)인’ 형태를 지니고, 오늘날 장강(長江)의 북쪽에 있는 고우호(高郵湖)쪽에 계속 정박(碇泊)하가 있었
음을 위서(魏書)에서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튼 좌계의 견해로는 고우호(高郵湖)에 뫃인 변진(弁辰)의 선박(船舶)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배(船)의
굴뚝’을 서(西)쪽으로 내고 있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진(弁辰) 독로국(瀆盧國)의 모국(母國)은 고우호(高郵湖)에 있지않고, 왜(倭)와의 접경(接境)에 있었
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의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왜(倭)는 주변의 지리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한 오늘날 구주(九州)입니다.
따라서 이런 점을 고려해서 다산(茶山)선생께서는 독로국(瀆盧國)의 위치를 오늘날 거제도(巨濟島)로 보고 좌계
역시 다산(茶山) 선생의 견해에 승복(承服)하는 것입니다.
③ 衣服絜清,長髮。亦作廣幅細布。法俗特嚴峻。
:의복(衣服)은 청결(淸潔)하였으며, 장발(長髮)이었다. (진한(辰韓)사람과) 마찬가지로(=역(亦)) 넓은 폭(幅)이지만,
가는 베(=포(布))를 짰다. 법속(法俗)은 특히 엄격하고 준엄(峻嚴)하였다.
[의미해설]
위 문장에 보면 “(진한(辰韓)사람과) 마찬가지로(=역(亦)) 넓은 폭(幅)이지만, 가는 베(=포(布))를 짰다.
(亦作廣幅細布。)”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변진(弁辰)및 진한(辰韓)사람들은 탁월한 해운(海運)능력으로 오대양(五大洋)으로 뻗어나갔는데, 그러자면
자연히 돛(=범(帆))을 짜야하는데, 이는 ‘넓고 가는 베(廣幅細布)’를 기초로 하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독로국(瀆盧國)이 거제도(巨濟島)이고, 이것이 구다국(句茶國)의 구칭(舊稱)이라면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
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래 ‘중국전도’에서 보다시피, 구다국(句茶國)은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난하(難河)들과 분수령을 이루는
긍특산(肯特山)에서 남류(南流)하다가 서서히 유-턴(U-tern)해서 동북류(東北流)(↗)하는 ‘케루렌 강(Kerulen River)’
인 극로타하(克魯佗河)를 중심으로 한 구다국(句茶國)에서 강물은 계속 동북류(東北流)해서 액이고납하(額爾古納河)
로 해서 흑룡강(黑龍江)으로 흘러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구다국(句茶國)은 흑룡강에 만주(滿洲) 한가운데의 대해만(大海灣)을 중심으로 해서 북류(北流)하는
소하강(蘇下江)을 통해 송화강과 합류하고, 동류(東流)하는 오늘날의 요력하(撓力河)인 두만강(豆滿江)을 통해
오소리강(烏蘇里江)과 합류하게 되어 결국 흑룡강(黑龍江)과 합류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두 구다국(句茶國)이
<천(川)>으로 이어질 뿐만이 아니라, 이 천(川)은 고대에 동옥저(東沃沮)로 칭했던 오늘날의 ‘사할린 섬(島)’과 청령
열도(蜻蛉列島), 그리고 한반도(韓半島)로 연결된 ‘동해곡(東海谷)’의 입구인 거제도(巨濟島)인 독로국(瀆盧國)과
역시 물(水)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구다천국(句茶川國)이 환국(桓國)시절에는 긍특산(肯特山)을 시원(始源)으로 하는 흑룡강(黑龍江)의
남쪽 지역 - 즉 광의의 만주(滿洲)지역과 한반도(韓半島)및 사할린 섬, 청령열도(蜻蛉列島)가 모두 구다천국(句茶
川國)의 관할영역에 있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 긍특산(肯特山)을 시원(始源)으로 하는 흑룡강(黑龍江)의 남쪽 지역의 구다천국(句茶川國)을 볼수 있는 ‘중국전도’
http://www.coo2.net/files/lim030203-6chi.gif
물론 이런 구다천국(句茶川國)안에는 무수한 작은 소국(小國)들이 많이 있었겠지요.
아무튼, 구다천국(句茶川國)의 <구(句)>는 고구리(高句麗)란 이름이 등장함에 있어서 가장 깊은 영향을 준 환국
(桓國)시대의 명칭임에는 틀림없어 보이고, 고리조(高麗朝)때 ‘마고(麻姑)여신이 하강(下降)하는 모습’을 뜻하는
마고지나(麻姑之那)의 원형(原型)이 되는 영토가 사실은 까마득한 환국(桓國)시절의 구다천국(句茶川國)에서부터
연원함도 또한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다천국(句茶川國)이 바이칼(Baikal)지역에 자리잡은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은 매구여국(賣句餘國)
에게 돌파(突破)되어서 오늘날 ‘알타이 산맥’이라고 말하는 금산(金山)쪽으로 이동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삼성밀기’에어 전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삼성(三聖) 밀기(密記)>는 고대에 삼성(三聖)으로 존경하였던 안파견 환인, 거발환 환웅, 단군왕검에 대한 비밀
(秘密)스런 기록을 담은 것입니다.
따라서 환국(桓國)말기에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이는 바로 거발환 환웅께서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은 매구여국
(賣句餘國) 사람들은 오늘날 바이칼(Baikal)쪽으로 흐르는 오난하(五難河)에서 모두 알타이 산맥 쪽으로 축출(逐出)
하는 대사건이 일어남과 동시에 배달국(倍達國)이 개척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발환 환웅은 다름 아닌 구다천국(句茶川國)의 황제(皇帝)였음을 쉽게 눈치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지리비정(地理比定)과 더불어서 상세히 검토하면, “원래 구다천국(句茶川國)의 황제이셨던
거발환-환웅께서는 어떤 과정을 밟으셔서 배달국(倍達國)을 창시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정보(情報)를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오난하(五難河)는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셀렝가(Selenga)강을 비롯한 강들을 난하(難河)라고 일컬었
는데, 이 것이 주로 5개가 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난하(五難河)의 ‘다섯가지 강(江)’이 어찌해서 구성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만, “환국
(桓國)시대가 어찌 배달국(倍達國) 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는가?”하는 정보(情報)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오난하(五難河)가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강의 이름부터 차근 차근 살펴보기로 합니다.
‘중국전도’에서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강이 문자로 적혀있는 것은 색릉격하(色楞格河)가 있는데, 이는 홉스골
[(Hovsgol)=(庫蘇古尒)]호(湖) 남(南)쪽에서 연원해서 들어가는 ‘셀렝가(Selenga) 강의 중국발음에 따른 한자적
(漢字的)표현입니다.
‘중국전도’에 이 셀렝가(Selenga)강 즉 색릉격하(色楞格河) 밑에서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강이 악이혼하
(顎尒渾河)로 적혀 있는데, 이 역시 ‘오르혼-강(Orhon river)’에 대한 중국발음에 따른 한자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 ‘오르혼-강’은 결국 ‘셀렝가 강’의 지류(支流)인 것입니다.
(*) 색릉격하(色楞格河=Selenga))와 악이혼하(顎尒渾河=(Orhon))가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두 난하(難河) 임이
밝혀주는 중국전도
http://www.coo2.net/files/lim030203-6chi.gif
따라서 우리는 5난하(難河)가운데, 나머지 3난하(難河)만 규명하면, 5난하(難河)를 다 규명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긍특산(肯特山)을 조사하면 우리는 이 긍특산(肯特山)에서 발원해서 토납하(土拉河)즉 ‘투울 강’ (=Tuul River)
이 서남류(西南流)해서 들어가는 강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투울 강(Tuul River)은 ‘아래 몽고 지도’를 보면 오늘날 몽고수도인 ‘울란바토르(Ulaanbaatar)’를 서남류(西南流)
(↙)해서 유-턴(U-tern)해서 들어가는 강이 있는데, 적혀있진 않지만, 이 강이 바로 토납하(土拉河)즉 ‘투울 강(=Tuul
River)’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투울 강(Tuul river)’이 아래 ‘몽고지도’에서 보다시피 가장 오른쪽에서 ‘셀렝가(Selenga)강’의 지류(支流)
로써 합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5난하(難河)가운데, 셀렝가(Selenga)강에 합류하는 지류(支流)로써 난하(難河)에
들어갈 것은 더 이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셀렝가(Selenga)강은 3지류(支流)가 만나는 쑤흐바타르(Suhbaatar)로 치고 있는데, 이 바타르(baatar)가
몽고어(蒙古語)로 투사(鬪士)의 뜻인데, 앞에 쑤흐(Suh)가 붙은 까닭은 몽골의 혁명지도자 <담디니 쑤흐바타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울란-바토르’는 <붉은 투사>라는 의미입니다.)
이 쑤흐바타르(Suhbaatar)까지 해운(海運)할 수 있는 대형 기선(汽船)들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수량(水量)이
풍부합니다.
(*) ‘투울 강(Tuul river, 토납하(土拉河)’가 울란바토르 (Ulaanbaatar)를 지남을 알 수 있는 몽고지도.
http://geology.com/world/mongolia-satellite-image.shtml
따라서 우리는 나머지 2개의 난하(難河)중 [1]하나는 ‘슈흐바타르(Suhbaatar)’ 북쪽에서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셀렝가(Selenga) 강에 통합이 되는 또 하나의 지류(支流)임을 알수 있고, [2] 나머지 하나는 셀렝가(Selenga) 강으로
통합되지 않고, 전혀 다른 강(江)으로 그 북(北)쪽에서 직접 바이칼(Baikal)로 들어가는 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개략적인 바이칼 수계(水系) 지도’를 보면, 오늘날 ‘울란-우데(Ulan-Ude)’에서 우측에서 합류하는 강이
‘우다(Uda)(=오달하(烏達河)’라는 강이 있습니다. 이것이 셀렝가(Selenga)강에 통합되는 4번째 난하(難河)인 것입
니다. 마지막 5번째 난하(難河)는 셀렝가(Selenga)강에서 훨씬 동(東)쪽에서 서남류(西南流)(↙)하면서 바이칼
(Baikal)로 들어가는 강인 ‘바르구진-강(Barguzin river(=포파이고진(布巴爾古津))’임이 드러납니다.
(*) ‘우다(Uda)’와 ‘바르구진(Barguzin)이 나타나는 ‘개략적인 바이칼 수계(水系) 지도’
http://www.freeworldmaps.net/russia/baikal/map.html
- 각설(却說)
따라서 우리는 5난하(難河)를 다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5 난하(難河)를 정리해보면,
셀렝가(Selenga)의 지류(支流)
[1] 셀렝가-강(Selenga river) [색릉격하(色楞格河]
[2] 오르혼-강(Orhon river) [악이혼하(顎尒渾河)]
[3] 투울-강(Tuul river, [토납하(土拉河)]
[4] 우다-강(Uda river) [오달하(烏達河)]
셀렝가(Selenga)가 아닌 강
[5] 바르구진강(Barguzin river)[포파이고진(布巴爾古津)]
이처럼 우리가 오난하(五難河)를 규명하고 난 다음 궁금한 것은 왜 이 강(江)의 이름이 ‘어렵다’는 뜻인 난(難)을
붙여서 난하(難河)라고 명칭을 하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세계헌법’을 고치기 위해서 천하(天下)의 천독(天毒)들이 이 ‘바이칼(Baikal)주변’에 와서 배달화백을 할 때,
주로 태(兌)를 정착시키고 쉬는 곳이 바로 오난하(五難河)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가설(假設)을 세울 수 있습니다.
세계헌법은 다양한 정목(政目)-장르 별로 검토한 다음에 ‘말발’을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강 이름에 난하(難河)가 붙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5난하(難河)는 강의 숫자야 5개이지만, 바이칼(Baikal)을 북해(北海)라고 칭하면서 ‘바다’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해구
(海口)로 보면, 결국 셀렝가(Selenga)강과 바르구진(Barguzin)강이 바이칼로 들어가는 것 2개 밖에 안 됨을 알 수 있
습니다.
“해구(海丘)를 지니는 2개의 큰 강이 있다.”는 것은 배달화백과 관련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배달화백에서는 천독(天毒)들이 태(兌)를 타고 ‘다루칸(darukhan)’이 되어 하세(下世)하는데, 일반적으로
선(單)이라는 ‘대형 수레’에 태(兌)를 실어놓은 ‘선태(單兌) 결합체’를<선태(單兌)-정거장>에서 백마(白馬)들이 끌어
오는 식으로 하세(下世)를 합니다.
따라서 이 선태(單兌)가 호안(湖岸)에 도착하면, 분리(分離)해서 다루칸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고, 선(單)은
되돌아오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해구(海口)를 지닌 강이 있으면, 항구(港口)에서 직접 태(兌)를 타고 나가면 되기 때문에 훨씬 편리한 것이
지요. 물론 이런 항구(港口)의 언덕에는 ‘선(單)의 정거장’이 별도로 있어서 육지(陸地)에서도 움직일 준비는 되어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배달화백은 다루칸(darukhan)들이 ‘여자(女子)-의료나(宜遼那)’가 함께 있어서 운용되는 제도입니다.
천독(天毒)들에게 ‘말발’을 받는 다루칸 들에게는 <여(女)-의료나(宜遼那)>가 반드시 파트너(partner)를 지정하여야
하는데, 이를 우리 고대문화의 감각으로 설명하자면, “홍예(虹霓) 즉 ‘무지개’ 관계를 형성한다.” 혹은 “쌍수룡
(雙首龍) 관계를 형성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반 다루칸(darukhan)이 하세하는 해구(海口)를 지닌 셀렝가(Selenga)강이고, 또 이런 다루칸(darukhan)에 대한
여자(女子)-의료나(宜遼那) 짝이 하세(下世)하는 해구(海口)의 강이 바로 바루구진(Barguzin)강인 것이지요.
즉 거발환 환웅께서는 구다천국(句茶川國)이라는 환국(桓國) 황제(皇帝)였지만, 화백회의로써 ‘세계헌법’을 세우는
입헌(立憲) 소도(蘇塗)로써 바이칼(Baikal)을 세우기 위해서 오난하(五難河) 지역에 있었던 매구여국(賣句餘國)을
공파하였던 것입니다.
매구여국이 쫓겨간 금산(金山)은 결국 씰크-로드로 말하자면 <천산(天山)북로(北路)>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직구다국(稷臼多國)혹은 매구여국(賣句餘國)은 <천산(天山)남로(南路)>쪽으로 후퇴하지 못하였을까?
이는 비리환국(卑離桓國) 동류(東流)해서 천산(天山)남로(南路) 쪽으로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람들이 이동하게
하는 것을 차단하고, 동류하면서 분진(分進) 합격(合擊)하지 않으면 일어날수 없는 사태인 거입니다.
또 선패국(鮮稗國)이 서진(西進)하면서 역시 구다천국(句茶川國)과 더불어 분진합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유일한
출구인 알타이 산맥 - 즉 천산(天山)북로(北路) 쪽으로 이동하기가 힘들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배달국(倍達國)이 일어날 때에, 환국(桓國)이 적어도 3개국 즉 구다천국(句茶川國), 비리환국(卑離桓國),
선패국(鮮稗國)이 연대(連帶)해서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구다천국(句茶川國)의 황제(皇帝) 거발환 환웅(居發桓-桓雄)께서는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하는 나라’라는 뜻으로
배달국(倍達國)을 창제(創製)하신 분이십니다.
이 배달화백은 매우 복잡한 씨스템(system)이기 때문에, 이를 원활히 할수 있는 지리(地理)의 도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원래 초(招)-상고사(上古史)는 주어진 정보(情報)자체가 희소하기 때문에, “당시대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규명
하기 매우 곤란합니다.
그러나, 배달화백이란 합의 씨스템이 복잡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지리(地理)적 조건이 도와하만 구조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배달화백이란 합의 씨스템이 지닌 복잡성은 “일반 천독(天毒)들이 세계기구를 직접적 통제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수많은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에, 진화(進化)된 복잡성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진화(進化)를 통한 복잡성’은 우연(偶然)의 일치가 수학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라는
것입니다. 즉 고양이가 피아노 건반 위를 왕래할 때에 우연히 ‘베토벤의 월광곡’을 연주할 가능성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는 바이칼(Baikal) 입헌(立憲) 소도(蘇塗) 주변의 지리를 배달화백과 관련해서 세심(細心)하게 검토하면,
이는 ‘지나치기 쉬운 사료(史料)’가 돌연히 ‘역사적 사실(史實)’로써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환치(換置)시킬수가 있는
맥점(脈點)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조선(古朝鮮)의 모태(母胎)인 배달국(倍達國)은 오히려 ‘배달화백의 복잡성’ 때문에, 현실(現實)지리를 검토할
때에, 현실적인 사실(史實)로써 우리 앞에 나타날 개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회(回) 부터는 <구다천국(句茶川國)>과 <거발환 환웅(居發桓-桓雄)>에 관련된 것을 하나씩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다천국(句茶川國)의 구(句)와 거발환 환웅(居發桓-桓雄)의 거(居)를 따서 [句/居]씨리즈(series)를 따라서 부득히
쓸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句/居②]는 따라서 ‘바이칼(Baikal)입헌(立憲) 소도(蘇塗)의 지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이칼(Baikal=패가이호(貝加爾湖))’은 사서(史書)에 북해(北海), 천해(天海) 또, <고구리 초략>에 월해(月海)로 묘사
하는 ‘바다와 같은 호수(湖水)’입니다.
전체적인 모양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이칼’로 흘러들어가는 강(江)과 흘러나가는 강(江)의 수계(水系)를 일단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바이칼(Baikal)은 초생달[)]처럼 생긴 ‘호수 같은 바다’입니다.
흔히 “365개의 지류(支流)들이 흘러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하(大河)로써 해구(海口)를 지니면서 들어가는
강은 모두 ‘바이칼’의 동(東)쪽입니다. 그런데 이 동(東)쪽의 ‘아래 남(南)쪽’에 셀렝가(Selenga)강이 4개의 난하
(難河)를 모아서 동호안(湖岸)에 들어가는 수직(垂直)모양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고, ‘위 북(北)쪽’에 바르구진
(Barguzin)강이 서남류(西南流)(↙)하면서 호안(湖岸)에 빗겨서 들어가면서 해구(海口)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바이칼’은 두 개의 큰 섬(島)이 있는데, 모두 ‘초생달 모양’의 중앙(中央)에 가깝게 있습니다.
초생달의 오목한 쪽인 서(西)쪽에서 중간 ‘아래’쯤에 있는 섬(島)을 ‘알혼(Olkon-island)’이라고 하고, 초생달의 볼록한
쪽인 동(東)쪽에서 중간 ‘위’쯤에 있는 섬(島)을 ‘바르구진(Barguzin)’이라고 하는데, 바르구진 강의 오랜 퇴적(堆積)
으로 인해서 육지(陸地)와 붙어버렸습니다.
‘바이칼’에서 연원(淵源)되어 나가는 출구(出口)는 초생달 꼬리 부분에서 나가는 ‘앙가라(Angara)강인데,
이 강은 예니쎄이(Yenisay)강으로 연결되어 북극(北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앙가라(Angara)-예니쎄이(Yenisay)강은 ‘시베리아’의 수많은 지류(支流)들을 모아서 북극으로 흘러들어가는 전체적
으로 정북(正北)쪽으로 흘러들어가는 양상을 취합니다.
(*) 앙가라(Angara)-예니쎄이(Yenisay)강의 수계(水系)
http://en.wikipedia.org/wiki/File:Yenisei_basin_7.png
또 ‘초생달’의 오목한 한 가운데에서 ‘바이칼’과 차단(遮斷)시키는 산맥인 ‘바이칼스키 산맥(Baikalskiy)에서 니은(ㄴ)
자 모양으로 꺽어져 북류(北流)해 흘러나가는 ‘레나(Rena)’강과 ‘그 북(北)쪽의 키렝게-강(Kirenge)이 있는데,
이강들은 레나(Rena)로 통합되어서 바이칼 북쪽에서 동(東)쪽으로 우회해서 이윽고 북극(北極)으로 들어갑니다.
원래 수 십 만 년 전에는 바이칼(Baikal)에서 직접 레나(Rena)강이 흘러나갔는데, ‘비아칼스키 산맥’이 갑자기 융기
(隆起)하는 바람에 이 흐름이 단절(斷絶)되었다고 지리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현지(現地)에 가보면 레나(Rena)강을 가로막는 ‘바이칼스키 산맥’이 융기(隆起)하다가 허물어진 흔적을 실제 볼
수 있습니다. (안내원들이 주로 설명함))
이 레나(Rena)강은 명태(明太) 다시 말하면 북어(北魚)의 산란(産卵)하는 강으로도 유명합니다. 북어(北魚)는 “알
(卵)에서 깨어나면 북(北)쪽으로 (븍극해)가는 물고기”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배달국(倍達國)이래, 우리의 역사는 계속 ‘바이칼(Baikal)’을 입헌(立憲) 소도(蘇塗)로써 삼아왔는데,
이 바이칼(Baikal)에서 북류(北流)하는 북어(北魚)는 ‘세계헌법’을 북극에 알리는 물고기 사자(使者)로 인식되어서
지금도 민속(民俗)에서는 고사(故事)를 지내면, ‘액(厄) 막이’로 걸어두는 신성한 물고기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략적인 바이칼 수계
http://www.freeworldmaps.net/russia/baikal/map.html
(*) 레나(Rena)강의 수계(水系)
http://dicimg.naver.com/100/sub/54641_0.gif
결국 ‘바이칼(Baikal)에서 동(東)쪽에서 들어가는 해구(海口)를 지닌 가장 큰 강(江)은 세렝게(Selenga)강과 바르
구진(Barguzin)강이라 할 수 있는데, 전회(前回)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이 세렝가 강은 4개의 난하(難河)가 모여들어서 하나의 해구(海口)를 형성하므로, 이곳에서는 다루칸(darukhan)들
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는 해구(海口)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바루구진(Barguzin)강은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할 때에는 <홍예(虹霓)(=무지개)관계>를 맺는 여(女)-의료나
(宜遼那)가 꼭 ‘카운터-파트너(counter-partner)’로써 짝을 맺어야하는데, 이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는 강이 바로 ‘바르구진 강’의 해구(海口)인 ‘바르구진 항(港)’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이칼(Baikal)’의 동편(東便)에 서(西)쪽으로 흘러들어오는 강(江)들 가운데, 작은 지류(支流)야 많이
있겠지만, “대하(大河)이어서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는 해구(海口)를 지닌 강이 ‘셀렝가(Selenga)’와 ‘바르구진
(Barguzin)’ 이외에는 없는가?”하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동편(東便) 북(北)쪽에서 ‘바르구진-강(Barguzin-river)’이 서남류(西南流)(↙)하고, 또 셀렝가
강이 4난하(難河)를 모아서 동편(東便) 남(南)쪽에서 서류(西流)해 들어가는 ‘사이’에 하나의 강(江)이 있음을 발견
하게 됩니다.
(*) 바이칼의 개략적인 수계(水系) (2)
http://cfile270.uf.daum.net/image/1729240C4A860FCEB7AAD9
이 강(江)이 바로 ‘투르카 강(Turka river)’인 것입니다.
이처럼 바이칼(Baikal) 호수의 동편(東便)의 ‘큰 강(江)’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바이칼(Baikal)호는 남북 길이가 무려 636km가 되고, 또 평균 동서(東西) 길이가가 48km이고 최고 큰 폭이 79.4km나
되는 ‘바다와 같은 호수(湖水)’입니다.
또 둘레는 2,100km나 됩니다.
(*) 참고 : It covers 31,500 sq.km and is 636 km. long, an average of 48 km wide, 79,4 km at its widest point. Its
broadestpoint is located between the villages of Onguryon on the Western shore and Ust-Barguzin on the eastern
shore, and its narrowest point is between the Selenga River Delta and the opposite Western shore. The length of the
coastline is about 2,100 km.(*)
그런데, 배달화백을 하려면 다루칸(darukhan)들이 태(兌)를 나가서 청구(靑丘) 앞에서 호안(湖岸)을 따라서 정목
(政目)별로 정열되어 있게 한 다음에, 호수 가에는 ‘푸른 언덕’인 청구(靑丘)에 천독(天毒)들 께서 앉아계시는
‘허브(herb) 정원(庭園)’ 이 있고, 이런 청구(靑丘) 뒤에는 천독(天毒)들이 명적(鳴鏑)-화살에 ‘말발’을 옮기는 지시
(指示)를 ‘비단’에 묶어 매단 것을 활(弓)로써 태(兌)의 집시관(集矢棺)에 쏘는 사대원로(射臺垣路)가 있어야합니다.
또 그 뒤에는 정목(政目)별로 말발을 이동하기 위해서 천독(天毒)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골짜기’를 만드는 폐섭
원로(蔽涉垣路)가 밖으로 또 한 바퀴 둘러쳐져 있어야합니다.
이런 2개의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가 쳐져 있어야하는데, 바이칼은 한 바퀴 도는데 무려 2,100km, 오늘날 이수
(里數)로 즉 5,250리(里)나 되기 때문에,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를 ‘바이칼 전체’를 에워싸는 것은 비현실적이 됩니다.
따라서 바이칼(Baikal)동편(東便)쪽에 3개의 해구(海口) - ① 4난하(難河)가 모여드는 셀렝가(Selenga)강의 해구
② ‘투르카 강(Turka river)’의 해구(海口) ③ 다루칸(darukhan)과 홍예(虹霓)관계를 형성하는 여(女)-의료나(宜遼那)
들이 하세(下世)하는 바르구진(Barguzin)의 해구(海口)가 있는 쪽에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
적이 됩니다.
이처럼 바이칼(Baikal)의 지리(地理)를 ‘세계헌법’을 배달화백으로써 논의(論議)하는 ‘입헌(立憲) 소도(蘇塗)’의 관점
에서 “적절한 입지조건(立地條件)을 가졌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이칼(Baikal)에는 2 개의 섬(島)과 원래 섬(島)이었지만, 오랜 세월 바르구진 강의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곶(串)
혹은 반도(半島)로 변한 섬(島)까지 합하면, 3개의 섬(島)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이칼의 서(西)쪽에 있는 알혼(Olchon)섬이고, 이 알혼 섬에 비해서 매우 적지만 바이칼 한 가운데 있는
우츠카니(Ushkani)섬입니다.
이 <우츠카니-섬(島)>은 네르파(Nerpa) 혹은 ‘바이칼 물개’의 서식지로 유명합니다.
‘바이칼 물개’는 북극(北極)지방에 사는 ‘고리물범’의 변종(變種)으로 오늘날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 [바이칼 물개 네르파]에 대한 ‘dyatrima 님의 블로그’의 설명
http://dyatrima.blog.me/70026102327
이 <우츠카니-섬(島)>은 바르구진(Barguzin)-섬(島) 북(北)쪽에서 서(西)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반도(半島) 혹은 곶(串)으로 변한 섬(島)은 바이칼의 동(東)쪽에 있는 ‘바르구진(Barguzin)섬(島)’인데, 현지(現地)
에서는 ‘법관(法官)이 판결(判決)을 할 때 사용하는 망치’ 같은 코(=비(鼻)라는 의미로 ‘신성한 코’로 말해지고 있습
니다. -이를 <스뱌토이 노스 (Swjatoj nos)> -영어식으로 ‘Svyatoy Nos Peninsula’로 표기-라고 말합니다.
‘바이칼’의 수심(水深)깊이는 아래 ‘전체 바이칼(Baikal)지도’ 에서 보다시피, ‘알혼 섬’과 ‘바르구진 섬’ 사이가 가장
깊은데 무려 수면(水面)아래로 (-1625m)나 되어 우리를 경악시킵니다.
바이칼 주변지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사실은 바이칼로 몰려드는 강(江)이 설혹 범람할지라도 수류(水流)를
바꾸어서 다른 강과 혼합되지 않게 하는 산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바이칼(Baikal)’과 그 동편에 서남류(西南流)(↙)하는 ‘바르구진 강’ 사이에는 강물이 서류(西流)(←)하지 못하
도록 막아주는 ‘바르구진 (Barguzin) 산맥’이 일종의 방벽(防壁)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 ‘바르구진 강’ 바로 남(南)쪽에서 서남류(西南流)하는 ‘투르카 강(Turka river)’과 북류(北流)해 들어가는 셀렝가
강의 맨 우측 지류인 우데(Ude)강에 섞이지 않도록 이 두 강 사이를 떼어놓게 하는 방벽(防壁)이 되는 ‘부루가시
(Burgasy) 산맥’이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바이칼의 동(東)편에서 맨 남(南)쪽 아래에는 셀렝가(Selenga)강의 지류(支流)들이 한곳에 모이는
울란-우데(Ulan-ude)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바이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을 초생달 모양의 바이칼 해안(海岸)에
따라 있는 하마르-다반(Khamar-Daban)산맥이 있기 때문에, 설혹 대홍수(大洪水)가 난다고 할지라도 셀렝가 강은
오직 울란-우데(Ulan-ude)를 통과해서만이 바이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수심(水深)깊이>와 <주변 산맥의 높이>가 나타난 ‘전체 바이칼(Baikal)지도’
: (*)참고 : 개략적인 지도로써 가장 완벽하고, 클릭(clik)하면 확대됩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f/Karte_baikal2.png
이처럼 바이칼 주변의 일반적인 지리(地理)를 파악하였을 때에,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하기 위한 다루칸(darukhan)
들이 태(兌)를 타고 나가는 지역이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세렌진스크(Selenginsk,) -이를 한자(漢字)로 옮길 때
에는 세령기하반(泄令其河畔)이라고 표기합니다. - 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이칼(Baikal)이 입헌(立憲) 소도(蘇塗)로써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셀렝가 강의 해구(海口)인
<세렌진스크(Selenginsk,)>에서 태(兌)를 타고 나가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또한 바이칼 주변에 ‘천독(天毒)들 께서 배달화백에 임(臨)하는 청구(靑丘)’ 뒤에 있어야하는
두개의 ‘청구(靑丘)의 제방(堤防)’인 사대원로(射臺垣路)와 폐섭원로(蔽涉垣路)가 놓이는 이른바 백마복원로
(白馬複垣路)는 <세렌진스크(Selenginsk,)>를 기점(起點)으로 해서 바이칼 동(東)쪽 해안(海岸)을 따라서 북(北)쪽
으로 진행되면서 쳐져 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배달화백을 할 때에는 천독(天毒)들께서 다루칸(darukhan)이 되어 하세(下世)하는 입구(入口)도 필요하지만,
이른 다루칸(darukhan)과 ‘무지개 관계(=홍예(虹霓)관계)’를 맺어 짝이 되는 여(女)-의료나(宜遼那)가 하세(下世)하는
별도의 입구(入口)가 있어야합니다.
이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이 하세(下世)하는 입구는 바로 바이칼(Baikal)의 ‘신성한 코’인
<스뱌토이-노스(Svyatoy Nos>반도(半島) 바로 남(南)쪽에 있는 ‘바르구진(Barguzin)만(灣)’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구(靑丘)의 2개의 제방’인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는 <세렌진스크(Selenginsk,)>를 기점(起點)으로 해서
최소한 바르구진(Barguzin) 강의 해구(海口)를 지나야 하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바이칼(Baikal) 입헌소도(立憲蘇塗)의 청구(靑丘)의 제방이 어디까지 놓여 있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 ‘바이칼 주변 개략지도’를 보면, ‘바르구진 섬(島)’ 북(北)쪽에 상세(詳細) 지도로 보면 만(灣)이 딸린
<소스노보카(Sosnovka)항(港)>이 있습니다.
(*) <소스노보카(Sosnovka)항(港)>이 있는 ‘바이칼 주변 개략지도’
http://www.freeworldmaps.net/russia/baikal/map.html
바이칼(Baikal)은 입헌(立憲) 소도(蘇塗)로써 결국 <세렌진스크(Selenginsk, 泄令其河畔)>에서 <소스노보카
(Sosnovka)항(港)>까지를 청구(靑丘)를 지난 2개의 제방인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를 갖춘 소도(蘇塗)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칼(Baikal)입헌(立憲) 소도(蘇塗)에서 청구(靑丘)의 <북방(北方)-끝>인 <소스노보카 항(港)>이 있는
곳은 ‘소스노보카 만(灣)(Sosnovka Bay)이 있는 곳 인데, 이 만(灣)은 매우 평화스런 느낌을 주는 만(灣)입니다.
(*) 소스노보카 만(灣)(Sosnovka Bay)의 ‘평화(平和)스런 풍경’
http://www.magicbaikal.com/gallery/northeast/pages/baikal-76f30-32.php
또 이 만(灣)은 ‘큰 지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이런(∩) 모양으로 깊숙히 만(灣)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사대원로(射臺垣路)를 통해서 ‘말발’을 이동시키는 명적(鳴鏑)화살을 집중적으로 쏘기 안성맞춤인 지형인 것입니다.
(*) 소스노보카 만(灣)(Sosnovka Bay)의 모습
http://www.everystockphoto.com/photo.php?imageId=1909363
그렇다면 <세렌진스크(Selenginsk, 泄令其河畔)>에서 <소스노보카(Sosnovka)항(港)>까지의 거리는 대략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일단 2 해구(海口)사이의 거리- 즉 ‘셀렝가 강’의 해구(海口)와 ‘바르구진 강’의 해구(海口) 사이의 거리는 아래
‘바이칼 개략지도’에 보다시피, 전체 바이칼 남북(南北)거리의 약 1/3이 됩니다.
바이칼의 남북 길이가 636km이기 때문에, 따라서 두 해구(海口) - 즉 ‘셀렝가 강’과 ‘바르구진 강’의 海口 사이의
남북(南北)길이는 636km의 1/3인 (636km/3=212Km)가 됩니다.
또 바르구진(Barguzin)해구(海口)에서 오늘날 소스노보카(Sosnovka)만(灣)까지는 약 두 해구(海口)의 1/3이 되기
때문에 이는 (212km/3=70.666km=약 71km)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셀렝가(Selenga)해구(海口)에서 ‘소스노보카(Sosnovka)만(灣)’까지의 거리는 (212km+71km=283Km)로 계산
됩니다.
이는 오늘날 이수(里數)로 (283km/4km/리(里) X 10= 707.5리(里))가 되기 때문에, 관경사국(管境四國)시절 ‘세계
헌법’을 이 지구촌(地球村)의 천독(天毒)들께서 청구(靑丘)에 앉아 논의(論議)할수 있는 충분한 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바이칼(Baikal) 입헌(立憲)소도에 <세렌진스크(Selenginsk, 泄令其河畔)>에서 <소스노보카(Sosnovka)항(港)>까지의
청구(靑丘)의 남북(南北) 길이 707.5리(里)는 사실 바이칼의 둘레 가운데, 가장 평지(平地)가 많은 지역인지라 백마
복원로(白馬複垣路)를 쌓기도 편한 곳임을 일단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셀렝가 강’과 ‘바르구진 강’의 두 해구
(海口) 뒤에 있는우리가 난하(難河)라는 칭한 강들은 매우 길게 뻗어있기 때문에, 이런 난하(難河) 주변에는 ‘천하
(天下)의 천독(天毒)’들이 다음날 화백회의에 참여하기 위해서 거주(居住)하는 마을 즉 사교(社交)-항(港)을 건설
하기도 용이함을 고려하면, 입헌(立憲) 소도(蘇塗)로써 적지임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 셀렝가(Selenga)해구(海口)에서 ‘소스노보카(Sosnovka)만(灣)’ 사이가 283km(=707.5리(里))가 됨을 알 수 있는
‘바이칼 개략지도’
http://www.freeworldmaps.net/russia/baikal/map.html
즉 오난하(五難河)의 의미는 ‘바이칼’의 배달화백에 참여하는 천독(天毒)들의 사교항(社交巷)이 있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오난하(五難河)가 다음날 ‘바이칼 호(湖)’에 태(兌)를 타고 다루칸(darukhan)이 되는 천독(天毒)들의
사교항(社交巷)을 끼고 있었다는 가설(假說)과 또 바이칼(Baikal)이 입헌(立憲) 소도(蘇塗)라는 가설(假說)은 오늘
날의 지명에서도 그 흔적이 나타납니다.
유의(有意)해서 살펴야할 지명이 두 곳 있습니다.
첫째는 셀렝가(Selenga)강의 강물들이 모이는 곳의 도시(都市) 이름 가운데, 다루한(Darhan)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다루한(daruhan)은 한자(漢字)로 <답아간(答兒干)>이라고 쓰는데, 이는 다루칸(darukhan)의 몽고식 발음인 것
입니다.
원래는 오늘날의 쑤흐바타르(Suhbaatar)지역을 넘어서 해구(海口)까지가 전래(傳來)되는 지명이름이 ‘다루칸
(darukhan)지역’이라고 불리어 졌었는데, 몽골의 혁명지도자 <담디니 쑤흐바타르>를 기념하는 도시를 새로 건립
하여서 ‘다루칸 지역’의 중심지인 다루한(daruhan)이 훨씬 뒤 즉 남(南) 쪽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 다루한(daruhan)이 쑤흐바타르(Suhbaatar)지역 남쪽에 있음을 알게 하는 ‘몽고 지도’
http://geology.com/world/mongolia-satellite-image.shtml
또 하나 오난하(五難河)가 가운데 하나인 ‘바르구진 강’의 해구(海口) 앞에 있는 ‘바르구진 섬(島)’이 바로 “이곳이
배달국(倍達國) 때부터 입헌(立憲) 소도(蘇塗)‘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었음을 명칭(名稱)자체로써 보여주는 곳입니다.
바이칼(Baikal) 현지(現地)에 내려오는 신화(神話)에 의하면, “이 <알혼 섬(Olkon island)>의 ‘숫소’로 이름을 떨친
사냥꾼 ‘코리도이(Khoridoy)에게 <바르구진 섬 (Barguzin island)>의 백조(白鳥)가 날아와서 결혼해서 코리(Khori)족
11 부족(部族)을 낳았다.”라는 전설(傳說)이 있습니다.
(*)참고: 좌계는 바이칼(Baikal)에서 ‘우리민족의 시원과 관련된 학술대회’에 재야(在野)측 학자로써 초빙되어서
약 10여일 간 탐사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이칼’을 실제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탐사 가운데,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이 있었던 전설(傳說)이
바로 “<알혼 섬>의 ‘숫 소’와 <바르구진 섬>의 백조(白鳥)가 결혼해서 코리(Khori)11부족을 낳았다.”는 전설입니다. (*)
“이 전설(傳說)을 잘 정리한 글이 없을까?”하고 인터넷(Internet)에서 찾아보았는데, 탐색 능력이 부족해서 겨우
아래와 갈은 내용만 발췌(拔萃)하게 되었습니다.
발췌(拔萃)해온 곳의 주소 :http://www.travel-olkhon.ru/en/olkhon/
- 발췌(拔萃)해서 옮긴 내용 -
On the legends on Olkhon island were encountered the ancestors of Khorintsev. Here the hunter Of Khoridoy was
married the celestial virgin- swans, and in them eleven sons, who became the ancestors of 11 Khorinskikh kinds,
were born.
: 알혼 섬에서는 코리(Khori)조(朝)의 조상(祖上)에 대한 전설(傳說)과 맞닥드리게 된다.
이곳의 ‘코리도이(Khoridoy)’라는 사냥꾼은 백조(白鳥)‘였던 천상(天上)의 처녀(處女)와 결혼을 해서 11명의 아들을
낳고, 이들이 11개의 ’코리 족‘ 조상으로써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 발췌(拔萃) 마침 -
영어로는 ‘Olkon’이라고 기재(記載)하지만, 실제 발음은 ‘알혼’에 가깝게 하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이 ‘알 혼’의
유래가 무엇일까? 또 ‘천상(天上)의 처녀(處女)’인 백조(白鳥)와 결혼해서 ‘코리(Khori)족 11부족’을 낳게 한 사냥꾼
코리도이(Khoridoy)는 ‘코리(Khori)’가 고리(高麗) 혹은 구리(九犁), 구리(九黎)와 그 음가(音價)와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 상고사(上古史)의 인물과 관련됨이 분명한데, 도대체 어느 분이신가?!“라는 것이 ‘바이칼’에 다녀올 때부터
계속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코리도이’는 이 ‘바이칼’을 호수를 ‘세계헌법’을 수립하는 성호(聖湖)로 개척하면서 배달국(倍達國)을 연
<거발환(居發桓)환웅(桓雄)>의 휘(諱)일 개연성이 높음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알혼>의 의미는 배달화백을 하기 위해서는 호수(湖水) 위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개의 허달성(虛達城)-금성
(金城)을 놓여야하는데, 이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초대형 ‘자이로스코프’에 싸고, 또 그 밖을 32면체 부구(浮具)로
싸고, ‘베아링’이 있는 <복대(腹帶)-걸이>에 의해서 마소(馬牛)들이 망우[(牛莽)牛]끌채를 끌게 하여야합니다.
이 허달성(虛達城)-금성(金城)이 ‘쌓여있는 32면체’를 고구리(高句麗)시절에는 ‘공(=구(球))같은 도시’라는 의미로
<환도(丸都)>라 칭했겠지만, 훨씬 고대인 배달국 시절에는 이를 ‘알(=란(卵))의 혼(魂)’이란 의미로 ‘알 혼’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알혼(Olkhon)섬(島)’에 전래(傳來)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알(卵)치고는 무척 큰 알이긴 하지만,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혼(魂)이 뚤뚤~ 뭉친 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알혼 섬’은 ‘세계헌법’을 고치는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할 때에, 허달성(虛達城)-금성(金城)을 보관하는 성역
(聖域)이었고, 따라서 이 ‘알혼 섬’에서는 육지(陸地)에서 끌 때 사용하는 마소(馬牛)의 방목장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이런 마소(馬牛)들은 야생(野生)에서 사냥해서 길들어야하므로, 사냥꾼 ‘코리도이(Khoridoy)’는 야생(野生)
의 마소(馬牛)를 이 알혼섬에 끌고와서 길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뭏든 바이칼 현지에 내려오는 ‘코리도이(Khoridoy)’는 우리 사서(史書)에서 언급된 <거발환(居發桓)환웅(桓雄)>
이고, 위 전설(傳說)에서는 허달성(虛達城)-금성(金城)을 끄는 것이 주소 소(牛)였기 때문에, ‘코리도이’ 자신도
‘숫소’로써 상징화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現地) - 즉 ‘알혼’ 섬(島)에는 ‘코리-칸(Kohri-Khan)의 성벽(城壁)(=wall)’이란 유적(遺蹟)도 있고, 심지어 ‘알혼 섬’
북쪽에는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코리-칸(Kohri-Khan)의 얼굴’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바위도 있습니다.
좌계가 이 ‘알혼 섬’의 숫소를 <거발환(居發桓)-환웅(桓雄)>이라고 확신(確信)하는 근거는 바로 전회(前回)에 상세
(詳細)히 소개한 <삼성(三聖)-밀기(密記)>의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 매구여국(賣句餘國)이, 옛날에는 오난하
(五難河)에 있었다. 후에 독로국(瀆盧國)에 공파(攻破)되어 마침내 금산(金山)으로 이동하여 거하게 되었다.
(<稷臼多國>或稱<賣句餘國>舊在<五難河> 後爲<瀆盧國>所破 遂移<金山>居之)”라고 하는 기록 때문인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12환국(桓國) 중의 하나인 구다천국(句茶川國)의 ‘젊은 환인(桓仁)’인 거발환(居發桓) 환인
(桓仁)께서 바이칼(Baikal)주변을 세계헌법의 입헌소도로써 개척하실 때에 다른 3개의 환국(桓國)들 ①오늘날 베링
(Bering)해협 서(西)쪽에 자리잡은 선패국(鮮稗國)과 ② 오늘날 천산(天山)의 이식-콜(Issyk-kol) 호(湖)[=이색극호
(伊塞克湖)]근처(近處)에 있었던 비리환국(卑離桓國) ③ 수메르(Smeru) 산(山) 근처에 있었던 원(原)-수밀이국
(須密爾國)과 연합하여 배달국(倍達國)을 세우자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에서 부터 시작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다천국(句茶川國)의 거발환(居發桓) ‘젊은 환인(桓仁)’의 이런 구상(構想)에 바이칼(Baikal)주변의 직구다국(稷臼
多國) 역시 이에 찬동하였지만, 바이칼(Baikal)이 입헌(立憲)소도(蘇塗)로 개발이 완성이 될 즈음에 직구다국(稷臼
多國)이 ‘개발된 바이칼(Baikal)입헌소도’를 독점(獨占)하려는 시도가 일어나자 4환국(桓國)의 연합공격으로 직구
다국(稷臼多國)은 알타이 산 쪽 방향으로 축출(逐出)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좌계는 구다천국(句茶川國)과 비리환국(卑離桓國)의 공동(公同) 시조(始祖)를 부도지(符都誌)에 나오는 황궁씨
(黃穹氏)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검은 머리’를 한 사람들인 수메르(Sumer)문명이 주류(主流)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에 있었지만, 그 원류(源流)는 계속 부도지(符都誌)에서 <마고대성(麻姑大城)>이라고 칭하고, 또 불교에서 수미산
(須彌山)으로 언급하는 티베트 지역에 계속 남아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수미산의 발음을 지금도 수메르(Sumer)산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슈메르(Sumer)문명을 일으킨 ‘검은머리’를 한 사람들은 기원전 2,000년경에 홀연히 사라
지는데, 좌계가 볼 때에는 고조선(古朝鮮)이 일어날 때에 이들이 대거(大擧) 이동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바이칼(Baikal)현지에서 ‘알혼-섬’의 숫소 ‘코리도이(Khoridoy)’인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과 결혼한 ‘천상
(天上)의 처녀’ 백조(白鳥)는 바로 베링(Bering)해협(海峽)의 동(東)쪽에 있었던 선패국(鮮稗國)의 ‘젊은 여(女)-환인
(桓仁)’이 <현무(玄武)-의료나(宜遼那)>로써 바이칼(Baikal)에서 결혼하였던 사건이 전설(傳說)로써 남아있는 것
으로 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이칼(Baikal)주변에 있는 신화(神話)와 ‘섬 이름’에 대한 <우리식의 어원(語源)-추정>을 하는 것은
“과연 이런 식으로 바이칼에 내려오는 전설(傳說)을 연결시켜도 되는가?” 하는 회의(懷疑)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좌계 생각에는 이 ‘바이칼(Baikal)과 관련된 상고(上古) 시대 때의 기록’을 문헌적으로 추정하면, 우리 역사
밖에 안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식의 어원(語源) 추정’과 ‘우리 상고(上古)시대의 인물과 맷취(match)’시켜서 해석
하는 것 이외의 추론(推論)을 하는 것이 더욱 황당한 것입니다.
아무튼 ‘알혼 섬’의 동북(東北)(↗)쪽 맞은 편에 있는 ‘바르구진’ 섬(島)의 어원(語源)은 무엇일까?
좌계는 이 ‘바르구진’이란 이름이 ‘바로 구진(句陳)!’이란 발음이 점차 변해서 ‘바르구진’으로 변했다고 봅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개척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공부한 사람이면, 즉시 떠오르게 되어 있는 것이
“ ‘바르구진(Barguzin)’의 구진(guzin)이 구진(句陳)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그 앞에 ‘바르’를 우리말 ‘바로(=즉(卽),
=정(正))’를 붙여본 감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배달화백을 하는 ‘하늘의 호수(湖水)’를 일반적으로 천문(天文)에서는 ‘국자’모양의 별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바탕
으로 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내지만, 이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紫薇垣)에는 더욱 북극성(北極星)에 가까우면서도
‘국자’모양으로 별 6개가 이루어진 별들을 <구진(句陳)>이라고 합니다.
아래 ‘자미원(紫薇垣) 별자리’를 보면, 북극성(北極星)이 북극천추(北極天樞)로 그려져 있고, 소위 <북극(北極)5성
(星)>이 그려져 있습니다.
북극5성의 2번째 별이 후궁(後宮)인데, 이를 우리의 문화(文化)를 바탕으로 천문(天文)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마고
(麻姑)의 별’이라고 하고, 3번째 별이 서자(庶子)인데, 이는 ‘뭇 사람에 의해서 옹립(擁立)되신 분’이란 뜻으로 바로
거발환 환웅의 별이고, 4번째 별이 제(帝)인데, 이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별이고, 5번째 별이 태자(太子)인데,
이는 바로 부루(扶婁)태자의 별로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아래 자미원(紫薇垣) 그림에서 ‘북극오성’의 바로 좌상(左上)에 나란히 ‘국자’모양으로 한 별이 바로 ‘구진
(句陳)’입니다.
북두(北斗)는 북극오성의 우하(右下)(↘)에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데, 유의해야할 것은 북두(北斗)의 ‘국자’ 속에는
흑성(黑星)으로 된- 따라서 보이지 않음 -4개의 별이 천리(天理)로 되어 있음에 비해서, 구진(久陳)의 ‘국자’ 속에는
‘천황(天皇)대제(大帝)’라는 별이 하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 자미원(紫薇垣)의 ‘북극오성’ 북두(北斗)-천리(天理), 구진(句陳)-천황대제(天皇大帝)를 볼수 있는 곳
http://www.nongli.com/Doc/0501/26174123.htm
구진(句陳)의 ‘국자’ 속에서 상징된 천황(天皇)은 3황(皇) - 즉 일황(日皇), 월황(月皇), 옥황(玉皇)을 뜻합니다.
북두(北斗)의 ‘국자’ 속에서 상징된 천리(天理)는 ‘천독(天毒)들의 화백회의 결론’에 역행(逆行)하는 군왕(君王)들의
감옥을 의미합니다.
반면 구진(句陳)의 삼황(三皇)인 선가(仙家)계통에서 달(月)을 의미하는 태청(太淸), 태양(太陽)을 의미하는 상청
(上淸), 그리고 북극성을 의미하는 옥청(玉淸)으로 상징되어서 이를 삼청(三淸)이라고 바꾸어서 표현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바로 구진(句陳)’이 바르구진(Barguzin) 섬(島)의 어원(語源)이라는 것은 이 섬(島)이 중심이 되어서 ‘바이칼
(Baikal)’에서 배달화백의 정보처리를 종합하는데, 그 내용이 삼청(三淸) 혹은 삼황(三皇)으로 상징되는 내용의 것을
모두 ‘바이칼(Baikal)’에서 운용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즉
① 달(月)로 상징되는 ‘벅수군의 통합 및 도전(刀錢)에 대한 국제정책’, ② 또 태양(太陽)으로 상징되는 ‘국제간 노우
-하우(Know-how)전수의 통합과 포전(布錢)’에 대한 정책 ③또 ‘북극성’으로 상징되는 ‘세계헌법’의 개혁을 배달
화백으로써 정리를 할 때에, 최종 마무리가 이 ‘바이칼(Baikal)’에서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구진(句陳)이란 말 자체가 세계(世界)의 천독(天毒)들이 다루칸(darukhan)이 되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였을
때에 ‘자신의 정견(政見)을 간단히 가림토로 써서 고무-부구(浮具)’로 태(兌) 위에 걸어놓는 것이 청구(靑丘)에 앉아
계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백마복원로(白馬複垣路) ‘사이’의 주마복도(走馬複道)를 통해서 이곳 저곳 정목(政目)
사이로 이동하시는 천독(天毒)들에게 그 정견(政見)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수단’이 될 것인데, 이처럼 ‘고무-부구
(浮具)’에 적힌 정견(政見)을 구진(句陳)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견(政見)을 짧은 문장인 구(句)를 진열(陳列)해 놓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자미원(紫薇垣)의 ‘북극오성’ 북두(北斗)-천리(天理), 구진(句陳)-천황대제(天皇大帝)를 볼 수 있는 곳
http://www.nongli.com/Doc/0501/26174123.htm
우리 말 ‘바로 구진(句陳)!’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곳이 월황(月皇), 일황(日皇), 옥황(玉皇)이 관장하는 입헌(立憲)
소도(蘇塗)이다.”는 것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바이칼(Baikal)현지(現地)에 전설(傳說)인 “ ‘알혼 섬의 숫소’와 ‘바로 구진(句陳) 섬(島)’의 백조(白鳥)가 결혼해서
‘코리(Khori)’족 11부족을 낳았다.”는 전설에서 ‘알혼 섬의 숫소’는 당시에는 구다천국(句茶川國)의 젊은 환인(桓因)
이고, 우리 사서(史書)에서 배달국(倍達國)을 창시(創始)하신 <거발환(居發桓)-환웅(桓雄)>으로 칭하는 분이라고
할 때에, ‘바로-구진(句陳) 섬(島)’의 백조(白鳥)로써 ‘알혼 섬’까지 날아와서 결혼(結婚)한 사건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바로 ‘세계헌법을 고치는 배달화백’을 할 때에 <현무(玄武)-의료나(宜遼那)>로써 맺어지는 의식인 것입니다.
배달화백을 할 때에는 정견(政見)을 발표하는 ‘다루칸(darukhan)’에게 반드시 홍예(虹霓) 즉 ‘무지개 관계’를 형성
하는 카운터-파트너(counter-partner)인 여(女)-의료나(宜遼那)가 항상적으로 임명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배달화백은 정목(政目)별로 ‘작은 공동체의 통합’에서의 ‘말발’을 준 다루칸(darukhan)과 또 이 다루칸의
의료나(宜遼那)가 되는 ‘큰 공동체의 통합’에서의 다루칸(darukhan)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때 천독(天毒)들은
①자기자신(Me)과 ②‘작은 공동체’에 말발을 받은 다루칸에게 ‘같이’ 말발을 준 천독(天毒)들의 그룹(group), 또
③ ‘큰 공동체의 통합’에 있는 의료나(宜遼那)에 ‘같이’ 말발을 준 천독(天毒)들의 그룹(group)가운데,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게 되면, ‘호혜 써클’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호혜-써클’은 화폐를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힘인 ‘쎄뇨리지-효과(Seigniorage efeect)’ 즉 발권력(發券力)을
지니게 되기 때문에, 소득(所得)을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지지(地支)적 소득(所得)>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돈(money)을 만들어내는 여건(與件)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배달화백을 하는 동안에 ‘사회적 위기’가 발생하게 마련인데, 북두칠성의 영성문(靈星門)으로 상징되는
‘7가지 위기’에 다루칸(darukhan)들이 천독(天毒)들을 대리(代理)해서 이 ‘위기’를 해결하고자 ‘일종의 법관(法官)’
인 패자(沛者)의 인증(認證)을 받아서 영성문(靈星門)을 통과할 경우에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량의 말발을 받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대량으로 받은 말발’은 이것이 <경제적 가치(價値)>를 띠기 때문에, 원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만나
(manna)처럼 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만들어 낸 <지지(地支)적 소득>을 홍예(虹霓) 관계(=무지개 관계) 혹은 현무(玄武)관계를 맺은 여(女)
-의료나(宜遼那)에게 주고, 이 여(女)-의료나(宜遼那)가 다루칸(darukhan)의 정견(政見)과 어울리는 영성문(靈星門)
에 사전(事前) 투자를 하였기 때문에, 대량의 말발을 받는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다음과 갈습니다.
배달화백은 호수(湖水)에서 ‘말발’을 받는 숫자만큼 태(兌) 뒤에 ‘백련(白蓮)-연등(蓮燈)’을 길게 늘어트리게 됩니다.
말발을 많이 받을수록 ‘백련(白蓮)-연등(蓮燈)’은 호심(湖心)쪽으로 길게 뻗어나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각 다루칸이 탄 태(兌)라는 선박은 갑판(甲板)에 ‘무지개(∩)모양’으로 된 ‘솥(=정(鼎),=정(貞))’ 걸이가 그물(network)
에 쌓여서 매달려있고, 여기에 ‘첫 백련(白蓮) 연등(蓮燈)’이 줄(rope)에 걸려서 담겨져 있는데, 그 밑에는 우물처럼
깊숙히 내려가는 통로가 있는데, 이 통로는 이것이 한글의 아(ㅏ)자 처럼 선미(船尾)에로 까지 연결되어 나와 있고,
이 줄에서 계속 백련(白蓮)-연등(蓮燈)이 줄에 의해서 쉽게 묶고 풀 수 있는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솥걸이’는 그물로 무지개 대(臺)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역자 창(=과(戈)’로써 “솥귀(=정이(鼎耳)를 걸어서
잡아당기면, 솥 안에 있던 ‘첫 백련(白蓮) 연등(蓮燈)’은 선내(船內) 통로 우물에 빠져서 이윽고 선미(船尾)로 흘러
나오게 되어 있는 장치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역(周易) 화풍정(火風鼎) 괘(卦)에서 “솥다리를 뒤집어서 위로 향하게 한다.(=정전지(鼎顚趾)”는 것은
‘말발’의 시건장치(施鍵裝置) -즉 ‘잠금장치’를 푸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배달화백을 하고 있는 광경을 조감도로 보면, 호수(湖水) 전체에 수많은 ‘백련(白蓮)-연등(蓮燈)’들이 태(兌)
의 꽁무니에서 호심(湖心) 쪽으로 길게 꼬리를 뻗어가게 되는데, 이를 통계적으로 ‘통제 상한선(upper conrol limit)’과
‘통제 하한선(lower control limit)’을 부표(浮漂)로 표현하게 합니다.
그런데 ‘통제 상한선’ 이상으로 말발을 받은 다루칸(darukhan)들이 지불권(支拂權)을 장악하게 합니다.
이 지불권(支拂權)이란 “선택(選擇)-지(支)를 불식(拂拭) - 즉 ‘털어내서(=불(拂) 종식(終熄)시킨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의 정목(政目)이 아닌 분야에서 통제하한선 이하로 ‘말발’을 받은 것을 ‘털어내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배달화백을 할 때에 발생하는 <지지(地支)적 소득(所得)>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간(干) 12지(支)의 12지(支)는 <지지(地支)>라고 일컬어지고, 또 10간(干)은 <천간(天干)>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지지(地支)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소득이기 때문에, 이를 <지지(地支)적 소득(所得)>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 지불권을 획득한 다루칸이 자신의 정목(政目)에 대해서 지불권(支拂權)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
좀 더 이런 과정을 상세(詳細)히 설명하면, 지불권(支拂權)을 장악한 다루칸(daurkhan)들은 자신의 태(兌)에서 하선
(下船)해서 ‘바이킹’배와 갈은 쾌속선(快速船) 익선(鷁船)으로 옮겨타고서 통제하산선 이하로 받은 태(兌)에 다가
가서 ‘기역자 창(=과(戈)’으로 ‘솥귀(=정이(鼎耳)’에 걸어서 뒤집어서 시건장치를 풀어서 ‘첫 백련(白蓮) 연등(煙燈)’
이 선미(船尾) 통로로 흘러나와서 천독(天毒)들에게 받은 말발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상태로 만듭니다.
대개의 경우, 지불권(支拂權)을 획득하게 되면, 이처럼 ‘솥귀’를 뒤집는 행위와 함께 ‘연극(演劇)-굿’을 펼칠 수 있는
부수적(附隨的) 권리까지 주어서 천독(天毒)들에게 예술적 감흥을 통해서 그 공감대를 넓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배달화백을 하게 면, 점점 통제하한선과 통제상한선 모두가 호심(湖心)쪽으로 길게 나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늦게 하세(下世)하는 다루칸(darukhan)들은 하세(下世)하는 즉시 ‘통제하한선’에도 못미치게 되어 즉각적
으로 지불권(支拂權)을 당할 위기 앞에 놓이게 되는 모순(矛盾)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배달화백은 통제하한선과 통제상한선 안(內)에 - 이를 주역(周易)에서는 ‘가운데 띄었다’는
의미로 중부(中孚)라고 합니다. - 까지 이를 수 있게 하는 법률적 여행권(旅行券)인 포전(布錢)을 내놓아야만
유효(有效)한 하세(下世)가 되는 것입니다.
즉 배달화백이 진행된 지 오래일수록 유효(有效)하세(下世)가 되기 위해서 내놓아야하는 포전(布錢)의 양(量)이
큰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세계헌법을 바꾸는 추모(芻牟)들께서 오늘날 흑룡강에서 엔딩-룰(ending-rule)로 포전(布錢)의 길이
만큼 추모(芻牟)가 먼저 도망가게 하고, “계속 배달화백을 하자!”라고 쫒아가는 다루칸(darukhan)들이 내놓는 포전
(布錢)의 길이만큼 뒤쫓아 가게하는 이른바 [엄사수(嚴(氵虒)水)] 게임(game)이 왜 벌어지는가를 해명하는 논리
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천독(天毒)들께서 배달화백에 참여해서 소득(所得)을 발생하는 것은 ‘지지(地支)적 소득’ 이외에 ‘천간(天干)
적 소득’이 있습니다.
배달화백을 하다보면, 서로 소원(疏遠)하거나 심지어 적대적(敵對的)인 국가-공동체를 통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똑같은 정목(政目)이 두 적대적(敵對的)인 나라인 에이(A)와 비(B) 앞에 병행되어서 펼쳐지게 됩니다.
이 때에 어떤 정목(政目)의 에이(A) 나라 (가) 다루칸(darukhan)이 월등히 ‘말발’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 비(B)나라의
다른 정목(政目)의 (나) 다루칸(darukhan)이 지불권(支拂權)을 위협을 받을 정도로 ‘통제 하한선’ 가까이의 적은
‘말발’을 받았다면, 자연히 천독(天毒)들은 ‘넉넉한’ 에이(A) 나라 (가) 다루칸(darukhan)의 말발을 빼서 부족한
비(B)나라의 다른 정목(政目)의 (나) 다루칸(darukhan)에게 옮기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오늘날 파동(波動)에서 파고(波高)가 높은 것과 파저(波底)가 낮은 것을 합치는 것을 ‘간섭(干涉)효과’라고 칭하는
것과 똑같이 ‘남는 것을 부족한 쪽’에 옮기는 것을 “간섭(干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불권(支拂權)이 정견(政見)을 발표한 다루칸(darukhan)들 가운데 ‘말발’을 많이 받은 자가 장악하는 것과는 달리
간섭권(干涉權)은 순수하게 청구(靑丘)에 앉아계시는 천독(天毒)들이 행사하는 권리(權利)인 것입니다.
간섭권(干涉權)은 통합 혹은 통일(統一)과정에서 <합의(合議)형성과정>에서 대중(大衆)의 지지를 충분히 받진
못하였지만, 그래도 ‘중요한 소수(小數) 의견’을 좀 더 사회가 배양(培養)(=인큐베이션(incubation))시키지 못한
채로 거칠게 진행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간섭행위가 임계량(臨界量) 이상될 때에는 역시 부수적(附隨的) 권리로써 ‘연극(演劇) 굿’을 하게 할수 있게 함으
로써 천독(天毒)들에게 예술적 감흥으로써 자신과 같은 공감대를 더욱 공고케 함으로써 통일기반을 강화시키는
것이 배달화백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①천독(天毒) 자기자신(=Me)과 ② 빼긴 하였지만 원래 동의하였던 다루칸(darukhan)에게 ‘같이 말발
을 실어준 천독’들의 그룹(group)과 ③ 간섭(干涉)해서 배양(培養)시키려고 한 다루칸(darukhan)에 ‘같이 말발을
실어준 천독’ 그룹(group)을 연결시키면, 호혜 써클을 형성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천간(天干)적 소득(所得) 발생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지지(地支)적 소득’과 ‘천간(天干)적 소득’은 다루칸(darukhan)의 카운터-파트너(counter-partner)인 홍예
(虹霓)관계를 형성한 여(女)-의료나(宜遼那)가 반드시 있어야만, 배달화백 진행과정에서 당하는 북두칠성에 비유
되는 7가지의 ‘사회적 위기’에 대해서 사전(事前)에 투자하게 해서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배달화백에서는 홍예(虹霓)관계를 형성한 다루칸(darukhan)은 <여(女)-의료나(宜遼那)>는 서로가
맺어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권리(權利)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홍예(虹霓)관계의 형성>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이 바로 현무(玄武)-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현무(玄武)는 무지개(=홍예(虹霓)) - 즉 쌍수룡(雙首龍)과 북극해(北極海) 밑에 살면서 천지(天地)의 축(軸)을
이고 있는 ‘거북이’를 합체(合體)시킨 신수(神獸)입니다.
(*) 현무(玄武)가 쌍수룡(雙首龍)과 ‘거북’의 합체(合體)임을 보여주는 벽화(壁畵)
http://blog.naver.com/moonehf?Redirect=Log&logNo=150008238611
이런 <현무(玄武)관계>가 필요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첫째는 ‘세계헌법의 수정(修正)’에 대한 혁신적인 대안(代案)을 제시하고, 천독들로 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은 다루칸
(darukhan)이 - 이를 금성(金星) 즉 태백성(太白星)으로도 존칭하기도 합니다. - 유고(有故)시에 ‘그 뜻’을 계속 이어
가야 만이 모처럼 뜻을 모아준 천독(天毒)들의 무산(霧散)시키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짝’을 오늘날 섬서성의 삼야해(三爺海) 가운데, 가장 작은 못인 ‘옥황지(玉皇(池)’에서 결연(結緣)하게
함으로써 현무(玄武)관계를 맺은 여(女)-의료나(宜遼那)가 태백성(太白星)이 유고(有故)-시(時)에 “이를 대행(代行)
할 수 있는 임명하게 하면서, 천독들께서 모아준 ‘세계혁신의 뜻’이 계속 이어지게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비록 현무(玄武)관계를 맺은 한 쪽이 유고(有故)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배달화백의 진행이
다양한 회의장(會議場) (multi-stage)과 다양한 단계(multi-step)를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태백성(太白星)의 일을
맡은 사람이 한 회의장(會議場)에 참석을 할 경우, 다른 회의장(會議場)에 참석할 수 없는 약점(弱點)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현무(玄武)-의료나(宜遼那)로 지정이 되면, 여러 배달화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태백성(太白星)을 복수(複數)로도
임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무(玄武)-의료나(宜遼那)>라는 제도는 멀티-스테이지, 멀리-스텝을 거치게 되는 배달화백의 특성상 여러
회의장(會議場)에서 각기 대리(代理)를 두어서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긴요(緊要)한 상황 즉 크리티칼(critical)한
상황에 자신의 뜻을 대신(代身)해서 알릴수 있는 사람을 파견(派遣)할 필요성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즉 중요한 ‘세계의 혁신안’을 장악한 “여기 저기 출몰(出沒)하면서 긴요(緊要)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신술(分身術)’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대리임명권’을 주는 현무(玄武)-관계를 형성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각설(却說)
아무튼 바이칼(Baikal) 입헌 소도(蘇塗)에서 <홍예(虹霓)관계>나 <현무(玄武)관계>를 형성한 여(女)-의료나(宜遼那)
들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는 해구(海口)가 오늘날의 ‘바르구진 항(港)’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바르구진’이란
명칭은 우리말 ‘바로 구진(句陳)’에서 온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미원(紫薇垣) 별자리를 보면, 북두(北斗)는 별이 일곱으로 되어 있는데, 구진(句陳)은 여섯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북두(北斗)가 별이 7, 구진(句陳)이 별이 6개 임을 알 수 있는 곳.
http://www.nongli.com/Doc/0501/26174123.htm
이런 사실은 <바이칼(Baikal)입헌 소도(蘇塗)>에서 ‘배달화백’을 할 때에, 다루칸(darukhan)들이 하세(下世)해서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途中)에 맞게 되는 ‘사회적 위기’에 들어가는 문(門)이, 6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북두(北斗)의 맨 끝에 있는 파군성(破軍星)이 의미하는 ‘군사적 위기’때 들어가는 문(門)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이칼(Baikal)입헌(立憲)소도에서 세계헌법을 바꾸는 배달화백을 진행할 때에 이곳을 공격당할 군사적
위기는 고대 아시아(Asia)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
오난하(五難河)가 모여드는 바이칼(Baikal)을 ‘달(月)이 담긴 나라’라는 의미로 월지국(月漬國)이라고도 하는데,
이 월지국(月漬國)의 수도가 바로 앙가라(Angara)강이 흘러나가는 입구에 자리잡은 오늘날의 ‘이루쿠츠크(Irkutsk)’
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루쿠츠크(Irkutsk)’에는 <가스(Gas)-전(田)>이 발달한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헬륨 개스’를 채취할 수 있는
곳이어서, ‘고무 부구(浮具)’에다 이 ‘헬륨 개스’를 넣어서 각종 비행선(飛行船)을 띄울 수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순방(淳庬)체제를 지키는 육부군(六部軍)과 또 위수(衛戍)사항을 저촉하였을 때에만 공격을 하는
다양한 ‘벅수군’을 총괄하는 곳이 바로 이 월지국(月漬國)의 수도(首都)였던 오늘날의 ‘이루쿠츠크(Irkutsk)’였던
것입니다.
앙가라(Angara)강을 통해서 바이칼(Baikal)까지 난함선(欄檻船)을 띄울 수도 있고, 또 강력한 비행선의 가장 핵심
적인 ‘헬륭 개스’도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월지국(月漬國)의 수도(首都)는 배달국을 열 때부터 육부군
(六部軍)과 ‘벅수군’의 총괄본부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육부군(六部軍)과 벅수군을 총괄하는 월지국(月漬國)의 왕(王)은 ‘바이칼(Baikal)입헌 회의’에서 천독(天毒)들의
배달화백을 거쳐서 임명되기 때문에, 일종의 <의회군(議會軍)-왕(王)>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월지국(月漬國)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만약의 경우 ‘바이칼 입헌 소도’가 군사적 공격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전쟁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른바 소도(蘇塗)의 도성(都城)이 바로 ‘바루구진 항(港)’ 주변인 왕성(王城)이
라는 것입니다.
아래 바이칼의 ‘신성한 코’인 ‘스뱌토이 노스(Svatoy nos)’반도(半島) 지도를 보면, 바르구진(Barguzin)강이 ‘바르구진
만(灣)’에 들어가기 직전(直前)에 북(北)쪽에 보면,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가 있는데,
이는 몽고어(蒙古語)로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아랑고아의 호수(湖水)>를 옮겨놓은 것입니다.
몽골비사에서 말하는 징기스칸의 원조 보돈차르의 어머니 ‘아랑고아’는 그 아버지가 코리 부족이었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또 이런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 북(北)쪽에는 ‘신성한 코’인 ‘스뱌토이 노스(Svatoy nos)’반도(半島)와
바이칼 동(東)쪽 해변(海邊) 사이에 있는 ‘뱀(snake)의 만(灣)’이라고도 칭해지는 ‘체비르스큐스키-만(灣)(Chevyrs
kuiski bay)’이 있습니다.
(*)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와 ‘뱀(snake)의 만(灣)’을 볼 수 있는 곳.
http://www.waytorussia.net/userfiles/image/Baikal/Destinations/Buryatia/BuryatiaSNos.jpg
그런데, 관경사국(管境四國) 시절 때까지에는 바르구진(Barguzin)강- 아랑가투이-호(湖)-‘뱀(snake)의 만(灣)’을
서로 남북(南北)으로 관통(貫通)시키는 운하(運河)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이칼(Baikal)입헌소도(立憲蘇塗)에 월지국(月漬國)의 전시(戰時)에 왕권(王權)을 행사하는 도성(都城)이 있었던
곳은 ‘헬륨 개스’가 생산되는 오늘날 이르쿠츠크(Irkutsk)이지만, 전시(戰時)에 월지국(月漬國)의 왕권(王權)을 행사
할 수 없는 도성(都城) - 이른바 별도(別都)는 바로 바르구진(Barguzin)강과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
사이를 연결시키는 운하(運河) 좌우(左右)에 궁성(宮城)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곳에 ‘바이칼 입헌소도’의 궁성(宮城)이 있었던 까닭은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바르구진-만(灣) (Barguzin bay)이지만, 그 중(中)에서 ‘말발’을 많이 받은 비중(比重)이
무거운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은 ‘아랑가투이-호(湖) (Arangatuy lake)로 옮겨지는 것이 원할한 배달화백을 진행
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비중(比重)이 무거운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의 태(兌)를 함께 뫃아둔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
주변에 청구(靑丘)의 두 제방(堤防) - 즉 사대원로(射臺垣路)와 폐섭원로(蔽涉垣路)이 있게 하고,
이 사대원로(射臺垣路)에서 명적(鳴鏑)화살로 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에서 ‘말발’을 옮기라는 명적(鳴鏑)화살을 집중적으로 받은 여(女)-의료나
(宜遼那)의 태(兌)에 달린 연등(蓮燈)은 ‘뱀(Snake)의 만(灣)’쪽으로 놓인 운하(運河)를 타고서 길게 그 ‘연등(蓮燈)
의 꼬리’를 ‘뱀의 만(灣)’쪽으로 그 연등(蓮燈)꼬리를 밀고 나갈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오늘날 까지 ‘체비르스큐스키-만(灣)(Chevyrskuiski bay)’의 별칭(別稱)이 ‘뱀의 만(灣)’이라고 칭해지는 까닭은
바로 관경사국(管境四國) 시절 때까지 비중(比重)이 높은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의 태(兌)의 선미(船尾)에 달린
연등(蓮燈)들이 마치 뱀(snake)처럼 길게 ‘체비르스큐스키-만(灣)(Chevyrskuiski bay)’ 쪽으로 나갔던 ‘과거의
기억’이 현지(現地)에서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발환 환웅께서 “바이칼(Baikal)을 세계헌법의 입헌소도로써 개발하자.”는 제안(提案)에 대해서 ① 당신 자신께서
환인(桓仁)으로 계셨던 구다천국(句茶川國)은 물론이고, ②천산(天山)의 이식-콜(Issyk-kol) 호(湖)[=이색극호
(伊塞克湖)]근처(近處)에 있었던 비리환국(卑離桓國)③ 베링(Bering)해협 서(西)쪽의 선패국(鮮稗國) ④ 수메르
(Sumer)산 주변의 원(原)-수밀이국(須密爾國)이 모두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까닭은 바이칼(Baikal)주변의 지리가
“하늘이 배달화백을 하기 위한 최적(最適)의 땅으로 미리 점지(點指)하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와 <뱀(Snake)의 만(灣)>이 존재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흥미있는 것은 이곳이 ‘말발’을 많이 받아서 비중(比重)이 무거운 <여(女)-의료나(宜遼那)>들이 태(兌)을 옮겨와서
하세(下世)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중(比重)이 무거운 다루칸(darukhan)이 태(兌)를 옮겨와서 하세(下世)하는
작은 호수(湖水)가 바이칼(Baikal)에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래 ‘바이칼 지도’를 보면, 알혼(Olckon)섬(島) 맞은 편 동(東)쪽에서 서류(西流)하면서 바이칼에 들어오는
투르카-강(Turka liver)이 발견되는데, 이 강의 해구(海口) 주변에 바로 남(南)쪽에 있는 호수(湖水)가 발견이 됩니다.
이 호수(湖水)의 이름이 ‘코토쾰스쾨(Kotokel'skoye) 호수(湖水)’입니다.
아래 지도에는 이 투르카-강(Turka liver)과 호수(湖水)가 서로 떨어진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상세지도를 살펴보면
이 ‘코토쾰스쾨(Kotokel'skoye) 호수(湖水)’는 투르카-강(Turka liver)와 한글의 우(ㅜ)자 모양으로 수로(水路)가
이어졌음은 물론, 호수(湖水) 속에 다시 ‘작은 섬(島)’이 있는 것이 발견이 됩니다.
(*) 투르카-강(Turka liver)과 ‘코토쾰스쾨(Kotokel'skoye) 호수(湖水)’를 볼수 있는 ‘바이칼 지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f/Karte_baikal2.png
(*) 투르카-강(Turka liver)이 한글의 우(ㅜ)자 처럼 ‘코토쾰스쾨(Kotokel'skoye) 호수(湖水)’와 연결되고, 또 호수
속에 ‘작은 섬(島)’ 섬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google 지도
http://iguide.travel/Lake_Baikal#/Map
“바이칼(Baikal)이 하늘이 준 배달화백의 성호(聖湖)이다.”라는 공감대를 4 환국(桓國)이 공감한 까닭은 바이칼
(Baikal) 주변에 ①‘코토쾰스쾨(Kotokel'skoye) 호수(湖水)’가 투르카 강(Turka liver)를 통해 연결됨은 물론
② ‘아랑가투이-호(湖)(Arangatuy lake)가 뱀의 만(灣)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배달화백은 정목(政目)이란 검토분야-장르에 따라 천독(天毒)들이 태(兌)를 타고 하세(下世)하여 말발을 천독(天毒)
들에게 명적(鳴鏑)화살에 매단 ‘비단의 명령문’에 따라서 옮기면서 진행되는 통합방식입니다.
그런데 “다루칸(darukhan)의 세계통합 능력을 더욱더 제고(提高)시키겠다.”는 관점에서 왕명(王名)을 정한 분이
바로 맥제(百濟)의 2대(代) 임금이신 다루왕(多婁王)입니다.
이 다루왕(多婁王)이란 칭호는 다루칸(darukhan)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칸(Khan)과 왕(王)의 뜻이 동일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문제는 맥제(百濟)의 3대는 기루왕(己婁王), 또 4대(代)는 개루왕(蓋婁王)으로써 모두 ‘~루(婁)’로 끝나는 명칭을
한결 같이 붙이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맥제(百濟)의 시조(始祖)이신 온조(溫祚)대왕(大王)께서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 최초로 세계화시킨
배달화백을 더욱 확장시키는 관점에 맥제(百濟)가 입국(立國)하였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앞으로 3대(代)에
걸쳐서 배달화백의 다루칸(darukhan)의 칭호들 왕호(王號)로 쓰도록 하라.”는 차원에서 불여진 이름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즉 다루칸(darukhan)의 어원(語源)은 우리 말의 ‘다루다(manage)’에서 온 것으로써 그 의미는 “세상(世上)을 경영
하다.”는 것에서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루칸(darukhan)가운데, ‘말발’을 통제상한선(Upper limit control)을 훨씬 뛰어넘게 받은 사람은 배달화백에서
기루칸(Girukhan)으로 불러졌다는 것입니다.
왜 배달화백에서는 기루칸(Girukhan)의 의미는 양육(養育)의 뜻인 “기른다.”에서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 배달화백에서 상한통제선(Upper limit control)을 훨씬 뛰어넘는 다루칸(darukhan)을 기루칸(Girukhan)으로 칭
하게 되었는가?
이는 통제상한선을 훨씬 뛰어넘게 되면, 자신이 하세(下世)한 정목(政目) 이외(以外)의 정목(政目)분야에서 통제
하한선 이하(以下)로 말발을 받은 다루칸의 말발에 대해 지불권(支拂權) - 다시 말해서 청구(靑丘)에 앉아계시는
‘말발’의 원래 주인(主人)인 천독(天毒)들에게 돌려주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말발’을 천독(天毒)들에게 되돌려 주는 지불권(支拂權) 행사는 의견을 점차 통일시켜 정리(整理)
하는 효과는 있지만, 반대로 좀더 양육(養育)시키고 인큐베이팅(incuvating)시켜야하는 의견(意見)들을 압살(壓殺)
시키는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배달화백을 할 때에는 ‘말발’을 통제상한선을 넘어 일정량(一定量) 이상을 받게 되면, 그 칭호를 기루칸
(Girukhan)으로 바꾸고, 이들을 ‘기루칸(Girukhan)의 호수(湖水)’로 옮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루칸들을 배달화백을 하는 호수(湖水) 주변의 ‘작은 호수’에 뫃아두면, 천독(天毒)들 께서 “저 기루칸
(Girukhan)은 비록 말발을 통제하한선 이하로 받아서 지불권(支拂權)을 당할 위기에 놓인 다루칸(darukhan)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더욱 지켜보면서 ‘말발’을 밀어줄 가능성이 있는 다루칸(darukhan)에게 지불권(支拂權)을 행사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더욱 양육(養育)하고 길러야하는 정견(政見)에 대해서 거친 의사통합행위를 하는 것이다.
따
라서 저 기루칸(Girukhan)의 말발을 빼서 지불권을 당할 다루칸(darukhan)에게 옮기는 간섭권(干涉權)을 행사
하자!“는 쪽에 예민(銳敏)하게 반응하는 입지조건을 형성하게 됩니다.
즉 기루칸(Girukhan)의 호수가 있게 되면, 잘못 지불권(支拂權)을 사용하게 되면, 천독(天毒)들에게 간섭권(干涉權)
을 당하게 되어서 기껏 받은 말발을 왕창 잃고 ‘기루칸(Girukhan)의 호수(湖水)’를 떠나게 되는 현상을 자신의
눈(眼) 앞에서 관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소수(少數)의견을 존중하는 기풍(氣風)’이 있어야만 성숙(成熟)한 민주주의로 이행이 되는데, 배달화백
에서는 이런 기루칸(Girukhan)의 호수(湖水)가 있을 경우, 더욱더 성숙(成熟)한 회의진행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바이칼(Baikal) 호수 주변에 있는 ‘코토쾰스쾨(Kotokel'skoye) 호수(湖水)’는 바로 ‘기루칸
(Girukhan)의 호수(湖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다루칸(darukhan)과 ‘무지개 관계’를 맺은 ‘여(女)-의료나(宜遼那)’도 역시 태(兌)를 타고 하세
하는 다루칸(darukhan)인데, 고대 배달화백에서 이들을 무엇이라고 칭하였겠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어(印度語)에는 여성(女性)을 나타내는 어미(語尾)로 니(Ni)를 붙입니다.
이는 한자(漢字)로 <니(尼)>로 표현되어서 우리말 속에 습합(習合)이 된 것을 남자 스님을 승(僧)이라고 하고,
여자 스님을 승니(僧尼)로 표현함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
또 오늘날 전라도 사투리에 ‘이녘’이란 말이 있는데, ‘당신’이란 의미이긴 하지만, 주로 남편(男便)이 부인(婦人)을
칭할 때, 쓸 정도로 우리말에 니(Ni)라는 여성(女性)-어미(語尾)는 소화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루칸(多婁干)과 ‘무지개 관계’를 맺은 여(女)-의료나(宜遼那)를 다루카니(darukhani)로 호칭(呼稱)
할수 있다고 봅니다.
기루칸(Girukhan)과 ‘무지개 관계(=홍예(虹霓)관계)’를 맺은 사람을 우리는 기루카니(Girukhani)로 역시 호칭(呼稱)
할수 있는 것입니다.
바이칼(Baikal)에서 기루카니(Girukhani)의 호수(湖水)는 바로 ‘아랑가투이-호(Arangatuy lake)가 뱀의 만(灣)으로
연결되는 곳인 것입니다.
바이칼(Baikal)에는 이처럼 ‘기루칸’과 ‘기루카니’ 호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세계헌법의 입헌소도(立憲蘇塗)로써
가꾸자!“는 구다천국(句茶川國)의 젊은 환인(桓因) 거발환(居發桓)께서 제안을 하였을 때에, 4 환국(桓國)이 ”정말
이곳은 하늘이 내린 입헌소도의 자리이다.“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맥제(百濟)의 시조(始祖)이신 온조대왕께서는 “우리 맥제는 배달화백으로써 세계의 통합을 주도해야한다.”는 의미
에서 2대(代)는 기루칸(Girukhan)들을 세계화(世界化)한다는 의미로 기루왕(己婁王)이라고 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개루왕(蓋婁王)은 배달화백에서 ‘개루칸’이 있었기에 ‘개루칸’을 세계화한다는 의미로 3대(代)는 개루왕
(蓋婁王)이라고 칭하였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개루(蓋婁)라는 말은 승부(勝負)를 다투는 의미 즉 영어의 compete 에 해당하는 우리말의 ‘겨루다’에서
왔다고 봅니다.
한자(漢字)의 음가(音價)에는 우리말의 ‘겨’에 해당하는 한자(漢字)가 없습니다.
따라서 유사음인 개루(蓋婁)로 이두(吏讀)로 쓴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관경사국(管境四國) 시절 때까지는 [蓋婁]를
읽을 때에 ‘겨루(蓋婁)’라고 읽었다고 좌계는 생각합니다.
배달화백에서는 각 정목(政目)별로 몇 개의 정견(政見)들로 사회통합이 압축되면, ‘봉황(鳳凰) 모양의 고무 부구
(浮具)가 하늘에 떠있는 봉황대문(鳳凰大門)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 때에서 부터는 기루칸(Girukhan)들 가운데,
으뜸-기루칸(Girukhan)을 선택하는데, 이를 ’겨루칸(Gyeorukhan)‘이라고 칭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기루칸(Girukhan)들이 모여서 하나의 겨루칸(Gyeorukhan) 휘하(麾下)에 모여서 일종의 파티(party=
당(黨))을 형성하고, 이런 당(黨)들 사이에 겨루칸(Gyeorukhan)들 상호간에 지불권(支拂權)을 행사하고,
또 천독(天毒)들은 “이 기루칸(Girukhan)은 지금 당(黨)을 형성하고 있는 겨루칸(Gyeorukhan)보다는 저쪽 겨루칸
에게 옮기는 것이 더욱 정국(政局)의 조화(調和)를 꾀할수 있다.”는 식으로 간섭권(干涉權)을 행사하는 것을 주작
(朱雀)단계라고 합니다.
이 주작(朱雀)단계의 배달화백 과정은 말발을 하나(1)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둘(2)을 사용하는 좀 복잡한 양태를
띠기 때문에, 이는 따로 회(回)를 만들어서 설명해야하는 사항인 것입니다.
아무튼 배달화백(倍達和白)을 최초로 세계화시킨 인물이 구다천국(句茶川國)의 젊은 환인(桓仁)이신 거발환
(居發桓) 환웅(桓雄)이었음은 ‘신시(神市)역대기(歷代記)’에 뚜렷이 기재(記載)되어 있습니다.
倍達桓雄 定有天下之號也 其所都曰神市 後徙靑邱國
: 배달(倍達)은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 천하(天下)를 ‘사회적인 선정(禪定)’으로써 찾게 하는(=유(有))것에
대한 칭호(稱號)이다.
그 도읍(都邑)한 곳을 일컬어 신시(神市)라고 하였는데, 후(後)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신시 역대기’ 첫머리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이칼(Baikal)을 입헌소도로써 확정하려면, 호혜(互惠)시장(市場) 체제에서 실물화폐(commodity money)로써
사용된 곡물(穀物)과 철정(鐵鋌)과 같은 금속(金屬)이 대량(大量)으로 바이칼(Baikal)에 유입(流入)이 되어야만
비로소 바이칼(Baikal)에서 ①달(月)로 상징되는 태청(太淸)-배달화백 ② 태양(太陽)으로 상징되는 상청(上淸)
-배달화백 ③북극에서 북극성을 떠받치는 천지(天地)의 축(軸)을 상징하는 옥청(玉淸)-배달화백이 진행될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점은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께서 출자(出自)가 구다천국(句茶川國)혹은 구다국(句茶國)의 서북(西北)쪽
경계가 오늘날 긍특산(肯特山)에서 발원해서 호륜호(呼倫湖)에 물을 대는 극로타하(克魯佗河) 주변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 구다국(句茶國)의 서북(西北) 지역인 호륜호(呼倫湖)로 물(水)을 대는 ‘케루렌-강(Kerulen river=극로타하
(克魯佗河))’와 그 발원지(發源地)인 긍특산(肯特山)을 볼 수 있는 ‘중국전도’
http://www.coo2.net/files/lim030203-6chi.gif
즉 이 케루렌-강(Kerulen river)은 흑룡강(黑龍江)의 원류(源流)가 되면서도, 긍특산(肯特山)은 넘어가면 즉각적
으로 바이칼로 들어가는 이른바 난하(難河)들과 맞닿을 수 있는 곳인 것입니다.
(*) 케루렌-강(Kerulen river)이 흑룡강 수계(水系)의 원류(源流)임을 보여주는 수계(水系)지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a/Amurrivermap.png
이 구다천국(句茶川國)의 서북(西北)지역인 ‘케루렌 강(Kerulen river)’은 삼성밀기에 의하면, 바로 ‘쑥과 마늘의
원산지(原産地)’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문(原文)및 해석(解釋)]
①<密記>注曰<盖馬國>一云<熊心國>在<北盖馬大嶺>之 (*)北距<句茶國>二百里(*)
: <삼성(三聖)-밀기(密記)>의 주(注)에 말하기를 “개마국(盖馬國)은 웅심국(熊心國)이라고도 하는데,
‘북(北)쪽으로 구다국(句茶國)200리에서 떨어진’ 북개마대령(北盖馬大嶺)에 있다.
②<句茶國>舊稱<瀆盧國>在<北盖馬大嶺>之西
: 구다국(句茶國)은 옛날에 독로국(瀆盧國)이라고 칭하던 곳인데 북개마대령(北盖馬大嶺)의 서쪽에 있다.
③<月漬國>在北五白里.
: 월지국(月漬國)은 (이 구다국(句茶國)으로 부터) 북(北)쪽으로 500리에 있다.
④<稷臼多國>或稱<賣句餘國>舊在<五難河> 後爲<瀆盧國>所破 遂移<金山>居之
: 직구다국(稷臼多國)은 혹 매구여국(賣句餘國)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오난하(五難河)에 있었다.
후에 독로국(瀆盧國)에 공파(攻破)되어 마침내 금산(金山)으로 이동하여 거하게 되었다.
⑤<句茶國>本艾蒜所産也 艾煎服以治冷 蒜燒食以治魔也
: 구다국(句茶國)은 본래 쑥(=애(艾))과 마늘(=산(蒜))이 나는 곳이다. 쑥은 달여서 먹으면 냉(冷)을 고치고,
마늘은 구워먹으면 마귀(魔鬼)를 물리친다.“고 하였다.
(좌계)